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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상징들을 기반으로 탄생한 <유레카-익투스 요한복음>의 저자 박호용 교수의 신학적 함축의 산물

최근 <유레카-익투스 요한복음>의 저자 박호용 교수가 기독교의 여러 상징들을 기반으로 <Dream 17(드림 세븐틴) 십자가>를 만들었다. <Dream 17(드림 세븐틴) 십자가>는 한마디로 ‘십자가LED무드등’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무드등과 달리 기독교 전통의 상징들을 총망라한 신학적 기반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일반적인 무드등이라기 보다는 기도 생활이나 경건한 분위기를 돕는 <기도등>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 듯 싶다. 신학자가 <십자가LED무드등>을 만들었다는 것도 특이하지만, 기독교 전통과 신학적 의미를 기반으로 한 특별한 로고이어서 더욱 관심을 갖게 한다. 그래서 개발자인 박호용 교수에게 <Dream 17 십자가>를 둘러싼 궁금한 것들을 인터뷰 했다.

Q1. 먼저 <유레카-익투스 요한복음>의 출판을 축하드립니다. 이번달 17일(월) 기독교100주년기념관에서 출판기념회를 앞두고 계신데요. 바쁘신 중에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름이 아니라 교수님께서 개발하신 <Dream 17 십자가>를 만들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요?

 

박호용 교수 : 필자가 <<유레카-익투스 요한복음>> 책을 출간한 후 <Dream 17 십자가> 로고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이야기와 그 의미를 말씀드리면 이렇다. 그 무엇보다도 우선 구약 교수인 필자가 요한복음에 올인하게 된 동기부터 말씀드려야 할 것 같다.

필자는 중고등학교 시절 미국 선교사님(감의도, E. Otto Decamp, 기독교 방송국 창설자)의 도움으로 공부하였다. 2004년 나이 50을 앞두고 선교의 빚을 갚는 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하여 대학(대전신대) 교수직을 내려놓고 카작(카자흐스탄) 선교사를 지원하였고, 카작 신학교 학장으로 내정되었다. 학교에서는 선교사 파송예배까지 드렸다. 2005년 3월을 기다리며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총회파송문제로 브레이크가 걸렸다. 총회 세계선교부에서는 그 신학교가 우리 교단(예장통합) 신학교가 되어야 한다고 하면서 총회파송을 받고 가라고 하고, 카작 선교회에서는 그 신학교는 우리 교단과는 관계없는 자체적인 신학교로 운영하겠다고 하면서 총회 파송을 받고자 한다면 내정된 학장직을 취소하겠다고 통보해 왔다. 그 와중에 꿈을 꾸었는데, 하나님은 선교사 가는 것을 중지하라는 분명한 사인을 보여주셨다. 그리하여 선교사 가는 것을 중지하고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자 했다. 그러나 앞서 학교측에서 사직서를 내라고 해서 사직서를 쓴 것이 문제가 되어 결국 교수직도 잃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맞게 되었다. 2-3개월 동안 있었던 사건의 전말을 경험하면서 필자는 학계와 교계에 큰 실망을 느꼈다.

이 상황에서 하나님은 필자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셨고, 2005년 3월 초에 제자 손태흥 목사가 시무하는 제천 감악산 <새생명전원교회>에서 40일의 긴 기도시간을 갖게 되었다. 15일 정도가 지난 어느 날 기도하던 중 갑자기 요한복음 11장 25-26절의 말씀이 계시처럼 다가왔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 말씀은 절망의 자리에서 필자로 하여금 부활의 나래를 펴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고, 요한복음 연구의 시발점이 되었다.

이 일이 있은 후 당시 목사고시를 앞두고 있던 손태흥 전도사가 필자에게 곧 목사고시 준비를 해야 하는데 새벽기도를 인도해 주셨으면 하는 부탁이 있어 응하였다. 그리하여 매일 새벽마다 요한복음을 가지고 22차례 말씀을 하였고, 곧 40일이 차서 산을 내려오게 되었다. 그러고는 감악산에서 했던 새벽설교를 책으로 엮어 2005년 6월경에 <<감악산의 두 돌판>>이라는 요한복음 강해서를 출간하였다. 그 후 백수처럼 지내던 2년 동안 계속해서 요한복음을 연구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고, 2년 후인 2007년 6월경 <<요한복음서 재발견>>을 출간하였다.

이 책을 낸 후 2007년 8월 총회파송을 받아 중국선교사로 가게 되었다. 청도(칭다오)에서 중국선교사로 있는 동안에도 요한복음 연구는 계속되었고, 2년 후인 2009년에 <<요한의 천재성: 상징코드>>라는 책을 출간하게 되었다. 이 책은 요한복음이 단지 예수의 전기를 말하는 책을 넘어 장르상 묵시문학에 속하는 책이라는 것을 제시한 책으로, 그 후에 나올 <<천하제일지서 요한복음>>이라는 책을 예비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 책이었다. 또 다시 3년 후인 2012년 10월경 마침내 950쪽에 달하는 <<천하제일지서 요한복음>>이라는 요한복음 연구서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이 책은 7년 반 동안의 연구와 기도의 결실이었다.

2013년 가을 신학교의 새학기를 시작하는 예배가 있었다. 예배가 끝난 후 타교단에 속한 선교사 내외분(도마샘 부부)을 만나게 되었다. 그분들과 함께 필자가 쓴 요한복음 저서를 가지고 성경공부를 하게 되었다. 필자가 요한복음을 비롯한 성경을 메노라와 다윗의 별로 풀어가는 것을 듣던 도마샘 사모께서 본인 소장하던 예루살렘에서 산 열쇠고리 기념품을 필자에게 선물로 주셨다.

그 열쇠고리는 두 개의 원으로 되어 있는데, 앞뒤로 돌아가는 중앙 원에는 지금부터 말하고자 하는 메노라와 다윗의 별 그리고 물고기 모양(익투스)이 세로로 연결되어 새겨져 있었다(그런데 자세히 보면 물고기 모양에는 물고기의 눈조차 아직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후의 기념품들을 보면 물고기의 눈이 들어간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바깥 원에는 GRAFTED IN ROMANS 11:19이 둥그렇게 돌아가며 새겨져 있었다.

그때부터 필자는 이 세 가지 형상이 갖는 의미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올해 1월 지도교수가 되어 성지순례를 갔다가 사해 근처 상점에서 일곱 등잔대와 받침 사이에 이 세 가지 형상이 그려진 메노라를 발견했다(물고기에 눈이 들어가 있음). 제법 크고 무거운 놋쇠로 된 메노라인데, 무려 200불이나 주고 샀다(남들은 필자를 잘 이해를 못하지만). 그리고 오랫동안 샬롬(영어 또는 히브리어로 쓰인) 글자가 새겨진 ‘메노라’와 ‘다윗의 별’을 찾던 중 마침내 베들레헴 근처 한 상점에서 발견하고는 급히 샀다(이 또한 남들은 잘 이해를 못하지만). 그리고 위에서 세 형상이 그려진 나무로 된 기념품도 하나 샀다.

그런데 이 세 형상이 새겨진 모습을 자세히 보면 거기에는 유대인의 상술이 교묘하게 깔려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메노라와 다윗의 별은 유대교의 상징이다. 그리고 기독교의 상징은 물고기(익투스)와 십자가이다.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성지순례를 오는데 그들에게 메노라를 팔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새겨 넣어야 할 텐데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이 분명하기에 그것을 넣을 수는 없고, 그래서 차선책으로 기독교의 또 하나의 상징물인 물고기 형상을 메노라와 다윗의 별에 접붙여 놓은 것이다. 그러면서 이것이 유대인의 반감을 사지 않기 위해 익투스의 헬라어 글자(ΙΧΘΥΣ, 예수께서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를 믿는 자에게 생명을 주는 구주라는 의미)를 빼고 물고기 형상만 새겨 넣은 것이다.

끝으로, <Dream 17 십자가> 로고를 보면 가로축 오른쪽에 <Dream 17>이 있다. 그것이 나오게 된 경위를 간단히 설명드린 후에 <Dream 17 십자가> 로고의 의미를 말씀드리고자 한다. 요한복음을 연구하던 중 21장에 나오는 ‘큰 물고기 153 표적’에 나오는 숫자 153의 의미는 무엇일까에 대해 오랫동안 의문을 가졌다. 결국 이 숫자는 단순히 실제 물고기 숫자인 문자적 의미를 넘어 묵시문학적 박해상황에서 사용된, 비밀언어인 상징적 의미를 지닌 게마트리아(수의 상징학)임이 분명하다는 사실에 도달했다. 그리고 완전수 두 개(10과 7)의 합수인 17과 관련된 숫자라는 사실에 깨닫게 되었다.

이를 신학저널 잡지인 <Canon & Culture> 지에 “숫자 17과 큰 물고기 153표적(요 21:11)의 의미”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투고하였다. 이 논문은 한국을 대표하는 성서학자들로부터 수작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마침내 2019년 봄호에 게재되었다. 따라서 필자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모든 숫자(가령, 17이나 153 등등)적 의미가 학적으로 검증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제 수의 상징적 의미를 살펴보자. 숫자 10은 구약을 대표하는 율법의 숫자이고 숫자 7은 신약을 대표하는 은혜의 숫자이다. 그리고 그 두 수의 합은 17이다. 십자가가 두 개의 축, 즉 세로축과 가로축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세로축을 구약이라 하고, 가로축을 신약이라고 하면 구약과 신약의 성취인 십자가(요 19:30)는 숫자로 표시하면 구약의 10과 신약의 7의 합수, 즉 17이 된다. 결국 십자가를 숫자로 표시하면 17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죽으신 지 사흘만에 부활하셨다는 의미에서 초대교회는 숫자 3을 부활의 숫자로 인식하였다(요 2:1; 20:1).

한편, 요한복음 21장 11절에 나오는 큰 물고기 153이 무슨 의미인지를 놓고 오랫동안 논쟁이 되어 왔다. 숫자 153의 의미에 대한 자세한 것은 필자의 논문을 참조하시고, 여기서는 간단히 말씀드리고자 한다. 복음의 두 축은 십자가와 부활이다. 이미 언급했듯이 십자가의 숫자가 17이고, 부활의 숫자가 3이라고 할 때 이 두 수의 곱수는 17×3=51이다. 여기서 필자는 숫자 153은 바로 복음의 두 축인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어진 51의 마방진(가로, 세로, 대각선이 합이 같은 수)이라는 사실에 도달했다.

숫자 153은 숫자 17을 가로 세 번과 세로 세 번 곱한 수, 즉 17×3×3=153이며, 이를 그림으로 숫자 17이 가로와 세로 각각 3개 곧 9개로 된 정사각형이 된다. 이는 곧 가로와 세로와 대각선의 합이 51인 ‘51의 마방진’으로 그려진다. 이 그림은 십자가 속에 또 하나의 십자가, 즉 숫자 17에 가로 3, 세로 3으로 된 또 하나의 십자가가 그 안에 들어간 형국이다. 마치 바퀴 안에 바퀴가 들어 있는 것처럼(겔 1:16). 결론적으로 요한복음 저자가 요한복음을 통해 보여주었던 복음의 두 축은 십자가와 부활이고, 제자들이 걸어가야 할 제자도는 바로 ‘부활신앙을 안고 십자가의 길로’를 153표적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요한복음의 숫자 17과 153의 수치적 의미는 이미 성경 첫 책인 창세기에서도 분명하게 들어나고 있다. 세 족장들의 나이를 인수분해하면 모두 숫자 17과 관련되어 있다(가령, 아브라함의 175세를 인수분해하면 7×5×5=175. 게마트리아에서 더하기와 곱하기는 서로 호환되는데, 따라서 7+5+5=17이 된다). 숫자 17의 중요성은 그리스도의 예표인 요셉이 17세 때 꿈을 꾸고 그 꿈이 성취되었듯이, 숫자 17의 상징인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꿈인 인류 구원이 성취되었다는 점에서 숫자 17은 꿈(Dream)의 숫자이다.

 

Q2. 아 그런 동기가 있으셨군요. 기독교적 중요한 세가지 상징들의 집합 로고라고 말할 수 있겠는데요. 좀 더 구체적으로 <Dream 17 십자가> 로고의 기독교적인 배경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박호용 교수 : 서구 기독교 역사상 가장 큰 비극과 불행은 기독교와 유대교의 갈등이었다. 이것은 십자군 전쟁 이후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갈등과는 비교가 안 되는 훨씬 더 근원적이고 심각한 갈등이었다. 유대교인들은 자기들만이 선민이라는 의식에 빠져 선민의식을 철폐한 예수를 거부했고, 기독교인들은 예배의 대상인 예수를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는 이유로 유대교인을 박해하는 데 몰두했고, 급기야 나치정권은 천인공노할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을 자행했다.

이러한 유대교와 기독교의 갈등은 신구약성경에 대한 이해나 하나님의 인류 구원의 섭리에 커다란 장애가 되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유대교의 상징물인 메노라와 다윗의 별, 그리고 기독교의 상징물인 십자가와 익투스는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가장 중요한 그림언어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신구약성경이나 세상과 역사를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종교의 갈등과 단절은 깊은 관련성을 지닌 이 네 상징물의 단절을 가져왔고, 그것이 지니고 있는 강력한 힘과 생명력을 상실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Dream 17 십자가> 로고는 구약과 신약, 이스라엘(유대인)과 새 이스라엘(이방인), 유대교와 기독교가 갈등이나 단절이 아닌 유기적 관계, 즉 연속성을 지닌 하나의 전체라는 틀 안에서 이해되고 사고될 때 그 본래적 참 의미와 생명력을 지닌다는 기본 전제로부터 시작된다. 로마서를 통해 바울 사도가 하고 싶었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9-11장에 들어 있다. 9-11장은 한 마디로 인류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장대한 섭리, 즉 역사철학(역사신학)이다.

먼저 참감람나무인 유대인이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되어 선민의 지위를 얻었으나 저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였고, 이에 구원의 순서가 바뀌게 되었다. 그래서 돌감람나무인 이방인에게 먼저 구원이 주어졌고 나중에 유대인들로 시기나게 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인류 구원 방식임을 역설하였던 것이다. 즉 하나님의 깊은 지혜와 신비는 유대교(유대인)와 기독교(이방인)가 서로 접붙임을 통해 만민 구원이라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경륜을 성취하는 데 있었다(롬 11:33-36)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돌감람나무에 속하는 기독교는 참감람나무인 유대교에 접붙임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돌감람나무가 열매(구원)를 얻은 것은 그 뿌리가 되는 참감람나무로 말미암은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앞에서 언급한 열쇠고리에 새겨진 성경 구절(로마서 11:19)은 그런 의미에서 유대교와 기독교의 연속성을 암시하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즉 뿌리(유대교)가 없는 열매(기독교)가 어디 있으며, 열매(기독교)를 맺지 못하는 뿌리(유대교)만 있는 나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신구약성경을 한 그루의 나무에 비유하면 열매에 해당하는 신약성경은 뿌리(토라)와 줄기(네비임)와 꽃잎(케투빔)에 해당하는 구약성경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뿌리에 해당하는 유대교의 경우 열매에 해당하는 기독교를 받아들이지 못함으로써 열매없는 미완성의 종교(복음을 모르는 율법에 머무름)로 전락했다. 그 반대로 열매에 해당하는 기독교가 그 뿌리를 잘라버리고 없어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부모를 모르는 자식이나 역사와 단절된 전설 또는 신화에 머무르는 격이 되어 역사적 의미를 상실한 채 생명없는 종교(책)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두 종교의 상징물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하나님은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통해 인류 구원의 완성을 보여주셨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예표인 ‘메노라와 다윗의 별’을 이미 신구약성경 속에 그림언어로 비밀스럽게 감추어두셨다. 가령, 계시록의 저자가 말하는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는 각각 다윗의 별과 메노라와 관계된 말로써, 기독교회와 관련시키고 있으며(계 1:20),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로 표현하고 있다(계 3:7).

이러한 사실을 잘 알았다면 메노라와 다윗의 별을 상징물로 갖고 있는 유대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그리고 예수에 대한 신앙고백을 담고 있는 익투스를 거부하는 불행한 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그 반대로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가 메노라와 다윗의 별을 성취했다는 사실을 기독교인들이 잘 알았다면 메노라와 다윗의 별에 대한 지나친 반감은 없었을 것이다.

 

Q3. 그렇다면 이런 상징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어떻게 연결 될 수 있을까요? 특별히 십자가와는 어떤 연관성을 가질 수 있나요?

 

박호용 교수 :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뜻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는 것이다(엡 1:10). 그리고 그 뜻을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셨다(요 19:30). <Dream 17 십자가> 로고 안에는 신구약성경에서 그림언어, 숫자언어, 문자언어로 표현된 다섯 개의 상징물이 있는데, 그것은 전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다(요 5:39).

온 세상을 비추는 빛의 상징(사 49:6; 요 8:12) 메노라,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메시아를 상징하는 다윗의 별(민 24:17; 마 2:2; 계 22:16). 예수께서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자 그를 믿는 자에게 생명을 주시는 구주라는 의미의 익투스(마 16:16; 요 20:31), 성경과 인류 역사와 자연 만물의 궁극적 목적(목표)인 하나님과 인간과 온 우주 만물의 평화를 말하는 샬롬(민 6:26; 요 20:26), 그리고 십자가의 숫자이자 모든 것의 성취를 말하는 꿈의 숫자 17(창 37:2; 요 1:1[헬라어 단어 17개]; 19:30), 이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으며, 그것을 예수 십자가가 온전히 성취하셨다. 따라서 예수 십자가는 다섯 개의 상징물 전부를 포괄하는 최고, 최후의 상징물이다.

이제 다섯 상징물을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주목해야  할 것은 <Dream 17 십자가> 로고의 중앙에 위치한 ‘다윗의 별’이다. 이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다윗의 별은 이스라엘의 상징이자 유대교의 대표적 상징이자 성경 전체를 이해하는 열쇠라고 할 수 있다. 그 까닭은 예수께서 다윗의 열쇠를 가진 분으로서(계 3:7), 그 예표가 바로 다윗의 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윗의 별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그리스도인들도 있다. 그러나 다윗의 별은 하나님이 일찍이 비밀리에 숨겨놓은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상징물이다.

우주창조와 성막창조가 다윗의 별 형상으로 되어 있다(3-3-1의 구조). 그리고 다윗의 별은 유대교와 기독교를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상징물이다. 우선 그리스도인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유다 지파인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분이다(눅 2:11; 마 1:1; 롬 1:3; 계 5:5).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근본적으로 다윗의 별과 관련이 있다. 예수께서 우주창조에 관여하신 분이자(요 1:2-3), 성막(성전) 자체가 되시는 분이다(성막의 일곱 기구와 상응하는 예수의 ‘일곱 에고 에이미 말씀’).

나아가 하나님이 인류 역사에 보여주신 최고의 암호상징은 ‘다윗의 별’(구약)인데, 그것의 성취가 바로 ‘십자가’(신약)이다. 그 까닭은 이러하다. 다윗의 별은 삼각형(△)과 역삼각형(▽)의 결합(△+▽)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십자가는 다윗의 별의 축약형, 즉 가로축은 다윗의 별의 삼각형, 세로축은 역삼각형에 해당한다. 따라서 다윗의 별의 성취가 바로 십자가인데, 우리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요 19:30)라는 말씀으로 ‘다윗의 별’을 온전히 성취하셨다.

 

A. 먼저, 다윗의 별을 중심으로 한 이 로고의 가로축부터 살펴보자. 이 로고의 가로축은 ‘십자가축’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 까닭은 이미 언급한 ‘다윗의 별’이 십자가를 예표하고 있고, ‘Shalom’ 어휘가 십자가의 의미를 밝히 드러내주며, ‘Dream 17’이 또한 제자도로서의 십자가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로고의 가로축의 왼쪽에 있는 <Shalom(샬롬)>은 다윗의 별을 통해 가장 완벽하게 표현되었다. 즉 7일간의 창조 세계는 여섯 날(1-2-3일과 4-5-6일)이 대칭구조로 주변을 형성하고, 제7일 안식일은 다른 여섯 날과 구별되는(거룩하게) 중심을 형성한다. 이를 그림으로 그리며 정확하게 다윗의 별 형상이다. 완전수 7의 구조로 된 다윗의 별 형상은 질서와 조화와 균형을 갖춘 가장 아름다운(완전한) ‘샬롬의 세계’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같은 샬롬의 세계가 깨어진 것은 중심에 계셔야 할 창조주 하나님(왕)과 주변에 있어야 피조물(인간과 자연)이 중심이 되겠다는 인간의 욕심에 근거한 자리바꿈(왕의 교체)으로 인해 샬롬의 세계가 파괴된 것이다. 이를 다시 샬롬의 세계로 바꾸어 놓은 것(왕의 교체)이 예수 십자가이다. 예수 십자가의 세로축은 하나님과 인간의 단절된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샬롬(화목, 평화)의 상징이고, 예수 십자가의 가로축은 인간과 인간, 또는 인간과 자연의 단절된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샬롬(화목, 평화)의 상징이다(엡 2:13-16).

한편, 이 로고의 가로축의 오른쪽에 있는 <Dream 17> 또한 십자가를 말하는 상징물이다. 그 까닭은 이러하다. 이미 언급했듯이 숫자 17은 두 완전수인 10과 7의 합수이다. 숫자 10은 구약을 대표하는 상징수이고, 숫자 7은 신약을 대표하는 상징수로써, 세로축과 가로축의 결합으로 되어 있는 십자가는 바로 이 두 수의 합수인 숫자 17로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숫자 17은 바로 십자가의 숫자이다. 그리고 숫자 17은 요셉이 꿈을 꾼 나이로써 꿈의 숫자이며, 죄인 된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영원한 꿈이 십자가에서 이루어졌다는 뜻에서 숫자 17은 꿈의 숫자이기도 하다.

B. 다음으로, 다윗의 별을 중심으로 한 이 로고의 세로축을 살펴보자. 세 상징물로 구성된 세로축은 ‘부활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까닭은 부활은 ‘생명과 빛’으로 상징되는데, 메노라와 다윗의 별과 익투스는 생명과 빛을 지닌 상징물이기 때문이다. 생명이 있어야 빛이 있고, 빛이 있어야 생명이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생명과 빛은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중앙에 위치한 다윗의 별은 ‘별빛’을 드러내는 생명체이고, 그 위의 메노라는 ‘등잔빛’을 드러내는 생명체이고. 그 아래의 익투스는 ‘눈빛’을 드러내는 생명체이다. 그리고 이 세 생명체는 땅(메노라), 하늘(다윗의 별), 바다(익투스)를 각각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주 전체를 상징한다.

한편, 이 세 상징물은 <중심과 주변>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미 언급한 다윗의 별은 중앙에 육각형이 있고, 주변에 여섯 개의 삼각형의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메노라는 중앙의 촛대를 중심으로 주변에 좌우 각각 세 개씩의 촛대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익투스는 몸통(중심)과 꼬리(주변)의 모습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중심과 주변을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속하는 것으로 중요도의 차이가 있음을 말하고자 함이다. 중심이 1차적이고 주변은 2,3차적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이 가장 아름다운 창조질서의 세계이다.

가령, 구약성경으로 말하면 토라(모세오경), 네비임(예언서), 케투빔(성문서)의 순서로 중요도의 차이가 있다. 또한 성지로 말하면 예루살렘, 팔레스타인 땅, 이방 땅으로 순서로 중요도의 차이가 있다. 이를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로 표현하면, 창조주 하나님은 중심이고, 피조물인 인간과 자연은 주변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을 중심의 자리에 위치시킨다는 것은 곧 신본주의(神本主義), 즉 하나님(그리스도) 중심주의를 말하는 것이다. 창조질서에 따리 중심과 주변이 올바로 정립될 때 샬롬의 세계가 이룩되는 것이고, 그 반대로 중심과 주변이 뒤바뀔 때 혼돈과 무질서가 빚어지고 우상숭배라는 죄를 범하게 되고 샬롬의 세계가 파괴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오늘 우리 시대는 모더니즘 시대의 특징인 분석과 경계를 넘어서 모든 것의 통합과 통섭을 지향하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시대이다. 우리 주님은 모든 것의 경계와 장벽을 허물고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된 세계를 말씀과 행동으로 보여주셨다(가령, 요 4장의 예수와 사마리아 여인과의 만남). 그런 의미에서 우리 주님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이시다. 이제 모든 분야에서 통합(통섭)을 지향하는 방향(통합신학, 통합의학 등)으로 나아간다고 할 때 <Dream 17 십자가> 로고는 모든 크리스천들의 궁극적 목표(목적)인 십자가(고반 2:2)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재고하는 좋은 상징물(로고)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Q4. 교수님이 <Dream 17 십자가>를 제작하신 의도를 이제 분명히 알겠습니다. 앞으로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신앙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봅니다. 마지막으로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하실 말씀은요?

 

박호용 교수 : 성도에게 모든 능력은 십자가에 있습니다. 로마시대 끔찍한 사형틀이 구원의 능력이자 상징이 된 것은 이미 태초부터 하나님의 인류구원의 설계 속에 십자가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십자가를 더욱 사랑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 시대 십자가를 많은 사람들이 하나의 상징이나 조형물 혹은 일반적인 로고 정도로 대하고 있어요. 그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십자가의 상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Dream 17 십자가>는 2000년 기독교 역사를 통해 우리 믿음의 조상들이 품은 신앙의 상징의 연속선상에서 나온 작품입니다. 즉, <Dream 17 십자가>를 잘 이해하면 우리들의 기독론적인 믿음이 더욱 든든한 기반을 갖게 되는 것이지요. 저는 이 <Dream 17 십자가>가 많은 성도들에게 기도생활, 묵상생활 뿐만 아니라 신앙생활 전반에 반석이 되는 선한도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신앙의 유레카는 모든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윤홍식 기자  jesuspoin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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