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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산책】 『논어(論語)』 - 화이부동과 통일의 담론이상욱 목사의 인문학 산책 (21)

 

이상욱 목사│목민교회(인천) 담임, 호서대학교( Ph.D), 성산효대학원대학교 겸임교수

화이부동(和而不同) 고대국가 담론

『논어』는 우리가 건너뛸 수 없는 고전이다. 중국 사상을 공자가 활동한 시기를 중심으로 공자 이전 2,500년, 그리고 공자 이후 현재까지 2,500년으로 나눈다. 최근에 중국은 공자를 세계화의 아이콘으로 삼고 있다. 공자 연구소를 500개를 설립한다고 한다. 공자가 14년간의 망명을 끝내고 68세에 고향에 돌아와서 73세로 생을 마치기까지 5년 동안 학사(學舍)를 세워 제자들과 만난다.

『논어』는 망명 중에 그리고 망명 후 향리에서 제자들과 나눈 대화를 정리한 대화록이다. 물론 공자 당시에는 『논어』라는 책이 없었다. 공자 사후 100년 이후에 공자 학단에서 만든 책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논어』는 사서의 하나이며 현재 전 20편, 482장, 600여 문장으로 전해 내려온다.

공자 제자 중에 대상인(大商人)인 자공(子貢)이 있었다. 공자의 14년간의 망명도 자공의 상권(商圈)이 미치는 곳을 벗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자공은 자로(子路)나 안회(顔回)처럼 공자를 끝까지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제자들이 공자 삼년상을 마치고 돌아갈 때 움막을 철거하지 않고 계속 시묘살이를 한다. 그리고 이후에 개인재산을 털어서 학단을 유지한다. 이 학단의 집단적 연구 성과가 『논어』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사마천(司馬遷)과 같은 사람은 안회 같은 뛰어난 제자를 두기보다는 자공 같은 부자 제자를 두어야 대학자가 된다고 말한다.

화이부동 '和而不同' (더불어 숲 www.shinyoungbok.pe.kr 에서 갈무리)

기원전 770년부터 시작된 춘추전국시대는 주나라가 세워진 지(주전 1.100년) 400년이 못 되어 시작되었다. 춘추전국시대는 사회경제적 의미의 구분은 아니다. 공자가 집필한 『춘추』라는 역사서가 기준이다. 이 시기는 사회경제적으로 철기시대이다. 토지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혈연관계로 맺어진 72개 제후국 간에 평화가 깨어지고, 제후국들의 위상 차이에 따라 침탈과 흡수합병이 시작된다. 철기시대에 들러 생산력이 높아지면서 제후국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던 시대가 지나고 정치적, 경제적 위상이 높은 제후국들이 나서서 침탈과 흡수합병이 생긴다. 동(同)이라는 패권적 경영이 대세가 된다.

이때 유가(儒家) 학파는 바로 이러한 패권 경영에 반대하고 제후국 연방제라는 주나라 모델을 지지한다. 이것이 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 유가 학파는 화이부동, 즉 전쟁을 통한 병합을 반대하고 평화롭게 공존하자고 주장했다. 큰 나라 작은 나라, 강한 나라 약한 나라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계를 주장하고 있다. 화(和)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관용과 공존의 논리이다. 반면에 동(同)은 지배와 흡수합병의 논리이다. 이 시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국가철학의 시대였다. 도(道), 덕(德), 예(禮)와 같은 윤리학은 치국(治國)의 논리이고 곧 정치학이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국가철학자이다.

 

정치학으로서의 『논어』

공자는 천하를 경영하려는 꿈이 어긋나자, 고향으로 돌아와 제자들 교육에 전념하였다. 『논어』에는 공자의 사상과 풍모가 잘 그려져 있다. 그는 인력으로 어찌해 볼 수 없는 거대한 시세의 흐름을 마주하고 좌절하여 그저 한숨만 쉬지 않았다. 공자는 항상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반문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깨달아 아는 일이 곧 “지명(知命)”이다. 그래서 공자는 “소명을 모르면 군자가 될 수 없다”라고 하였다.

공자는 많은 공부를 하여 “하(夏)의 예를 내가 직접 설명할 수 있지만, 기(杞)나라(하나라 후손국)에 충분한 증거가 남아 있지 않고, 은(殷)의 예를 내가 직접 설명할 수 있지만, 송(宋)나라(은나라 후손국)에 충분한 증거가 남아 있지 않다. 만약 문헌만 충분하다면 나는 그것을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자부심을 가질 정도였다. 그러면서 하와 은의 예[문화]에서 감손증익(損益)된 내용을 고찰하면 “앞으로 백 세대 후의 문화라도 알 수가 있다”고 말하였다.

공자는 향당에서는 마치 말을 못 하는 사람인 양 공손했고, 종묘나 조정에서는 분명한 말을 하되 어디까지나 삼갔다. 조정에서 상대부들과 이야기할 때는 중용을 지켜 치우치지 않았으며, 하대부들과 이야기할 때는 화기애애하였다. 공문을 들어갈 때는 몸을 움츠렸으며, 빠른 걸음으로 나아갈 때도 새가 날개를 펴듯 단아하였다. 임금이 불러 외빈 접대를 맡기면 낯빛을 장중히 했고, 재직 시에 임금이 명(命)으로 부르면 수레가 채비되기를 기다리지 않고 즉시 달려갔다. 자리가 바르지 않으면 앉지 않았다.

또 상(喪)을 당한 사람 옆에서 식사할 때는 포식한 적이 없었고, 곡을 한 그 날에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상복 입은 사람이나 소경을 보면, 비록 어린아이이더라도 낯빛을 고쳤다. 그는 말하기를, “셋이서 동행할 때도 그중에는 나의 스승이 있으며, 덕은 닦아진 게 없고, 학문을 함께 강습치 않으며, 옳다고 알아들은 일을 실천치 못하며, 착하지 못한 일을 고치지 못하는 것, 이것이 나의 근심이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스스로 하늘 아래 부끄러움이 없기를 스스로 찾아 행하는 삶을 보임으로써 제자와 후세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남긴 사람이 곧 공자였고, 그 내용이 『논어』이다.

 

유토피아를 꿈꾸는 학문

공자는 군웅들이 할거(割去) 하던 춘추전국시대 백성들의 고통과 삶의 문제에 대한 답이 『논어』이다. “인간은 왜 저렇게 살육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인간답게 사는 길은 없는가?” “어떻게 하면 상호공존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을까?” 아마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공자는 종교에서 답을 찾지 않았고 학문에서 그 답을 찾았다.

공자는 인(仁)을 실천하는 가장 기본적인 덕목을 효제(孝弟)라 하였다. 사람에게 반드시 있어야 할 도리. 본성은 무엇일까? 공자는 이런 질문에서 인간 본성 안에 담긴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과 가족관계에서 형제 사랑, 즉 효제 孝弟를 제시했다. 孝弟[孝悌]는 고대 유학 경전에서 부모에 대한 친애의 감정[孝]과 형제간의 공경심[弟]을 의미한 용어다. 이것은 유가에서 이해한 인간의 선천적 정감일 뿐만 아니라 이러한 정감의 도덕적 원리를 의미하며, 나아가 사회와 국가에 확장됨으로써 혈연적 가족 너머의 타인과 관계 맺게 해주는 가장 기초적인 관계의 원리로 이해되었다.

그리고 인(仁)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충서(忠恕)를 제시하였다. 충(忠)은 가운데를 뜻하는 中과 마음을 뜻하는 心이 결합한 글자이다. 내 마음의 한 가운데(中+心)라는 것은 나의 참된 마음, 나의 양심을 의미한다. 우리가 우리의 참된 마음, 양심에 충실할 때에 진실할 수 있다. 여기에서 참된 마음, 중심은 곧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말한다. 그래서 충은 조금의 속임이나 꾸밈이 없이 자신의 온 정성을 다하라는 의미이다.

서(恕)는 같음을 뜻하는 如와 마음을 뜻하는 心이 결합한 글자이다. 즉 내 마음과 같은 것을 뜻한다. 즉, 타인의 마음을 헤아려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을 다른 사람에게 시키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서(恕)는 나를 미루어 다른 사람의 처지를 헤아리고 배려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런 마음을 바탕으로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을 먼저 세우고, 자기가 이루고자 하면 먼저 남을 이루게 한다’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공자는 가장 일상적이고 가장 원시적인 본성에서 인간의 선을 추구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주인으로서 자아의식을 찾은 것이다. 그는 무지에서 혼돈을 보았다면 학문에서 유토피아를 보았다.

 

도(道)에 이르는 인간발달 6단계

『논어』에서 공자는 학문의 발전단계를 인간의 발달단계에 견주어 설명하고 있다. 공자에게 학문은 양심을 밝히는 배움이다. 공자가 ‘아래에서 배워 위로 통한다’라고 말했듯이 ①-③은 양심을 밝히는 ‘학문’이 깊어져 가는 하학의 단계이며 ④-⑥은 양심의 근원인 ‘천명’과 하나로 통하는 상달의 단계이다.

내 나이 열다섯에 배움에 뜻을 세웠다네. 서른 살에 자립하였고 사십에는 의혹 되지 않았지. 오십 대에 천명(天命)을 알았고 육십에는 귀가 순해졌으며, 칠십에는 마음대로 해도 경우를 넘어서지 않았노라. (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논어, 2:4)

①입지(立志) - 뜻을 세워라. 옛사람들은 공자가 10대에 세웠다는 지우학(志于學) 가운데 배움뿐만 아니라 ‘뜻을 세운다’라는 ‘志’ 자에도 큰 의미를 부여했다. 예컨대 율곡 이이 선생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뜻을 세움’, 즉 입지(立志)임을 누누이 강조한 바 있다.

②이립(而立) - 곧 “서른 살에 섰다” 여기 ‘섰다’란 자립했다는 뜻이니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다, 또는 자기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는 실력을 갖추었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한편 열다섯 살에 뜻을 세워서 ‘서른 살에 섰다’라는 것은 곧 한 분야에 전문가로서 자립하는 데 15년의 세월이 걸렸다는 의미로도 읽을 수 있겠다.

③불혹(不惑) -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신념, 불혹의 경지란 ‘흔들리지 않는 확고한 신념을 갖게 되었음’을 말한다. 거꾸로 보면 30대에 한 분야의 전문가로 자립하긴 했으나, 그동안 자기 일과 삶에 대해 의심과 회의(懷疑)에 시달렸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데 40대에 이른 어느 날 내가 하는 이 일이 확신으로 와 닿았다는 것이다.

④지천명(知天命) - 신의 뜻에 대한 깨우침 ‘천명을 알다’(知天命)란 그동안 나의 일, 혹은 나의 삶이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더라는 통렬한 깨침이다. 40대의 불혹에서 이 일이 나의 길임을 확신했는데, 50대 어느 날 이것이 나의 주체적, 자율적 선택이 아니라 내 배후에 어떤 ‘님’이 있어, 그에 의해 선택된 것임을, 그 ‘님’의 역사(役事)에 ‘나’가 쓰이고 있다는 깨우침이다. 내가 성취의 주체가 아니라 기껏 도구에 불과하다는 깨달음의 자리인 셈이다.

⑤이순(耳順) - 귀가 순해진다. 곧 귀가 순해지는 경지로 이름 붙인다. ‘귀가 순해진다’라는 것은 세속적 인간으로서의 자아(ego)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 Fromm)의 잘 알려진 개념인 ‘소유냐, 존재냐’를 여기에 적용하면 50대 지천명의 순간에 ‘소유’ 의식이 사라졌다면 60대의 어느 날, ‘나’라는 존재 의식조차 사라진 것이라고나 할까.

⑥종심(從心) - 사람다운 삶 “마음대로 하여도 경우를 벗어나지 않았다”라고 했다. 이것은 인간

이 도달할 수 없는 궁극의 경지다. ‘내 마음이 쏠리는 대로 말하고 움직여도 전혀 거리낌이 없다’라는 것은 사람이 주어진 환경과 착착 들어맞는 높은 경지를 이름이다. 물아일체, 즉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되어 틈조차 사라진 것! 공자가 평생을 두고 공부한 결과가 이것이다. 10년마다 질적 도약을 이룬 결과, 인생의 종착점에서 신의 경지를 획득한 셈이다.

 

통일(統一) 담론으로서 『논어』

화동(和同) 담론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의 통일 담론으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화이부동은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라는 데서 비롯된 말로『논어』'자로' 편에 나온다. 군자는 화합하고 화목하되 남들에게 똑같아지기를 요구하지 않으며, 소인은 같은 점이 많아도 서로 화합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화이부동의 부동(不同)을 더 넓게 보면 남에게 똑같아지기를 요구하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소신 없이 남과 똑같아지려고 하지 않는다, 즉 부화뇌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있다. 화합하려면 상대방을 인정해야 한다. 화합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이념이 다르고 계층이 다르고 추구하는 목적이 다르고 살아온 지역과 문화가 다르지만, 그것을 어떻게 아우르고 대립을 최소화하며 싸움과 전쟁으로 가지 않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 군자가 해야 할 일이다.

제자백가의 세계관으로 볼 때 '통일은 대박'이라는 관념은 경제주의적 발상이고 근본은 자본으로 동同하겠다는 패권의 논리이다. 통일은 민족의 비원悲願이다. 눈물겨운 화해이면서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는 가슴 벅찬 출발이다. 통일의 문제는 감정적인 요인이라기보다는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분단비용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남과 북이 60년 동안 부담해온 분단비용은 직접군사비만 하더라도 천문학적 규모이다. 민족 역량의 엄청난 내부 소모가 아닐 수 없다. 소모의 극치일 뿐 아니라 사회적 억압과 민족의 역량의 황폐화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남과 북은 다 같이 높은 교육 수준의 인력을 갖고 있다. 차세대 기술과 막대한 부존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 모든 가능성이 원천적으로 부정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냉정하게 통찰해야 한다.

근대 사회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물론 사유를 확장해야 한다. 물론 관계론이 존재론의 완벽한 대체물로 개념화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동양적 사유에서 발견한 관계론적 사유는 탈근대, 비근대 조직에 의미가 있다. 신영복 선생은 통일(統一)을 통일(通一)로 개념을 변용한다. 통일(統一)은 거느릴 '통', 하나 '일'로 지배의 논리로 거느려서 하나로 만든다는 통일의 원리를 말한다면 통일(通一)은 (소)통하고 화합을 통해 하나로 만든다는 통일의 원리를 말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차이와 다양성이 공존을 말하는 톨레랑스라면 ‘내가 이런 사유를 하고 있었구나, 라고 인식하며 '나를 변화시켜 가자’ 등 상대와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자신을 변화시키는 노마디즘이 필요하다. 평화정착, 교류협력만 확실하게 다져 나간다면 통일(統一) 과업의 90%가 달성된 것과 같기 때문이다. 평화정착, 교류협력, 그리고 차이와 다양성의 승인이 바로 통일(通一)이다.

통일(通一)이 일단 이루어지면 그것이 언제일지는 알 수 없지만, 통일(統一)로 가는 길은 절대 험난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남과 북이 폭넓게 소통하고 함께 변화하는 과정이다. 화(和)에서 화(化)로 가는 화화(和化) 모델이다. 통일(通一)과 화화(和化)는 통일의 청사진이면서 동시에 21세기의 문명사적 전망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상욱 목사  webmaster@bonh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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