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수께서 12제자를 세우시고, 여러 동네를 다니시며 가르치며 전도하셨다(teach and preach, 마 11:1). 마태복음에서는 이 부분에서 요한의 사역에서 예수의 사역으로 교차한다. 세례 요한의 죽음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마 11:2-19). 세례 요한은 감옥에 갇혀서 제자들을 통해 예수께 질문을 했다(2절). 옛 시대 사람으로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세례 요한까지 시대와 예수께서 시작한 시대, 그리고 구속을 완료한 후의 시대를 구분해야 한다. 예수와 사도들이 완성한 하나님의 풍성한 구원 경륜에서 보는 관점을 구분해야 한다. 옛빛이 아니라 새빛, 참빛에서 보아야 한다. 이러한 일은 에베소 교회에서 요한의 세례에 머문 경우가 있었다(행 19:3). 21세기에도 여전히 요한의 세례에만 머문 경우가 있다. 요한의 세례는 죄사함(죄죽임)에만 매여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주시는 불과 성령의 세례를 받았다고 하면서, 여전히 요한의 세례에만 머물러 있다. 예수께서 오시기 전 요한의 세례는 가장 탁월한 수준이었지만, 예수께서 오신 뒤에 요한의 세례는 미흡한 수준이 아니라 불신앙의 수준이다(마 11:12).

예수는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12절)고 하셨다. 예수가 있는 1세기 팔레스타인에서는 누구든지 스스로 예수 앞에 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예수를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은혜입은 자는 예수 앞에 나와서 구원을 받을 것이다.

2. 마지막 시대는 배도와 고집이 극치에 이른 세대이다. 그래서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울어도 가슴을 치지 않는 것과 같다(18절).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마 11:18-19). 예수께서 여는 시대는 새로운 시대이다. 요한은 마지막 시대를 마감하는 역할이다. 요한을 욕하던 사람이 예수를 보고 즐거워한다면 상식적이다. 요한을 욕하지 않았던 사람은 회개하고 예수를 즐거워했을 것이다. 요한의 말을 듣지 않고 회개하지 않았으며, 예수를 보고 믿지 않았다. 회개를 외칠 때에 회개하고, 성령을 주실 때는 성령을 받으라. 예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여 임마누엘을 성취하러 오신 메시아이시다.

3. 주님은 주님의 사역과 말씀을 통해 회개하지 않는 고을들을 책망하셨다(20절). 예수께서 가장 많이 이적을 행하셨던 갈릴리의 고라신, 벳세다, 가버나움이 회개하지 않았다. 예수께서 권능을 행하심의 목적은 회개를 촉구하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이 운집했지만 회개하지 않았다. 그 많은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교만한 백성이다(23절). 어둠에 빛을 비추었는데, 그 빛을 거부한 것이다(요 1:5).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다(잠 16:18).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고,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다(잠 18:12).

4. 예수는 갈릴리 기적을 베푼 지역에서 회개하지 않음에서 아버지를 찬양했다(25절). 스스로 지혜로운 사람(교만)에게는 감추고, 어린 아이에게는(겸손) 그것들을 계시하여 배우도록 하신 것이다(25절). 모든 상황이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에(26절) 아버지를 찬양했다.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거부되는 것도 아버지께서 주신 것이고, 아버지 외에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만이 아버지를 안다(27절). 그것이 기적을 베풀어서 아버지를 아는 것이 아니라, 계시를 받은 자가 아버지를 안다. 보았기 때문에 믿어지는 것이 아니라, 계시에 의해서 믿는다. 믿음은 오직 계시에 의한 것임에도, 체험의 용도는 인간을 위한 배려이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 감정도 필요하지만, 계시에 의한 지식이 선행해야 한다.

5. 예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초청하셨다(28절). 어떤 무거운 짐을 졌을 지라도 주님 앞으로 나가면 짐을 내려놓을 수 있다. 짐은 세상짐이다. 세상짐을 스스로 내려놓을 수 없다. 세상멍에를 내려주면 예수멍에를 메고 예수께 배워야 한다(29절). 예수의 멍에는 온유와 겸손이다(29절). 온유와 겸손이라는 예수 멍에는 가볍다. 온유와 겸손은 성육신한 주님의 성품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훈련은 힘들고 무겁다. 주님의 형상을 이루어 가는 길이 복되다. 어깨에 있는 주님의 멍에가 무겁다고 느껴질 때에 두 손에 쥐고 있는 세상짐을 놓아야 한다.

6. 전능하신 하나님, 주 예수께서 새로운 시대를 잘 이해하게 하옵소서. 여전히 인간의 굴레(멍에)에서 판단해서, 스스로 의인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스스로 의인이 되려는 굴레를 벗겨주시고 주의 온유와 겸손의 멍에를 지게 하옵소서. 주님은 나의 빛이요 생명이나이다. 주의 빛이 나의 어둠을 제거하여 주옵소서. 계시 은혜로 아버지를 알고 주님을 믿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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