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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행 무효화, 구원 실현 』

지난 2월 5일 트럼프 대통령의 새 해 국정연설은 트럼프와 민주당의 정치적 기 싸움으로 의사당에서의 대통령 연설 일정을 잡는 것에서부터 팽팽한 긴장의 대결을 보였었습니다. 미국 대통령의 의회에서의 새 해 국정 연설은 정치권은 물론 미국인들 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국가와 정부들 그리고 수많은 글로벌 기업의 CEO들까지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초강대국 미국의 정책은 곧 바로 세계 모든 나라들의 국제외교 관계와 무역을 비롯한 온갖 정책들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트럼프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은 거칠고 저돌적이고 즉흥적이며 예측을 불허하는 그의 스타일이라는 등등의 상당히 부정적인 면이 널이 퍼져 있습니다. 이러한 그의 부정적인 이미지들은 국민들의 지도자에 대한 기대와는 너무 동떨어진 것입니다. 트럼프의 그러한 부정적 이미지들은 국민들의 신뢰를 끌어내는 데 있어서 지도자로서 절대로 보여서는 안 될 면면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국민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로 비춰질 자신의 약점들을 애써 감추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역이용하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그런 자신의 약점들에 대한 그를 싫어하는 이들의 과격한 비난을 유도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저급해 보이고 좌충우돌하는 듯한 이미지는 무엇인가를 얻어내려는 그만의 정쟁과 타협과 협상의 기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트럼프가 한국을 방문하여 국회에서 하는 연설을 듣고 나는 무척 놀랐습니다. 그가 국회 연설에서 보여준 것은 그가 자신의 트위터에서 전후 문맥 없이 툭툭 던지는 충격적인 문자 메시지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적어도 그 자신과 그가 속한 국가가 표방하는 이념과 사상과 가치의 토대에서 이해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역사 인식에서 흐트러짐이 없었습니다. 한국의 지도자들에게서도 쉽게 볼 수 없는 한국 역사에 대한 깔끔하고 신념에 찬 인식과 평가와 전망은 나를 무척이나 놀라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확고한 사상과 철학의 토대 없이 연기로만 드러내기에는 결코 쉬운 모습이 아닙니다.

나는 트럼프의 정치 철학과 정책과 협상과 타협의 방법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의 정치 철학을 논하는 것은 또 다른 주제이지만 그가 겉으로 드러난 것처럼 촐랑대고 거드름을 부리는 것이 그의 전부가 아닌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목회자가 정치인의 정치적 발언과 정책들에 대하여 전적으로 동의하고 좋아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정치란 도덕적 영역이 아니고 특별히 신앙의 영역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치라는 것이 속성상 엄격하게 말하면 필요에 의해서 상당할 정도로 거짓말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국민들은 정치 지도자에게 엄격한 도덕적 수준을 기대합니다. 트럼프가 거짓말도 하고 허풍도 떨지만 그 거짓말과 허풍의 수준이 통상적인 정치적 상황을 고려할 때 심각할 정도는 아닌 듯합니다.

트위터에서와는 달리 트럼프의 지난 2월 5일에 한 2019년 새 해 국정 연설은 의회 연설은 사뭇 진지했고 여론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의회에서의 그의 국정 연설은 유엔이나 다보스 포럼 같은 곳에서의 하는 연설과 태도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그를 비판하는 야당과 언론들은 그의 국정 연설이 트럼프답지 않게 세련되고 구체적이며 긍정적 비전을 제시한 것에 내심 놀라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보다 정제된 톤을 사용했고, 고매한 미사여구로 장식돼 있었으나 그 이면에는 여전히 변함없는 강경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비판하였습니다. 정제되고 고매한 언어를 사용했다면 칭찬하는 게 마땅하지만, 메시지를 비판할 수 없으면 메신저를 공격하라는 좌파들의 금언을 따라 트럼프 나쁜 놈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트럼프가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통계를 제시하고 정부 정책의 수혜자들을 증인으로 소개하자 연이어 기립박수가 쏟아졌습니다. 그가 대통령이 된 이후 530만 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됐고, 60만개의 새로운 생산직이 창출되었는데, 이러한 수치는 전 정부 때보다 일자리는 두 배 이상이고 실업률은 지난 반세기 동안 최저치를 기록했다고 하였습니다. 사실 지금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부한 나라로서 경제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저개발 국가의 경제 성장은 빠르고 선진국의 경제는 아주 느리게 성장하거나 정체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장 부자 나라의 경제가 가장 빠르게 성장한다는 것은 두려운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하는 점은 미국의 경제가 과거처럼 다국적 기업이나 대기업에게만 좋은 경제가 아니라 제조업을 부활시키고 중산층과 저소득층에게 이로운 정책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트럼프는 근로가족에 대한 대규모 감세 법안을 통과시켰으며, 자녀 세금 공제를 두 배로 늘렸습니다. 오바마케어의 강제 의무 조항도 폐지했다고 말하자 기립박수가 터졌습니다. 약값도 최저치로 떨어졌으며, 치명적인 중환자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도록 새로운 규정을 신설했으며, 현재 65년 만에 세계 1위의 천연가스 수출국이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작년에 신설된 일자리 중 58%를 채운 여성들보다 우리의 번영하는 경제로부터 더 많은 혜택을 받은 사람들은 없습니다.”라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야기하자 흰옷을 입은 여성 의원들을 필두로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트럼프가 여성을 폄하하고 인종주의자라는 왜곡된 편견이 구체적으로 여성과 소수 인종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였다는 구체적 증거 제시로 어느 정도는 상쇠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당 정치인들이나 주류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약점만을 극대화 하여 보도하거나 공격하고 그의 치적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거나 국민들과 시청자들이 듣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만 축소하여 보도합니다. 심지어 어떤 야당 정치인은 트럼프가 이룬 성과의 구체적 통계 숫자도 믿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적 협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려울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계속하여 트럼프가 가난한 자들과 중산층과 기업인들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좋은  정책들을 만들어 낸다면 그의 집권 기간 동안이라도 정치 경제 가치 사회질서가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 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진정한 기대와 희망은 눈에 보이고 피부로 느끼는 경제 성장과 정치적 안정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고 피부로 느낄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구원에 있습니다. 한 국가의 정부는 여러 가지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범죄와 불법과 무질서를 막아야 하고 억울한 사람이 없도록 법과 제도를 끊임없이 개선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의 구체적 결과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북한의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강조한 것은 사회주의 국가 건설입니다. 사회주의란 모든 이익을 정부 주도로 공평하게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주의가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는 증거가 김정은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이익을 공평하게 나누는 사회라면 북한에서 절대로 김정은 같은 외모의 인간이 나올 수 없습니다. 김정은이라는 지도자의 외모가 북한이 사회주의가 아니라 극단적인 독재국가임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김정은이 사회주의를 강조하다니, 세계인들을 모두 북한 인민들처럼 눈뜬 장님인줄로 아는 모양입니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강조한 사회주의를 의식해서인지 트럼프는 연두교서에서 반 사회주의를 강조하였습니다. 김정은 뿐만 아니라 미국의 앞선 정부의 사회주의적 정책들도 겨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트럼프는 말하기를, 자기가 대통령에서 물러나게 되면 미국은 다시 그 전처럼 관료적인 딥 스테이트들과 좌파 정치인들과 언론들과 글로벌 기업들에 의해서 나라 경제와 외교 정책이 엉망이 되겠지만 자기가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만이라도 그런 것을 막아보겠다고 하였습니다. 세상일이란 언제가 그렇게 요동치고 곤두박질치게 마련입니다.   

예수님께서 고향 나사렛 회당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소명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갔을 때 회당 관습에 따라 회당 책임자가 예수님께 성경을 읽고 설교하도록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읽고 선포한 내용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이사야 61장에 있는 주전 530년에 일어난 바벨론 포로 귀환 이후 약 20년 어간에 이사야 선지자에 의해서 선포된 말씀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주민들은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었고, 막연한 희망이 실망으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형편에 처한 사람들에게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 묶인 자, 눈먼 자, 억눌린 자의 고통을 들어줄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로 그 사 61:1 이하를 읽으시고 설교를 하셨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8.19).

이어 예수님께서는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언급된 네 부류의 사람들은 크게 구분하면 두 종류의 사람들로서 가난한 사람들과 갇힌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불행한 사람들에게 은혜의 해를 전하시면서 그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은혜의 해란 구약의 안식년을 말합니다. 안식년은 모든 잘못 된 것을 처음으로 되돌려 놓습니다. 가난한 자와 갇힌 자의 불행이 실제적으로 해결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모든 불행이 트럼프 식으로 해결 된 것이 아니라 불행은 무효화 되고 구원은 실현되었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과 갇힌 자는 모든 인간의 실존적 삶의 한계를 보여주며, 그에 대한 대답의 “은혜의 해”란 하나님의 구원이 모든 사람에게 선포된 것으로 불행이 무효화 된 것이고 구원이 실현 된 것입니다. 구원 실현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성취 된 것입니다. 이 구원의 특징은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해 선포를 통해 성취 된 절대생명 경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절대생명 경험은 상대적인 모든 불행을 무효화 시킵니다. 일상에 매여 실존적 한계에서 허덕이는 인간의 모든 불행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 실현을 경험하게 됩니다. 모든 불행은 죄 때문이고 하나님께서 그 불행을 은혜로 무효화하시는 것이지 우리가 극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물의 찌기만도 못한 자신의 존재 인식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만유보다 크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갖게 되었다는 확신을 갖게 될 때 불행의 무효화와 구원의 실현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눅 4:18-21

황상하  joseph195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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