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 15:1-20] 장로들의 전통: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것.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나와 전통(정결례)을 따르지 않음을 비판했다(1-2절). 예수께서는 그들이 심각하게 율법을 왜곡시킨 전통을 제시했다. 예수께서 제시한 것은 5계명이었다. 마가복음 7장에서 그들의 법률 이름을 ‘고르반’이라고 했다(마 15:3-6절). 일정한 금액을 예물로 납부하면서 자기 의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전통으로 진리(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질식시키고 있었다(7절). 1세기 유대인은 살아계신 부모에 대해서 ‘고르반’을 규정하여 판매했다면, 중세 로마 교회는 죽은 부모를 위해서 ‘면죄부’를 판매했다. 율법주의는 실행 가능한 범위로 재정하여 실행하는 것이다. 메시아 오시기 전에 율법은 실행이 목표가 아니라, 메시아를 기다리도록 하는 기능이었다. 메시아가 오신 뒤에도 율법은 실행이 아닌 사랑을 목표로 한다.

예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의 외침을 반복했다(사 29:13). 이사야 시대에 여호와께 반역하던 그 습성 때문에 예루살렘이 파괴되었다. 바벨론 70년 유수를 거쳤지만 그들의 반역 의지는 고쳐지지 않았다. 바뀌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의 법을 자기들이 이해와 실행 가능한 수준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 행동 안에서 하나님의 복을 받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강조했다. 예수께서는 매우 실재적인 상황으로 그들을 가르쳤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과 입에서 나오는 것 중 무엇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가?(12절). 정결례를 지키지 않는 손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정결례를 지키면서 그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는 것이다.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깨끗하게 해야 하는데, 어떻게 입에서 나오는 것으로 사람을 더럽게 할 수 있을까? 손씻음의 정결례는 사람을 깨끗하게 하기 위함인가? 자기를 만족시키는 행동인가?

맹인(거짓 선지자)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것이다(14절). 더러운 손으로 먹어도 그 사람은 죽지 않을 것이지만, 깨끗한 입에서 나오는 더러운 말은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을 일삼아 사람을 더럽게 한다. 우리 시대에 간음과 음란을 정당화시키는 인식 구조와 사회적 합의(간통죄 폐지, 낙태죄 폐지 등등), 도둑과 거짓이 합당한 행동이 되는 프레임들을 경계해야 한다.

2. [마 15:21-28] 가나안 여인(수로보니게)의 딸을 고쳐주시는 예수님. 가나안 여자가 귀신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예수께 구했다(22절). 예수는 가이사랴 빌립보로 가시기 위해 이방인의 땅 두로와 시돈을 지나셔야 했는데, 여기서 이 여인이 예수께 나아왔다. 주님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보냄을 받았으며 자녀의 떡을 취해 개에게 던지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매몰차게 거절하셨다(24-26절). 그러나 여인은 강한 믿음으로 자기 믿음(주여 옳소이다)을 고백했다(27절). 예수께서 여자의 믿음을 인정하셨고, 구(求)한대로 될 것을 확증하셨다(ὦ γύναι, μεγάλη σου ἡ πίστις· γενηθήτω σοι ὡς θέλεις, 28절). 그리고 그녀의 딸은 나았다. 믿음의 담력은 사랑의 주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은 것이며 떠나지 않는 것이다.

3. [마 15:29-39] 두로와 시돈에서 데가볼리를 경유하여 갈릴리 호숫가로 돌아온 예수께서 산에 앉으시니 큰 무리가 나왔다(29-30절). 무리들의 병을 고쳐주셨고, 무리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31절).

사흘 동안 거기에서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32절). 예수께서 모두에게 음식 제공을 명령하시자, 오병이어를 경험한 제자들이지만 여전히 의심하면서(33절), 7병2어를 내놓았다(34절). 예수께서 칠병이어로 축사하시고 무리에게 나누어 주도록 명령하셨다. 칠병이어로 여자와 어린이 외에 4,000명이 먹었고(37절), 7 광주리가 남았다(36절).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에서 남은 광주리 수와 먹은 숫자를 제시하는 것이 특징이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자비와 능력으로 광야에 있는 자녀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셨다. 우리는 많은 숫자가 먹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 혹 “제자들이 떡 나누어 줌”을 강조하는 해석이 있는데 주의가 필요하다. 예수께서 축사하고 ‘나누어 줌’이라는 한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각시키는 것은 위험하다. 일단 제자들이 그 나눔의 효과를 간증한 것은 성경에 없다. 성경에서는 예수께서 칠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심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둘째, 주님의 기적에 인간이 기여했다는 발상은 신인협력적 이해로 인도할 수 있다. 재미있는 적용은 아무리 풍성해서 철저하게 계산하고 정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풍성하기 때문에 헛되게 사용하는 것은 부당하다.

5. 예수께서 갈릴리 호숫가에서 배를 이용해서 마가단(Magadan) 지역으로 이동하셨다(39절). 어떤 사본에는 막달라(Magdala) 지역이라 하기도 한다.

4.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의 게으름과 교만이 주의 생명의 법을 사망의 법으로 올가미의 법으로 전환시킬 수 있음을 인지하고 경계하며 겸손하게 하옵소서. 담대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하며 구하게 하옵소서. 주의 기적에서 주님을 바라보게 하옵소서. 주의 기적으로 많은 사람이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복을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