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130) - 에스겔(22)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부회장 KC대 전 총장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겔18:23).

악인의 파멸과 형통을 하나님은 어떻게 보시는가?

에스겔 이야기의 대장정이 끝나가고 있다. 우리는 에스겔서 신학은 깊고도 넓은 세계임을 잠시 살펴보았다. 마지막 화두는 하나님은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원수가 심판을 받고 죽는 것을 대개 기뻐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죄의 심판이 결국 개인의 죄의 결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사실을 말하며 악인까지고 죄를 회개하면 구원을 박고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죄를 짓고 죄를 전가하는 것이 사람의 속성이다. 선악과를 따먹은 최초의 인류 아담은 그 죄의 원인을 아내 하와의 탓으로 돌렸고, 하와는 뱀에게 그 죄를 전가하는 모습을 본다(창3:6-21). 에스겔서의 바벨론 포로의 원인이 어디 있는가라는 논쟁이 있었다. 이 죄의 댓가는 누구에게 있는가? 사람들은 죄의 원인을 조상들에게 돌렸다.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찌이뇨”(겔18:2). 조상 탓으로 돌리는 바벨론 포로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담의 후예다운 모습이었다. 오늘 우리들은 누구의 잘못으로 이 불행을 이야기 하고 이 민족 분단의 원인을 돌리고 있는가?

이 죄의 원인은 각자의 삶의 과정과 결과에 달려있고 자신의 삶과 영혼의 책임인 것이다.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겔18:4).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고 선언하고 있다. 이미 죄의 심판은 떨어졌고 재앙은 일어나서 바벨론의 포로지에서 형벌의 기간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과 악인들의 구원을 행하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이 공평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런데 너희는 이르기를 주의 길이 공평치 않다 하는도다 이스라엘 족속아 들을찌어다 내 길이 어찌 공평치 아니하냐 너희 길이 공평치 않은 것이 아니냐”(겔18:25).

예루살렘 몰락을 넘어 새 비전을 바라보라

공동체의 범죄나 조상의 죄라 연좌제처럼 엮어 있다는 것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나온 역사체험이었고, 이스라엘 초기 예언자의 심판메시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여러 세대의 죄가 함께 묶여져 있고, 그것들이 교량처럼 안장으로 앉게 된 모습이다. 그러나 에스겔 18장은 이와 전혀 다르게 심판은 개인의 죄에 달려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성전에 들어가는 의식처럼 성전에 들어갈 수 있는 자는 정직하고 공의를 행하며 진실을 말하고 행악지 아니하며 이웃을 훼방하지 않는 자,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 등 거룩한 개인임을 말한다(시15:1-5). 각 개인의 책임이 구원과 심판의 결과를 가져오는 존재이며 새로운 세대와 각각의 개인이 새로운 삶의 책임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인자야 너는 네 민족에게 이르기를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의가 구원치 못할 것이요 악인이 돌이켜 그 악에서 떠나는 날에는 그 악이 그를 엎드러뜨리지 못할 것인즉 의인이 범죄하는 날에는 그 의로 인하여는 살지 못하리라”(겔33:12).

오늘 우리 앞에 새로운 실존이 놓여 있다. 이미 엎지러진 물처럼 심판의 현실과 재앙의 결과가 우리 삶속에 펼쳐지고 있는데, 여기서 그 죄과를 묻는 일보다 이제는 어떻게 이 죄의 결과를 묻고 회개하며 새로운 희망을 기르는 일에 몰두해야 할 것이다. 마치 민족사에 분단 책임을 전세대의 조상 탓이라고 하는 것과 똑같은 일일 것이다. 예루살렘 몰락이 된 상황에서 새성전을 보는 희망의 비전이 필요한 것이다. 다윗 왕조가 끊어진 현실에서 새 다윗 왕, 메시야를 고대하는 그리스도 예수의 비전을 보는 것이 필요하다. 새 땅과 새 백성, 새 언약과 새 연합이 요구되는 것이다. 에스겔은 그 비전을 보여주며 새 영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겔11:19-20). 새로운 영과 새 비전, 일치하는 마음, 부드러운 마음으로 새로운 나라와 백성이 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그 새로운 비전 앞에 서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소서!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계21:1).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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