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식탁은 차별없는 사랑과 천국 공동체를 경험하는 곳

 

최종인 목사, 평화교회담임, 성결대, 중앙대석사, 서울신대박사, 미국 United Thological Seminary 선교학 박사, 공군군목, 성결대학교, 서울신학대학교 외래교수

예수님은 식탁을 잘 활용하셨습니다. 특히 누가복음에는 주님이 사람들과 식탁을 나누는 이야기로 가득합니다. 어떤 점에서 주님의 ‘과도한’ 음식은 ‘과도한’ 은혜로 이어집니다. 주님의 사역에서 식탁은 은혜요, 공동체이며, 선교가 구현되는 자리였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정체기를 지나 침체기에 들어서 있다고 걱정들을 합니다. 한국교회가 회복되려면 적어도 세 가지 테이블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정예배의 테이블입니다. 구역과 소모임의 테이블입니다. 일터에서의 경건의 테이블입니다. 우리끼리 모임은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식탁교제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들의 테이블에 적용하고 성경의 테이블, <The Table>을 공부합니다.

예수님은 밥상을 삶의 자리로 인정하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식사교제를 즐기셨습니다. 심지어 그는 자신을 '생명의 빵'으로 제시하며 먹고 마시는 것, 굶주림과 목마름 등 음식에 대한 식사 은유(meal metaphor)를 사용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에서 식사는 지상사역 뿐 아니라 미래의 구원을 의미했기에 예수님이 가르친 비유 속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차지합니다. 예수님은 밥뿐만이 아니라 그의 생각과 삶을 나누었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식탁을 개방하셨는데,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행위였습니다. 예수님의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은 주로 세리들과 죄인들, 병자들, 장애인, 이방인, 사마리아인과 천한 여인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소외되고 억눌린 사람들과 잔치를 벌이는 것처럼 살았기에 예수님의 식탁은 언제나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막2:16; 눅 7:37).

예수님이 공생애 생활을 시작할 때 처음 기적을 가나 혼인잔치 식탁(눅 15, 요한 2)에서 나타내셨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식탁교제는 빵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는 일상적 식사로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잔치까지 나타납니다. 빵과 포도주는 기본적인 음식으로서 생존을 가능하게 하는 음식을 말합니다. 생명을 유지하고 성장시키는 음식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하나님의 계속적인 돌봄과 현존의 표시였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는 축제의 만찬을 하나님 나라의 상징적 구현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공생애를 마치는 순간도 만찬으로 마무리 된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의 만찬(성만찬)을 단순히 예수님께서 수난 당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베풀었던 '기념식사'(memorial meal)로 규정하여 기념식을 하듯 의식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즉 교회 안에서 '빵과 포도주'로 거행하는 예식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부활 그리고 재림의 약속을 일상의 식탁과 연결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식탁은 배타적이지 않았고 유대인이나 이방인, 남자나 여자, 어른과 아이 구별 없이 모두 주님의 식탁에 초대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벌인 차별 없는 식탁은 차별 없는 사회의 축소된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The first Eucharist, depicted by Juan de Juanes, mid-late 16th century

일상의 식탁교제를 예수님께서 베푸신 주님의 만찬으로 바꾸는 데에는 생태학적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식탁교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하신 사랑을 기념하고, 굶주림과 폭력 그리고 각종 차별에 시달리는 이웃을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되새기며 감사하는 자리입니다. 일상에서의 식탁공동체가 주님의 만찬의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생각하지도 못하는 것에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주님의 만찬은 예수님께서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내 죽음을 선포하고 나의 부활의 증인이 되라"는 말씀을 회상하면서 '빵과 포도주'로 상징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사귐을 가져야 합니다.

누군가와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친밀함의 표현일 것입니다. 식탁은 나와 상대의 약점을 드러내는 공간이자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는 공간이 됩니다. 서로의 모습을 공개하고 가까워지는 교제의 장인 것입니다. 또 음식은 단지 배고픔을 채우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음식이 매개체가 되어 상호간의 관계를 유지시켜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교회 안에서의 모임은 매일의 삶 속에서 식탁공동체를 통해 예수님께서 만찬의 자리에서 보여주신 네 가지 동사 즉 가지다(taken), 축복하다(blessed), 나누다(broken), 주다(given)로 깊은 기쁨과 평화를 가지고 살도록 교육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Henri Nouwen, Life of the beloved (New York, NY: The Crossroad Publishing. 1992)),

 

1. 교제하시는 곳

공동의 식사행위는 사람들 간에 상호작용을 조장하고 촉진하는 수단이 됩니다.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 자체가 곧 교제입니다. 한국인이 인사말처럼 다른 사람에게 '언제 한번 밥 먹자'라는 식사 제안은 음식을 먹자는 의미도 있으나 상호작용하며 교제의 시간을 갖자는 의미입니다. 밥상공동체는 사람들 간에 연대를 강화하고 집단을 통합하고 공통의 문화를 재생산하는 데 기여합니다. 주님이 베푸신 식탁은 주님이 우리를 원하시고 교제하기를 원하시는 이유에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2. 소통하고 관계하시는 곳

신앙생활을 먹는 것으로 축소시킬 수 없으나 그럼에도 밥을 먹어야 관계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식탁교제는 하나님 나라를 식탁에서 구현하는 매개일 뿐 아니라 상호간에 대화와 마음을 열어주는 좋은 통로가 됩니다.

'밥 한번 먹자'는 말은 사람을 만나면 나누는 일상적인 인사이기도 하지만 식탁교제를 통해 마음도 함께 나누며 소원했던 사이를 풀고 갈등이 해소되며, 서로의 입장에 대해 공감하며 공허감과 허무감, 존재의 고립감으로 빠져드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밥상공동체는 관계와 소통이 형성되고 서로에 대한 공감이 이루어지는 곳이기에 교회와 가정에서는 식탁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3. 치유하시는 곳

예수님의 사역에서 식탁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치유의 장치였습니다. 식사를 함께 한다는 것은 치유와 평화의 의식(儀式)을 베푸는 자리였습니다. 사람이 먹지 않고 살수 없듯이 예수님에게도 먹는 것이 중요했기에 식탁교제는 일상적이면서도 삶 전체와 연결되었습니다. 특별히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식사하러 가거나, 식사 중이거나, 식사를 끝내고 나오는 장면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 식사초대를 받은 사람들은 그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의 분배과정에서 철저히 박탈당한 소외된 대중이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예언자들의 고발에서도 이미 잘 나타나 있듯이 과부, 고아, 이민자들의 생활은 참으로 비참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식탁으로 초대되었다는 것은 더 이상 버림받고 차별받는 주변인이 아니라는 반증이었고 밥상에 초대된다는 것 자체가 치유였습니다. 예수님은 식탁에서 외롭고 버림받은 자들의 정체성과 거절당하여 상처받은 마음들을 치유하셨습니다.

19 세기 후반 프리츠 폰 어덴 (Fritz von Uhde)이 화가의 시대를 현실주의로 그린 독일계의 노동자 계급 가정의 가정에 등장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묘사한 그림. 주님은 이처럼 사회적 약자들을 지금도 살피신다.

 

4. 가족 공동체를 경험하는 곳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공동체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했던 식탁교제는 예수운동이 되었고, 그 밥상공동체에서는 '너와 나'가 받아 들여져서 '우리'가 된 하나님 나라의 가족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식탁에서는 인간을 이기적인 자기중심성에서 해방하여 참된 화해의 공동체를 이루어 나가게 만듭니다. 이것은 단순히 밥을 함께 먹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중심성에서 해방하여 진정한 자유의 기쁨을 누리는 식사입니다.

주님의 식탁교제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벽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하나 되어 서로 만나고 대화하며 사랑하고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서로를 위로하고 배려하며 대가 없는 참된 사랑의 빛을 경험하며 인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족 공동체가 되며 한 식탁이라는 공동체 안에 들어오게 되는 것은 축복입니다. 소외된 사람 없이 식탁으로 초대하시고 그들을 공동체로 만드시며 공동체 안에 중심을 없애고 모두가 중심이 되는 공동체가 되도록 하셨던 예수님의 공동체는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것입니다.

 

5. 하나님 나라를 소개하는 곳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할 때 식탁교제를 중요한 교육방법으로 사용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비유로 가르칠 때에는 하나님 나라를 잔치로 비유하셨고(마 22:2),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자리가 바로 식탁에 앉으신 식사시간이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느 누구와도 어울려 함께 했던 공동식사를 실천했고, 식탁에서 어떤 구분과 차별도 인정하지 않았기에 먹기를 탐하는 자이며 포도주를 즐기고 세리와 죄인과 창녀의 친구라는 모욕을 당하였고 적대적인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사회적으로 밑바닥 인생들이나 죄인들과 어울려 식사를 하면서 하나님 나라가 그들에게 임했음을 나타냈기에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식탁에서 경험하였습니다. 억눌리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과 죄인들이 예수님과 식사하는 것은 차별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그들이 자기증오에서 해방되는 진정한 기쁨을 누리는 잔치자리였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죄인들과 한 밥상에 둘러 앉아 밥 먹는 것 이상으로, 사회의 구조적인 악에 대한 고발과 미래의 하나님 나라의 잔치를 밥상으로써 현현(顯現)하는 예언적 메시지를 던졌기에 '먹기를 탐하는 자' '죄인들의 친구'라는 말을 기꺼이 감수하면서까지 식탁교제를 하셨습니다. 따라서 주님의 식탁은 놀라운 영적 경험을 누리는 공간이었습니다. 성도들 역시 식탁공동체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도록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초대되어져야 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공동체 식사는 하나님 나라를 소개하는 식탁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들의 식탁은 어디서나 의미 있고, 소망이 있으며, 유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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