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7일 화재로 향기로운은혜교회(구태극 목사) 사택이 전소되었다.

고 구하경 양은 지난 6월 21일 대구전문장례병원 102호에서 호산나교회 집례로 발인예배를 드리고, 명곡공원에서 화장을 한후 청평추모공원에 안치되었다. 

지난 6월 7일 화재로 향기로운은혜교회 구태극 목사의 사택이 전소되고, 사모와 두 딸이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 구목사가 새벽기도 준비로 나간 사이에 발생한 화재로 셋째 딸은 20% 화상을 입고 입원 중에 있으며, 조은미 사모는 50% 화상을 입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이다.

피해가 가장 심각한 첫째 딸 구하경 양은 화재 당시 4층에서 추락해, 척추골절과 대퇴부 골절을 비롯해 전신 3도 화상 80%로 생명이 위독한 상태로 2주간을 잘 버티다가 지난 6월 19일 오전에 소천되었다.  

다음은 구하경 양 오빠가 대답없는 동생 하경에게 보낸 눈물의 편지 전문이다. ( )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첨가한 것이다.

“하경아, 너와 함께한 마지막 2주는 길었다. 하루는 24시간인데 왜 나는 24시간이 지난 지금도 눈이 떠져 있을까.(네가)이렇게 2주를 버틴 것도 기적이래. 보통 3일 만에 다 하늘나라에 간다는데, 너와 마지막 8시간을 함께 할 수 있어서 끝까지 버텨주어서 준비할 시간을 주어서, 이렇게 마지막을 함께 해주는 수많은 친구, 지인들이 기도해주는 가운데 가서 다행이야.(고마워)

(오빠가)안 울려고 했는데 차가운 마지막 네 모습 보니까 눈물이 나더라. 오빠가 어른이고 맏이로서 안 울고 가족들 챙겨야 하는데 오빠는 아직 어른이 덜 됐나봐. 아직도 내 인생에 이런 일이, (불행한)사고가 생길 줄 몰랐어. 왜 하필 우리였을까, (그리고)그 많은 시간 중에 왜 하필 새벽이었을까 모든 게 원망스럽고 화가 난다.

오빠로서 아무것도 할 수도 (없고)알 수도 없던 나의 신분과(군인) 처지가, 이때 동안(지금까지 그동안) (너에게)해주지 못했던 것 모든 것들이 한 편의 장면으로 다 스쳐 지나간다. 내가 집에 있었더라면 더 나아졌을까.(혹 너를 구할수 있었을까)

(너를)한 번도 이쁘다고 해준 적 없고 못된 오빠로 용돈, 생일 선물 크게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고 나만 챙기기에 급했던 내 동생으로 (네가)태어난 것이 너무 미안해서 눈물만 난다. 덤벙덤벙했던 너는 왜 지금에서야 내 눈에 이뻐 보일까.

너는 계속 못생겨야 하는데 지금에서야 사진 속의 너는 너무 이뻐 보인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는 그때 (화재났을때)왜 재빨리(집밖으로) 나오지 않았냐며 화도 나고 원망하기도 했지만, 너도 사정이 있었겠지.

타버린 집에 저녁에 혼자 너가 뛰어내린 그 자리 앞에 섰을 때, 그 뜨거운 불길 속에서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결국 뜨거움에 몸이 타면서 뛰어 내렸을 때 (너는)얼마나 무서웠을까(4층에서) 떨어졌을 때 (너는)얼마나 외롭고 아팠을까.

네가 (중환자실에)누워서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고 타버린 몸과 입술을 볼 때 오빠는 미안하고 가슴이 먹먹해서 그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 드라마에서 가슴 치며 우는 게 약간은 이해가 되더라. 그 시간에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너무 원망스러운 하루하루였어.

이럴 줄 알았으면 휴가 때 (우리)가족끼리 여행이라도 많이 다닐걸, 오빠가 군대에 가고 난 2년 가까이 (하경)동생이랑 한 추억은 사진 한 장도 없다. 그저 너를 때리고 혼내고 욕했던 기억이 마지막까지 나를 너무 힘들게 괴롭힌다. (네가)아직 성인도 안됐는데 얼마나 이쁜 날들이 (많이)남은 너에게 하늘은 왜 이런지 원망스럽다.

하경아 하늘에서 천국에서 하나님 옆에서 행복하게 있어야 해. (그리고)2주 동안 버텨줘서 엄마 아빠 그리고 오빠와 동생들 그리고 친구들과 많은 사람이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줘서 고마워. 마지막으로(너와) 말 한마디 나눠보고 싶었는데(너는) 대답이 없네. (내)가슴이 너무 먹먹하고 답답해. 오빠가 너무 너무 미안해. (하경아)이제 아프지 말고 나중에 천국에서 보자.

(하경이)너는 우리 집의 기쁨이었다. 처음으로 그리고 앞으로 계속 사랑해 오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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