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보수주의를 겨냥한 노골적인 적의(敵意)와 학살의지

현대판 하만의 등장

지난 2014년에 프란체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그러자 그의 어록(語錄)이 전 한국에 파다하게 공개되기 시작했다. 교황의 발언들 가운데에는 기독교 보수주의에게 예리한 충격을 주는 발언이 있었다. 그는 분명히 한국과 전 세계의 기독교 보수주의를 겨냥해서 노골적인 적의(敵意)와 학살의지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는 등장한지 얼마 안 되어, 소위 ‘평화의 아버지’라는 애칭까지 들을 만큼 인기있는 스타인데 비해, 기독교 보수주의에 대한 그의 발언은 섬뜩할 정도로 살기가 배어있다. 기독교계의 진보적인 교파나 타 종교계에게도 엄청난 당혹과 충격을 줄 정도이다. 그러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로마 가톨릭 내부에서조차 그에게 소름끼쳐 할 만큼 거부감을 드러내는 사람들 숫자가 증가하고 있다. 왜 그럴까?

  1. 예수는 여러 종교 메시아 중 하나이고, 구원은 기독교 외의 종교를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2. 예수의 재림은 성만찬 석상에서 포도주에 취한 스승님의 말 실수를 그 제자들이 신화적 발상으로 교의화 한 것으로서, 실제로 일어날 일은 아니다.
  3. 기독교 근본주의(보수주의)는 실제로 살인행위를 저지르진 않는다 해도, 그 교의 자체로 살인을 저지르는 집단이다. 그러므로 인류의 평화를 위해 척결되어야 한다.

이 교황의 발언대로라면, 크리스천들은 성경대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것 때문에 인류평화를 파괴하는 자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믿고, 그 희생적 사랑을 본받으려 하는 것 때문에 종교 간의 대화를 파괴하는 자들이라고 교황은 말한 것이다. 크리스천들은 자신을 학살하고, 고문과 구금을 하며 신앙을 버리라는 사람들 앞에서 비폭력적 저항으로 순교를 한다. 그런데 그런 비폭력적 저항행위로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 때문에 그 학살자들을 거꾸로 살해한다고, 교황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논리라기보다는 무슨 ‘주술(呪術)’을 닮은 ‘반(反) 언어의 언어’이다.

바티칸은 지난 1500년 동안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는 학살과 고문과 구금을 자행해온 대표적 집단이다. 보수적인 크리스천은 언제나 그들의 학살 대상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비폭력적 저항을 했을 뿐이다. 그러므로 교황은 보수적인 크리스천들을 살인집단으로 몰려면, 먼저 바티칸의 이런 역사를 정직하게 회개한 눈으로 보수주의 크리스천들을 보았어야 한다.

회개를 했다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유럽의 개신교가 로마 가톨릭을 흉내내어 식민 제국주의로 가는 바람에 바티칸처럼 학살범죄를 일으킨 역사가 있었다. 그러나 개신교에선 이런 교회를 영적 간음을 범한 ‘음녀(배도)’ 교회로 분류한다. 정상적인 보수주의 기독교 신앙은 그리스도의 아가페 윤리실천 명령 때문에 절대로 폭력을 사용할 수 없다. 그것을 교황은 잘 안다. 그런데도 이런 어록을 퍼트린다면, 그것은 일반 정상언어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흔히 인간을 최면시키는 주술사의 언어가 이런 형태를 취한다.

그러므로 종교통합 운동과 동성애 찬성 교단인 PCUSA는 자신을 새로이 점검해야 한다. 어째서 이런 바티칸의 미혹을 따르는가? 어떻게 하다가, 생명처럼 소중히 여겨온 성경과 교의를 버리면서까지 이런 ‘3대 배도(背道) 노선’을 택한 것일까? 어째서 교황의 말 같지도 않은 ‘주술적 최면언어’를 좇는가? 그런 집단심리는 이 최면언어의 독한 주술효과가 강력하게 작용한 결과(계시록 17:2)임을 알아야 한다. 이 교단은 그런 WCC의 굵은 곁가지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WCC의 굵은 곁가지 역할로써, 이런 바티칸의 ‘인간신 조작’에 가담하고 있다. 이것은 PCUSA가 정상적인 신학적 변증에 설득된 결과가 아니라, 최면효과이다. 무언가 비정상적인 영적 충격과 심리최면의 결과로 발생한 일이다. 거기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 자들은 지금 이 교단 안에 들어와 혼취케 하는 이 더러운 신학적 미약(媚藥)을 마시게 한 자들이다. 그들의 대표가 지금 이 교단을 지배하는 그룹이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정직한 자기성찰과 회개운동을 하면, 영혼을 혼취(昏醉)케 하는 ‘음녀의 술잔’을 내던질 수 있다. 내던지는 행위는 다름 아니다. 그 지배그룹을 이제는 버려라! 그러면 교단 내에서 보수적 신앙을 지키는 형제들을 알아보고, 다시 끌어안을 수 있게 된다. 이런 결정은 ‘다수결’로 결정할 일이 아니다. 보수주의에 대한 종교재판의 칼을 그들은 지금 은밀히 빼려 하고 있다. 그것이 악이라는 것을 선언하라! 그리고는 무시하고 나머지는 ‘여호와의 전쟁’이니, 주님께 맡기면 된다.

오늘의 상황은 이 교단의 교권을 휘어잡은 이들의 정체를 아주 명확하게 드러내 준다. 그들은 처음부터 종교 마키아벨리즘적 차원에서 이 교단의 퓨리터니즘을 파괴하고, 신학을 자유주의 신학 일색으로 통합하여, 자신의 교단을 배후의 주술적 명령자에게 절대복종시키는 일에 동원된 ‘종교 마키아벨리즘의 술사(術士)’였던 것이다. 그들은 PCUSA 교단에서 절대 불가변의 교의와 성경의 권위를 하향조정 하다가, 정치적 술수로 ‘다수결’로 처리하여, 정통교리의 자리에서 내려 앉히는 데 성공했다. 다수의 폭력을 이용한 종교 마키아벨리즘의 극치이다.

물론, 여기에는 신앙을 보수하려는 사람들의 신뢰도와 능력이 먼저 책임추궁 대상이긴 하다. 하나님 앞에서 그들은 그들대로 반드시 심문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들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종교 마키아벨리즘 행태가 가려질 수는 없다.

또 그 책임이 면해지는 것은 더욱 아니다. 원래, 하버드-예일-프린스턴으로 연쇄적으로 이어진 ‘자유주의의 신학적 침략’ 물결이 갑작스레 범람한 사태, 그것이 교단에서의 ‘다수결 폭력’으로 증폭된 사태, 이로 인한 미국 퓨리터니즘의 ‘신학적 살해’가 이루어진 과정, 이 역사는 미국 기독교사의 비극이요, 세계 기독교 선교사상 거대한 영적 괴물의 등장 사건이다. 사실, WCC가 오늘 같은 종교괴물로 성장한 배경에는 이 ‘미국신학의 비극’이 있다.

오늘날 알라 신을 PCUSA의 총회에 끌어들여, 교단내 보수주의 척결 신호를 내리려는 교단 지배그룹은 바로 이 선대(先代)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후예이다. 그랬기에, 절대 불가변의 교의였던 퓨리터니즘의 ‘소돔반대 윤리’ (Anti-Sodomic Morality)를 WCC의 힘을 빌려 속임수와 책략과 ‘다수의 폭력’으로 모독하고 파괴하면서, 오늘의 교권도 장악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젠 이런 자신들의 종교 마키아벨리즘 행태를 정통(正統) 역사의 줄기로 여긴다.

그러므로 이번에 일으킨 ‘알라 충격’의 사태 역시 정직하고 냉엄하게 판단해야 한다. 그 지배그룹은 처음부터 책략적 속임수와 폭력의도를 감추고 고의적으로 벌렸다. 그들은 ‘소돔 반대자’들의 교단추방이 어려우니까, 아예 ‘종교통합 문제’를 들고 나와, 생사부(生死簿) 명단작성과 척결감행을 목적으로 이런 괴이한 사태를 야기시킨 것이다. 그들을 그냥 두면, 이제부터 그 평화주의자의 가면도 벗어 던질 것이다. 교단 내에서 보수주의 척결의 칼바람을 일으켜야 하기 때문이다. 앞에 말한대로 이미 바티칸의 명령은 떨어졌고, WCC의 명령수령 대답도 끝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교단치리의 칼을 든 PCUSA 지배그룹은 아는가?

프란체스코의 실질적인 의도는 그 칼질의 연장선상에서 실제 학살의 칼을 휘두르려 한다. 하지만, 하만은 자기 칼에 자기가 맞아 쓰러진다. 그것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 영원한 정의의 왕 예수께서는 이 사태를 주시하고 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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