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115) - 에스겔(7)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 모양이 이러하니 사람의 형상이라 각각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고...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으로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우편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좌편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그 생물의 왕래가 번개같이 빠르더라”(겔1:5-14)

에스겔은 묵시문학을 여는 열쇠가 되는 성서이다. 구약의 다니엘과 신약의 요한계시록을 푸는 묵시문학의 기원과 같은 책이며 기초가 되는 성경이다. 이 묵시문학은 성서의 종말론을 계시해 주는 책이며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이 읽는 종말의 교과서가 되었다. 그 종말론과 묵시문학의 어머니와 같은 책이 바로 이 에스겔서이니 이 책은 우리에게 많은 환상과 묵시를 보여주고 있다.

에스겔서의 구조를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에스겔서 1장-24장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신탁이고, 둘째, 에스겔 25장-32장은 외국 나라에 대한 예언이며, 셋째 에스겔 33장-39장은 구원의 예언(신탁)이며, 넷째, 에스겔 40장-48장은 에스겔의 새 성전의 비전이다.

첫 번째 유다와 예루살렘 심판 예언은 에스겔서 1-3장에서 “보좌 수레”나 “야웨의 마차” 비전으로 시작된다(1절). 그리고 성경 두루마리를 먹으라는 말씀이 2장에 나온다. “인자야 내가 네게 이르는 말을 듣고 그 패역한 족속같이 패역하지 말고 네 입을 벌리고 내가 네게 주는 것을 먹으라 하시기로 내가 보니 한 손이 나를 향하여 펴지고 그 손에 두루마리 책이 있더라”(겔 2:8-9).

에스겔은 주님하신 그 말씀대로 상징적인 행동을 수용하고 그 보좌 마차(생물 바퀴, 야웨의 그룹수레) 소리를 듣는다. 주님의 영광의 환상이 네 그룹(cherubim)의 비전으로 보인다. 이는 하나님의 임재를 고대의 이스라엘 비전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환상은 요한계시록의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서 보던 환상과 비슷하며 에스겔은 바벨론의 그발 강에서 격리되어 억압받는 장소에서 살면서 보는 하나님의 환상이었다. 포로지에서 보는 에스겔의 환상은 민족의 미래를 보여주는 희망의 비전이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영광 가운데 나타나시는 모습이었다. “그 사면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곧 엎드리어 그 말씀하시는 자의 음성을 들으니라”(겔1:28). 이 비전은 다시 에스겔서 10-11장에서 다시 언급된다. 에스겔은 초월적 존재의 힘으로 인간의 언어를 초월한 세계를 보게 된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한 현존과 임재를 보여주는 것이다.

Ezekiel's Vision, Rapahel,(에스겔의 환상, 라파엘) 1518, 1483-1520

파수꾼(보초병)으로서 임무는 예언자의 사명이었다. 그는 주의 백성을 깨울 사명과 책임이 있었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겔3:17). 오늘날 주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은 사람들을 영적으로 깨우치고 영적인 잠을 깨어야 하는 사명을 가진 사람이다. 에스겔은 바로 이 보초병의 사명을 받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예언을 선포하고 깨우쳐야 할 임무를 가졌다(겔33:1이하; 렘6:17). 그 후에 에스겔서 4장-5장을 통해 세 가지 상징적 행동이 나온다. 이 장에서는 예루살렘이 적에게 포위당하는 것을 묘사한다.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거기서 내게 임하시고 또 내게 이르시되 일어나 들로 나아가라 내가 거기서 너와 말하리라 하시기로”(겔3:22). 첫 번째 벽돌을 쌓아 포위되는 행위를 한다(겔4:1-3). “너 인자야 박석을 가져다가 네 앞에 놓고 한 성읍 곧 예루살렘을 그 위에 그리고”(겔4:1). 예루살렘 성이 벽돌로 쌓여져서 포위되는 것으로 예루살렘이 긁히고 파괴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 다음 두 번째 상징적 행동은 빵과 물의 배급량은 식량의 부족을 보여주는 표식이다. “너는 밀과 보리와 콩과 팥과 조와 귀리를 가져다가 한 그릇에 담고 떡을 만들어 네 모로 눕는 날수 곧 삼백 구십일에 먹되”(겔4:9). 세 번째 행동은 예언자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이다. 삼분의 일은 태우고, 삼분의 일은 조각내어 자르고, 삼분의 일은 바람에 흩어버린다(사7:20). 더욱이 또한 상징적 행동으로 더하고 있다 범죄 한 날 수 대로 좌편으로 삼백구십일 눕고 우편으로 사십 일을 모로 누우라고 한다. 또 한편 인분으로 불을 피워 빵을 구워 먹으라 한다. “너는 그것을 보리떡처럼 만들어 먹되 그들의 목전에서 인분 불을 피워 구울지니라”(겔4:12). 이는 포로로 붙잡혀 가기 전 예루살렘에 갇혀 생활하는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예언이었다. 이것은 예루살렘이 열국의 중심으로서 역할을 상실하는 심판의 모습을 말하고 있다(겔5:5).

유다와 예루살렘의 심판 예언은 이스라엘의 산과 골짜기들에 대한 심판 예언과 그 제단(제의 산당)의 파괴와 오염 등을 말하고 있다(겔6장). 또한 종말의 날(7장)과 예루살렘의 죄와 심판의 환상(8-11장)에 대하여 말한다. 에스겔 8장은 예루살렘에서 잡힌 예언자와 네 가지 혐오스러운 제사(더럽고 소외된 제의와 우상제물과 담무즈, 태양신 숭배 등)를 말한다. 그에 대한 심판이 에스겔서 9-11장에는 다룬다. 에스겔 9장은 징벌 받은 여섯 천사, 한 천사가 처벌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에스겔 10장은 도시가 불타듯 빛난다. 그룹의 수레바퀴 형상이 나오고, 에스겔 11장은 블라댜의 죽음, 하나님이 성전에서 떠나는 이야기가 나온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심판예언은 오늘을 사는 우리 시대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죄악이 만연되고 있는 것을 멈출 것인가? 더 나아가 그 죄악의 도시를 향해 부르심의 소명을 감당하며 예언자 사명을 감당할 것인가? 우리는 오늘도 이 파수군의 사명을 듣고 우리는 소명을 받아서 거룩한 자리에서 기도하며 선포하며 외치고 있다.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하시니라”(눅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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