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124) - 에스겔(16)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부회장 KC대 전 총장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것이 곧 예루살렘이라 내가 그를 이방인 가운데 두어 열방으로 둘러 있게 하였거늘 그가 내 규례를 거스려서 이방인보다 악을 더 행하며 내 율례도 그리함이 그 둘러 있는 열방보다 더하니 이는 그들이 내 규례를 버리고 내 율례를 행치 하니하였음이니라”(겔5:5-6).

하나님과 백성 사이, 영적세계와 물질세계 사이

에스겔서 신학에 가장 중요한 용어는 무엇일까. 에스겔서는 ‘그 사이에(베토크, betok, among, 둘레에)’라는 말이 116번이나 나온다. 이렇게 많이 ‘그 중에(in the midst)’라는 말이 처음 구절에서부터 시작하여 많이 나오면서 이야기 하려는 것이 무엇인가. “제 삼십년 사월 오 일에 내가 그발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베토크) 있더니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이상을 내게 보이시니”(겔1:1). 에스겔은 야웨의 말씀을 절대 절명으로 필요로 하는 시간과 장소, 사람들 사이에(베토크) 있으며 자신을 예언자로서 보여주고 있었다. 야웨 자신의 역할과 그가 사역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특별한 의식을 가지고 활동하였다. 이렇게 많은 ‘그 중에(베토크)’라는 말은 다른 구약 성서에서 사용된 것보다 많이 사용하면서 나타내려 한 것은 무엇인가. 에스겔 자신의 위기의 상황 ‘사이에’, 그리고 구약 예언자들에게 있어서 특별한 백성들의 사역 ‘중에서’ 에스겔은 독특한 의식을 하게 된 것이다. 에스겔은 세계의 종교적이고 상업적이고 여행의 중심적인 곳의 ‘사이에’ 살았다(라마르 쿠퍼). 이것은 인간의 필요를 배우는 커다란 기회를 제공하였다. 바벨론과 예루살렘 사이에 오가면서 에스겔은 영적인 세계의 중심과 물질과 상업과 군사의 중심 제국 사이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서 하나님이 이끌어가는 역사의 핵을 보게 된 것이다. 역사는 진리와 진실을 중심으로 이끌어가는 손길을 보기에 우리는 하나님의 살아계신 숨결을 보게 된다.

“이에 내가 델아빕에 이르러 그 사로잡힌 백성 곧 그발 강가에 거하는 자들에게 나아가 그 중에서(베토크) 민답히 칠일을 지내니라”(겔3:15).

에스겔은 자신의 예언의 관점에서 드러나는 ‘그 중에서(베토크)’ 종말과 그 종말 너머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 다른 사람들과 국가에 미치는 사역을 아우르는 세계, ‘그 사이에’ 자신을 그 하나로 보면서 이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 삼마 “하나님이 거기 거하신다”

오늘 우리는 이 세상 속에 살아가지만 우리는 하늘나라, 저 피안(彼岸)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항상 변증법적 관계 속에서 이 세상 나라도 아니면서 저 세상나라에 속한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실존인 것이다. 또한 저 하늘나라의 것만 추구할 수 없이 이 땅에 발을 내딛고 살면서 하나님 나라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그 사면의 도합이 일만 팔천척이라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겔48:35). 이것은 에스겔의 마지막 비전(Vision)으로서 “여호와 삼마”(겔48:35)라고 불리는 도시의 ‘사이에’ 그가 위치하면서 본 마지막 환상이었다. 우리는 이 최종적인 유리한 점에서 그는 영원한 관점을 받아서 하나님의 계획을 세우며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을 통해서 선택받기 위한 계획을 보여준다. 세계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게 되기를 바라는 역사의 중심,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에스겔은 바벨론 포로로 붙잡혀가 가서 그 거대한 세계, 제국의 ‘중심에서(그 중에서)’ 그는 잘 알려지지 않은 청중에게 그곳에서 야웨를 위한 대변인으로서 불림을 받았던 것이다. 이 경험을 통해서 그는 인간의 비극과 죄, 임박한 심판, 거룩한 하나님의 분노, 하나님 사랑과 동정을 배우게 되었다. 이러한 사역의 끝에서 그는 올 이상적인 왕국의 “그 사이에” 비전(환상)을 보게 되는 것이다. 거기서 즉 도래할 나라에서 그가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획과 그의 백성을 위한 목적을 추가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여호와 삼마, 즉 주가 거기에 계시게 될 세계, 주의 임재가 이뤄지는 유토피아 세상이며 하나님 나라, 주의 통치가 일어나는 이상적인 세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에스겔은 이 ‘사이에’라는 말로서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고, 하나님의 통치 ‘사이에’에 있으며 폭풍‘사이에’(겔1:1) 하나님의 보좌가 있으며 죄 된 세상 ‘가운데’ 하나님이 거룩하고 의롭게 계시며(겔8:1;10:1-11:25), 여러 나라들 ‘사이에’ 하나님이 재입증자로서 제련자로서 존재하며(겔25:1-32:32), 부서진 꿈들 ‘사이에’ 구속자와 회복자로서 하나님이 존재하신다(33:1-39:29). 죄와 분쟁의 세상 ‘사이에’ 그는 평화의 통치자로서 희망이 되시며(40:1-46:24), 죄와 죽음의 세상 ‘사이에’ 그는 영생의 희망이 되시는 것이다(겔47:1-48:35). 이처럼 에스겔의 메시지는 무시간적으로 우리가 필요로 하는 현 세계 ‘사이에서’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와 더불어 모든 백성들과 그의 소유된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말하고 있다. 이는 오늘도 하나님 나라의 영생을 가진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시대 사람들의 복음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과 그 사이에서 서서 복음을 전하는 종으로 사명을 받들며 우리는 서있는 것이다.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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