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이이삭 목사, Azusa Pacific Univ. Calvin Theological Sem.]

  

호메로스(Homer B.C 8세기)의 일리아스(Iliad)에 기록된 트로이 전쟁을 기반으로 레디안트 프로덕션(Radiant Production )에서 제작한 영화 트로이(Troy)는 에어 포스원( Air Force One,1997), 다스 부트(Das Boot,1981) 포세이돈(Poseidon ,2006 )등, 중량감과 더불어 다이내믹한 요소를 잘 연출해 내는  독일의 세계적인 영화감독 볼프강 피터슨(Wolfgang Petersen,1941-)이 감독했으며 사뭇 반항적이면서도 어딘가 우수를 품은 듯한 매력적인 눈빛의 브렛피트(Brat Pit)가 아킬레스(Achilles)로 분해 인상적인 연기를 펼친  2004년 개봉작이다.   


   이 영화 트로이는 약 1억 8500만 달러의 제작비가 들어갔으나 전세계에서 약 4억 9800만 달러를 벌어들여 흥행에 성공을 거둔 작품이 되었다.  특히 스펙타클한 고대 전투장면에서 벽화나 물병에 그려진 그리스 보병들의 방어체계인 팔랑크스(Phalanx)를 잘 묘사한 작품으로 손 꼽히기도 한다. 그도 그럴것이 병사들이 제대로 전열과 진형을 갖추고 방패를 앞세워 창으로 서로의 틈을 찔러대는 완벽한 모습을 재현하기 위해 800명의 엑스트라가 3개월 동안이나 훈련한 결과라는 것이다. 기원전 1,200여년 청동기시대의 역사이지만 팔랑크스 뿐 아니라 트로이를 중심한 이웃세력들의 정세와 전쟁의 요인들을 살펴보면 사람 살아가는 세상사는 지금이나 그때나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이 영화에서, 트로이전쟁의 발단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Paris)와 스파르타의 왕비 '헬레네'(Helen)가 사랑에 빠져 트로이로 도주하면서 시작된다.
파리스에게 아내를 빼앗긴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Menelaus)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미케네의 왕이자 자신의 형인 '아가멤논'(Agamemnon)에게 복수를 부탁한다. 평소에도 트로이에 침을 삼키던 아가멤논은 즉시 트로이를 침공할 원정군(遠征軍)을 편성하면서 당시 그리스의 여러 영주인 아킬레우스, 오딧세우스 등 기라성 같은 전사들과 그 부대를 대거 참전시킨다.
   총사령관이 된 아가멤논은 휘하에 10만 대군을 거느리고 1,000척의 함선을 타고 오늘날 터어키의 차낙칼레 남쪽 트로이 섬에 도착하여 해안에 진을 치고 트로이 성을 공격하게 되는데 트로이는 워낙 난공불락의 요새인지라  일진일퇴를 거듭하기 10년, 트로이 성을 점령하지 못한채 지리한 포위 전선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아킬레스(Achilles)의 전우(영화에서는조카) 파트로클로스(Patroklos가 핵토르(Hector) 손에 죽게 되고 여기에 분노한 아킬레스가 헥토르와의 일대일 결투를 신청하는 사건이 생기면서 전황에 일대 소용돌이가 생긴다.  아킬레스와 헥토르, 양진영의 대표격인 두 장군의 절대절명의 대결에서 헥토르는 결국 아킬레스 손에 무참히 죽임을 당하게 되고 이로 양군,승패의 절박감이 고조되면서 오디세우스는 최후의 치명적인 군사작전인 목마전략을 세우게 된다.
   그것은 그리스 연합군들이 전쟁에 지쳐 철수하는 척 위장전술을 쓰면서 전쟁의 여신 아테나에게 바치는 거대한 목마를 트로이 해안 앞에 세워 두고 모든 병력을 함선에 숨겨 머물게 한다. 한편 트로이 사람들은 그리스가 전쟁을 포기하고 철수하면서 기념물로 목마를 두고 간줄 알고 그 목마를 신주같이 모시고 트로이 성안으로 끌고 들어와 종전(終戰)의 안도와 기쁨을 만끽하며 승리를 자축하면서 부어라 마셔라 곯아 떨어진다. 그 순간, 그 트로이 목마 안에 매복했던 오디세우스(Odysseus)를 포함한  특공대 30명이 나와 트로이 군대를 기습공격하여 성을 순식간에 접수하고 이어 함대에 기다리던 연합군이 합세하여 트로이 성을 함락시켜 불바다로 만들어 버린다.  그 와중에 도망치던 헥토르의 동생 파리스의 화살이 아킬레스의 뒤꿈치 힘줄을 명중시키므로 전설의 명장 아킬레스는 그의 어머니 예언대로 결국 트로이에서 명을 다한다.
이때 죽음을 피해 달아난 트로이의 전사 아이네이아스는 트로이 유민들을 이끌고 지중해를 건너 이탈리아 반도에 정착해 훗날 그들의 후예가 로마를 건국하게 되었다는 설은 서구문화의 뿌리라고 여기는 서사시로 로마의 건국신화와 같은 아이네이아스(Aeneas)에 기초한 것이고  “ 선물을 가져오는 그리스인은 조심하라” (Beware of Greeks bearing gifts) 는 말은 바로 이 트로이의 목마에서 비롯된 서양의 속담이 되었다.
  


   이 영화의 스토리 전개에서 일리야드 속에 신과 신화들은 거의 배제되었다. 호머라는 작가가 이 작품을 쓰던 시대의 신화적 문화의 배경을 걷어 내면 곧 바로 역동적인 역사이며 현실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독일의 사업가이며 아마추어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Heinrich Schliemann, 1822~1890)은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이야기에 심취하여 후에 이 작품이 단순한 신화가 아니라 살아있는 역사라는 확신을 가지고 1866년 파리로 이주하여 고대사 연구에 착수하였고 그리스 일대를 탐사하면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관련된 유적들을 탐구하였다. 그 결과 1870~1873년 터어키 히실리크 언덕에서 대규모 발굴작업을 했는데 3년여 동안 일꾼 100여명과 더불어 37m 높이의 언덕에서 1t 트럭 25만대분이나 되는 흙을 파낸 결과  수많은 유물들과 함께 그곳이 트로이 유적지라는 것을 증명함으로써 전세계에 충격을 주었다. 이후에도 세 차례나 히실리크 언덕 일대를 발굴하여 여러 층에 걸친 트로이 유적은 물론 그리스 이전의 문명인 에게해 문명의 유적까지 발견하였다. 슐리만은 이 중에서 제2층에 해당하는 유적을 트로이 전쟁 시기의 유적으로 판단하였으나 후에 6층이 그것에 해당한다는 것이 몇 년 뒤 새롭게 밝혀지기도 했다.
  
   슐리만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분분하다. 슐리만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로 독일의 팀웍스사( teamWorx )가 제작비 2,200여억원을 들여 드로르 자하비(DROR ZAHAVI) 감독, 하이노페르히(HEINO FERCH)가 주연한 2009년 개봉작  "트로이의 보물" (SCHATZ won TROJA)은 슐리만의 발굴작업 전 과정을 소상하게 담은 매우 흥미진진한 영화이다. 
   아무튼 이 지역에서 발굴한 엄청난 보물과 유물만 8,700여점에 달하는데 독일인으로서 터어키에서 발굴한 유물을 우여곡절 끝에 독일로 반출한 후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행방불명 되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이 유물들은 2차대전 당시 독일을 점령한 구 소련에 의해 탈취되었다고 한다. 현재 이 유물들은 러시아 박물관의 방탄유리관 속에 보관되어 있다.  이 유물에 대해 러시아,터어키,독일은 물론 그리스까지 나서 각기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형편이다.
    
   당시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올지 말지에 대한 찬반양론이 있었으나 그들은 사제 라오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포세이돈을 말로 표현했던 우상에 대한 경외심 때문에 이 말을 성안으로 들여오게 되었고 결국 트로이를 멸망시킨 치명적 원인이 된 것이다. 멀쩡한 말의 형상, 그속에 숨겨진 무섭고 잔인한 복병, 정말 기발한 악의 화신인 셈이다.
   이 악의 화신은 오늘날 인간이 가장 유용한 도구로 사용하는 컴퓨터의 프로그램에 트로이목마(trojan horse)라는 악성 루틴을 숨겨 겉보기는 정상적인 프로그램 같으나 열게 되면 악성코드가 실행되어 컴퓨터의 기능에 치명상을 입히는 컴퓨터 바이러스로 자리잡고 있다. 

   폴 리쾨르(Paul Ricœur, 1913 ~ 2005)는 이런 신화에서 많은 영감을 얻어 악의 근원을 추적했다. 그의 유명한 저서 악의 상징(The Symbolism of Evil)에서 악을 인간이 올바른 길로 부터 벗어나서 스스로 무거운 짐을 짊어진 포로가 된 상황으로 표현한다. 결국 악은 “얽매인 자유”를 가리키며 이미 말틴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에라스무스(Desiderius Erasmus1466~1536)와의 논쟁에서 피력했던 “노예의지(De Servo Arbitrio, On Un-free Will)”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스스로의  의지로 악을 불러들여 결국 그것에 포로가 되고 그것으로 멸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정의하는 우상의 본질은 무엇인가? 구약성경에서 우상을 나타내는 가장 일반적인 단어는 “에릴(eleel)”이다. 이것은 “없는” “아무것도 아닌” 또는 “허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과 정 반대되는 개념이다. 하나님은 출애굽기3:14에 “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 (IamwhoIam) 고 자신의 본질을 “있는 것” 또는 “있게 하는 본질”로 정의하신다. 결국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선택이 인간의 운명을 가름한다. 그러나 여기 존재의 역설적 진리가 숨어있다.
우상은 무가치하고 아무것도 없지만 눈에 보이는 것인 반면 하나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만물의 근원이며 영원한 존재라는 사실이다.  보이는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부터 왔다는 명백한  자연의 원리를 대변하는 셈이다.  
그러나 인간은 생래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에 가치를 두고 매력을 느낀다.
그래서 아이들(idol)의 어원이 된 신약성경의 우상 에이둘론은 보이는 형상,형태를 가리키고 있다.  “눈에 보이는 것” 그러나  “없는 것” “허무한 것”에 매달려 그것을 추구하며,그것에 마음을 빼앗겨  결국 악의 노예로 사는 인간,  폴 리쾨르의 표현대로 그야말로 노예의지이며 얽매인 자유이다.
트로이의 목마, 혹 우리의 목마는 아닌가?
“ 우리가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고린도후서 4: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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