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1년 신성로마제국 황제 칼 5세는 1517년 이후에 양립되는 두 세력을 화의하기 위해서 레겐스부르크에서 제국 회의(Diet of Regensburg)를 개최했다. 레겐스부르크는 16세기 유대인이 많이 거주했던 대표적인 지역이기도 했다. 이 회의에는 스트라스부르크의 마틴 부처가 스트라스부르크에 있는 칼빈을 동행해서 참가했다. 레겐스부르크에서는 이중칭의(double justification)로 화의했다. 그러나 교황도 루터(M. Luther, 1483-1546)도 만족하지 못해 결국 와해되어 마지막 종교회의가 되었다.

레겐스부르크 화의에서 이중칭의를 결의했지만, 좀 더 구체적인 부분까지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에, 교황이나 루터가 모두 만족할 수 없었다. 이중칭의는 전가된 외적 의(an imputed external righteousness)와 주어진 내재적 의(an imparted inherent righteousness)을 모두 허용한 것이었다(맥그래스: 2017, 200). 로마 교황주의는 트렌트 공의회(Council of Trent, 1545-1563)를 개최하여 전가된 의가 아닌 주입된 의(an infused external righteousness)를 공식화했다. 구교는 주입된 의에도 인효(人效論, Ex Opere Operantis)와 사효(事效論, Ex Opere Operato)로 두 가지가 있다. 트렌트 공의회, 칭의교령(6차, Decretum de justificatione, 1547년)은 16장의 로마 교회의 견해인 주입된 의를(ON JUSTIFICATION, 7장)제시하며, 믿음으로만 칭의를 얻는 다는 주장을 저주했다(9장). 33 캐논(Canon)에서는 종교개혁이 주장하는 전가된 의에 대해서 아나떼마(anathema)를 선언했다. 참고로 트렌트 공회의에서 자신을 Catholic Church라고 소개하지만, 우리는 Roman Papist 혹은 Roman Catholic으로 이해한다. 교황주의가 레겐스부르크 협약의 전가된 의를 인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곧 종교개혁의 믿음으로 구원얻는 이신칭의를 인정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로마 교회는 주입된 의를 견지하기 때문에, 당연하게 내재적 의에 대해서 인정할 수 밖에 없다. 협력은혜(assisting grace, 5장)을 견지한다.

그러나 루터는 전가된 의(imputed the righteousness)를 강력하기 주장했고, 전가된 의에 앞서 외부에서(extra nos) 들어온 낯선 의(alien righteousness, 생소한 의)를 주장했다. 그러나 내재적 의(intra nos, inward righteousness)에 대해서 강력하게 거부했다. 그렇기 때문에 레겐스부르크 협약에서 합의한 내재적 의의 가능성을 거부할 수 밖에 없었다. 내재적 의를 인정하면 신인협력 관계가 대두된다. 루터는 낯선 의가 전가된 뒤에는 의인이면서 죄인(simul iustus et peccator)인 상태로 끊임없는 믿음의 쟁투를 촉구했다. 결코 인간이 구원(칭의)나 성화에 나타나지 않도록 힘썼다.

루터는 낯선 의를 다르게 수동적 의(passive righteousness)로 전가되는 방식을 제시했다. 그리고 내재적 의를 절대로 거부했다. 그런데 루터가 능동적 의(active righteousness)를 『갈라디아서 주석』(1535)에서 제시했다. 루터는 그리스도인이 능동적 의, 율법을 무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루터는 성화를 그리스도인이 사는 동한 끝까지 진행해야 할 정진으로 보았다(우병훈: 2018). 즉 루터는 신자가 행하는 능동적 의, 내재적 의를 무시했고 거부했다.

루터가 소천된 뒤에 필립 멜랑톤(Philip Melanchthon, 1497-1560)을 추종하는 필립파와 마티아스 플라키우스(Matthias Flacius Illyricus, 1520-1570)를 추종하는 순수루터파(Gnesio-Lutherans)로 분리되어 논쟁을 진행했다. 신호섭 교수는 슈타인메츠의 글을 인용하면서, 플라키우스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이라고 개념을 베자가 수용했다고 제시했다(신호섭: 2016, 73). 순수루터파의 중심 인물인 플라키우스에게서 신자에게 부여된 수동적 의와 능동적 의가 예수 그리스도께로 옮겨져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이라고 개념화되었다고 슈타인메츠가 주장했다는 것이다. 슈타인메츠는 118쪽에서 플라키우스가 그러한 어휘를 사용했다고 밝혔지만 플라키우스의 텍스트를 밝히지 않았다. 그런데 슈타인메츠의 저술인 Reformers in the Wings: From Geiler von Kaysersberg to Theodore Beza에서 요한 카이저스베르크(Johann Geiler von Kaysersberg, 1445-1510)는 인문주의자로서 로마 교회 사제였다. 슈타인메츠의 작품은 Kaysersberg와 베자를 연속성 관점에서 집필한 것으로 보인다. 슈타인메츠의 교회사를 이해하는 관점에 상당한 우려를 보낼 수 밖에 없다.

181). 오시안더의 칭의 개념은 두 루터파(필립파와 순수루터파)에서 모두 거부했다(뮐렌: 2003, 281). 1550년 오시안더는 멜랑톤과 의의 전가 개념으로 날카롭게 공박했다. 오시안더는 신앙인이 죄 용서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신앙을 통해서 자기 안에 거하는 그리스도의 의 때문에 의롭게 된다고 주장했다(뮐렌: 2003, 278). 오시안더는 의의 전가로 의롭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실존적으로 하나님의 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의에 참여하도록 한다고 했다. 뮐렌은 오시안더가 유대 신비주의인 카발라의 영향을 받았다고 제시했다(뮐렌: 2003, 278). 오시안더는 하나님의 본질적인 의(iustitia dei essentialis)가 사람 안에 거하는 것이 칭의라고 규정했다(뮐렌: 2003, 279). 즉 그리스도의 신적 본성에 참여할 자리를 얻는 것이다. 오시안더는 단순하게 의롭게 됨, 의의 전가에서, 그리스도의 거하심의 본질을 주장했다. 오시안더는 칭의의 죄용서와 신적 본성에 참여하는 본질을 분명하게 구분했다. 뮐렌은 루터에게는 죄용서가 칭의의 전부라고 제시했다(뮐렌: 2003, 279).

우리는 간략한 조사에서 루터는 내재적 의, 능동적 의에 대해서 부정적인 경향을 가졌고, 이신칭의에 만족했다는 것을 제시했다. 슈타인메츠는 플라키우스에게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이 창안했고, 뮐렌은 오시안더에게서 사람 안에 있는 신성의 거주를 강조했다고 제시했다. 그리고 오시안더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을 주장할 때에 수동적 칭의보다 능동적 칭의로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강조가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의 전가가 어떤 방식으로 신자에게 전달되는지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능동적 순종이 전가되는 방식까지 제시해야 명확한 판단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로마 교회는 주입된 의의 작동은 성사(聖事)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개혁파는 반드시 복음선포로 은혜가 전달되는 것이 기본이다. 성례도 복음선포가 전제되지 않으면 효력이 없는 것으로 평가한다. 루터는 회개를 강조했다면, 칼빈은 성령의 사역을 강조했다.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은 말씀을 통해서(per verbum) 말씀과 함께(cum verbo)하신다.

이신칭의를 루터는 교회의 서고 넘어짐의 조항(articulus stantis et cadentis ecclesiae)이라고 했고, 칼빈은 경첩(hinge)라고 했다. 이신칭의는 모든 신학을 경첩이다. 그리스도의 인격, 원죄, 언약, 예정, 구원, 교회, 종말 등 거의 모든 신앙 영역에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이신칭의,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확립하지 않으면 교회는 넘어지게 될 것이고, 복음은 왜곡될 것이다. 종교개혁은 교회의 권위에 굴복하여 맹목적 신앙(implicit faith)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권위에 순종하여 명료한 신앙(explicit faith)으로 교회와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다.

세계 역사의 신비는 거대 로마 제국이 기독교 국가(Christendom)가 된 것이다. 16-17세까지 그리고 20세기까지 크리스텐덤은 유지되었다. 21세기 인류에 더 이상 크리스텐덤은 없다. 명료한 신앙으로 로마 제국을 기독교 제국으로 전환했는데, 맹목적 신앙(중언부언 신앙)으로 추락해버렸다.

인간은 신자의 내면에 펼쳐지는 세계를 명료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신자의 내면을 움직이고 변화시키는 주체는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뿐이라는 것은 신학에서 불문율이다. 그것이 종교개혁가들의 처절한 고백이다. 그 방식을 사제가 집례하는 성사가 아닌 교회의 사역자가 전한 복음선포로 세운 것이 종교개혁이다. 주 예수의 말씀 사역자의 복음선포을 제외한 다른 방편으로 은혜를 사모하는 것은 반종교개혁(counter-Reformed)이다. 사람의 내면의 움직임을 추구하는 신학의 시작과 마지막은 복음선포여야 한다.

고경태 목사. 주님의교회 담임. 한영대학교 겸임교수.

<참고도서>

신호섭, 『개혁주의 전가교리』(서울: 지평서원, 2016).

알리스터 맥그래스, 『종교개혁사상』 최재건, 조호영 역(서울: CLC, 2017).

칼 하인츠 츠어 뮐렌,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3).

우병훈, “루터의 칭의론과 성화론의 관계: 대(大)『갈라디아서 주석』 (1535년)을 중심으로”, 『개혁논총』 46권, 2018.

David C. Steinmetz, Reformers in the Wings: From Geiler von Kaysersberg to Theodore Beza(Philadelphia: Fortress, 1971),

Mark Jones, Why Heaven Kissed Earth: The Christology of the Puritan Reformed Orthodox Theologian, Thomas Goodwin(1600-1680)(G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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