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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산책】 허만 멜빌의 <백경>을 통해 본 세계관이상욱 목사의 인문학 산책 (13)

 

이상욱 목사│목민교회(인천) 담임, 호서대학교( Ph.D), 성산효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인간과 세상이라는 두 축

인문학은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고 가르친다. 인문학의 키워드는 인간과 세상이다. 인문학은 인간은 어떤 존재이며,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은 어떤 곳인가? 이를 다룬다. 이미 그리스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이에 대해서 성찰했다. 소크라테스는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소크라테스는 “숙고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라고 말한다. ‘성찰하는 삶, 숙고하는 삶’을 소크라테스가 후세에 남긴 가장 큰 선물이라 할 것이다. 반면에 로마는 인간이 발을 딛고 살아가는 세상은 어떤 곳인가?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세상의 법률, 정치, 제도에 대해서 숙고했다. 『백경』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은 어떤 존재인가? 그리고 인간이 직면한 문제 앞에서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심각하게 숙고하게 한다.

백경은 미국의 남자들이 좋아하는 남성 소설이다. 여성이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의 아버지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여 집을 떠나 독립하는 아들에게 선물하는 책이 『백경』이라 한다. 이런 문화에는 인생이 무엇인가? 아들이 살아가는 세상은 어떤 곳인가? 그리고 어떤 태도를 보이고 살아가야 하는가? 허만 멜빌은 여러 가지 상징을 사용하여 이를 통찰하고 있다.

제국주의라는 괴물 앞에서

“오 고독한 인생 외로운 죽음이여! 오! 이제 내 가장 깊은 슬픔 안에서 나는 나의 가장 큰 위대함을 느낀다. 오! 오! 지난 내 삶 전체에 걸쳐 대적할 수도 없이 세차게 휘몰아치던 파도여! 아득하고 머나먼 끝에서부터 이제 휘몰아쳐라. 그래서 내 죽음의 물기둥 꼭대기까지 솟아올라라! 모든 것을 파괴하지만 정복되지 않는 고래여! 그럴지라도 그대를 향해 나는 돌진한다.”

위의 대사 말은 허만 멜빌(Herman Melville, 1819–1891)의 『백경』에 나오는 문장이다. 외다리 선장 에이허브가 모비 딕을 눈앞에 두고 절규하는 말이다. 모비 딕은 세계 해양 문화의 최대 걸작으로 꼽힌다. 허만 멜빌은 해양 문학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19세기 낭만주의 문학에 대표주자로 회자 되는 작가이다.

너대니얼 호손과 함께 19세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허먼 멜빌의 장편 소설 『모비 딕』은 현대 미국 상징주의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작품이지만 당시에 인정받지 못했다. 허만 멜빌 자신도 실패한 작가로 인정하며 생을 마쳤다. 그러나 사후 10년이 지난 1919년 컬럼비아대학 영문학 교수였던 레이먼드 위버(Reymond M. Weaver)에 의해 재조명되며 마침내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로써 일반 대중에게 멜빌은 미국 문학사에서 위대한 작가로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비록 생물이지만 모비 딕이라는 특별한 이름을 가진 거대한 흰고래, 모비 딕에게 한쪽 다리를 잃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에이허브 선장의 이야기다. 작품은 젊은 선원 지망생 이스마엘의 눈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묘사된다. 이 소설은 바다라는 새로운 세상에서 도전과 모험을 다루고 있고, 아울러 모비 딕을 향한 광기 어린 에이허브 선장의 처절한 집념과 복수의 과정을 그려낸다.

멜빌이 살았던 19세기 상황은 계몽이란 명분으로 경쟁적으로 팽창하던 제도 제국주의의 전성기이었다. 제국주의자들은 폭력을 통한 자본의 노동착취로 산업자본주의 무자비한 확장을 위해서 식민지배를 정당하게 인정하였다. 특히 노예제도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이로써 이 시대적 패러다임은 사회경제적 강자의 모든 논리를 더욱 공고히 하였다. 자본과 경제력은 인간의 모든 기본권을 초월하여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지배하고 군림하던 시기이었다. 결국, 미국 사회에 심각하게 치우친 경제적 불균형과 극심한 빈부 격차를 가져왔다. 이런 시대에 멜빌은 작가로서 위대함은 그런 척박한 현실에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확신과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잘못된 시대정신에 저항하고 고뇌하며 그것을 바로잡고자 하는 비판하는 작가 정신의 순수한 본령(本令)을 지켰다는 데 있다.

이스마엘이라 불러라

“나를 이스마엘이라 불러라 몇 년 전 정확히 얼마나 오랫동안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내 지갑에 돈 한 푼 없는 빈털터리 신세기의 육상에서 특별한 흥미를 끄는 어떤 것도 없던 그런 시절 나는 잠깐이나마 배를 타고 세계 바다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이 우울하고 이길 수 있지만, 감정 그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 버리는 방법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부르는 작품 속의 화자, 이스마엘은 수중에 돈 한 푼 없는 빈털터리로 살아가는 길이 막막한 청년이다. 그럼에도 이 청년은 그가 직면한 척박한 현실에 절망하지 않는다. 그는 쓸쓸하고 막막한 환경이 주는 무기력함과 그 악순환의 거리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청년이다. 그럼에도 실낱같은 희망을 바다를 향해 눈을 돌린다. 이는 곧 사회 구조와 제도 앞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 맞닥뜨린 우리네 사회현실의 데자뷔이기도 하다. 이러한 환경을 벗어나기 위해 아무도 거부하지 않고 모든 것을 그저 수용하는 바다라는 거대한 자연을 선택하고 모험을 나서 작가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익숙하게 아는 바와 같이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낳은 아들로 아버지에게 추방되어 황야를 떠도는 방랑자의 이름이다. 아마 사회에서 일탈해 포경선에 오르는 주인공의 인생역정을 은유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장치인 듯하다. 작품 중에 이스마엘은 육지 생활에 큰 불만을 품고 크리스마스 날 아침에 포경선(捕鯨船)을 타게 된다. 그리고 여관에서 식인종의 나라 왕자 야만인 퀴퀘그와 함께 한방에서 자게 되는데, 문신을 한 이 괴기한 인물에게서 기독교 신도에게서는 좀처럼 발견할 수 없었던 진정한 인간애를 느끼게 된다. 배에 오르기 전에 구약성서에 엘리야로 상징되는 광인인 일라이저로부터 파멸적인 운명에 대해 경고를 받게 된다. 직전 일라이저라는 광인에게 파멸적인 운명에 대한 경고를 듣게 된다. '바다에 도전하는 자는 자신의 영혼을 잃게 될 것'이라는 매플 목사의 경고를 듣지 않고 포경선 피쿼드호에 오른다.

피퀘드 호 선장인 에이허브는 "모비 딕"이라고 일컬어지는 머리가 흰 거대한 고래에게 한쪽 다리를 잃고 복수심에 불타 있는 노인이다. 그는 일주일 동안 배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러한 증오심에서 승무원들을 마구 다그친다. 선장은 고래 기름을 얻기 위한 항해 목적에는 관심이 없다. 선장 에이허브는 옛 스페인 금화를 마스트에 박고는 제일 먼저 백경을 발견한 사람에게 상으로 주겠다고 말한다. 에이허브는 무리한 항해를 말리는 일등항해사 이자 독실한 기독교도인 스타 벅의 충고도 뿌리친 채 모비 딕을 쫓아 다른 배들로부터 백경에 대한 정보를 받으면서 대서양에서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으로, 또 태평양으로 항해를 계속한다. 그러다가 드디어 백경의 모습을 발견한다.

천신만고 끝에 복수의 기회를 얻은 에이허브는 모비 딕과 사흘 동안 밤낮으로 처절한 사투를 벌인 끝에 선장이 쏜 작살은 명중했지만 고래는 결국 에이허브를 바닷속으로 끌고 들어가 버리고, 피쿼드호도 침몰한다. 그러나 미리 죽음을 예견한 동료가 만들었던 관을 타고 가까스로 혼자 살아남은 이스마엘이 이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다.

백경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이 소설은 당시 기독교도들의 세계관과 활동 방향에 대해 여러 각도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선장 “에이허브 Ahup”, 이성적 인물인 항해사 “스타 벅”, 목사 “매플”, 그리고 작살잡이 선원으로 “이스마엘”과 그의 동료 “퀴케그”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이 선장의 명에 의하여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며 찾아다니는 대상 “모비 딕”이라는 흰고래가 있다.

에이허브(Ahab) 선장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폭군의 이름이다. 구약성서에서는 ‘아합’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데 ‘에이허브’는 아합의 영어식 발음이다. 구약에서 아합 왕은 이세벨이라는 악녀와 결혼해 악행을 일삼았고 우상숭배에 빠져 이스라엘을 혼란에 빠뜨렸던 왕이다. 멜빌은 거대한 고래에 집착하는 선장의 모습을 통해 우상숭배의 또 다른 측면을 드러내 보이려고 했던 것 같다. 또한,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죽을 것을 예언한 남자의 이름은 일라이 저(Elijah)이다. 히브리식 발음으로는 엘리야다. 엘리야는 아합에게 박해받았던 구약성서 최고 예언자다. 소설에 구약시대 최고 예언자를 등장시킴으로써 멜빌은 소설의 결말을 미리 암시해 주고 있다.

『백경』의 줄거리에서 강한 의지를 갖추고 포경선을 몰아가는 이는 “에이허브”다. 그는 구약성서에서의 역할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자기 한쪽 발을 잃게 만든 흰고래 모비 딕을 철천지원수로 삼아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면서 지구 끝까지 추적해 나간다. 복수의 화신이 되어 어떤 스타 벅의 이성적인 만류도 모두 뿌리치며 끝까지 추적하여 모비 딕과 사투를 벌이게 된다. 그 결과는 “피쿼드호”의 침몰이었다. 그리고 이스마엘 한 사람만이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는다. 여기서 모비 딕이라고 불리었던 흰고래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등장인물뿐 아니라 소설의 내용에도 성서적 상징은 종종 등장한다. 소설 초반부 이스마엘이 승선하기 전 장면에서 매플 목사의 대사가 나온다.

“더욱이 요나는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는 죄를 범한 데다 하나님으로부터 달아나려고 온갖 조롱의 말을 했습니다. 인간이 만든 배로, 신의 힘이 미치지 않고 인간의 지도자만이 다스리는 나라로 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소설에서 구약성서의 요나 이야기를 거론한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복종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하나님에 대한 복종을 거부하고 불행의 길로 접어들게 되는 소설 주인공들의 어리석음을 선험적으로 들려주고 있다. 소설 ‘백경’은 방랑자 이스마엘과 우상숭배자 아합을 통해 절대자를 대하는 인간의 어리석은 본성과 행태를 그대로 드러낸다. 끊임없는 도전과 반역, 그리고 심판과 파멸, 그럼에도 다시 반역에 나서는 인간의 어리석은 모습을 보여준다.

Jonah and the Whale (1621) by Pieter Lastman

어떤 비평가는 모비 딕은 하나님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19~20세기 초에 무신론, 사신론, 하나님은 현대인들에게 별 의미가 없는 존재이다. 인간은 신과 끊임없이 도전하는 존재로 보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모비 딕은 운명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베토벤의 운명이라는 작품처럼 인간은 자신의 운명과 싸우는 존재로 보는 것이다. 어떤 문학 이론서에 보면 고래 모비 딕을 악(惡)의 상징으로 보았다. 이 소설이 악에 도전하는 인간의 의지를 그려냈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이는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이다. 고래 모비 딕은 악을 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섭리대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어떤 사람은 모비 딕을 돈으로 보는 견해이다. 당대에 있어 고래의 기름은 증기선의 연료가 되기도 하는 등 주요한 에너지원이었고, 고래잡이는 특히 미국의 주요한 산업이었다. 현대에는 모비 딕을 기계에 지배되는 인간으로 보기도 한다. 인간은 도전해야 할 그 무엇이 존재한다. 인간에게 치열하게 도전해야 할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이다. 해석은 다양하지만, 멜빌은 고래라는 상징물을 가지고 인간의 오만함에 대한 준엄한 문학적 경고를 보내고 있다.

백경에서 말하는 세상은?

그러면 백경에서 말하는 세상은 어떤 곳인가? 인간의 두려움에 근원으로서의 장벽, 환경적 요인이다. 인간은 환경에 영향을 받거나 도전해야 하는 사회적인 인간이다. 동시에 그 세상과 관계를 맺은 인간이다. 그렇다면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 것으로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의 정신과 자유를 억압하고 내면의 고통을 주는 것은 무엇인가? 심지어 인간의 정신을 지배할 수도 있는 외부적인 요소는 어떤 것인가? 여기는 인간이 만든 인간의 의지나 능력으로 어쩔 수 없는 사회 구조 또는 제도 또는 관습, 또는 인간을 구속하고 억제하는 교조 교리 같은 것을 뜻하는 학습된 도그마 등이 있을 수 있다. 가치관 고정관념 등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물론 여기에 종교도 빠질 수 없는 요인이다. 고요한 바다로 상징되는 세상은 이러한 요소들과 싸우면서 살아가야 할 세상이다.

화자인 이스마일이 서두에서 말하기를 자신이 바다를 향해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막막한 삶이 주는 무기력함과 그 악순환에서 벗어나고자 함이다. 바다는 아무도 거부하지 않고 모든 것을 수용하기 때문이라고 선언한다. 이러한 무기력과 악순환은 어디에서 오는가? 소설의 첫 문장에서 “나를 이스마일로 불러라” 이 말에서 그의 상징적인 의미를 추측할 수 있는 그림이 좀 더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성서에서 이스마엘은 자신의 의지가 아닌 아버지를 위해서 어머니와 함께 황량한 죽음의 사막 한가운데로 내쫓겨 진 인물이다. 이스마엘이 던져진 세상은 바로 이러한 세상이다.

백경에 나타난 기독교

현대에 와서 미국의 대통령인 보수 기독교인 부시는 이라크나 북한을 비롯한 몇몇 나라를 '악의 축'이라고 규정하였다. 그 거대한 강국 미국에 비하면 정말 보잘것없는 나라들임에도 쳐부수어야 할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미국은 건국 후 서부로, 서부로 그 영토를 넓혀 가면서 원주민인 인디언들을 몰살시켜가면서 연방 합중국이 되었다. 이후 역사 역시 자신들의 구도에 따르지 않는 나라들에 대해 가차 없이 공격을 가한 후 그 전리품으로 덩치를 불려왔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소설이 배경이 되는 포경선의 이름 피쿼드호는 어떤 것을 상징하는가? 피쿼드는 17세기에 퓨리턴 이주민들에게 몰살당한 코네티컷 인디언 부족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백경에서 피커드호는 미국을 상징하며, 에이허브는 그 지도자를 상징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그런 밑바닥에는 잘못된 기독교 정신이 한 몫을 단단히 하고 있다. 절대적 신앙을 내세우며 이를 강요한 후 그 신앙을 갖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약한 상대마저 악의 존재로 규정하는 것이 그것이다. 현대에 와서 미국이야말로 예수님을 처형한 로마의 표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마치 자신들만이 예수의 제자이고 그 상대편은 사탄인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

이런 방식의 셈법은 예수를 믿어야만 구원받는다는 도그마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기독교권 중심으로 인간구원을 독점하면서 이러한 신앙을 받아들이지 않는 모든 이방 세력에 대해 불타는 적개심을 불태우는 것이다. 그 대상이 아무리 왜소하고 약한 존재라 하더라도 죽어도 싼 악의 화신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쳐부수어 초토화하면서 새디즘(sadism)적 만족까지 느낀다. 그리고 그편에 서는 이들끼리 안도감을 가진다. 위와 같은 미국의 자기중심적 패권의식은 자신들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믿고 있다는 선민의식을 바탕으로 행사되고 있음을 부정키 어려운 것이다.

그런데도 허만 멜빌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놓치지 않는다. 소설 백경에서 ‘이스마엘’로 표상되는 비주류의 인간, 혹은 고통을 부르짖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의견은 단호하다. ‘이스마엘’이라는 그 이름의 뜻에 이미 나타나고 있지만, 이들의 호소에 응답하실 뿐 아니라 무조건 그들의 편에 서시며 박해를 가하는 측을 응징하겠다는 것이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이었었음이니라.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을지라.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출 22:21-24)”

소설 백경이 쓰이고 난 10년 후 미국에서는 남북전쟁이 일어난다. 물론 노예해방 문제가 쟁점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남과 북의 경제적 상황이 달랐던 데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공업에 의존하는 북부에서는 쉽게 구할 수 있는 노동력이 절실했다. 물론 이러한 필요 때문에 흑인으로 주종을 이루던 노예들이 해방되었지만, 전쟁 그 자체는 엄청난 비극이었다. 그 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을 것이며, 같은 국민 간에 얼마나 많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겠는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 하나님의 말씀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이 땅에서 이루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용서의 길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같은 교리에 동조하지 않는 이들을 정죄하고, 그들을 박멸해야 한다는 이론적 근거로 삼는 것이야말로 비성서적이라 할 것이다.

 

이상욱 목사  jesuspoin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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