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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밖에서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

어느 날 대학에 다니던 아들이 어머니에게 "다녀 올께요, 엄마!"하고 집을 나갔는데 해가 넘어가고 어둠이 짙게 깔려도 아들이 돌아 오지 않으니까 어머니는 전등을 가지고 동네 어귀에 있는 고갯마루에 나가서 아들이 오기를 기다렸지만 아무 연락도 없이 그날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 다음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몇날 며칠을 사랑하는 큰 아들이 돌아 오기를 기다렸지만 돌아 오지 않았다. 동네 친구들에게 물어보고, 학교에 가서 어찌 된 것인가 하고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야말로 답답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었다.

그렇다고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일을 포기하고 아들을 찾아 다닐 수도 없어서 하염없이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일 년이 지나고 또 일 년이 지나 십 년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을 알 수가 없었다. 관공서에 문의해도 알 길이 없어 행방불명자로 신고한지 40여년이 지난 아직까지 아들은 돌아 오지 않고 있지만 그의 부모는 한 가닥 희망의 끈을 붙잡고 놓지 않고 있다.

아들의 생일이 되면 그가 좋아했던 음식을 차려 놓고 어머니는 이제 할머니가 되셨지만 곱게 차려 입고 여전히 그 동구밖 고갯마루로 나가서 하루 종일 아들을 기다리고 계신다.

그 사이에 아버지는 화병으로 고생 하다가 이제는 치매증세로 힘들어 하고, 어머니는 농사일로 허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지만 그 동네에서 농사일을 하면서 그 아들을 기다리신다.

둘째 아들은 장성 하였지만 시골에서 농사 지으면서 살겠다는 신부감을 만나지 못해 결혼 적령기를 넘겨 어머니를 도와 농사를 짓고 있다.

지난 40여년의 세월은 살던 동네를 바꿔 놓아 아파트 단지가 들어오게 되어 농사를 짓던 토지의 보상금으로 큰 액수를 받아 소위 '벼락부자'가 되어 지금은 수확한 농작물을 팔아서 생활하지 않을만큼 재산이 많다. 그렇지만 그 재산이 그 부모에게는 아무런 기쁨이 되지 못한다.

그 어머니께서 농사지은 밭에서 수확한 토마토와 오이와 양파를 받아 오는데 내 머리 속에는 그 어머니의 모습과 '종율아, 언제 오냐? 보고 싶다!'라고 마지막으로 하셨던 나의 어머니의 얼굴과 음성이 서로 겹쳐 보이기도 하고 들리기도 했다.

자식을 그리워하는 어머니의 그 마음을 누가 알 수 있으리요!

<차종율 목사, 서울 서초구 방배동 새순교회 담임목사>

차종율  webmaster@bonh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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