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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식 기자가 묻고 이대희 목사가 답하다 (6)우리에게 주는 유대인 교육의 역사적 교훈

어떻게 하면 우리 교육을 바꿀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유대인교육이 위대한 힘을 발휘한 것은 일반교육이 아닌 성경교육이었다는 점이 주목할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대인이 교육 강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성경인 토라에 있고 토라를 잘 배우기 위한 성경 교육교재로 만든 탈무드에 핵심이 있습니다. 이것은 목사님이 지난번까지 말씀하신 이야기의 핵심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오늘 우리와 연관해서 유대인의 역사적 교훈을 어떻게 적용이 가능할지를 또 어떻게 하면 유대인교육에서 원리를 찾아 우리 교육을 바꿀 수 있는지 말씀해주시죠.

이세상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과 싸움이어요. 우리는 영적으로 이야기 할 때 보이는 것을 세상이라고 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음의 세계라고 합니다. 보이는 것은 물질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이지요. 보이는 것은 일시적이지만 보이지는 않는 것은 영원해요. 가치는 보이지 않는 것에 있어요. 세상의 모든 승부는 보이지 않는 것에서 결정돼요. 처음에는 보이는 것이 우세하게 보이지만 그러나 시간이 지나가면서 보이지 않는 것이 이기죠. 보이지 않는 것이 영원하기 때문이어요.

우리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잡아야 해요. 이것이 지혜로운 선택이어요. 세상은 철학적인 종교지만 기독교는 영적인 종교이죠. 보이는 물질을 중심하는 세상 종교와 달라요. 사실 엄밀히 보면 기독교는 종교가 아녀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지요. 사랑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가치여요.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보이지 않는 것을 가치로 삼고 그것을 이 세상에 구현해야 해요. 영원한 가치에 우선을 두고 그것으로 세상을 이끌어가는 삶이지요.

 

구체적으로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한 다면 그것은 무엇인가요?

 

 

그 전에 한 가지 우리가 알아야할 내용이 있어요. 세상은 크게 4가지 동선(動線)에 의해 움직여요. 이것은 성경이 일관되게 말하고 있는 것이기도 해요. 그것은 시간. 공간, 말씀. 인간이어요. 이 네 가지가 서로 하나로 연결될 때 새로운 역사를 이루어지죠.

보이는 것은 장소라면 보이지 않는 것은 시간이어요. 보이는 것이 사람이라면 보이지 않는 것은 말씀이구요.

성경은 이 네 가지가 움직이는 이야기라 보시면 돼요. 이 중에 어느 하나만 빠져도 역사는 이루어지지 않아요. 적어도 의미 있는 사건이 일어나려면 말씀, 인간, 시간, 공간이 하나 되면서 새로운 역사가 태동되는 것이지요. 역사를 볼 때는 이 네 가지 동선을 잘 읽는 것이 중요해요.

 

방금 말씀하신 것 중에서 영원한 것은 어떤 것들인가요? 또 성경에서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있는 예가 있을까요?  

 

이 중에서 영원한 것은 두 가지여요. 하나는 말씀이고 또 하나는 시간이죠. 그러나 시간에 비해 장소와 인간은 일시적이어요. 장소를 중시 여기면 늘 보이는 성을 쌓는 일에 시간을 투자해요. 그러나 시간을 중시하면 인간의 내적인 것에 치중하면서 새로운 길을 닦아게 되죠. 우리는 길을 닦는 사람인가? 성을 쌓는 사람인가? 를 생각해야 해요. 가인의 후예들은 성을 쌓는 문화였어요. 그것이 바벨탑에서 정점을 이루어 그 탑으로 하나님을 대항했지요. 나중에 롯이 거한 소돔과 고모라의 성은 정착문화여요. 정착문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특성상 타락하게 되고 결국 큰 성을 쌓으면서 멸망하고 말아요. 이것이 세상의 역사죠.

그러나 아벨의 후예들은 새로운 역사를 이루는 이동하는 문화였어요. 어느 한곳에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이 지시하는 약속의 땅을 향해 나가는 믿음의 삶을 이뤄요. 그리고 보이지 않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약속을 심었고 그것을 자손 대대로 전수해 줬어요. 시간을 중심해서 살아갔죠.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면서 나간 사람들이 마지막에는 세상의 승리를 이루죠. 앞에 말한 고대 5대 제국인 애굽, 바벨론, 바사, 헬라, 로마 등은 공간을 중시하며 사람을 의지하고 이용하면서 결국 패망하게 되었어요.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5천년 이상의 역사가 반복하여 말해주고 있는 교훈이지요.

 

결국 시간과 말씀을 따라간 사람이 세상의 역사를 써나갔다는 말씀이네요. 이런 분명한 역사의 교훈을 보면서도 우리는 왜 여전히 공간과 사람에 의존하는지 궁금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라 생각해요. 한국교회도 보면 보이지 않는 약속과 시간보다는 눈에 보이는 공간과 사람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그것은 실적과 결과에 너무 집중하기 때문이죠. 가치설정이 아직 부족한 것이지요. 심지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교회와 크리스천들의 삶속에서도 이런 모습은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고 봐요. 이것은 먼 이야기가 아니고 오늘 현재의 우리들의 이야기여요. 왜 우리도 이런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생각해 보면 성경과 역사의 교훈을 반추하는 작업이 부족하고 이것을 마음속 깊게 묵상하는 것이 약해서라고 생각해요. 일종의 인간의 악한 게으름인거죠.

분명히 수 천 동안 일관 되게 역사적 교훈이 들려짐에도 그것을 거부하는 것은 악한 인간의 속성 때문이어요. 마치 주인에게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이 그 가치를 모르고 땅에 묻어 두는 악한 모습과도 같은 것이 오늘 우리가 아닐까 해요. 제가 이렇게 긴 역사를 이야기 하는 것도 이것을 보다 깊게 마음속에서 깨달음이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죠. 이런 과정을 통하여 성령의 역사를 기대하는 의미가 있어요. 강단에서 시간과 말씀을 따라 살아가자고 설교로 수십 년 외치면서 실상은 교회가 건물과 땅과 사람의 수에 함몰되고 그것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모습이 우리주위에 많은 것도 이 때문이죠.

 

오늘 말씀 감사했습니다. 우리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입니다. 아주 중요한 문제인 것 같은데 조금 더 다음 시간에 실례를 들어서 설명해 주시면 유익이 되겠습니다.

이대희 목사  smd6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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