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발행인칼럼
[발행인 서평] 『기독교인이 부자 되는 비결』 안드리아스 휴브너 지음부자냐? 가난이냐?
  • 발행인 최원영목사
  • 승인 2019.06.21 06:22
  • 댓글 0
  • 조회수 642

금주에 흥미로운 책을 읽었다. [『기독교인이 부자 되는 비결』, 안드리아스 휴브너 저, 임은묵 옮김]이다. 삶이 어려웠던 곤궁한 시절에 던지는 테마로는 매력적인 제목이다. 그러나 3만 불 시대, 5,181만 1,167명 세계 28위(2019년 통계청 기준) 인구를 가진 나라, 대한민국 GDP는 세계 11위 1조 7000억 달러의 나라에서 얼마나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을까 하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중에 가난의 어려움에서 허덕이는 고난의 세월을 보내는 분들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중에는 물질의 부요함으로 더 이상 신의 축복을 기대하지도 않고 살아가는 부류도 많다.

이제는 주님이 더 이상 내 삶속에 개입하지 않고 지켜만 보면 된다는 신앙적 노선을 지향하는 적당주의 그리스도인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그러나 세대를 뛰어넘는 진정한 복은 주님이 주시는 것이다. 주님이 하늘 문을 열고, 복을 부어주시면 놀라운 기적을 창조한다. 그 기적의 소산물을 함께 이웃과 더불어 나눈다면 땅끝 선교가 더 속히 올 것이다.

책을 읽어가면서 느끼는 것은 신학의 한 면을 부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회는 두 기둥인 영광의 신학과 고난의 신학으로 존재한다. 과거 절대 다수가 핍박과 빈곤과 질병의 고통 가운데 살았던 것이 근현대사의 현실이었다. 그때는 영광의 신학이 성도들을 위로했다. 오늘날 영광의 신학이 주류를 이루면서 번영 신학이 믿음의 성공 지표가 되었다. 물질의 복을 받으면 성공한 사람이고 믿음의 사람이라는 등식으로 연결되었고, 물질의 복을 받지 못하면 믿음에 실패한 사람으로 낙인을 찍는 어쩌구니 없는 잣대를 그어왔다. 번영의 잣대가 한국교회의 암적 역할을 하는 기복주의 신앙으로 전락하고 있다.

오늘 한국교회가 다시 회복해야할 것은 고난의 신학이다. 예수의 이름이 곧 능력이고, 예수의 이름을 선포하고, 주의 나라를 위해 물질을 내려놓고, 시간과 재능을 주님께 헌신하는 고난의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고난의 신학, 십자가의 신학이 점 약화된 부분이 있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담임, 변화산기도원협력원장, 본헤럴드대표, 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기독교인이 부자되는 비결”이란 책을 읽으면서 번영신학에 초점을 맞춘 느낌이 들었다. 저자는 제3세계 나라를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제 3세계 나라들이 처한 상황은 거의 비슷하다. 가난, 질병, 알콜 등으로 어둠에 갇혀있는 삶의 자리를 회복하기 위해서 부요하신 하나님을 강하게 전했던 것 같다. 참으로 귀한 지침서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아주 좋은 혜안을 던져준다.

이 책의 장점은 삶의 고난 가운데 희망을 잃고 사는 분들에게는 바라봄의 빛이 될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읽고 다시 부요하신 하나님을 발견하기를 기대한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 놀라운 복을 받은 분들은 세상에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내려놓는 길을 걸어간다면, 이 땅에 주님이 부요하심의 복이 흘러넘칠 것이다.

 

◐주님은 빚, 외상, 가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실까?

속 첫 표지에 등장하는 글은 상당히 강력한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다. 인간의 삶을 족쇄로 채우는 빚, 질병, 가난, 죄악을 주님의 이름으로 묶는 기도로 시작한다.

 

『사탄아, 내 인생을 지배하던 가난과 부채의 굴레가 오늘 부러졌음을 네게 상기시킨다.

나는 빚이 없으며, 빚 없는 삶을 살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내 물질의 주님이시다.

여호와의 희년이 오늘 시작되었다.

흘리신 보혈로써 너를 이기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노라.

마귀와 죄악과 질병과 저주와 가난과 부채의 세력들을 예수의 이름으로 파쇄하노라.

마귀와 죄악과 질병과 저주와 가난과 부채의 세력들을 예수에게 전가합니다. 아멘!

◐성경구절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전5:19)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시118:25).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있으리로다”(시112:1-3).

“너희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마6:33).

 

부요와 재물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가난은 사탄의 선물, 부요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질병은 마귀의 선물, 평강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가난은 전염병과 같습니다. 사탄은 내가 보았던 모든 곳의 개인과 가족과 모든 교회를 ‘가난 바이러스’에 전염시키려 하고 있었습니다. 세계의 수다한 가정에는 가난이 문자 그대로 삶의 방식이 되어 버렸습니다.”

“필요한 물질이 충당되지 않고서는 절대로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선교사입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 매달 수만 달러를 씁니다. 세상은 어둠에 쌓여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어두움은 점점 깊어가고 있습니다. 들판은 추수 때가 되어서 희어졌습니다. 하지만 추수를 하려면 물질이 투자되어야 합니다. 당신이 가난하게 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지금은 하나님이 주시는 물질의 복을 받을 때이다

“하나님을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이다”(잠22:4).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다”(시34:9). “경외”라는 히브리어는 “yare”인데, “존중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이다. 그분의 말씀을 존중하므로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보상으로 재물과 영광과 생명을 주신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부족함이 없이 채워주신다. 어떠한 것도 “자동적으로” 받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영혼 깊이 스며들어야 한다.

 

주고 받음의 법칙울 따르라

당신의 부요는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게 돈을 얼마나 주느냐에 달려 있지 않다. 당신의 부요는 당신이 얼마나 베푸는가에 영향을 받는다. 당신이 베풂은 장차 당신이 받을 복을 측량하게 해준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6:38).

 

◐심는대로 거두는 법칙을 따르라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6:7).

심는 것을 거두는 것이 성경의 원리이다. 너무 간단하지 않는가? 당신은 항상 심는 것의 갑절을 받을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심든지(사랑, 온유, 헌금, 선행, 곡식, 물질 등) 하나님은 우리가 심는 씨보다 훨씬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역사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영혼육과 범사에 복을 주신다

사람은 영적 존재이다. 사람은 혼을 소유하며, 그 혼은 육체에 거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과 혼과 육을 복되게 한다. 구원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포함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1:2).

본푸른교회 담장: 20년동안 정성스럽게 길러온 머루넝쿨, 너무 많은 열매를 맺었네요

◐옥토에 씨앗을 많이 심어라

옥토에 씨를 심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어느 곳에 물질을 심기를 원하시는 성령님을 통해 말씀해 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비옥한 땅에 심어야 한다. 그래야 물질이 헛되지 않는다. 우리가 복음 사역에 물질을 씨앗을 심을 때마다 항상 기적의 추수에 대한 폭발적인 믿음의 기대를 가져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결코 물질의 씨앗을 심으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드릴 것이 매우 작기에 심어봐야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물질의 씨앗이라도 그것을 심는 것은 절대로 쓸데없는 일이 아니다. 당신이 소유한 씨앗을 심기 시작하라. 그러면 당신의 재산이 증가할 것이다. 하나님은 오로지 심겨진 씨앗을 통해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 그분은 창고에 쌓여 있는 씨앗을 통해 열매 맺게 하시지는 않는다.

 

믿음으로 기도하라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요16:23). ‘무엇이든지’라 함은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주신다는 말씀이다.

성경은 우리의 “풍성한 삶의 계약서”이다. 예수님은 그분의 피로 이 계약서에 서명하셨다. 계약서란 서로 약속을 지킬 때 유효하다. 우리가 믿음의 발을 내딛고, 물질로 주님의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면 주님이 넘치도록 복을 주실 것이다.

당신이 베푸는 자가 되지 않고서는 풍성한 삶을 살 권리가 없다.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그분에게 물질을 드리지 않고서는 절대로 부요와 재물을 얻지 못할 것이다. 당신은 마치 주머니에 구멍 난 상태로 살아갈 것이다. 돈을 저축할 때마다 어떤 사건이 터져서 그것을 수습하기 위해 돈을 써야 할 것이다.

 

◐십일조는 사랑과 축복의 약속이다

말라기에는 하나님이 자신을 ‘시험’보라고 했다. 십일조와 헌물(헌금)을 드리면 하늘문을 여시고 큰 복을 쌓을 곳이 없을 정도로 부어주신다고 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큰 복이다

하나님 나라에 심는대로 엄청난 양을 추수할 것이다. ‘나와 복음을 위하여’(막10:29,30) 헌신한 자는 현세에 백배의 복을 받는다고 했다. 천국에서 백배를 받는다고 말하지 않았다. 성경을 곡해하지 말라. 바보 같이 성경을 왜곡하지 말라. 천국에서는 오히려 백 만배를 받게 될 것이다.

우리가 처한 환경들이 나로 하여금 ‘지금’은 줄 때가 아니라는 말을 하지 않도록 하라.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못할 것이요 구름을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못하리라”(전11:4). The Living Bible은 다음과 같이 번역한다. “만일 네가 완벽한 상황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면, 절대로 아무것도 이룰 수 없을 것이니라.”

만일 상황을 봐가면서 드린다면, 필경 아무것도 드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 결과는 아무것도 거두지 못할 것이다. 비록 드릴 것이 많지 않아도 여전히 소유한 것 중에서 일부를 드릴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씨앗까지 먹어버릴 것이다.

◐부채의 견고한 진을 파쇄하라

부채는 마귀의 멍에이다. 부채의 영과 죽음의 영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다. “부채의 영에 사로잡힌 많은 그리스도인이 나에게 말하기를 오히려 그들이 태어나지 않음만 못하다고 말했다.”

부채의 영은 세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 첫 얼굴은 외상이다. 둘째 얼굴은 부채이다. 셋째 얼굴은 가난이다. 외상은 너무도 쉽게 당신을 빚더미에 않도록 하며, 빚은 거의 자동적으로 당신을 가난의 늪으로 끌고 들어간다. 당신이 사람들에 빚을 졌기 때문에 누군가가 당신의 인생을 지배하게 된다.

당신이 빚을 지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또한 당신에게 빚진 자들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님의 은혜로 복을 받은 당신이, 당신에게 빚진 자들을 놓아주어라. 이것이 성경의 원리이다.

 

발행인 최원영목사  jhonchoi@hanmail.net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발행인 최원영목사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