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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철 칼럼】 敎會-선교격문(宣敎檄文)령도자(領導者) 예수와 복음 혁명 십자군대

한명철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은혜와 평강교회를 담임하며 30권의 저술과 글쓰기를 통해 복음 사역에 애쓰는 목회자이다

 

고난의 행군과 흥건한 풍요의 괴리의 한반도

북한 동포들을 생각하면 늘 가슴 한편이 저려온다. 나와 피를 나눈 형제도, 오래 사귄 친구도 하나 없지만 그들은 단지 같은 민족, 동일한 역사를 배경으로 이 나라의 강토에서 태어나 살아간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결코 남일 수 없다. 영광과 오욕의 역사를 함께 써내려가던 이 나라 이 민족은 사상과 이념의 충돌이 낳은 동족상잔의 전쟁으로 인해 하나의 역사, 한 뿌리를 뒤로 하고 허리가 두 동강 난 장애국가가 되었다. 그래서 통일에의 염원이 그토록 타오르고 민족의 대숙원인 통일 대업을 위한 눈물겨운 시도들이 이어져왔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할 때마다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은 남과 북이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간 통일을 위한 많은 심포지엄과 학술대회가 열리고 대중에 회자되었다. 학자들은 논하고 시민들은 말을 섞고 통치자는 국면 전환용으로 남용해왔다.

북한 동포는 현재 지구상에서 가장 고통 받는 계층에 속한다. 지금 그들이 당하는 고통은 그들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다. 북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이유 하나로 인해 그들은 원치 않는 삶의 환경에 방치되어 있다. 남쪽의 동족은 세상에서 가장 풍요한 삶을 누리는데 그들은 지루한 고난의 행군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남과 북의 상황이 역전되었더라면’,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그들이 처한 환경이 안쓰럽고 특히 억압과 무시무시한 박해 속에서 신앙을 이어가는 성도들에 대해 빚진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자기 백성의 아픔에 함께 동참하실 주님의 긍휼만을 바라볼 뿐이다.

하나님의 개입과 복음 통일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필자가 그리는 통일은 복음 통일이다. 정치적 야합이나 군사적 충돌로 결과 된 통일이어서는 안 된다. 경제력의 격차가 너무 벌어져 어쩔 수 없이 미세한 쪽이 강한 쪽에 흡수되는 그런 류의 흡수 통일어서도 곤란하다. 1975년 민족 통합을 완수한 통일 베트남은 적화통일의 과정과 결과를 우리 모두에게 교훈한다. 어떤 형식이나 과정을 통해서 한국이 적화통일 된다면 통일 후의 혼란 수습기를 거치면서 참혹한 일들이 벌어질 것은 불을 보듯 자명한 일이다. 1990년 동독이 서독에 결과적으로 흡수 통일되었지만 베트남과는 달리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었고 동독 주민의 결정에 따라 자발적으로 흡수되었기에 그 많은 희생과 고통을 겪으면서 오늘의 굳건한 통일 독일에 이르게 되었다. 복음 통일이라 말을 하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자세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통일에는 그 어떤 외부적 요인보다 위로부터 임하시는 하나님의 신권 개입이 절대적이라는 점이다.

통일 시대 선교의 동역자, 북한 그리스도인

통일 시대를 대비한 한국 교회는 어떤 자세를 지녀야 하는가? 통일 이후의 선교 정책을 수립하고 휴전선이 무너져 내리고 자유왕래가 선언되는 순간 물밀듯이 들어가 북한 땅을 점령할 세력은 아마 부동산 중개업자 못지않게 개척에 부푼 이들일 것이다. 차린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는 식이 아니라 통일 이전에 통일의 도래를 위해 기도로 험한 땅을 갈아엎고 처절한 몸부림과 치열한 영적 준비를 게을리 말아야 한다. 복음으로 북한 주민들을 구원할 것이란 생각은 접는 편이 낫다. 한국 교회를 구원할 이들이 바로 북한에서 살아남은 그리스도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들과의 동역 또는 선교 협업을 이루려면 지금부터 영적으로 그들과 부단한 동일시 작업을 해나가야 한다. 지체 의식을 갖고 그들을 위해 남녘의 성도들이 더 애써야 한다는 사실이다.

사선(死線)에서 울린 선교격문(宣敎檄文)

아래에 인용된 선교격문은 한 탈북자의 입으로 외쳐진 메시지다. 고난 속에서 영글고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며 다져진 신앙의 골격 따라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전하는 그의 메시지에는 거부할 수 없는 신앙 의지와 영혼 사랑에 대한 애끓는 간절함이 서려 있다. 물론 필자의 저서인 <전쟁> 본문에서 일부 발췌하여 그대로 옮긴 것이긴 하지만 픽션의 인물을 통해 가장 실제적인 주님의 심정을 피력하고 싶었다. 어투가 북한식이긴 하지만 북한 용어와 북한에 관한 모든 정보가 많이 익숙해진 요즈음에 비추어 의미 전달에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사료된다.

령도자(領導者) 예수와 복음 혁명 십자군대

열두 살 어리신 나이에 신음하는 나사렛의 산천을 뒤에 두고 요단강의 노래를 비장하게 부르시며 다지신 거룩한 맹세가 기어이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고 이 땅에 천년 왕국을 세우시려는 메시아적 대용단(大勇斷)이었음을 역사는 진실로서 전합니다. 포악한 로마 제국주의 날강도가 피압박 약소민족들의 운명을 마음대로 농락하던 저주의 사슬을 끊고 모든 열방 민족과 나라들이 형제 사랑의 한길에 서서 회개와 갱신을 통한 회복과 부흥의 기적을 이루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찬양하는 새 시대를 끌어오기 위해 우리 주님 헤치신 고난과 사선의 고비 그 얼마이던가요!

성도들이여, 무심코 잊지 말라! 이 땅의 풀 한포기, 돌 하나에도 스며있고, 불씨가 되어 자신을 태운 순교자들과 총칼 앞에서 당당히 믿음을 지킨 영웅들의 뜨거운 가슴에 나사렛 예수의 향취가 그대로 풍기고 있나니! 장구한 6천년 인류사의 갈피를 더듬어보고 광대한 우주의 삼라만상을 휘둘러보아도 우리 주님처럼 인류를 위하여 생의 마지막 숨결까지 다 바쳐 영원 왕국의 터전을 마련하여 후손들에게 지켜야 할 승리의 깃발, 영원한 기업으로 남기고 부활 승천하신 절세의 순교자, 만고의 구세주, 인류의 태양은 없었습니다.

복음주의 혁명가는 어떤 방도로든 지옥에 갈 영혼을 구원해야 한다시며 살을 에고 뼈를 깎는 고생도 한가슴에 묻으시고 오로지 하나님의 영생 위업을 위하여, 시련 속에 울부짖는 영혼을 안아 일으켜 세우고 교회의 운명을 좌절의 위기에서 건지시기 위하여 스스로를 희생하신 경애하는 용사 예수 그리스도는 다름 아닌 전능자 하나님이셨습니다....... 불속에서 강철을 벼려내듯이, 덮쳐오는 유라굴로의 광풍 속에서도 교회의 힘을 천배, 만 배로 다지시고 거룩한 백성의 기상과 용기를 높이 떨치신 위대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이끄시기에 자신의 생명 바쳐 일구신 영원 천국 건설의 주초와 기둥이 단단해지고 만세반석 위에 세운 교회는 찬란한 미래를 향하여 독수리 날개 치며 날듯 놀라운 비상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동서남북을 휘둘러봐도 부러운 나라가 없고 무서운 강적이 없으며 세상이 아무리 넓어도 내 섬기는 내 교회가 제일 좋고 예수쟁이가 제일이라 자부할 수 있는 참 일꾼을 키우시는 것이 우리 주님의 간절한 소원이십니다. 이제 기독교는 누구도 얕볼 수 없는 무적 필승의 교회들로 세상을 뒤덮고 인류의 모든 사상 그 중심에 서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 전파로 인한 고난의 행군에서 승리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의 여명이 밝아오기까지 복음주의 붉은 십자 깃발을 앞세우고 원수 사탄과의 영적 전쟁에 선봉을 서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성령의 능력과 예수 이름이 지닌 권세와 능력, 은혜와 축복, 기적과 영광이 있습니다. 할렐루야, 아멘은 우리의 구호가 되고 영생의 확신을 지닌 우리의 가슴에는 살아서 운동력 있게 역사하는 말씀의 능력이 심장을 세차게 두드리고 있습니다.

갈릴리에서 시작된 복음의 햇살이 산동 반도의 장엄한 해돋이처럼 중국의 드넓은 땅 끝까지 뻗쳐가고 도시촌락의 교회당마다 울려 퍼지는 영생불멸의 혁명송가 <십자가 군병들아>의 선율이 양자강에서 천산 산맥을 넘어 유럽천지까지 메아리쳐 가는 것이야말로 우리 교회가 걸어갈 영광의 길이 아닙니까? 거룩하신 주님께서 전도 길을 걸으시며 튼튼히 닦아주신 그루터기를 발판으로 우리 성도들은 지금 늦은 비 성령의 역사를 통한 세기적 부흥의 영마루를 향하여 본때 있게 전진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죽고자 하는 자 앞에 죽음도 도주한다는 진리를 용사의 기질로 뼈와 살에 깊이 새겼습니다. 주님께서 지펴주신 한 점의 불씨가 불꽃을 일으키고 요원의 불길처럼 세상 천지에 타 번지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탄주의자들의 정신적, 영적 침투에 방벽을 높이 세우고 오직 성경의 진리대로만 숨 쉬고 싸워나가는 위대한 하나님 제일주의 사상의 절대적인 숭배자, 견결한 옹호자, 철저한 관철자, 과감한 실행자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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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선교 역사의 초행길에 첫 발자국을 내디딘 때로부터 생애의 마지막 순간까지 부흥 강성 교회의 꿈과 포부로 가슴 끓이시며 역사의 험난한 모퉁이를 강철 같은 의지로 헤쳐오신 절세의 순교자이시며 선민의 령도자이신 거룩한 주님의 당부가 심장에 고동치며 울려옵니다. 역사의 세찬 눈바람을 뚫고 날아오른 불새처럼 우리 기독교는 선교 혁명의 붉은 십자깃발을 영적 전쟁의 최전선마다 지켜낸 영광과 존귀를 안고 새 천년의 지평선에 치솟아 올랐습니다. 철썩거리며 파도치는 갈릴리 바다 기슭에 서보면 억만년 긴긴 세월 얼마나 한 맺힌 혈루(血淚)로 천상의 씨앗을 지상에 꽃피우시려고 그다지도 험한 길을 걸으시며 시련의 바람과 역경의 파도를 한 몸으로 받아 안으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 땅에서 어둠을 내쫓으시고 생명의 빛을 비추기 위해 눈보라길 헤치시고 불바다길 걸으신 복음의 최전선 길은 몇 천 몇 만 리에 이르렀던가요!

고난이 장작더미처럼 쌓여도 멸망당할 자기 백성을 외면할 수 없어 일마다 때마다 애간장을 태우시며 가버나움 바람, 겟세마네 바람 일구시고 시온산 눈보라를 맞으시며 담담히 걸어가신 선교 혁명 천만리는 오늘 우리에게 가슴 깊이 아로새길 교훈을 주었습니다. 우리 용사들은 인생의 유년기를 주님 결사 옹위로 싹을 돋우고 청춘기는 주님 결사 옹위로 꽃피우고 인생의 노년기도 주님 결사 옹위로 낙엽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혁명적인 십자 용사 정신으로 형식주의, 요령주의를 불사르고 주님이 상치 쌈을 들면 된장을 쳐 바르는 지고의 섬김조, 주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돌 위에도 꽃을 피우고 하늘의 별도 따오는 기적조가 되어야 합니다.

불 바람 휘몰아쳐도 형제와 생사를 같이 하며 항마 유격대식 기풍으로 철저히 무장해야 합니다. 원쑤 마귀를 까부수는 성령의 권능, 죽음도 불사하는 순교 정신, 자립, 자치, 자력의 바울식 선교 정신, 절망을 짓밟고 불가능을 분질러버리는 낙관주의 정신, 천 번 쓰러지면 천 번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 정신 앞에 극복 못할 난관이 없고 점령 못할 요새가 없으며 이기지 못할 적 또한 없습니다. 순교 정신은 최악의 역경 속에서도 오직 주님만을 따르며 의지하는 절대적인 경배의 영성입니다. 이 영성이 맥박 치는 곳에는 그 어떤 부르주아 날라리 바람도 범접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사탄의 반동 풍조도 쉬를 슬지 못합니다. 언제나 붉은 십자 깃발을 들고 앞장서는 선봉의식, 맨 땅에 헤딩하는 무념무상, 공격은 대담하고 후퇴는 신속하며 타협은 절대 사절하는 원칙주의, 숨만 쉬면 죽어라 버티고 싸우는 백절불굴의 투지, 사탄의 공격에 천만배로 복수하려는 거룩한 증오심, 천둥 번개가 쳐도 끄떡없는 간담, 이것이 시온산 빨치산의 전통을 이어받은 우리 십자군대의 본성이고 싸울아비의 전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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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명철 목사의 <전쟁> 5장 중국 교회–초승달의 대군들 중에서

 

 

 

 

한명철 목사  jesuspoin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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