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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시리즈】 하갈, 브엘라해로이(샘)에서 만난 하나님께 감사‘감사관점’으로 읽는 성경이야기⑥

 

임승훈 목사 - 월간목회편집부장 역임, 한국성결신문 창간작업 및 편집부장역임, 서울신학대학교총동문회 출판팀장, 위대한맘 인천한부모센터 대표, 설교학 신학박사(Th,D), 더감사교회 담임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창세기 16장을 중심으로

아브라함은 결혼을 하고 나서도 한참이나 자녀를 낳지 못했다. 그가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다. 그 이름은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을 가지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태어나 하란 땅에 이주하여 살다가 아내를 얻었다. 그는 아버지가 죽은 후 그의 나이 75세에 소명을 받고 다시 가나안으로 이주하였다(창 12:1-6).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한 가족이었다. 정확히는 이복 누이동생이다. 서양사에서도 근세에 이르러서야 일부일처(一夫一妻) 제도가 정립되었지만 성서 속에 나타나는 결혼형태는 근친 간에도, 배다른 형제간의 결혼풍속도 종종 보이고 있다. 아브라함의 경우가 대표적이라 하겠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부부관계는 정말 원만했다. 사랑하고 서로 위하고 아끼는 것에 해(害)가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자식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문제는 대개 여자의 몫으로 돌려졌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서 제법 성공했다. 양치기 목양에도 성공적이었다. 식솔들도 제법 늘어났다. 심지어 롯이 성공하여 분가해 나간 것을 보면 아브라함이 얼마나 부자가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이후,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땅과 후손에 대해 약속하셨다(창 13:14~17).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가나안 땅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다. 한 전령이 ‘당신의 조카 롯이 포로가 되었습니다.’ 라고 전하니 아브라함이 즉각 사병(318명)을 거느리고 달려가 롯을 구출해온다. 이때에 살렘 왕 멜기세덱의 극진한 영접을 받는 것을 보면(창 14:17-20), 아브라함이 제법 지역사회에서 존재감이 컸음에 틀림없다.

“살렘 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으니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더라.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이래저래 아브라함은 재산이 넉넉해졌다. 사병을 기를 정도였으니 권세 또한 보통이 아니었다. 어디 이뿐인가? 살렘왕 멜기세덱의 극진한 대접을 받은 사실은 온 동네를 넘어 다른 지역경계까지 소문이 났다. 그뿐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보이지 않는 사실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영적인 권위가 주어졌다. 감히 뭇 사람들이 범접할 수 없고 알 수도 없는 영적인 사실. 사람에게 인정받고 힘이 자라고 권력이 불어나는 것은 물론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교감하고 직접 소통하는 영적인 대가가 되어가고 있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대화를 나누는 영적 권세를 말함이다.

<Abraham contemplates the Stars>, 1908, Ephraim Moses Lilien (1874&#8211;1925)

그런데 그의 가정에 흠이 하나 있었다. 자식이 없다는 사실이다. 아들은 물론 딸 하나도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결혼 하면 대개의 부부들은 아들 딸 쑥쑥 낳는 경우가 보통이다. 그런데 사라는 참 고약하기도 하다. 달거리도 정상이지, 부부생활도 원만하지, 남들이 보면 부러워할 만큼 사랑스럽기도 한 여인이었다. 부족함이 없는 여인이었다. 그런데 참 이상스럽기도 해라. 임신 기미가 전혀 없었다. 한 해 두 해가 지나고 결혼한 지 십년, 이십년이 지나자 초조해 지는 것은 사라였다.

‘옳거니!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우리 집에 하갈이란 애가 있는 것을....,몇 해 전 애급 땅에 기근이 들었을 때 가나안 땅에 흘러들어온 여자 아이다. 처음에는 꾀죄죄한 꼴에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허지만 이제 몇 해가 지나자 멀쑥해졌으며 앞뒤태가 제법 난다. 사라의 집 살림살이의 번영과 함께 하갈(Hagar)도 제법 윤기가 나 여인 티가 난다. 아니 매력적인 데가 제법이다. 적당한 배필이 있다면 시집이라도 보내야 할 요량이다. 그런데 어느 날인가 남편에게서 말없는 수심을 보게 되었다. 자식문제인 것이다.

땅과 후손에 대한 두 번째 횃불언약을 언급하던 때였다.

‘내가 환상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지’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다.”(창 15:1)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나의 상속자는.....다메섹사람 엘리에셀 아닙니까?’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내 상속자가 되는 것은 마땅한 것 아닌가요?’

‘응?’ ‘엘리에셀?’

그런데, 그 순간! 여보!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거였어,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창 15:1-4)

“아~!” 두 사람의 입에서 꼭 같이 ‘아~’라는 장탄식이 흘러나오고 말았다.

밤 하늘의 뭇별을 보여주시며,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라는 음성을 들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집에 돌아와 사라와 마주 앉은 아브라함의 생각 속은 다시 혼란스럽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대답했다. 당신을 믿겠다고 확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사라와 함께 꼭 같은 한숨을 내 쉬고 있는 것이었다. 결국 사라는 하갈을 남편의 방에 첩으로 밀어 넣고 말았다.

어느 순간, 거룩하고 깨끗함을 결정해야 할 순간에 뭇 남자들의 두리뭉실한 맘을 대변하는 아브라함이었는지, 그만 그는 사라의 의견에 고개를 끄떡이고 말았다. 아브라함은 창세기 15장에서 여호와와 말 상대를 할 때를 보면 대단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놀랍게도 횃불언약을 세울 때의 놀라운 영성, 가나안 땅을 약속받은 아브라함의 대범한 그릇, 그리고 그 격에 맞게도 “그 사람(종 엘리에셀)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창 15:4)는 말씀을 들었다. 확실히, 아주 분명한 말씀으로. 그래서인가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고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이 냉철해야 할 순간에 이성(理性)을 놓고 말았다.

‘아냐, 이것은 아냐!’

‘여호와께서 약속해주셨어, 조금만 기다리자.’ : 감사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온 지 꼭 10년인데 조금 더 기다리는 거야 별것 아니잖아?’

‘지금 내 나이 85세, 당신은 75세’ : 조급할게 없는 나이지, 감사합니다.

‘인간의 생산 가능성과 통계상으로는 불가능할지 모르지만’ : 하나님께 불가능이란 없잖은가, 감사합니다.

‘하갈은 내가 딸처럼 키웠는데 어찌 저를 범하리요.’ : 귀한 생각이 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여보! 당신의 생각은 그렇다 해도 난 그럴 수 없어’, :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있거든’,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라는 말씀이 생각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들려주신 음성이 있었어.’

‘너무나도 분명했었어. 여보.’

‘하늘의 뭇별처럼 세 수 없을 정도로 우리들의 자손도 이와 같으리라’ 하셨거든.

‘나는 분명코 그것을 믿는다고 했어. :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나도 우직하기론 황소보다 못하지 않잖아’

‘그런데도 하나님께 믿는다 했더니’ : 여호와께서 나를 글쎄 의롭다고, 거룩하다고 칭찬해 주셨지(창 15:6).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이러저러한 생각 속에 혼미한 상태다.’

‘오늘은 왜 이리 맘이 심란하지?’ : 감사의 분량이 빠져나가는 징조 아닌가.

‘아내가 내게 포도주라도 먹인건가?’ : 의심의 상태에서는 감사가 쪼그라든다.

‘이러면 안되는데, 이것은 아닌데...’ : 감사는 분명한 이성(理性) 아래에 노래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몸은 하갈의 방에 들어섰다.’ : 발이 움직이는 것은 머리와 다르다.

‘쓰러졌다.’ : 감사는 습관이 되게 하고 발이 움직이게 해야 한다.

‘옷은 벗겨지고 있다.’ ; 못이기는 척, 감흥을 그대로 받는다.

‘이성(理性)은 이성(異性)에 의해 무너졌다.’

하갈은 사라와 아브라함의 치밀한 계획에 의해 임신되었다. 임신한 하갈은 이것저것 먹고 싶은 게 많았다. 철 지난 딸기를 사 달라 하지를 않나, 비릿한 오징어에, 콜라 먹고 싶다(?)고 졸라대지를 않나. 사라가 기가 막혀 핀잔 한 마디 했더니, 하갈이 글쎄 다섯 마디 대꾸를 하는 게 아닌가. 이런 일들이 반복되니 어느 날엔 ‘아이도 낳지 못한다느니,’ 여자가 돼 가지고 ‘애도 못 낳는 게 정상이냐, 병신 아니냐’ 이 정도까지 말싸움이 진척되고 말았다. 사라 입장에서 볼 때, 종년이 바람 드니 여주인을 멸시하는 꼴이었다. “하갈이 임신하매 그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을 멸시한지라”(창 16:4)

<Sarah Leading Hagar to Abraham>, 1637-1639, Matthias Stom(1615&#8211;1649)

하갈은 거지같은 신세였다. 애급에서 사막을 거쳐 가나안 땅에 흘러들어왔다. 부모가 있는지, 형제가 있는지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사라에 의해 거두어진 하갈은 처음부터 끝까지 감사뿐이어야 했다. 종이긴 했어도 딸처럼 대해주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에 대한 염려나 걱정이 없었다. 더군다나 안주인 마님께서 아이를 낳지 못하니 하갈에게 은근히 의중을 떠보는 일이 몇 번이고 있었다고 할 수 있겠다.

하갈 입장에서 보면, 조금 조심했어야 옳다. 하지만 배운 게 없는데 어찌하랴. 하갈은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젊기 때문에 혈기도 있었다. 더군다나 임신하여 예민해지고 보니 욱! 하는 순간에 담지 못할 말을 해버린 모양이다. 이것이 하갈이다. 본래 하갈의 모습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하갈은 사라의 핍박으로 학대받고 도망하지만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를 얻었다. 복종하는 법을 들었다. 자기의 씨가 크게 번성하여 셀 수 없을 만큼 번성한다는 약속도 받았다.

하갈은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만났다. 그래서 하갈은 감사하였다. 그의 고백을 들어보자.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감사)함이라”(창 16:13)라면서 감사하고 찬양하였다.

하갈은 광야에서 고통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 샘물을 발견했다. 브엘라해로이 샘, 감사가 가져다 준 축복의 샘이다. 담을 밀면 문이 되고 문을 밀면 길이 된다. 어두운 인생길에도 감사하면 길이 보이고, 감사를 노래할 땐 행복이 다가와 속삭인다.

임승훈 박사  daniellim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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