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욱 목사의 인문학 산책 (18)

 

이상욱 목사│목민교회(인천) 담임, 호서대학교( Ph.D), 성산효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이광수의 『무정』

왜 이광수인가?
100여 년 전 제국과 반식민지, 식민지의 지식인 나쓰메 소세키(1867-1916), 뤼쉰(1881-1936), 이광수(1892-1950)와 그의 소설 『마음』(1914), 『광인일기』(1918), 『무정』(1917)을 비교해 동아시아 근대 지식인을 조명하는 것도 이광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시대에 동아시아를 살았던 제국의 지식인 나쓰메 소세키, 반식민지가 된 중국의 지식인 뤼쉰, 식민지가 된 조선의 지식인 이광수, 그들은 조국을 위해 지식인이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들의 소설 속 등장인물 『마음』의 선생님, 뤼신의 『광인일기』의 광인, 이광수의 『무정』의 이형식에게서 그들의 고민과 자국의 근대화를 위해 해야 할 지식인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100여 년 전에 일본은 서구 제국을 그대로 모방하여 중국을 반식민지로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제국과 반식민지, 식민지 지식인들의 최대 고민은 자국의 근대화였다. 제국의 지식인들은 메이지유신 이후 서양을 그대로 수용하는 근대가 아닌 일본의 독자적인 근대화의 방향에 대해 고민했다. 당시 최고 대학인 도쿄제국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국비로 영국에 유학했던 엘리트 지식인 나쓰메 소세키는 개인주의와 제국주의 사이에서 많은 괴리를 느끼고 일본의 근대화와 지식인의 역할을 고민했다.
뤼쉰은 국비유학생으로 제국인 일본에 유학한 반식민지의 지식인이었다. 뤼쉰은 서구 열강과 일본에 이미 만신창이가 된 중국이었음에도 옛 중화민국의 환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국을 보며 문학을 통한 근대혁명을 강조했다. 중국은 신해혁명으로 청 왕조가 무너지고 중화민국으로 바꿨지만, 뤼쉰이 바라던 이상적인 혁명은 아니었다. 식민지의 지식인 이광수도 제국인 두 번에 걸쳐 일본에 유학했다. 조선은 제국주의가 된 일본의 식민지하에서 조국의 해방이라는 과제를 해결해야만 하게 되었다.
 

이광수는 1892년에 태어나서 1950년 7월 납북되어 광복 이후인 1950년 10월 25일에 세상을 떠났다. 약 50년이라는 이 기간은 역사적으로 볼 때 수난과 혼돈의 시대였다. 내부적으로는 조선 왕조의 기운이 쇠락해져 가고 있었고, 외부적으로 근대와 제국주의의 열망이 만나 세계를 휩쓸고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시점에 이광수가 태어났다. 그가 태어나고 2년 후에는 동학 농민 운동, 청일 전쟁, 갑오개혁이 일어났으며, 1904년 러일 전쟁 발발했고 정주까지 침입한 러시아 병사들에 의해 정주 주민이 약탈당하는 모습을 본다. 타국의 병사로 인해 자국인들이 피해당하고 있는 것을 직접 보면서, 그는 처음으로 민족의식에 눈을 뜬다. 그는 민족의식이라는 것이 외부로의 습득이 아니라 내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며 일정한 자극 때문에 발현된다고 보았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었다. 결국, 1910년 한일병합조약 체결되며 조선은 국권을 완전히 상실하고 40년에 걸친 긴 식민지로서의 시간을 감내해야 했다. 당시 이광수의 나이 18살 때이다. 나라의 상실은 이광수의 고아의식을 자극해 민족을 고아로 여기는 민족주의적 고아의식으로 확대된다. 더불어 나라의 상실은 더 전통적인 질서로는 세계가 유지될 수 없는 한계적 상황을 만들어낸다. 문명개화로 조선을 강하게 만들고자 했던 그의 처음 생각은 주체가 사라짐으로써 실행하기 어려운 여건에 처하게 된다.
앞서 지적했듯이 당시 세계는 제국주의 물결로 인해 곳곳에서 강대국들에 의한 전쟁이 반발하고 있었고, 그 전쟁의 승자는 지배자가 되고 패자는 피지배자로 전락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러한 세계적 흐름에 조선도 예외일 수 없다. 조선은 그 싸움에서 패자였다. 그리고 이광수는 이러한 승패원리를 진화론의 원리에서 찾으며 민족의 종속을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며, 그 힘이라는 것은 민족의 계몽과 근대화라는 결론을 내린다.
앞서 조선이라는 주체가 사라져 버렸기에 그의 계몽 주체는 조선이라는 국가에서 개인으로 분화된다. 결국, 이러한 역사적 상황과 식민지 상황에서 오는 제약 속에서 국가라는 개념은 상실되고, 주체적인 근대화를 이루는 것도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서양의 근대를 일본을 통해 받는 상황에서 근대화에 대한 욕구와 일본에 대한 저항의식은 공존하기 어렵다.
결국, 그는 현실에 대한 타협점을 찾기에 이른다. 그에게는 애초에 고아의식이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기에 조국 상실의 충격이 다른 사람들보다 약하게 받아들여졌을 소지가 있다. 그는 상실한 부모를 되찾기보다는 새로운 부모를 만들어가는 것을 택한다. 즉, 그는 조선에 대한 독립을 망각하고,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용인하는 형태의 민족 개조라는 왜곡된 민족의식과 근대의식을 완성한다.

 

왜 『무정』인가?
이광수의 『무정』은 1917년 1월 1일부터 6월 14일까지 총 126회에 걸쳐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에 실린 연재소설이다. 주인공 이형식은 일찍이 고아가 되었지만, 부친의 친우인 박 진사가 그를 친자식처럼 길러준 덕분에 무난하게 성장한다. 그러나 이형식이 동경 유학까지 다녀오며 지식인으로 거듭나는 사이, 박 진사의 집안은 몰락해 박 진사의 딸 영채는 기생이 된다.
어린 시절부터 서로를 정혼한 사이로 알고 컸지만, 이형식과 박영채는 박 진사 집안이 몰락하는 과정에서 서로 헤어져 서로의 소식을 모른 채 지내고 있다. 『무정』의 첫 장면은 이렇게 성장하여 경성학교 영어교사가 된 이형식이 같은 동네 김 장로의 딸 김선형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첫 출근을 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이형식이 떨리는 마음으로 김 장로의 집을 방문하던 그 날 공교롭게도 영채가 형식의 하숙을 찾아오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시대의 선각자 이형식이 은사의 딸인 박영채(舊여성)와 정신 여학교를 졸업한 유명한 미인 김선형(新여성) 사이에서 번민한다는 설정은 그 자체로 파격적이었다. 자유연애 사상을 고취하는 이러한 구도는 당시의 양반들을 크게 자극했는데, 몇몇 유림이 총독부 자문기관인 중추원에 진정서를 내어 『무정』의 매일신보에 연재 중단을 요구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이처럼 박영채-이형식-김선형의 삼각관계가 『무정』 서사의 큰 축을 지탱하고 있다면, 서사의 다른 한 축을 담당하는 것은 인물 간의 공고한 사제관계라고 할 수 있다. 즉, 박 진사와 형식, 형식과 선형, 형식과 하숙집 주인 노파, 영채와 월화, 병욱과 영채 등 『무정』의 주요 인물 대부분이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 주목된다. 이를테면 자살하러 가던 영채는 김병욱이라는 개화한 여성의 가르침 덕분에 기적적으로 새 삶을 영위해 나가게 된다. 이러한 인물 간 사제관계의 핵심에 서 있는 것이 바로 ‘교사’로 등장하는 주인공 이형식이다. 교사인 형식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남다른 애정과 높은 교육열을 보인다.
자신의 과거 신세를 생각하면서 그는 불쌍한 학생들을 특별히 동정해 학비 없는 학생들을 도와주기도 한다. 또한, 그는 김 장로의 딸 선형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가정교사이기도 하며, 무식한 하숙집 노파에게 문명한 세계의 모습을 보여 주는 선생의 역할을 자처한다. 『무정』의 끝부분에서 교육과 실행으로 가난하고 어리석은 동포를 가르치고 인도해야 한다는 형식의 연설에 세 처녀는 소름 끼치도록 감동한다. 널리 알려진 『무정』의 대단원에서 영채와 선형, 병욱 등이 서로 지니고 있던 불편한 감정을 모두 해소할 수 있었던 것은, 형식의 이 같은 감동적인 연설 덕분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근대화와 사랑
 『무정』은 무엇보다도 형식 자신의 처절한 외로움을 기반으로 하는 서사이다. 영채의 처지가 묘사될 때 빈번히 등장하는 외로움, 적막, 비애와 같은 단어들은 사실상 형식의 상황이 그려질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표현들이다. 『무정』에서 영채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무정한 세상을 원망하는 인물은 이형식이다. 형식과 영채의 가장 큰 공통점은 ‘동무가 없다’라는 사실이다. 인류애라는 보편적 사랑의 감각이 풍미하던 1910년대, ‘선각자’를 자처하는 형식은 형식대로 ‘무정한 세상의 희생양’인 영채와 부인은 또 그들대로 철저히 혼자였던 셈이다.
『무정』은 근대적 개인의 시작은 사랑이라는 감정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 준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특정 대상에 대해 반응하는 자발적인 감정이며, 이성으로 조절할 수 없는 강렬하고 근원적인 것으로 내면의 탐구와 존재의 확실성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자발적 감정은 전근대로부터 상속된 삶의 모습을 끊어냄으로써 비로소 온전한 감정의 향유를 가능케 한다. 즉, 외부에서 강요되는 타율성을 거부하고 자신의 내부에서 규율을 정함으로써 내적 자아를 완성할 수 있게 된다. 이런 이유로 사랑을 자각하고 실천하는 일은 그 자체로 근대인의 속성이라 할 수 있으며, 내적 자아의 완성으로 이어진다. 때문에 근대적 개인으로 사는 삶과 분리되어 성립할 수 없다.
그리고 작품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독립된 인격체로서 이룬 자아실현을 바탕으로 근대적 개인으로 성장한다. 이들은 사회와 민족을 근대화라는 틀 안에서 최종적으로 화합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 하였다. 근대적 개인은 개인과 민족의 운명을 합치하여 동일한 공동운명체로 인식하고 완성된다. 개인의 자각은 물론, 시대의 과제와 민족의 구제를 이끄는 사명을 자각하는 것을 그 대표적 성격으로 삼는다. 소설의 전반과 중반에서 각자의 내적 자아 완성에 몰두하던 인물들이 소설 결말에서 모든 갈등과 고민을 망각하고 단결한다. 이는 소설 말미에서 조선의 미래를 부르짖으며 화합하는 모습이 그려지는데 그것이 결정적 근거라 할 수 있겠다.
소설 끝에 드러나는 조선의 미래는 교육과 경제, 문학 언론, 모든 사상적 발전이 이루어지고 상공업이 발달해 근대화 문명의 소리로 가득 차는 낙관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조선의 미래는 민족적 사랑이 전제된 근대화이다. 이것은 이광수가 추구하는 완벽한 근대의 이상향으로 해석된다. 이와 같은 미래는 이광수의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현실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을 바탕으로 설계해 놓았다고 볼 수 있다.

 

계몽주의 세상을 향하여
이광수는 조선이 독립하기 위해서는 우선 조선인의 가난과 무지를 교육을 통해 몰아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광수의 근대란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실현 가능한 근대인 것이다. 그의 작품에서는 희망이 보인다. 이형식은 영어교사로서 서구의 신지식을 배운 지식인이다. 그가 가난한 고아에서 제일가는 지식인인 근대 주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신지식인 서구의 근대적 지식을 습득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근대의 목표는 서구적인 것이었고, 서구적인 것이 되기 위해 서구의 근대지식을 습득해야 했다. 『무정』의 이형식은 교육을 통해 신지식인이 될 수 있었고 조선을 구하겠다는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이형식은 조선의 지도자가 되어 교육과 실행으로 민중들을 가르쳐 힘을 주고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인물이다. 그리고 그 신념을 실행하기 위해 행동으로 옮기는 인물이기도 하다.
󰡔무정󰡕을 기독교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작품을 이루는 명암 구조가 마치 천국과 지옥으로 양분된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근대화를 상징하는 천국의 이미지에 김 장로의 가계가, 옛 시대를 상징하는 지옥의 이미지에 박 진사의 가계가 있다. 이러한 명암 구조에서 궁극적으로 이형식이 취한 곳은 밝음의 상징인 김 장로의 가계였다. 이형식이 김 장로의 사이비적 기독교 신앙에 대해 일관되게 조롱과 냉소를 보고 있으나 궁극적으로는 비하의 대상인 김 장로의 데릴사위가 된다. 결과적으로는 김 장로에게 종속됨으로 근대화를 상징하는 인물이 된다. 이것은 이형식이 구조적으로 기독교인의 집안에 편입됨을 뜻한다.
그러나 이 작품이 진정한 기독교적 의미를 지니는 것은 희생양 모티프를 통해서다. 비록 이광수는 표면적으로는 유일한 기독교 집안이 김 장로 가계를 비아냥거리고 조롱하였지만, 이형식이 진정한 기독교인으로 개안(開顔)하였다는 점과 박 진사와 영채를 통한 희생양 모티프의 작품 내적 실현과 병욱을 통한 영채의 구원과 부활을 작품의 중요한 서사 구조로 채용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기독교적 모티프를 지닌 작품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근대화’라는 판도라 상자
근대화의 최고 걸작은 아마도 개인(ego)의 발견일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열지 말았어야 할 판도라의 상자였다. 그런데 판도라가 놀라서 얼른 닫은 상자에 희망이 남아 있었다는 것을 나는 이 『무정』을 보면서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런데 왜 판도라의 상자에서 튀어나온 것이 에고(ego)일까? 이 에고(ego)야말로 동양식으로 얘기하면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慾)을 만들어내는 근본이다. 요즘 사람들은 기쁘고(喜), 즐겁고(樂), 사랑하고(愛), 하고 싶은(慾) 것에 너무 집착한다.
요즘처럼 사랑한다는 말이 난무하는 때가 없었다. 그러면서도 이혼율은 늘어만 가고, 즐거움을 갈구하면서 우울증, 자살률이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행복하기를 집착하면서 행복지수는 세계 최저 수준이고 하고 싶은 것은 많으나 돈이 없는 청년실업자들은 늘어만 간다. 결국, 근대화로 태어난 개인은 기뻐할수록 노여움이 생기고, 즐거울수록 슬픔이 생기고, 사랑할수록 미워하는 마음과 욕심이 생기는 원리를 알지 못한다. 세상을 지배하는 상업주의는 더욱 상품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사랑과 기쁨과 즐거움만 강조하지만, 그 이면의 그림자로 사람들은 더욱 괴롭기만 하다. 그래서 근대화로 태어난 개인의 발견은 인간에게 걷잡을 수 없는 불행의 늪, 희노애락애오욕의 노예로 끌어들였다.
근대화 이전의 인간들은 공동체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었다. 한 개인은 관계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었고 관계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가 없었다. 특히 공동체가 발달한 사회일수록 더욱 그러했다. 개인은 이름으로 불리지 않았고 관계로 불렸다. 나는 그런 사회에서 개인의 발견을 역사적으로 큰 불행한 사건이라 생각한다. 개인이 발견되면서 공동체가 깨지기 시작했고 소통과 연대라는 소중한 문화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세상을 바꾸려면 나부터 바꿔라. 개인의 발견이 불행의 씨앗이 아니라 세상을 바꿀 근본의 발견일 수 있다는 것을 이광수는 역설하고 있다. 근대화가 개인의 발견이라는 불행을 가져다주었지만, 그 이면에는 희망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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