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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암흑의 터널에 갇힌 교회 공동체절망의 씨앗을 거둬내고 희망의 씨앗을 파종하라
  • 발행인 최원영목사
  • 승인 2019.06.05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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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담임, 변화산기도원 협력원장,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박사, 본헤럴드대표. 등

각 교단에 찾아온 고민이 있다. 교회 숫자는 증가하고 있는데, 오히려 세례교인 수는 점점 줄고 있다. 특히 다음 세대인 어린이.청소년의 감소세는 눈에 뜨게 줄고 있다. 성결교단에 통계수치를 보더라도 2017년 어린이. 청소년이 8만 4,392명이었다. 2018년 통계자료를 보면 7만 9,036명이다. 약 5,356명이 감소한 수치이다. 매년 5,000명~1만 5,000명 씩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앞으로 10년 후에는 교회에서 어린이와 청소년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위기가 찾아오고 있다.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순복음 등 교단별로 집계를 해보면 연간 어린이. 청소년들의 감소 수치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이다.

성도들의 감소보다 더 무서운 병은 영적 패배주의가 교회에 짙게 짓누르고 있다. 전도해도 되지 않는다. 전도라는 단어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는 상황과 관계없이 선교를 말해야 하고, 전도를 말해야 한다. 교회의 방향은 전도이다. 목적이 없이는 항해를 할 수 없다. 교회의 목표는 무엇인가? 전도와 선교이다. 그런데 지금은 교회가 방향을 잃고 있다. 교회가 방향을 잃어버리면 미래가 없다.

영적패배주의는 도전과 모험과 비전을 포기하는 것이다. 교회가 은혜의 문을 두드려보지도 않고 뒤 돌아 서는 것은 영적인 패배를 스스로 자인하는 것이다. 도전과 모험을 포기하는 공동체는 미래가 없다. 미래는 오늘이 거룩한 외침과 인내가 쌓여 결정된다.

19년 전, 교회에 심은 머루나무에서 엄청난 양의 열매가 열렸습니다.

어떤 시대나 암흑기는 있었다. 이 암흑기를 열어가는 시대의 인물들이 있다. 그 인물들로 인해 세상은 더 낳은 미래를 창조할 수 있었다.

100여년 전 조선은 어떤 나라였는가? 언더우드 선교사는 1885년 4월 5일 부활절에 자신이 번역한 성경을 들고 아펜젤러와 함께 제물포에 도착합니다. 그때 조선은 합법적으로 선교할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습니다. 조선땅에서 선교하면서 언더우드가 절망의 시간들을 보내면서 하나님께 쓴 기도문입니다. 선교사들의 절망의 소리가 들린다. 언더우드 선교사가 조선땅을 바라보면서 그는 이렇게 기도했다.

 

“보이지 않는 조선의 마음. 주여!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은 옮겨와 앉았습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 곳,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사람뿐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질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질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지금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릴 받고 있사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나이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

머루 열매 참으로 많이 열렸네요.

그 절망의 조선땅이 오늘 대한민국과 한국교회를 만들었습니다. 100여년 전 조선 땅을 본 독일의 여행가의 글이 있습니다. 그가 본 서울은 집 5만채 대부분이 쓰러져가는 초가 흙집이었습니다.

 

“산업도 굴뚝도 유리창도 계단도 없는 도시. 극장 커피숍 찻집 공원 이발소도 없는 도시. 모든 사람이 흰 옷을 입고 있는데 이보다 더 더러울 수 없고 인분 천지인 도시. 도기가 낙후된 태국, 버마, 캄보디아에도 높은 사원 하나는 있었지만 여긴 아예 없다. 남산서 본 서울은 땅 바닥에 붙은 납작한 황토집들이 황무지 같은 광경을 이루고 나무조차 없다. 단 한 곳 오아시스 같은 곳이 있었지만 500년 왕궁이란 말을 듣고 그 초라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양상훈 칼럼인용).

이것이 조선땅이었다. 세계지도에서 사라져 버릴 수 밖에 없는 희망도 하나없는 절망의 나라였다. 그리고 일제 식민지, 6.25동란으로 인해 이 땅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만신창이가 된 나라에 희망을 일으킨 인물들이 있다.

민족의 암흑기에 태어난 위대한 인물들이 근현대사에 우리 민족의 소중한 자산들이다. 나라의 국권을 잃어버린 시기에 위대한 인물들이 태어났다. 1875년에 이승만, 1907년 구인회, 1910년 이병철, 1915년 정주영, 1917년 박정희, 1929년 최종현, 1936년 김우중이 태어났다. 한 세기에 한 명 태어날까 한 인물들이 민족의 암흑기에 태어나 이 땅을 축복의 나라로 세웠다.

이승만의 자유민주주의 건국과 농지개혁, 국민교육제도 확립, 한미동맹의 터전을 마련했다. 그 바탕위에 박정희는 외자도입, 수출입국, 전자.중화학육성, 농촌혁명을 일으켜 ‘잘살아보자’는 노래를 전국방방곡곡에 울려 새벽을 깨우는 새마을 운동을 일으켰다.

현대창업자 정주영은 “해봤어?” “나는 땅에는 우리나라 자동차가, 바다엔 우리 배가 다니는 모습을 정말 보고 싶다”라는 도전의 정신으로 민족을 위해 헌신했다. 세계 경영을 외쳤던 대우그룹의 김우중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당신들 미국인은 우리를 이길 수 없다. 당신들은 하루 8시간 일하지만 우리는 24시간 일한다”는 모험가 정신과 시간의 땀방울을 드리는 정신을 심어주었다. 포항제철을 세계 제일의 철강회사로 세운 박태준은 “ 제철소 성공 못하면 우향우해서 포항 바다에 다 빠져 죽자”라고 분투하며 목숨을 걸고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꿈나무를 키운 sk그룹 창업자 최종현은 “내 인생 80%는 인재 육성에 썼다. 인재는 석유 따위는 비교도 되지 않는 무한 국가 자원이다.” 삼성그룹의 창업자 이병철은 수원에 반도체 공장 43만평을 세웠다. 일본을 앞서기 위해서 그들은 피와 땀을 조국에 받쳤다.

민족의 암흑기에 태어나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시대의 아픔을 온 몸으로 끌어안고 그들은 선진화된 세계 열강들과 싸웠다. 그리고 오늘 대한민국을 부끄럽지 않는 당당한 나라로 세웠다. 대한 민국은 기적을 창조한 나라이다. 인구 5000만 소득 3만달러 이상의 일곱 번째 나라가 되었다. 이것은 놀라운 기적이다.

교회 정원

또한 이땅의 기적을 창조한 공동체가 있다면 교회이다. 교회는 절망 가운데 있는 백성들에게 희망을 말했다. 고난을 몸으로 살아내는 인내를 요구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그 말씀 붙들고 성장의 영적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그 결과 깊은 절망의 잠에 잠겨있던 민족이 깨어나서 동방의 횃불이 된 것이다.

성경을 보면 세례요한이 있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이다. 그는 영적 패배주의와 깊은 절망속에 있을 때 하나님은 한 사람 세례요한을 준비시켰다. 세례요한은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영적인 준비의 시간을 보냈다. 하나님의 때에 빈들에 있던 세례요한에게 성령이 임하고,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다. 절망과 죄악 가운데 잠자고 있던 백성들을 향해 유대 광야에서 외쳤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3:2). 그 외침에 백성들은 영적으로 깨어나기 시작했다. “자기들의 죄를 자복”(마3:6)하며 요단강에 나와 세례를 받았다.

6년전에 교회 정원에 심은 보리수 나무에서 열매가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영적 암흑기에 있다. 세례요한 같은 선지자들이 나와서 외쳐야 한다. 절망의 물결을 희망의 물결로 바뀌어야 한다. 암흑의 시대를 한 몸으로 껴안고 민족의 위상을 높였던 기업인들과 노동자들의 깊은 헌신위에 오늘 달콤한 열매를 먹고 있다. 그러나 너무도 절망의 그늘이 이 땅을 덮고 있다. 희망의 불씨를 다시 일으켜야 한다.

인간은 음식 없이도 40일을 살 수 있다. 공기 없이도 8분을 견딘다고 한다. 그러나 희망이 없이는 단 1초도 견디기 어렵다고 한다. 교회는 소망을 말해야 한다. 하나님은 소망의 원천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소망을 주시는 분이다. 성령의 능력안에서 소망을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주님의 깊은 은혜를 다시 공동체가 맛보아야 한다. 그 은혜의 파장을 사람들은 간절히 찾고 기대하고 있다. 절망의 씨앗을 거둬내고 희망을 씨앗을 다시 파종해야 한다. 영적 패배주의는 교회를 병들에게 하는 암이다. 암 덩어리를 과감하게 잘라내고 희망을 전하여 은혜의 파장을 만들어내야 한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위대한 위임 명령이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15:13).

 

 

 


 

발행인 최원영목사  jhoncho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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