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에스더 ┃ 남가주늘사랑교회 유년부 전도사, Crops of Love Ministries - Media Director

성경본문 : 마태복음 18:21-35

[마 18:21-22]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나에게 죄를 지은 자를 용서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베드로가 질문했습니다.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21) 이 질문 속에 내 마음과 같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누군가 나에게 죄를 지을 때 이번 한번만 봐준다고 하든지 아니면 마음속으로 어느 정도까지만 이라는 선을 긋고 더 이상은 용서를 못한다고 결심을 하고 결정을 내립니다. 내가 하나님한테는 무한한 용서를 바라고 내 이웃에게는 극히 제한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용서를 해줍니다. 나는 분명 죄인이고 하나님 앞에 빚진 자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나의 모든 죄와 허물을 용서받아 탕감 받은 채무자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무한한 빚을 탕감 받아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겸손하게 살아야할 채무자인 내가 이웃에 죄를 보고 노를 발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나에게 분명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내 입장에서 보면 억울한 상황이고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자아내지만, 35절 말씀에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라고 하셨는데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시기를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32-34)” 고 하셨습니다. 내 마음에 지금도 미운 사람, 용서 못하는 사람, 상대하기 싫은 사람, 얼굴도 보기 싫은 사람, 생각만 해도 화가 치밀어오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용서해야겠습니다.

주기도문에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6:12)” 라고 했습니다. 내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았기에 나는 형제를 미워하기 보다는 용서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어려운 용서이지만 내가 지은 죄를 용서받아 거룩하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고, 죄의 종이 되어 구속된 것이 아닌 자유로운 삶을 누린 것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나에게 죄를 지은 자는 하나님이 판단하셔서 하실 문제이며 하나님이 다루실 일입니다. 나에게 죄를 지은 자는 하나님이 세워놓으신 질서 가운데 하나님의 권한에 들어가는 것이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읽어야겠습니다. 성도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것 중에 하나가 용서 못할 사람을 용서할 줄 아는 사랑입니다. 나에게 이러한 사랑과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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