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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식 기자가 묻고 이대희 목사가 답하다(13)

말씀을 대하는 바른 자세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미리토크 모델 하우스를 둘러보았습니다. 각자 말씀의 집을 짓는다 생각하고 적용하면 유익하겠습니다. 한국교회가 미리토크와 같은 말씀로드맵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면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는데 도움이 되겠습니다. 저기 입구에 보이는 표어 글이 하나 보이는 데요 그것을 입구에 적어 놓으신 이유를 이야기해주세요. 우리가 잘 아는 예수님의 지상 명령의 말씀인데요.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 마 28:19)

예,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주님의 마지막 유언장과 같은 구절이죠. 주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구절인데 여기에 교훈이 있어요. 우리가 예수 믿은 후에 해야 할 일은 주님이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일이죠. 이것을 다시 풀이하면 주님이 분부한 말씀은 ‘미크라’, 가르치는 일은 ‘리쉬마’, 모든 말씀은 ‘토타’, 지키는 일은 ‘크리스토’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어요. 지금까지 말씀드린 <미리토크>의 내용인데요. 이것의 핵심은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는 일이어요. 우리가 말씀을 이루는데 도구가 되는 것이죠. 구원 받은 크리스천의 할 일은 주님이 분부한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는 도구 말이죠. 그 일은 내가 할 수 없어요. 하지만 내 안에 오신 주님이 말씀을 우리로 하여금 지켜 행하도록 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이룰 수 있게 되죠. 주님이 이루신 것처럼 이제 우리도 그것을 주님과 함께 이룰 수 있는 존재가 되었어요. 이것이 미리토크의 핵심 내용이죠.

결국은 이것은 말씀을 듣기만 하지 말고 지켜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한 산상수훈 말씀과 예수님이 나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과도 연결되죠. 오늘날 크리스천이 이 땅에서 할 일을 제시하고 있는 구절이어요. 적극적으로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 말씀을 행하는 일에 우리의 남은 삶이 바쳐진다면 그것이 주님을 닮는 일이어요.

목사님 말씀을 들으니 구원 이후에 크리스천의 사명이 분명해지는 것 같습니다

 

 

이런 목표와 그림을 마음에 새기면서 <미리토크 말씀하우스>에 제시된 각 단계를 실천할 때마다 주님의 명령이 동력 되어 우리가 주님을 닮아갈 수 있어요. 구원받은 크리스천의 삶은 결국은 말씀을 현장에서 실천하는 일에서 결정되죠. 흔히 삶의 변화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데,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듣기만 하지 말고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는 일이 구원 이후의 일이어요. 여기서 실천이란 내 생각을 실천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을 말해요. 세상에서 말하는 삶의 변화와 성경에서 말하는 삶의 변화는 차이가 있어요. 세상에서 말하는 삶의 변화는 인간이 보기에 좋은 윤리적인 삶의 변화죠.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삶의 변화는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을 의미해요. 엄밀히 보면 말씀과 상관없는 삶의 변화는 변화가 아니죠. 말씀과 연관할 때 삶은 의미가 있어요.

 

좋은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삶의 변화는 윤리적인 삶이 아닌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라는 말씀에 공감을 합니다. 주님이 사셨던 삶도 모두 말씀을 응하는 것임을 생각해보면 구원 받은 우리들도 말씀을 이루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크리스천의 고민은 말씀을 실천하는 것인 것인데 문제는 사실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위한 지침이 있나요

 

예. 저도 같은 고민을 가졌어요. 그래서 말씀을 실천하는 일을 위한 좋은 도구를 생각하다가 미리토크를 고안했어요.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말씀을 행하는 데까지 이르는 말씀 삶 메커니즘 과정이 필요하죠. 누구나 그것을 보면 자기가 어디에 문제가 있고 무엇을 고쳐야 할지를 알 수 있는 시스템이 아직 우리에게는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 교회나 크리스천들이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이 힘들다고만 했지 왜 잘 안되는지를 파악하는 도구가 없었어요.

신앙의 피드백을 눈에 보이는 대부분 교회 성장 결과를 판단 자료로 삼았다는 점이죠. 외적인 믿음의 성장과 변화를 수치로 계산하고 그것에 초점을 두었어요. 이것을 교회 부흥이라고 말하면서 이런 교회 시스템이 1980년대에서 2000년대까지 한국교회 흐름이었어요. 엄밀히 보면 진정한 교회성장이라고 보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죠. 주로 수평이동으로만 교회성장을 평가하다 보니 성도들의 삶의 변화에는 관심이 적었던 거죠. 이것이 가장 큰 문제였고 이렇게 된 이유는 신학 부재에서 현상이라 볼 수 있어요.

 

그동안 한국교회 프로그램을 보면 교회성장에 초점을 맞추었지 성도들의 삶의 변화와는 관계가 먼 것이 솔직한 고백 합니다. 그럼에도 제자훈련 등 전도와 양육의 교회성장 프로그램이 오랫동안 지속하며 한국교회 부흥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고 보는데 이것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를 내릴 수 있습니까?

 

물론 그곳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을 무시할 수 없어요. 하지만 그것이 현재까지 지속되지 못하고 그런 프로그램들이 지금은 점점 사라지는 추세죠. 물론 사회적인 변화와 성도들의 신앙 유형이 달라진 것도 그 원인이라 볼 수 있어요.

대표적인 예가 <베델>과 <크로스웨이> 등과 같은 성경공부와 제자훈련의 양육 프로그램을 들 수 있어요. 당시에 그것이 기여한 점은 컸어요. 한국교회를 성경에 관심을 갖게 한 역할을 했죠. 그 역할은 높이 평가하고 싶어요, 그런데 그것이 교회가 성경으로 지속적으로 자리 잡게 하는 데는 부족했죠. 그 이후에 한국교회는 다양한 양육 프로그램들이 소개되면서 부흥의 시기를 경험했어요. 미국의 다양한 교회 성장 프로그램들이 한국교회 속에 유입되었고 그것이 한때 한국교회의 트렌드처럼 유행했죠. 그리고 한국교회 안에서도 교회 성공모델들이 제시되면서 잠깐 부흥을 경험하는 듯했어요. 그런데 그것들의 한계는 대부분 외적인 교회 성장에 목표를 프로그램들이었죠. 성도들의 삶의 변화와 성숙보다는 교회성장에 기여하면 그것이 신앙성장이라는 공식으로 프로그램들이 구성되었어요. 주님이 분부한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교회를 성장하는 일꾼을 만들어 전도하는 사람을 만드느냐에 관심을 두다 보니 내적인 허약함이 드러나게 되었죠. 실제 삶에서는 크게 변화가 일어나지 못했어요.

 

그것은 한국교회가 말씀을 이루는 것보다 외적인 교회성장에 목표를 두었다는 것으로 진단할 수 있겠네요. 가장 중요한 동기와 출발이 성경적이지 못했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죠. 아주 단순하게 주님의 말씀을 삶속에서 지켜 행하는 일을 성도들이 많아지다 보면 교회성장도 이루어지고 성도들의 삶의 변화와 성숙을 이룰 수 있는데 너무 인위적인 프로그램으로 목표를 이루려는 것에서 성경적 성찰이 부족했다고 봐요. 말씀이 나를 위해 있는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된 거죠. 거꾸로 말씀을 위해서 우리가 존재해야 하는데 나를 위해 말씀이 주어지는 점에서 성경적이지 못한 것이라 볼 수 있어요.

처음에 언급한 성경구절을 보면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되 일부분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말씀에 잠시 묵상할 필요가 있어요. 많은 분들이 이것을 놓치고 지나가요. 가장 중요한 핵심을 잊은 거죠. 말씀을 교회성장을 위한 인용구절 정도가 되는 것은 우상숭배와 같은 것이고 하나님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죄악이어요.

"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 마 28:19)

이것은 다른 성경에도 반복해서 강조하는 내용이죠.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셨을 때 사단에게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시잖아요. 그때 첫 번째 시험을 이긴 말씀이 무엇인지 아세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

여기서도 “모든 말씀”이어요. 왜냐하면 사단은 그 이후에 두 번째 시험에서 성경을 인용하면서 유혹을 하거든요. 자기 마음대로 시편을 선택하여 인용하는 전략을 사용하죠. 바울이 디모데에게 성경을 대하는 자세를 말할 때도 “모든 말씀”을 강조해요. 딤후 3:16에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말하죠.

성경을 인용하고 사용한다고 능력이 되는 것이 아니어요. 모든 말씀을 순종하겠다는 마음이 없으면 변화가 일어나지 않아요. 한국교회가 그동안 놓치고 있었지 않았나 생각해요. 성경을 보면서 가장 위험한 것은 골라 보는 것이죠. 이것은 구약의 이스라엘이 행했던 죄악을 반복하여 범하는 것이어요. 이스라엘의 치명적인 죄악은 말씀을 자기 방식대로 취사선택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도 이런 일을 그대로 행하고 있죠. 결국 계시록은 반복하여 다시 경고하고 있어요, 누구든지 두루마리 예언의 말씀을 제하거나 더하면 저주가 임한다는 성경 마지막 말씀을 한국교회는 다시 되새길 필요가 있어요.

말씀을 대할 때 나에게 필요한 것만 선택하는 자세를 가지는 한 성경은 언제나 주체가 아닌 도구가 되요. 이렇게 되면 말씀의 자체의 능력이 사라지게 되죠. 인간이 우선이 되는 한 말씀은 역사하지 않아요. 오늘 삶의 변화를 위해서 말씀을 대하는 자세부터 새롭게 해야 해요. 그래서 이 구절을 미리토크 하우스 입구에 새겨 놓은 거죠.

오늘 그동안 놓치고 있었던 깊은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말씀중심의 한국교회 갱신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대희 목사  smd6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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