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125) - 에스겔(17)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부회장 KC대 전 총장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하말)”(겔36:21).

예루살렘 몰락은 구원으로 가는 길목

에스겔서에서는 심판과 구원 메시지가 균형을 이루며 선포되고 있다. 자녀 교육에 중요한 요소가 사랑과 채찍이라는 두 가지 교육방편을 잘 사용하는 것이다. 채찍을 시의적절(時宜適切)하게 사용해야 아이가 잘 자라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길도 이와 비슷하다. “우리가 사로잡힌 지 십이 년 시월 오일에 예루살렘에서부터 도망하여 온 자가 내게 나아와 말하

기를 그 성이 함락되었다 하였는데 그 도망한 자가 내게 나아오기 전 날 저녁에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내 입을 여시더니 다음 아침 그 사람이 내게 나아올 임시에 내 입이 열리기로 내가 다시는 잠잠하지 아니하였노라”(겔33:21-22). 예루살렘 멸망은 바로 하나님의 심판이었고 이스라엘 백성은 이해할 수 없는 역사적 멸망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을 보고 망연자실하고 있었다. 예루살렘 몰락의 소식은 에스겔에서 구원 선포로 가는 길이었다.

“여호와의 권능으로 내게 임하시고 그 신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겔37:1-5).

마른 뼈 골짜기 공동묘지와 같은 곳이 이스라엘 예루살렘이요 예루살렘 성전이다. 이 절망적인 상태가 바로 이 마른뼈 골짜기의 모습이었다. 이 심판의 예언이 구원의 예언으로 바뀌는 선포에 이 마른뼈 골짜기의 예언, 에스겔서 37장이 있다. 이 마른뼈 골짜기 환상과 상징적 행동은 구원을 보여준다. “이에 내가 명을 좇아 대언하니 대언할 때에 소리가 나고 움직이더니 이 뼈, 저 뼈가 들어맞아서 뼈들이 서로 연락하더라 내가 또 보니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이나 그 속에 생기는 없더라...이에 내가 그 명대로 대언하였더니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겔37:7-8,10).

에스겔서는 전반적으로 재난의 선포와 구원의 선포가 상응한다. 예루살렘 성소에서부터 하나님이 떠난 것(겔8-11장)과 다시 그의 성전으로 돌아오는 것(겔40-48장)과 상응한다. “이스라엘 자손의 시체를 그 우상 앞에 두며 너희 해골을 너희 제단 사방에 흩으리라 내가 너희 거하는 모든 성읍으로 사막이 되며 산당으로 황무하게 하리니 이는 너희 제단이 깨어지고 황폐하며 너희 우상들이 깨어져 없어지며 너희 태양상들이 찍히며 너희 만든 것이 다 폐하며”(겔6:5-6). 하나님의 심판으로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기근과 온역으로 죽고 예루살렘이 황무하게 된다.

 

심판을 통해 돌아오게 하심이 하나님의 뜻

이 심판과 재난은 하나님의 강권적인 사랑으로 다시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난다.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찌라 내가 너희 열조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희를 모든 더러운 데서 구원하고 곡식으로 풍성하게 하여 기근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게 할 것이며 또 나무의 실과와 밭의 소산을 풍성케 하여 너희로 다시는 기근의 욕을 열국에게 받지 않게 하리니”(겔36:28-29). 예루살렘이 황폐하게 된 것은 이스라엘이 죄를 지은 까닭이요 폐허가 되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된 것은 주의 뜻이 아니지만 그 심판을 통해 회개하여 다시 주님께 돌아오게 하는 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그래서 다시 구원의 선포를 하고 있다. “전에는 지나가는 자의 눈에 황무하게 보이던 그 황무한 땅이 장차 기경이 될찌라 사람이 이르기를 이 땅이 황무하더니 이제는 에덴동산같이 되었고 황량하고 적막하고 무너진 성읍들에 성벽과 거민이 있다 하리니 너희 사면에 남은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무한 자리에 심은 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겔36:34-36). 심판에 대한 고발장은 이스라엘에 깊은 뿌리박힌 죄악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구원의 약속은 이스라엘 백성의 행동과 특징에 기초하고 있지 않다. 대신에 예언자는 하나님의 새로운 창조적 행동에서부터 새로운 인생에 대한 희망을 기대하고 있다. “열국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은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제사 드릴 양떼 곧 예루살렘 정한 절기의 양떼같이 황폐한 성읍에 사람의 떼로 채우리라 그리한즉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하셨느니라”(겔3623,38). 에스겔은 이제 심판 후에 희망을 선포하며 구원을 예언하고 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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