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129) - 에스겔(21)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부회장 KC대 전 총장

“너희는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찌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하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찌니라”(겔18:31-32).

 

가장 어둡고 암울한 순간에 개입하시는 하나님

에스겔서가 후반부에서 마지막 에스겔서 48장의 끝은 희망을 향하여 말하고 있고, 이스라엘에게 그 희망을 선포하고 있다. 너희가 회개할 때 살 수 있기에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에스겔서는 큰 구조의 맥락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어떻게 전하고 있는가? 하나님은 사건을 주관하는 것이 의심의 그림자를 버린 듯 보일 때가 있다. 이는 아마 개인적 재앙이나 세계적인 규모의 재앙이 있는 것이다. 에스겔의 묵시적 전망에서 강조하기를 하나님은 백성을 위해 가장 어둡고 암울한 순간에 역사에 개입한다. 하나님은 강력한 힘으로 나타나며 전능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린다. 대부분 사람들에게는 죽음 자체만큼 암울한 것이 없었다. 그래서 바울은 곡과 마곡을 생각하며 죽음이 ‘최후의 적’이라고 부른다. “맨 나중에 멸망 받은 원수는 사망이니라”(고전15:26). 가장 큰 적은 곡과 마곡이며 마지막 적은 죽음이며, 죽음은 파멸케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희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직면하게 되는 위협적인 것이 죽음임을 볼 수 있다. 희망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사람은 곡과 마곡과 같은 존재에 직면하게 된다. 결국 사탄은 기독교인들에게 승리할 수 없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보초와 파수꾼으로서 예언자의 직무

에스겔서는 구원의 선포를 예언자의 두 가지 소명이야기를 소개한다. “인자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을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찌어다”(겔33:7). 에스겔을 이스라엘에 파수꾼으로 보내었다는 소명 선포 기사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정녕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 길에서 떠나게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겔33:8).

이 사명을 감당하기에 악인에게 다가가서 이 말씀을 선포할 수 있어야 한다. 악인에게 경고해야 하며 그 길에서 떠나라 말해야 한다. 그리고 회개를 촉구해야 한다. 이는 예언자 사명을 실행해야 의무는 하나님의 공적 업무이기에 사적인 개인 생활추구와 가족 돌봄이 어려운 상황을 가지게 된다. 여기에 소명을 수행하는 예언자의 사명은 어려운 삶을 살아야 하는 과제가 주어지는 것이다. 이는 마치 예레미야 예언자가 고백하는 것과 유사하다. “주께서 내 심령으로 평강을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내가 복을 잊어 버렸음이여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하였도다”(예레미야애가3:17-18). 이처럼 개인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예언자에게는 힘들게 된다고 고백하는 것을 본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계속하여 그 괴로움을 토로한다.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되오나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예레미야애가3:19-23). 예레미야의 탄식처럼 에스겔은 이러한 심정으로 예언자 직무로서 보초와 파숫군으로 역할을 하고 있다.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겔3:17). 에스겔은 악한 자가 회개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심판의 위험을 경고하는 것이 의무였다. 예언자의 책임은 그가 죄를 고발하고 회개하도록 촉구하는 것이다. 그 책임을 다하며 듣는 청중, 백성들에게 그 책임이 전가되게 되었다. 재앙은 회개를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남겨진 것이며 개인적인 재앙보다는 공동체의 재앙으로 남게 된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 내가 말하노라 내가 수풀 가운데 포도나무를 불에 던질 화목이 되게 한 것 같이 내가 예루살렘 거민도 그같이 할찌라”(겔15:6). 회개만이 구원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구원의 약속은 회개가 전제될 때 만 임을 계속 강조 하고 있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 한대로 국문할찌라 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찌어다 그리한즉 죄악이 너희를 패망케 아니하리라”(겔18:30).

회개하라 이스라엘아, 회개만이 구원이 오느니라. 회개하라 네게 희망이 있으리라. 그러나 우리 주님은 회개와 믿음의 새 차원을 말하고 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주를 믿고 회개하라.

“이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하였노라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요한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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