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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철 칼럼】 한 줌의 누룩 되어 (2)한국교회, 누룩의 능력을 회복해야

한명철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은혜와 평강교회를 담임하며 30권의 저술과 글쓰기를 통해 복음 사역에 애쓰는 목회자이다

 

동북공정과 독도문제는 자강(自强)으로 풀어야

동북공정과 독도 문제에는 독립 운동을 하던 심정으로 임해야 옳다. 4,500만의 1/10만이라도 독립군을 자처한다면 하나의 제국이라도 만들 수 있지 않겠는가! 인터넷 매체를 통한 전 국가적인 홍보와 국제법에 호소해서라도 구겨진 민족의 자존심을 바로 펴야 한다. 진정한 역사 바로 세우기는 선조들이 피땀으로 일구었던 삶의 터전을 잃지 않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영토의 실지회복은 반드시 추진되어야 한다. 비현실적인 발상이긴 하지만 억지를 부리는 중국인들의 폭거에 항거하기 위한 수단으로는 제격이라 여겨진다. 독도를 다께시마(竹島)라 하여 자신들의 영토로 우기는 일본에 대해서도 지리적으로 가까운 대마도야말로 예부터 우리 관할 하에 있었음을 내세워 맞불을 놓아야 한다.

오늘의 한국에 가까운 친구가 있는가? 일본인가? 중국인가? 미국인가? 러시아인가? 한국을 대하는 미국의 태도도 이전 같지 않고 시큰둥하다. 중국은 막무가내이고 일본은 예의 뻔뻔함으로 일마다 때마다 속을 긁어놓는다. 오늘 한국의 경쟁 상대는 있어도 친구라 일컬을만한 나라는 어디에도 없다. 한국이 강해지면 친구들이 생겨날 것이다. 그러나 쪼개지고 무너지는 나라엔 친구는 없고 눈빛을 날카롭게 세우는 승냥이 떼가 있을 뿐이다. 스스로 서야 친구들이 찾아온다. 하나가 되어야 그 누구도 얕보지 못한다. 그런데 조국의 현실은 그야 말로 난맥상이다. 한국 내에서도 하나를 이루지 못해 남북이 갈렸고 이제는 동서마저 나뉘었는데 반쪽으로 동강난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지지고 볶고 있으니 누군들 걱정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북핵긴장 한미갈등 국민분열의 삼중고

미국이 한국을 버려도 하나님이 버리지 않으면 한국은 애국가의 가사처럼 “하나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다. 끄떡할 것도 없다. 그러나 만일에, 만일에 말이다. 하나님이 한국을 외면하신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나님이 버린 한국을 과연 누가 지킬 것인가? 그나마 군사적 보호 장치의 마지막 보루라 할 수 있는 미군마저 한국에 등을 돌리는 중이다. 그것도 한국이 간절히 원해서 마지못해 물러나는 것 같은 형태를 취하고서 혈맹이었던 미국이 한반도에서 멀어져가고 있다. 자립도 하기 전에 비현실적 자립을 외쳐댄 지도자의 어설픈 민족적 자존감 때문에 저들은 우리더러 그러마고 답하면서 몸을 일으켜 세운다. 그러니 반대를 일삼았던 쪽에서 이번에는 제발 재고해 달라고 손을 비벼댄다. 무엇이 자존심이고 무엇이 비굴함인지 분간이 안갈 정도다.

한국은 필자가 보기에 삼중의 위기에 처해 있다. 북핵으로 인한 긴장, 균열이 간 한미동맹과 악화일로를 걷는 한미 간의 갈등, 그리고 민족 내부의 분열상이다. 만일에 핵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지 않고 북한의 전반적인 사정이 급박하게 돌아가 북한이 삼손 콤플렉스에 빠져버리게 되면 한반도뿐 아니라 동북아 전체가 재앙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북한의 눈치를 살피며 나라를 삐딱하게 운영하는 지도자들에게는 희망의 불씨가 전연 남아있지 않다. 군중이 스스로 나라의 주인이 되어 깨어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에게서 미래는 단박에 날아가 버리고 말 것이다. 욕심 사나운 정상모리배들로 들끓는 정치판에 제대로 된 정치가가 몇 명만 있어도 사람들은 지금처럼 답답해하고 막막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위태한 한미관계 신뢰구축이 우선

그나마 위기의 순간에 한국을 붙들고 힘을 실어줄 나라는 그래도 미국이다. 혈맹이 따로 혈맹인가! 필자는 맹목적인 친미주의자가 아니다. 미국의 밀어붙이기식 외교정책에 대해서는 늘 반대 입장이다. 민주당이 집권하면 기독교적 가치관이 정책적으로 허물어지는 반면에 경제를 비롯한 세계와의 관계에는 긴장감이 덜 하지만, 공화당이 집권하면 기독교적 가치관은 어느 정도 유지되지만 경제를 비롯한 세계의 문제는 긴장의 연속이다. 어느 쪽이든 어렵기는 비슷한 양상이다. 강경일변도의 트럼프가 정권을 창출한 이후 그가 보인 행보를 가늠하지 못한 한국의 집권층은 스스로 판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세계의 위기감은 날로 더해갈 것이다.

한미 간의 문제도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한국에 불리하게, 미국적인 시각대로 진행될 것이다. 한미 간의 관계에 있어 칼자루를 쥔 것은 불행히도 미국인 사실을 우리는 부정할 길이 없다. 솔직히 미국의 존재는 세계적인 딜레마다. 그럼에도 어쨌든 하나님은 미국을 이 시대의 막대기로 사용하고 계신다. 균열이 가기 시작한 혈맹관계는 국가적 이득 우선과 이념적 대립과 민족의 자존감 등과 맞물려 치유가 불가능할 것이다.

 

조국의 위기의 밑바닥에는 한국교회 영적 위기가 있어

그러나 가장 심각한 것은 한국 내부의 이원론적 분열상이다. 보수와 진보의 이념적 분리, 청년층과 장년층, 386이니 486이니, 30/40이니 70/80이니 하면서 나누어진 세대 간의 갈등, 영호남의 망국적 지방색 등이 친북과 반북이라는 좌우익 논쟁에 전 국민을 몰아넣었다. 한국전쟁 직전에 치열했던 좌우익 간의 사상 대립과 그 양상이 다를 바 없다. 이와 같은 분열상은 학교와 직장, 심지어는 교회 내부에까지 그 치명적인 영향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여기에 교회마저 그 치유력을 상실한 채 민족의 위기라는 급류에 떠밀려갈 뿐 역류하지 못함으로 절망감만을 더하고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한국이 처해 있는 이 모든 위기의 밑바닥에는 한국교회의 영적 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

오늘 조국이 처해 있는 영적 위기를 그 누구보다 한 줌의 누룩이 되지 못한 나의 책임으로 여기면서 주님의 말씀을 숙고해본다. 누가복음 13:18-21절에서 주님은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를 통해 천국을 설명하며 그 가시적인 성장과 함께 내적인 변화를 보여주셨다. 먼저 주님은 겨자씨 한 알이 땅에 떨어져 죽음으로 큰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깃들일만한 곳이 된다는 식물학적 관찰을 통해 복음으로 인한 기독교의 확장을 말하고 있다. 반면에 한 줌의 누룩이 가루 서 말에 섞여서 반죽을 크게 부풀리게 만든다는 화학 작용을 통해 복음에 의한 내적 변화의 능력을 강조하고 있다.

지금 한국은 계속되어온 위기를 타개하지 않음으로 더 큰 위기에 봉착해 있다. 흔히 정치적 불안정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위기론을 말하지만 교회의 위기가 가장 근본적이라 본다. 조국을 떠난 이후 늘 태양을 따라 도는 해바라기처럼 조국교회를 그리고 조국의 교단을 사랑하고 조국의 동역자들을 귀하게 여기던 마음이 떠나지 않았기에 축적된 느낌이다. 오늘 한국이 처한 총체적인 위기는 바로 영적인 위기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위기는 다름 아닌 교회지도자들의 위기다.

 

누룩은 기독교의 변화의 능력을 상징해

누룩은 기독교의 변화하는 능력을 상징한다. 어둠을 밝히는 것은 작은 촛불 한 자루다. 비록 작고 바람에 꺼질듯 말듯 약해보이는 한 자루의 초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밝히는 힘은 주위 사방의 어둠을 능히 물리친다. 소금은 비록 작고 보잘것없는 것이지만 음식을 썩지 않게 방지해준다. 한 줌의 누룩 자체는 아무런 힘도 없고 보잘 것 없다. 그러나 서 말의 가루 속에 던져질 때에 그것은 바람에 흩날리는 가루들을 반죽된 덩어리로 바꾸어 빵이 되게 한다. 그 변화는 조용하고 지속적이며 신비롭다.

누룩이 없으면 서 말의 가루는 서 말의 가루로 남는다. 영향을 받지도 영향을 주지도 못하는 단순한 가루에 불과하다. 그러나 누룩에 접하는 순간부터 서 말의 가루는 분명한 변화를 일으킨다. 적당히 반죽된 밀가루에 효소인 이스트를 조금 보태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변화 과정을 거쳐 크게 부풀어 오른다. 부풀어 오른 이 반죽덩어리로 우리가 먹을 빵을 만든다. 누룩이 없이는 빵을 만들지 못한다.

 

한국 역사 속 누룩이 된 한국교회

한국교회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축복 아래 놀라운 부흥과 번영을 이루었다. 짧은 기간에 온 세계 교회가 경이적인 눈길을 보낼 만큼 놀라운 성장을 이룩했다. 한국교회에 놀라운 영적 부흥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복음이 뿌려질 당시에 누룩 같은 하나님의 종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 초창기 때 무지한 군중을 일깨운 것은 누룩 역할을 감당한 교회였다. 나라를 빼앗기고 갖은 학대와 수모를 겪어야 했던 지도자들과 잡초 같은 민중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며 한국역사의 물줄기를 바로 잡아준 것은 기독교의 복음이라는 누룩이었다.

민족 수난의 암흑기와 건국의 여명기에 한국교회가 나라와 민족에게 끼친 영향력에 대해서는 교회역사가 뿐 아니라 일반역사가들도 평가하는 바다. 누룩이 되어 교회를 부풀리고 이 나라의 터전을 반석 위에 세우게 했던 초기 한국교회는 비록 수난을 당하긴 했어도 그 장엄한 영광을 잃지 않았다. 하나님은 이런 한국교회를 마음껏 축복해 주셨다. 이제 한국교회는 서 말이 아니라 억만 섬에 비할 만큼 그 규모가 커졌다.

 

가루는 넘치지만 누룩은 없어

한국은 교회당 천국이다. 그만큼 살기 좋은 나라가 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한 집 건너 교회가 있다고 말할 정도로 교회가 우후죽순처럼 솟아났다는 뜻이다. 사람이 사는 곳이면 산간 마을, 외딴 섬 할 것 없이 교회가 세워졌다. 도시 도시마다, 마을 마을마다 교회 건물이 즐비하고 밤에는 십자가의 네온사인이 눈에 꽉 차 들어온다. 한국교회는 명실 공히 전 세계의 기독교계가 부러워하는 기독교국가 아닌 기독교국가가 되었다. 미국 다음으로 선교사를 제일 많이 파송하고 굵직굵직한 기독교관련 회의와 세미나가 그칠 사이 없다. 국회조찬기도회를 비롯한 각종 조찬기도회가 있고 국회의원 중 거의 대부분이 기독교신자들이다. 기업의 총수들을 비롯한 각계각층에 기독교 신자들이 상당히 포진되어 있다. 서 말의 가루가 아니라 남한 천지가 가루로 뒤덮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가루는 태산처럼 쌓였는데 누룩이 보이지 않는다. 조국의 강산은 분명히 복음의 소리로 뒤덮였는데 공허한 메아리만 들려오는 것이 현실이다. 교회가 많아졌다는 것은 기독교가 그만큼 강성해졌다는 말이며, 교회가 부흥을 이루었다는 말과 같다. 한국교회가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룩한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분명한 축복이다. 그러나 내적인 변화와 영적인 능력 면에 있어서는 외형적인 크기만큼 커지지 않았다. 안타깝게도 겨자씨의 비유에서처럼 외적인 성장은 이루었지만 누룩의 비유와 같은 내적인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공중의 새들이 깃들일만한 큰 나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영향을 줄만큼 부풀어 오르지 못했다. 그 결과 교회는 무서운 속도로 내리막길로 내닫고 있는 중이다.

 

누룩의 능력은 사라진 썩어가는 교회

한국 기독교의 현실은 어떤가? 교회는 넘치는 가루덩이에 속했을 뿐 한 줌의 누룩이 되지 못하고 있다. 불신자들은 교회가 획득한 부를 자기 치장에만 쏟아 부으며 이웃의 아픔을 외면한다고 비웃는다. 청장년층은 교회지도자들에게 혐오감을 갖고 노골적으로 증오를 표현한다. 인터넷에는 교회를 신랄히 비난하고 교회지도자들을 공격하는 안티사이트들이 즐비하다. 일반시민들도 동조하는 분위기다. 왜 그런가? 교회의 지도자들이 누룩 되기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신자들도 고난의 시기를 벗어나면 이내 누룩이 되기를 꺼려한다. 교회에 문제가 있으면 교회 내부에서부터 정화와 개혁의 목소리가 들려와야 한다. 끊임없는 회개와 자기부정의 삶으로 세상에 속하지 않은 거룩한 정체성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목사들도 마찬가지다. 정의로운 삶을 동경하고 불의를 꾸짖는 예언자적 자세를 부끄러워한다. 현실에 적당히 타협하며 세상적인 영화를 추구하는 다수의 분위기에 역행하기 싫어서다. 이렇게 안락에 길들여진 마음 때문에 희생이 요구되는 십자가의 길을 애써 외면한다. 성령의 능력에 자신을 온전히 내맡겨 변화를 이루지 못한 한국교회는 이미 변질이 되었다. 누룩을 통한 내적인 변화를 이룩하지 못한 한국교회는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으로 변질되어버렸다. 지극히 소수의 교회를 제외하고는 한국의 교회들은 이미 썩어버렸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았던 이스라엘의 칠 천인들처럼 거룩한 남은 자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부패로 얼룩져 있다. 비록 일부라 해도 다수가 침묵을 지켜 전체가 욕을 먹는다.

 

 

윤홍식 기자  jesuspoin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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