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128) - 에스겔(20)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부회장 KC대 전 총장

“우리가 사로잡힌 지 이십 오년이요 성이 함락된 후 십 사년 정월 십일 곧 그날에 여호와의 권능이 내게 임하여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시되 하나님의 이상 중에 나를 극히 높은 산위에 내려놓으시는데 거기서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겔40:1-2).

 

새 예루살렘, 절망의 정점에서 만난 희망

에스겔 이야기를 종반으로 가면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인간은 절망 중에도 희망을 가진 존재이다. 인간이 희망을 잃어버린 순간 죽음에 직면한다. 아우슈비츠 형무소에서 유대인들이 죽어가면서 목격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인간은 절망 중에도 희망을 가지면 살아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안네의 일기 주인공 안네는 16세에 죽었지만 그녀가 희망을 가지고 일기를 쓰는 모습에서 그 생의 희망은 진정 아름다움을 전하게 되었다. 살아남은 아버지가 미프씨를 통해 받은 일기는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전해졌고 그 감동은 진하게 오늘도 남게 되었다. 에스겔은 포로지에서 희망을 가지고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미래에 되어질 일을 예언한다. 그 중에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는 새 예루살렘 성전 청사진의 예언이라 말할 수 있다(겔40-48장). 이는 미래의 새로운 성전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교제하고 대화를 하며 예배를 드리고 받으실 것이다. 희망의 메시지가 아니고 무엇인가

자신의 샘터에서 희망의 물을 긷게 하는 회개

하나님이 그의 백성 사이에 거한다는 것은 새로운 성전에 거한다는 환상으로 보인다. 즉 그 성전의 설계도와 건축설계도(겔40-48장)는 이 희망을 보여주고 있다. “내가 그들과 화평의 언약을 세워서 영원한 언약이 되게 하고 또 그들을 견고하고 번성케 하며 내 성소를 그 가운데 세워서 영원히 이르게 하리니”(겔37:26). 이 희망을 길어 담기 위해 이스라엘은 계속되는 회개를 해야 되었다. 그것은 파수꾼으로서 에스겔의 중심 역할이 있었던 것이고 오늘 우리들은 이러한 파수꾼의 소명을 다시 받고 우리가 선 자리에서 죄의 회개를 촉구하고 주님께 돌아오도록 선지자의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네가 그 의인을 깨우쳐 범죄치 않게 하므로 그가 범죄치 아니하면 정녕 살리니 이는 깨우침을 받음이며 너도 네 영혼을 보존하리라”(겔3:21). 회개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주의 영(성령)이 임할 때 자신의 죄과를 보게 되고 회개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샘터에 물이 마르고 자신의 영혼의 저수지에 물이 말라버린 상태를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진실히 행할진대 그는 의인이니 정녕 살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겔18:9).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법과 의를 행하면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겔18:21).

회개는 새 예루살렘 시대를 맞이할 희망의 단초

회개는 쉽지 않은 작업이다. 사람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예수의 보혈에 의지하여 십자가로 나간다는 것은 구원에 이르는 길이다. 그러나 회개는 성령이 임해야 하는 어려운 회개의 과정이 있고 간절히 구해야 하는 기도와 말씀을 들어야 하는 길이 있다. 여기서 에스겔은 회개를 통해 구원의 희망을 가질 수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그 회개는 우상을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나가는 것이다. “그런즉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마음을 돌이켜 우상을 떠나고 얼굴을 돌이켜 모든 가증한 것을 떠나라”(겔14:6). 회개는 죄인이든 의인이든 죄악에서 돌이키는 자에게 구원이 임하는 일임을 강조한다(겔33:1-33). 결국 누구든지 그리고 한번이 아닌 계속 돌이켜야 함을 에스겔서는 강조하고 있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돌이켜 자기의 죄에서 떠나서 법과 의대로 행하여 전당물을 도로 주며 억탈물을 돌려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준행하여 다시는 죄악을 짓지 아니하면 그가 정녕 살고 죽지 않을찌라”(겔33:14-15).

이처럼 앞서서 살펴 본대로 에스겔서는 개인의 회개를 지시하고 또 회개의 길을 제공하며 법적인 측면이 포함된다. 개인의 죄에서 공동체의 죄를 지적하고 법적인 죄의 개념을 언급하며 하나님의 법과 공의로 돌아오라고 촉구한다(겔33:14). 이러한 법적 회개는 주전 587년 유다의 멸망 후에 에스겔의 설교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에스겔서는 결국 회개만이 이스라엘이 다시 본향에 돌아가서 예루살렘 성전이 회복되고 새 다윗 왕조가 서는 구원의 단초가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아, 회개하라. 동방의 횃불, 조용한 은둔의 나라여 회개하라. “인자야 이 이스라엘 황무한 땅에 거한 자들이 말하여 이르기를 아브라함은 오직 한 사람이라도 이 땅을 기업으로 얻었나니 우리가 중다한즉 더욱 이 땅으로 우리에게 기업으로 주신 것이 되느니라 하는도다”(겔33:24).

“화 있을찐저 고라신아, 화 있을찐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눅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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