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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교회 공식 회의에서 의장은 “목사”만 해야 합니까?

Q. 교회 공식 회의에서 의장은 “목사”만 해야 합니까?

A. 그렇습니다.

교회 공식 회의는 "공동의회", "제직회", "당회"입니다. 그리고 "노회", "총회"가 있습니다. 필자는 "집사회"도 교회의 공식 회의에 추가해야 좋은 장로교 질서를 이룰 수 있다고 제언하고 있습니다. 이 공식적 회의에서 의장은 (담임)목사가 당연직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속회"(여전도회, 남전도회 등등)를 구성하는데, 그 속회에서 회장은 목사를 세우지 않습니다. 

본래 회의체는 회원의 참정권을 보장해야 하기 때문에 누구나 자유롭게 회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운영은 합리적인 운영체가 아님을 주지해야 합니다. 교회의 주인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믿는다면, 교회 회의의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자(使者)가 맡는 것이 당연합니다. 장로나 집사는 자기 직분이 사도(목사)로 부터 나온 것임을 인지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교회 직분은 사도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회중이 많아지자 사도가 하는 구제의 부분을 담당할 사역자를 선출했습니다. 우리는 그 사역자를 집사(deacon)이라고 합니다. 사도행전의 집사는 현재 집사(혹은 부제)와 전혀 다릅니다. 그들은 계시 수납자이기 때문입니다. 집사는 전문성직자였는데, 종교개혁을 하면서 평신도에게 전이시켰습니다. 종교개혁의 원리는 복음선포, 말씀이 흥왕하도록 힘썼기 때문입니다. 복음선포할 사역자는 복음훈련(신학연마) 기관에서 훈련하여 사역자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집사는 구제의 사역을 전문으로 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로마 카톨릭은 부제에서 사제로 올라가는 구조를 지금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칼빈파는 복음선포자에게 부여된 성도의 영적 치리권을 협력구조로 전환시켰습니다. 성도의 영혼의 상태를 매우 명확하게 판단하기 위함이며, 목사의 복음선포를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삶에 적용시키도록 마련된 것입니다. 목사는 오직 복음선포할 사역자로 후보생부터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목사는 다른 어떤 것은 몰라도 복음선포는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서 목사가 복음선포는 못해도 행정만 잘하면 쫓겨나지 않는다는 풍설이 있기도 합니다. 절대 장로교 사역자들의 입에서 나오지 않아야 할 말입니다. 장로교 사역자가 복음을 선포하지 못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행정은 못해도 복음만 선포할 수 있으면 가장 훌륭한 사역자입니다. 그 복음선포자가 교회회의를 주관하는 것이 은혜로 세우는 구조입니다. 교회는 효율성을 추구하는 집단이 아니라, 믿음을 세우며 은혜를 구하는 집단입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며, 모든 직분은 사도에게 나왔음을 고백하는 한 형태가, 회의에서 당연직으로 목사를 세우는 것입니다.

노회는 더욱 목사가 노회장이 되어야 합니다. 장로교회에서 교회는 노회입니다. 노회 안에 있는 지교회의 사역자들의 연합으로 교회입니다. 그래서 노회의 의장은 반드시 목사가 되어야 복음선포에 근거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노회에서 목사는 회원이고, 장로는 총대회원입니다. 모든 목사는 회원이지만, 장로는 일부 장로만 노회 회원이 됩니다. 균등원리로 장로총대가 의장이 되면, 개회설교를 하지 못하며 당연히 축도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노회의 시작부터 부(副)에서 시작하게 되는데, 부 노회장도 모두 장로가 된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그렇게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자체에 모순이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균등원리라면 총회에서 총회장이 장로가 될 수 있겠습니다. 총회는 목사도 총대, 장로도 총대이고, 목사와 장로가 동수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총회에서 장로를 총회장으로 세우지 않는 것은 총회의 주요기능 중 하나가 교리 문제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즉 교회의 공적회의에서 의장은 목사가 반드시 인도해야 합니다. 그것은 효율성이나 합리가 아닌 믿음고백입니다. 교회는 회의에서도 믿음을 고백하면서 진행하도록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믿음고백은 반드시 겸손을 수반합니다. 목사가 당연직으로 회장이 되니 즐겁다고 생각한다면, 주님의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가 됩니다. 반드시 주님 앞에서 심판받을 명백한 불법입니다. 더욱 겸손하게 교회와 성도를 섬기는 것이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의에서 의견이 일치되지 않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이 더 주님을 높이는 결정이고 거룩을 위한 것이며 겸손을 하게 하는 것인지를 따라서 결정합니다. 혹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할까?” 이런 상상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높이는 의결, 좀 더 거룩한 의결, 좀 더 겸손한 의결, 나보다 이웃의 유익을 위한 의결을 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모든 회의에서 그리스도를 높이는 결정이 된다면 교회에 예수 이름이 가득한, 성령충만한 교회가 될 것입니다. 

고경태  ktyhb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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