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소식을 듣고 참담한 심정이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니 9명의 헌법재판관 중에서 4명이 헌법불합치, 3명이 단순위헌, 2명이 합헌의견이었는데, 결국 9명 중 7명이 위헌이라는 판단을 내렸다는 점은 다소 충격적이기도 했습니다.

2. 저는 그리스도인이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습니다. 성경은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여 영생에 이르게 하지만, 그와 동시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세계에서 무엇이 바른 것인지, 구체적인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여야 하는지 판단할 수 있는 충분한 지침과 근거를 제시하고 있으며, 나아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위적으로 힘써 지켜야 하는 한계선을 제시해주고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들은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비롯하여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많은 율법들, 그리고 자신을 대변할 수 없는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율법들로부터 ‘태아’를 보호해야 하는 당위의 근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낙태상황에서 태아는, 자신을 전혀 대변할 수 없는, 심지어 유일하게 자신의 생명을 의탁하고 보호를 요청할 수 있는 존재인 ‘부모’로부터 마저도 살해당할 처지에 놓여 있는 약자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태아가 박탈당하는 권리는, 재산권이나 기타 부분적 침해상황을 상정할 수 있는 가치가 아닌, 생명이라는 유일한 가치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사람을 모태에서부터 지으시고 부르셨다는 성경의 많은 구절들을 일일이 제시하지 않더라도, ‘태아’는 자연적으로 유산되는 안타까운 사정이 없는 한 장래에 존엄한 인간으로서 성장하기에 모태에 있을 때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주체이며, 나아가 생명의 나고 죽음에 대한 통제권이 우리에게 없고 하나님으로부터 오기에, 인위적인 ‘태아 살해’는 하나님 앞에서 범죄라는 점은 우리의 양심과 직관을 통해서도 충분히 인정되는 자명한 사실입니다.

3. 그러나 안타깝게도,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대해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는바, 저는 이러한 결정이 성경에 위배되며, 이 사회에 끔찍한 죄악을 더할 뿐 아니라 이 사회를 더욱 신속하게 타락하게 하는 결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위헌의견을 제시한 7명의 재판관의 결정을 비판하고자 하며, 개인적인 의견개진에 있어서 합헌의견(소수의견)을 유지한 2명의 재판관의 의견을 참고 하였습니다.

4. 먼저, 많은 분들이 아시는 내용일 수도 있겠으나, 이미 기존의 낙태죄에 대해서도 ‘위법성조각사유-실질적으로 위법이 아니라고 인정할만한 특별한 사유’가 규정되어 있어서, 불가피한 경우 낙태가 허용되고 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행법은 낙태와 관련하여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과 위법성 조각사유를 규정한 모자보건법으로 이원화되어 있는데, 모자보건법에서는, ① 본인이나 배우자가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② 본인이나 배우자가 특정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③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④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⑤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 헌법은 자유를 제한할 경우 필요최소한으로 제한하여야 한다고 정하는데, 이미 우리 법체계는 ‘생명’이라는 가치와 부모 또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운명결정권’ 사이의 균형으로, 위와 같은 위법성 조각사유들을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5. 형법상 낙태죄가 출산을 원하지 않는 여성에게 출산을 ‘강요’한다거나, 형벌의 위하력으로 출산 및 모자관계 형성을 ‘강제’하여, 여성의 자기운명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제한한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강요’는 의무 없는 행위를 요구하거나 강제할 때 사용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렇다면 과연 태아를 잉태시킨 ‘부모’에게, 그 잉태된 태아를 보호·양육하고 출산할 ‘의무’가 없는 것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저는 사실 위와 같은 사고의 근원에는, ‘성행위’ 또는 ‘성관계’라는 행위에 대한 잘못된 또는 왜곡된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관계’는 생명과 연관된 거룩하고 책임있는 중요한 행위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이 시대에 찾아볼 수 없습니다. 부인할 수 없는 자연법칙 가운데 이미 그렇게 설계가 되어 있음에도, 따라서 인간은 충분히 그 행위에 따른 엄중한 결과와 책임을 인지하여야 함에도,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피임은 매우 가볍고 쉬워졌고, 성관계의 주된 목적은 쾌락 추구입니다. 그리고 정절이나 순결과 같은 가치는 땅에 떨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성적인 타락 등으로 인하여, ‘성관계’와 ‘생명’과의 연관은 일반사람들의 인식하에서 희미하게 존재할 뿐입니다.

성관계에 대해서 위와 같은 엄중하고도 거룩한 인식이 없기에, 너무나 쉽게, 자신의 행위의 결과로 발생한 태아를 출생하는 일에 대해서조차, 자연스럽게 ‘강요’ 또는 ‘강제’라는 표현이 등장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태아의 부모는, 자신의 행위에 의하여 의무를 발생시켰고, 그 의무를 이행할 책임이 있습니다.

6. 임신한 여성에 대한 자기결정권 주장의 또 하나의 모순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보장을 위해, 생명으로 존중받아야 하는 태아는, 자기의 권리를 옹호할 능력이 없는 약자인 이유로, 자기결정의 근원인 생명권(존재의 유지)마저도 묵살된다는 점입니다.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이 세상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엄한 인간 존재의 근원이다. 이러한 생명에 대한 권리, 즉 생명권은 비록 헌법에 명문의 규정이 없다 하더라도 인간의 생존본능과 존재목적에 바탕을 둔 선험적이고 자연법적인 권리로서 헌법에 규정된 모든 기본권의 전제로서 기능하는 기본권 중의 기본권이다.’ (헌재 1996. 11. 28. 95헌바1)

인간에게 자기결정권이 보장받아야 하는 중요한 권리이듯, 태아에게 있어서 생명권은, 인간으로서 자기결정권 생성 이전에 근원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입니다. 따라서 자기결정권 보장을 위해 생명권을 박탈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인간인 부모의 자기결정권을 위해, 사실상 다른 인간인 태아의 자기결정권의 근원인 생명권을 박탈하는 모순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해 질 수 있는 이유는, 태아는 생명권과 자기결정권의 주체이지만, 성인 부모와는 달리 자신의 권리를 실현시킬 어떠한 유형력도 행사할 수 없는 절대 의존적 존재, 절대적 약자이기 때문입니다.

태아와 부모라는 권리주체와 권리주체가 가지는 각 권리(생명권과 자기결정권)를 비교형량해본다고 하더라도, 부모의 자기결정권 제한에는, 부모의 행위에 대한 책임이라는 제한의 근거가 있습니다. 부모는 자기의 자유로운 의사로 성관계를 가졌고,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할 의무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태아는 어떠합니까? 태아는 그의 의사와 전혀 무관하게, 부모에 의해 일방적으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태아는 자신의 생명권이 박탈됨에 있어 아무런 책임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책임있는 자의 생명권에는 미치지 않는 권리(자기결정권)를 보장하기 위하여, 책임없는 자의 유일한 생명권이 희생되는 것이 정당합니까? 이는 자기 책임의 원칙에 반합니다.

7. 생명의 발달단계에 따라 보호정도나 보호수단을 달리할 수 있다는 견해 역시 동의할 수 없습니다. 낙태죄 폐지 입장에서는, ‘태아가 일정시기 이후 모체를 떠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시기’ 전에는, 낙태를 가능케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22주라는 시점을 제시합니다. 22주라는 시점의 근거는 현 의학기술입니다.

그러나 위헌의견(낙태죄 폐지 입장) 결정문 자체에서도, 위와 같은 기준은 가변적이라는 점을 자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의학기술이 발달하여 점점 그 시점이 당겨진다면, 법적인 판단도 달라져야 합니까? 이는 일관성을 가질 수 없는 논리로, 생명에 대한 가치판단의 기준은, 윤리적이고 불변하는 원칙에 입각하여 결정되어야 합니다. 그 외의 변화될 수 있는 사정을 판단 시점 및 기준으로 하여 정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향후 더 많은 논란과 ‘기준없음’으로 인한 문제를 발생시킬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합헌의견(낙태죄 폐지 반대)에서는, 아래와 같은 취지로 타당하게 반박하고 있습니다.

‘의학의 비약적 발전, 개별 태아의 성장속도가 다른 점을 감안하면, 태아의 성장단계에 따라 또는 독자적 생존능력을 갖추었는지에 따라 생명 보호의 정도를 달리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생명의 발달과정은 연속적인 과정으로 특정 시점 전후로 명확하게 발달단계가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이미 헌법재판소에서는 아래와 같은 결정으로, 태아는 성장상태와 관계없이 생명권의 주체로서 보호받아야 함을 설시한 바 있습니다.

‘헌법이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은 태아가 인간으로 될 예정인 생명체로서 그 자체로 존엄한 존재이기 때문이지, 그것이 독립하여 생존할 능력이 있다거나 사고능력, 자아인식 등 정신적 능력이 있기 때문은 아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신체적 조건이나 발달 상태 등과 관계없이 동등하게 생명 보호의 주체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태아도 성장 상태와 관계없이 생명권의 주체로서 마땅히 보호를 받아야 한다’ (헌재 2012. 8. 23. 2010헌바402)

8. 낙태의 문제가 부모 중 불가피하게 임신 주체인 여성과 더욱 밀접한 관련이 있고, 낙태죄 역시 실제로 여성에게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여성만이 부당한 제한과 처벌을 받는다는 주장이 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남자 측에서 양육의무를 다하지 않을 경우 그에 대한 실제적인 제재 또는 처벌을 통해서 해결할 문제이지, 낙태죄 자체를 폐지하여 해결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실제로 양육비책임법 등의 제정이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임신한 여성이 낙태에 이르게 되는 사회적·경제적 사유에 대한 내용을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러한 원인의 해결을 위하여서는 국가적 제도적 차원의 다른 방법을 모색하여야 하는 것이지, 낙태죄를 폐지하는 것은 대안이 될 수 없습니다. 낙태죄 폐지는 생명에 대한 가치판단의 문제로, 분명 현실적인 이유와는 구분되는 윤리적 판단과 결단이 필요한 문제입니다.

9. 성경에서는 ‘무죄한 자의 피’에 대해서 많은 구절에서 말씀합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저는 낙태야말로 ‘무죄한 피’를 흘리게 만드는 대표적인 죄악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는 자기 행위와 책임으로 자녀를 갖지만, 태아에게는 아무런 결정권한이 없습니다. 그리고 태아는 아직 그 자유의지에 따라 어떠한 죄를 범하거나 소멸당해야만 하는 어떠한 일을 행한 바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자기결정권’, ‘편의’, 각종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아무런 죄가 없는 태아를 죽이는 범죄가 바로 낙태입니다.

지금도 연간 17만 건의 낙태가 행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건수로 따지면 와 닿지 않지만, 17만 명이라고 생각하면 엄청난 숫자입니다. 해마다 17만 명의 사람들이 어떤 범죄로 생명을 잃고 있다고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17만 명의 무죄한 태아의 피의 대가는 이 나라 이 민족 전체가 감당해야할 죄의 무게가 될 것입니다. 지금도 무죄한 어린 생명의 피가 이 땅에 뿌려지고 있습니다. 저는 그 결과가 두렵습니다.

앞으로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정확하게는 알지 못하지만, 부디 바라기는 낙태죄가 전격적으로 폐지되는 결과를 막을 수 있는 입법이 가능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부디 이 땅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의 땅이 아닌, 하나님이 도구로 사용하시는 귀한 나라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남규석 변호사, 그리스도보혈의교회 안수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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