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126) - 에스겔(18)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부회장 KC대 전 총장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고하여 이르라 가령 내가 칼을 한 땅에 임하게 한다 하자 그 땅 백성이 자기 중에 하나를 택하여 파숫군을 삼은 그 사람이 칼이 그 땅에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되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비를 하지 아니하므로 그 임하는 칼에 제 함을 당하면 그 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겔33:2-4).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은 새 희망의 관문

에스겔서는 희망의 책이다. 심판의 선포와 예언이 이 예언서에서 길게 지루하고 장황하게 계속되지만 그 이면(裏面)에는 희망이 도사리고 있다. 에스겔이 보여주는 희망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펼쳐지는 회복의 역사와 그 희망의 미래였다. 그 희망은 이스라엘의 심판을 통한 폐허 속에서 다시 건설되었다. 이스라엘이 부정하고 죄악 된 과거를 회개함으로써 희망을 가지게 된다. 그들이 이제 죄를 새롭게 청산함으로 새로운 미래 희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로 세움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었다.

참된 하나님과의 관계는 바로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고 새로운 희망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과 징벌, 그리고 구원과 회복이 이루어질 미래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이름을 굳게 붙잡음으로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예언자의 파수군의 역할을 통해서 그 구원으로 가는 길이 열려 있음을 보여준다. “인자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족속의 파숫군을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찌어다...그러나 너는 악인에게 경고하여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라고 하되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내 생명을 보전하리라”(겔33:7,9). 예언자는 이처럼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영혼의 나팔을 불어야 한다. 죄악에서 돌이키라, 나팔을 불어야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라는 70년의 기간은 희망이 없는 절망적 상태였다. 인간적으로 바랄 수 없는 희망을, 그들은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희망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었다. “우리 뼈가 말랐고 우리의 희망은 상실되었다”(겔37:11). “그런즉 인자야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말하여 이르되 우리의 허물과 죄가 이미 우리에게 있어 우리로 그중에서 쇠폐하게 하니 어찌 능히 살리요 하거니와”(겔33:10). 죄로 인해 포로생활을 하는 것은 희망이 없는 상태로서 민족과 국가의 역사는 살아날 수 없는 것이다.

1950년 6월의 전쟁과 70년의 한반도 포로기

우리 민족과 겨레의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1910년 한일합방이 되고 1945년 잠간 해방되는 것 같더니 다시 남북이 분단되어 오늘에 이르는 시간은 70년의 포로와 같은, 혹은 그를 넘어서는 안타까운 한민족의 불행과 절망이다. 여기서 에스겔 선지자는 뼈들이 살아나는 환상을 보는 것이다. 뼈가 다시 살아나는 환상이 펼쳐지는 것은 희망이요 한겨레의 역사 보존이 아니고 무엇일까.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루아흐)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겔37:5).

이 뼈가 살아나는 것은 바로 새로운 창조, 마른 뼈 골짜기의 생명의 회복을 말하는 것이었다. 무덤이 열린다는 것은 바로 재탄생을 상징하고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무덤의 마른 뼈들이 살아나는 환상이 우리 민족의 역사 가운데 일어날 수 있을까? 이 마른뼈 환상은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이 그들의 고향땅으로 돌아가는 일로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더 나아가 우리 민족사에 들려주는 두 막대기의 환상으로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통일되는 것을 말한다. 두 막대기의 짝이 합하는 에스겔의 상징적 행동을 통해 유다와 이스라엘이 통일되고 재결합되는 희망을 더하고 있다(겔37:15-19).

에스겔과 같이 희망을 선포하는 교회

이처럼 바벨론에서 파숫군으로서 에스겔은 희망을 선포하고 있었다(존 욥). 에스겔은 민족의 미래를 보면서 희망을 보여주며 말씀을 선포하고 있다(겔33:1-37:28). 이 희망은 죄의 청산(淸算)을 통해 일어남을 보여주며, 예루살렘의 몰락과 새로운 왕(겔34장), 새 땅(겔34:25-36:7), 새 백성(겔36:8-37:25), 청산의 필요(36:16-25), 용서와 힘의 필요(36:26-27), 열매의 필요와 생명의 필요, 연합의 필요(36:28-38;37:1-14;37:15-25)와 새 언약(37:26-28)등을 역설하고 있다.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케 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 내 처소가 그들의 가운데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겔37:26-27). 오늘의 선지자들이여, 이 희망의 비전을 보고 있는가. 이 글을 같이 보는 형제 · 자매 여러분, 오늘 희망의 미래를 기록하며 이 시대의 새 파숫군과 에스겔로 섭시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픞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눅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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