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116) - 에스겔(8)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부회장 KC대 전 총장

“인자야 가령 어느 나라가 불법하여 내게 범죄하므로 내가 손을 그 위에 펴서 그 의뢰하는 양식을 끊어 기근을 내려서 사람과 짐승을 그 나라에서 끊는다 하자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 있을찌라도 그들은 자기의 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겔14:13-14).

에스겔서를 우리나라 일제시대에 살았던 때와 비교할 수 있을까? 가장 어두운 시대에 살았던 윤동주와 같이, 에스겔도 적국에서 고뇌하며 하나님의 비전을 붙잡고 있는 모습이다. 에스겔은 포로로 붙잡혀 갔지만 윤동주는 일본에 유학을 가서 독립 운동에 가담하여 생체실험 대상으로 이슬처럼 사라지는 운명을 맞게 되었다. 아, 에스겔서는 이러한 종말적 묵시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에스겔서의 구조를 겔12-24장까지 살펴보면 예루살렘과 북 사마리아의 운명을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상징적 행동 둘은 바빌론 포로의 묶음으로서 예루살렘 주민들의 포로로 잡혀가서 떨리는 상태로 먹고 마시는 것을 말한다. “인자야 너는 떨면서 네 식물을 먹고 놀라고 근심하면서 네 물을 마시며”(겔12:17). 또한 시드기야 왕의 운명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무리가 성벽을 뚫고 행구를 그리로 가지고 나가고 그 중에 왕은 어두울 때에 어깨에 행구를 메고 나가며 눈으로 땅을 보지 아니하려고 자기 얼굴을 가리우리라 하라”(겔12:12). 에스겔 예언자의 예언은 모두 성취됨을 말하고 있다. “인자야 이스라엘 땅에서 이르기를 날이 더디고 모든 묵시가 응함이 없다 하는 너희의 속담이 어찜이뇨...나는 여호와라 내가 말하리니 내가 하는 말이 다시는 더디지 아니하고 응하리라 패역한 족속아 내가 너희 생전에 말하고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겔12:22,25).

에스겔서 13장은 당시 예언자와 여예언자의 저주스러움에 대하여 말하며, 14장은 우상숭배로 인해 하나님과 대화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세 명의 의인이 언급되는데, 노아와 다니엘, 욥이 있을지라도 자신만 구원할 뿐 가족들도 구원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14:20). 에스겔서 15장은 불에 던져질 포도나무로서 화목을 말한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 내가 말하노라 내가 수풀 가운데 포도나무를 불에 던질 화목이 되게 한 것 같이 내가 예루살렘 거민도 그같이 할찌라”(겔15:6). 또한 믿을 수 없는 아내로서 예루살렘을 말한다(겔23장). 독수리와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 유다의 마지막 왕들의 운명에 대하여 탄식한다. “너는 패역한 족속에게 묻기를 너희가 이 비유를 깨닫지 못하겠느냐 하고 그들에게 고하기를 바벨론 왕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왕과 방백을 사로잡아 바벨론 자기에게로 끌어가고”(겔17:12). 수수께끼 비유로서 여호야긴의 운명을 알레고리적으로 말하며 백향목 나무 정상이 독수리에 의해 베일 것이라 말한다(17:22-24). 그리고 시드기야 왕은 독수리 두 마리(애굽과 바벨론)에 직면할 것이라 한다. 시드기야가 언약을 위반하여 다른 왕을 세우고 붙잡혀 간다고 말한다(17:13). 결국은 하나님의 언약을 배신한 결과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오늘 이 시대도 종말의 때임을 우리는 어느 누구하나 부인하지 않고 있다. 이때에 종말론적 신앙을 가지고 ‘매일 내가 죽노라’는 바울의 고백처럼 살아야 하리라. 우리는 하루를 천년과 같이 충실하고 성실하게 복음을 위해 살아야 한다. 에스겔서 18장은 개인의 보상과 처벌에 대한 교훈을 말하며, 의인과 악인의 이야기를 통해 회개를 촉구한다. “만일 악인이 그 의를 떠나 죄악을 행하고 인하여 죽으면 그 행한 죄악으로 인하여 죽은 것이요 만일 악인이 그 행한 악을 떠나 법과 의를 행하면 그 영혼을 보전하리라”(18:26-27). 회개를 통해서만 자유를 누릴 수 있음을 말한다. “내가 모든 사람을 그의 행한 대로 심판할찌니라”(18:30). 에스겔서 19장은 암사자와 젊은 두 사자의 비유를 통해 왕족(여호아하스와 여호야긴)의 운명과 시들은 포도나무 비유(시드기야)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에스겔서 20장은 역사적 회고를 한다. 광야 시절에 야웨 이름으로 계시하시고 첫 언약과 안식일 계명을 어긴 것을 말하고 있다. “이는 그들이 나의 규례를 행치 아니하며 나의 율례를 멸시하며 내 안식일을 더럽히고 눈으로 그 열조의 우상들을 사모함이며 또 내가 그들에게 선치 못한 율례와 능히 살게 하지 못할 규례를 주었고”(겔20:24-25). 장자의 죽음을 통해 출애굽의 역사를 행했던 것을 말한다. 광야에서 심판은 얼굴과 얼굴을 대하는 것이며 또한 그 구원을 언급하며 두 번째 출애굽을 언급한다. “너희를 인도하여 열국 광야에 이르러 거기서 너희를 대면하여 국문하되 내가 애굽 땅에서 너희 열조를 국문한 것 같이 너희를 국문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겔20:35-36).

끝으로 야웨의 칼(겔21장)과 피의 도성(22장), 불충실한 오홀라와 오홀리바 자매(사미리아와 예루살렘, 겔23장)을 다룬다. 칼의 상징적 행동은 교차로에 서서 느부갓네살을 그리게 하며(겔21:23), 끊는 가마 속에 은이나 놋, 철이나 납이 녹는 것(22:20)을 통해 심판이 임했다는 것을 말하며, 그리고 다양한 계층에 대한 설교(22:23)를 통해 모두가 망하게 됨을 말한다.

에스겔서 24장은 불 속에 있는 녹슨 가마 이미지를 통해 에스겔 아내의 죽음이 예루살렘 몰락의 상징으로 말하고 있다. 슬픔의 상황에서도 애도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하며 아내가 죽어도 울지 말라 하신다. “인자야 내가 네 눈에 기뻐하는 것을 한번 쳐서 빼앗으리니 너는 슬퍼하거나 울거나 눈물을 흘리거나 하지 말며”(겔24:16). 울 수 없는 심판의 노래는 임박한 유다의 종말에 대한 비극을 말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총제적 위기와 그 심판 속에 놓여 있다. 결국 회개하는 것만이 새로운 살 길임을 말한다. 오늘의 상황에서도 아직 에스겔은 그렇게 선포하고 있다.

“그가 스스로 헤아리고 그 행한 모든 죄악에서 돌이켜 떠났으니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겔18:28).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눅24:4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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