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바라본 한일 관계와 상생 모드 (1)

한명철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은혜와 평강교회를 담임하며 30권의 저술과 글쓰기를 통해 복음 사역에 애쓰는 목회자이다
【편집자 주】 아래의 내용은 저자(한명철 목사)가 지난 5월 20일 서울신학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에서 행한 특강 내용을 일부 편집한 것임을 밝힙니다.

 

1. 프롤로그

얽히고설킨 실타래처럼 한일 관계는 단순하지가 않다. 역사적으로 얽히고 정치적으로 설켜 있다. 헝클어진 실타래를 정돈해서 매듭들을 풀지 않는 한 두 나라의 미래는 무척 어둡다. 공자는 55세의 나이에 주유천하를 떠나 14년간 여러 나라를 돌았다. 자신의 정치 이상을 펼칠 군주를 찾아 나섬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실패하고 말았다. 요즘 나이로 치면 70대가 지났을 무렵에 자신의 이상 실현을 위해 출사표를 던진 셈이니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성현이라 일컬어지던 공자가 송나라를 지날 무렵 뽕나무 밭에서 일하던 한 노파의 추한 몰골을 보고 “정말 못날 얼굴”이라며 탄식조로 내뱉은 일이 있었다. 이 말을 들은 노파는 제자 자로(子路)에게 나중 어려운 일을 당하면 자신을 찾아오라며 공자의 실언을 웃어넘겼다.

얼마 후에 공자는 그 지역을 다스렸던 폭군으로 오인되어 체포되었다. 제자들이 변명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가 과연 성현이라면 그 증거를 대라며 아홉 개의 구멍이 난 구슬 하나를 내밀며 실로 꿰어보라 하였다. 노파의 말이 생각난 제자 자로가 노파를 찾아갔고 노파는 ‘밀의사(蜜蟻絲)’ 석자를 써보였다. 개미허리에 실을 묶고 구슬의 각 구비마다 꿀을 발라 실을 구멍 밖으로 꿰게 만들었다는 것이 구곡주(九曲珠)의 야화다. 문제를 푼 것은 성현이었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비웃음의 대상이었던 노인에게서 나왔다. 복잡 미묘한 한일 관계도 의외의 인물과 방식에서 찾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크게 깨달은 공자는 제자들에게 이후로는 “말하기 전에 적어도 세 번은 생각하라”는 삼사일언(三思一言)의 교훈을 남겼다.

지난 과거의 역사에서 한국과 일본은 항거자와 침탈자로 분명하게 대별된다. 임진왜란 7년과 정유재란 2년은 그 전형적인 역사의 본보기였다. 일본은 늘 침략자였고 조선은 침탈의 대상이었다. 커다란 두 전쟁을 전후하여 무수한 왜구의 침략이 조선의 민중을 수도 없이 괴롭혔다. 근대에 와서 이런 침략-항거의 역사는 을사늑약과 36년의 통치로 구체화되었다. 솟구치는 힘을 주체할 수 없었던 일본은 대한제국을 깡그리 뭉개버리고 이 민족은 또 다시 수난으로 얼룩진 역사의 소용돌이에서 허우적거려야 했다. 누르고 뺏는 자와 눌리고 뺏기는 자의 구도를 한 번도 벗어나지 못한 두 민족 간의 갈등은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오늘 한국인이 일본인에 대하여 갖는 민족 감정의 원초적 뿌리에는 이런 역사적 배경이 깔려 있다.

 

2. 현실적 위기

A. 끊어지는 삼겹줄

한국과 미국과 일본이 조약에 따른 동맹국은 아니지만 동맹이란 역학성으로 인해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한국과 미국 간에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있고 미국과 일본 간에도 미일상호방위조약이 있다. 한국과 일본에는 그런 정도의 조약이 없음에도 세 나라는 정치, 경제적 이유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세 나라의 사이가 밀월 관계는 아니어도 비교적 좋았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 관계가 많이 삐걱거리고 있다. 성경적 표현을 빌리자면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데 한미일의 삼겹줄은 많이 헐렁한 상태에 있어서 언제라도 끊어지기 일보 직전이다.

B. 근교원공(近交遠攻) 같은 근중원일(近中遠日)은 재앙의 서곡

한국이 일본을 멀리 하고 중국을 가까이 하는 것은 잘못이다. 일본이 승냥이라면 중국은 사나운 곰이다. 귀여운 판다는 외교 전시용이요 실제로는 언제라도 패악을 부릴 수 있는 곰이다. 일본을 중국의 침탈 역사에 비한다면 조족지혈이다. 일본은 겨우 독도에 눈독을 들이지만 중국은 이어도에 군침을 삼키고 돈으로 동해와 서해의 어업권을 사들이고 민족의 성산인 백두산 일부까지 잠식했다. 동북공정을 통한 역사 왜곡도 완전 날강도 급이다. 중국에 저자세 외교를 보임은 조공에 아파했던 지난 역사를 통해 뼈아픈 교훈을 얻지 못했다는 뜻이다. 북한의 위기 시에 구원투수로 나섰던 마오쩌둥처럼 지금의 시주석은 위기의 한국을 위한 구원투수가 결코 될 수 없다. 문재인 정부의 친중 정책은 대악수요 자충수다. “미워도 다시 한 번!” 일본과의 선린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실제로 주변국들을 대하는 중국에게서는 대국다운 기품을 찾기 어렵다. 그들은 돈의 위력으로 빈국들을 접수중이다. 이런 와중에서 한중이 아니라 한미일 맹방의 구도로 나아가야 이로운데 지금의 삼국은 서로 엇박자다.

얼마 전에 문재인 대통령이 참모와 수행원들, 기자단들을 대거 이끌고 워싱턴을 찾았다. 초청이 없었음에도 먼 길을 찾아온 맹방의 최고 통치자 일행에게 미국은 국빈으로서의 대우를 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공식적으로 단 2분만을 할애해주었다. 이 2분의 열매 없는 만남을 위해 그 많은 혈세를 하늘 길에 쏟아 부었다. 얼마 후에 미국을 방문한 아베 총리에게 트럼프는 다섯 시간이나 함께 골프도 치고 만찬도 하며 회동을 즐겼다. 미국에 비친 한국과 일본의 위상 차이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부아가 끓어오른다.

이 사건은 2년 전 중국을 방문했을 당시의 10끼니 식사 중에서 중국 측이 공식적으로 마련한 식사가 단 두 끼니여서 혼밥 논란에 휘말렸던 악몽을 생각나게 한다. 2019년의 최근에는 카자흐스탄을 방문한 자리에서 의례상 주고받는 훈장을 주기로 했다가 하루 만에 주지 않기로 한 해프닝이 있었다. 한 마디로 외교 참사에 정치 감각 제로의 재앙이다. 내 나라 대통령이 타국에서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을 볼 때마다 분통이 터지고 그것이 상대국이 아니라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는 현실에 더욱 기가 막힌다. 그럼에도 줄기차게 외유를 강행하는 정치적 저의가 못내 의심스럽다. 내우외환이 끊이지 않는 현 시점에서 한가하게 밖으로 나돌아 다닐 때가 아니다. 집무실에서 머리를 싸매며 씨름해야 할 문제들이 어디 한두 가지인가!

 

C.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한국

한국은 정치적 딜레마에 빠져 있다. 국내 정치는 타협을 통한 묘수풀이보다는 팽팽한 대립 구도를 계속 고집하고 있다. 제 밥그릇 챙기느라 군중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양상이다. 국내 정치의 암담함은 국제정치에서 무기력함만을 보인다. 말이 좋아 OECD 국가의 일원이지 정치력은 중진국의 수준에도 한참 미치지 못한다. 경제적 위기는 그동안 이 나라가 겪었던 위기의 총합이라 할 만큼 심각하다. 이 작은 땅덩어리에 국회의원은 왜 그렇게 많은지 이해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국회의원 숫자를 더 늘리려는 생각을 하는 그들은 과연 달나라에서 왔나? 아니면 별나라에서 왔나? 정치가들 주변에 기생하는 이권 세력은 사라질 줄을 모르고 붕당정치의 사생아인 패거리 정치는 사회 각층에 뿌리 내릴 정도로 이미 한국적 현상이 되어버렸다.

남한의 군사력은 북한에 비해 갈수록 상대적으로 열세에 있고 주변 강국에 비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2018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에 의해 만들어진 <평양선언>은 군사분계선 상공에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함으로 스스로 초계 비행능력을 감퇴시켰다. 한편으로는 초계기를 들여오고 다른 한편으로는 초계 비행 해당 지역을 봉쇄해버리니 이상한 노릇이다.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최전방 초소를 폐쇄했지만 북한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라도 이 상황을 뒤집을 능력이 있고 충분히 그러고도 남는다. 노무현 정부가 실패했던 서북 5도의 북방한계선(NLL)을 현 정부가 성사시켜 서북 5도는 실로 바람 앞의 등불 신세다. 이에 곁들여 외교적 무능과 난맥상은 나라의 위상을 한참 떨어지게 만든다.

한국의 원전 설계와 건조 능력은 세계적인 수준이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 국제 사회는 원전 운용에 비판적인 언사를 쏟아냈다. 한국은 이에 발 빠르게 원전정책을 포기했다. 탈원전정책은 다른 문제를 낳았다. 전력 수급에 차질을 빚고 경제적 잠재력을 스스로 묻어버렸다. 대통령이 해외 순방할 때마다 상대국에서 원전 건설을 요청 받지만 그림 속의 떡에 불과하다. 카자흐스탄에서는 원전정책을 포기한 당사자인 문대통령이 카자흐스탄의 실력자에게 원전 건설을 할 경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요청했다니 실로 기막힌 일이다. 앞뒤가 맞지 않고 너무 즉흥적이다. 원전정책의 실제적 여파는 결국 한전의 금년도 1분기 수익률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제로를 넘어서 영업 손실만 약 6,300억에 이르렀다니 할 말이 없다. IMF 위기도 슬기롭게 극복한 이 나라는 IMF총재의 찬사가 무색할 만큼 먹구름 가득한 경제에 발목이 붙잡혀 단군 이래 최악의 총체적 난국이다.

 

D. 구심점의 실종

일본인에게는 두 개의 구심점이 있는데 그 하나는 천황이고 다른 하나는 야스쿠니 신사다. 산 자와 죽은 자를 동시에 섬기는 일본인에게 천황이란 살아 있는 신으로서 정신적인 구심점이다. 야스쿠니 신사는 죽은 자들의 영령으로 얽어맨 우익의 성지다. 중국인들에게도 공산당과 대국굴기라는 구심점이 있다. 유독 한국인에게만 구심점이 없다. 민족의 정기를 끌어 모을 어떤 자력 같은 것이 없다. 방탄소년단을 비롯한 한류가 당분간 세계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단지 흐름일 뿐 구심점 역할을 할 수는 없다.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한 정치적 구호나 정치적 인물마저 부재상태다. <어벤져스 앤드게임>이 한국 외화 사상 역대 1위의 순위를 갈아치웠다. 왜 사람들이 이런 인조 영웅 시리즈에 열광하는 것일까? 이 나라에 영웅이 없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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