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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과 부정 중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는 의심(疑心)

존 패트릭 샌리의 영화 [다우트(Doubt)]는 브롱크스의 성 니콜라스 교구에 속한 가톨릭계 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성 니콜라스 교구 주임신부로 부임한 플린 신부는 개혁적이고 활기차며 범죄를 저지를 리가 없다고 믿고 싶을 만큼 타인의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입니다. 반면 교장인 알로이시스 수녀는 말과 행동이 차갑고 권위적인 비호감형 인물로 공포와 징벌의 힘을 믿습니다. 또 순수하기 그지없는 제임스 수녀는 학교의 교사로 부임한 새내기 수녀입니다. 플린 신부는 부임한 후 알로이시스 수녀에 의해 형성된 학교의 엄격한 관습을 바꾸려고 시도하고 도널드 밀러는 당시 정치적 변화의 바람에 기대어 플린 신부가 학교에 입학을 허가한 첫 흑인 학생입니다.

영화는 어느 날 제임스 수녀가 자신이 목격한 플린 신부의 의심스러운 행동을 알로이시스 수녀에게 고백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제임스 수녀는, 플린 신부가 도널드에게 지나친 호의를 베풀고 있고, 수업 중 플린 신부에 의해 사제관으로 불려갔던 도널드에게서 술 냄새가 났으며, 사제관에 다녀 온 후 도널드는 겁에 질린 듯 이상한 자세로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고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도널드가 사제관을 다녀 온 후 플린 신부가 도널드의 속옷을 사물함에 갖다 놓았다는 사실도 전합니다.

제임스 수녀의 이야기를 들은 알로이시스 수녀는 이후 플린 신부를 도널드를 성추행한 권력형 아동성추행범으로 확신하고 그 진실을 밝혀 플린 신부를 학교에서 쫓아내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알로이시스 수녀에게는 자신의 확신을 증명할 직접적 증거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결국 알로이시스 수녀의 공격에 질린 플린 신부는 학교를 떠나고, 학교를 떠난 플린 신부는 권력형 아동성추행범으로 처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승진을 해 더 좋은 곳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이 사실을 안 알로이시스 수녀는 제임스 수녀에게 “나의 믿음에 회의가 생겼다.”고 절규하며 영화는 끝납니다.

영화 [다우트(Doubt)]의 일로이시스 수녀를 보면서 요즈음 동성애와 이슬람 그리고 좌파 타파를 외치는 한국교회 일부의 움직임이 떠올랐습니다. 이들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고 확신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왜곡된 확신으로는 진리에 이를 수 없습니다. 때문에 한국교회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확신에 대해 의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명제에 대해 모르면 “무지(ignorance)”이고, 긍정이나 부정에 주저함이 없으면 “확신(certitude)”이며, 긍정과 부정에 대한 의구심이 있으면 “의견(opinion)”이고, 긍정과 부정에 약간의 근거를 가지고 있으면 “혐의(嫌疑, suspicion)”이며, 긍정과 부정 중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으면 “의심(疑心, Doubt)”이라고 한답니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본 것을 믿으며, 믿는 만큼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보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의심합니다. 그래서 대개의 경우 의심을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의심은 진리를 발견하는데 있이 길잡이 역할을 합니다. 의심은 철학적 탐구를 시작하는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끝없는 의심의 사다리를 오른 후에 이르게 되는 정상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확신이라는 가면을 벗고 무엇이 진실이고 진리이며, 무엇이 정의이고 옳음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야 합니다.

박경양 목사,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회 공동의장, 기독교대한감리회 평화의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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