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뉴스 개교회
하경아, 이제 아프지 말고 나중에 천국에서 보자.지난 6월 7일 화재로 향기로운은혜교회(구태극 목사) 사택이 전소되었다.
  • 최미리 기자
  • 승인 2019.06.22 08:13
  • 댓글 0
  • 조회수 1,424

고 구하경 양은 지난 6월 21일 대구전문장례병원 102호에서 호산나교회 집례로 발인예배를 드리고, 명곡공원에서 화장을 한후 청평추모공원에 안치되었다. 

지난 6월 7일 화재로 향기로운은혜교회 구태극 목사의 사택이 전소되고, 사모와 두 딸이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 구목사가 새벽기도 준비로 나간 사이에 발생한 화재로 셋째 딸은 20% 화상을 입고 입원 중에 있으며, 조은미 사모는 50% 화상을 입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이다.

피해가 가장 심각한 첫째 딸 구하경 양은 화재 당시 4층에서 추락해, 척추골절과 대퇴부 골절을 비롯해 전신 3도 화상 80%로 생명이 위독한 상태로 2주간을 잘 버티다가 지난 6월 19일 오전에 소천되었다.  

다음은 구하경 양 오빠가 대답없는 동생 하경에게 보낸 눈물의 편지 전문이다. ( )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첨가한 것이다.

“하경아, 너와 함께한 마지막 2주는 길었다. 하루는 24시간인데 왜 나는 24시간이 지난 지금도 눈이 떠져 있을까.(네가)이렇게 2주를 버틴 것도 기적이래. 보통 3일 만에 다 하늘나라에 간다는데, 너와 마지막 8시간을 함께 할 수 있어서 끝까지 버텨주어서 준비할 시간을 주어서, 이렇게 마지막을 함께 해주는 수많은 친구, 지인들이 기도해주는 가운데 가서 다행이야.(고마워)

(오빠가)안 울려고 했는데 차가운 마지막 네 모습 보니까 눈물이 나더라. 오빠가 어른이고 맏이로서 안 울고 가족들 챙겨야 하는데 오빠는 아직 어른이 덜 됐나봐. 아직도 내 인생에 이런 일이, (불행한)사고가 생길 줄 몰랐어. 왜 하필 우리였을까, (그리고)그 많은 시간 중에 왜 하필 새벽이었을까 모든 게 원망스럽고 화가 난다.

오빠로서 아무것도 할 수도 (없고)알 수도 없던 나의 신분과(군인) 처지가, 이때 동안(지금까지 그동안) (너에게)해주지 못했던 것 모든 것들이 한 편의 장면으로 다 스쳐 지나간다. 내가 집에 있었더라면 더 나아졌을까.(혹 너를 구할수 있었을까)

(너를)한 번도 이쁘다고 해준 적 없고 못된 오빠로 용돈, 생일 선물 크게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고 나만 챙기기에 급했던 내 동생으로 (네가)태어난 것이 너무 미안해서 눈물만 난다. 덤벙덤벙했던 너는 왜 지금에서야 내 눈에 이뻐 보일까.

너는 계속 못생겨야 하는데 지금에서야 사진 속의 너는 너무 이뻐 보인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는 그때 (화재났을때)왜 재빨리(집밖으로) 나오지 않았냐며 화도 나고 원망하기도 했지만, 너도 사정이 있었겠지.

타버린 집에 저녁에 혼자 너가 뛰어내린 그 자리 앞에 섰을 때, 그 뜨거운 불길 속에서 아무도 도와주지 않고 결국 뜨거움에 몸이 타면서 뛰어 내렸을 때 (너는)얼마나 무서웠을까(4층에서) 떨어졌을 때 (너는)얼마나 외롭고 아팠을까.

네가 (중환자실에)누워서 얼굴도 제대로 보이지 않고 타버린 몸과 입술을 볼 때 오빠는 미안하고 가슴이 먹먹해서 그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 드라마에서 가슴 치며 우는 게 약간은 이해가 되더라. 그 시간에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너무 원망스러운 하루하루였어.

이럴 줄 알았으면 휴가 때 (우리)가족끼리 여행이라도 많이 다닐걸, 오빠가 군대에 가고 난 2년 가까이 (하경)동생이랑 한 추억은 사진 한 장도 없다. 그저 너를 때리고 혼내고 욕했던 기억이 마지막까지 나를 너무 힘들게 괴롭힌다. (네가)아직 성인도 안됐는데 얼마나 이쁜 날들이 (많이)남은 너에게 하늘은 왜 이런지 원망스럽다.

하경아 하늘에서 천국에서 하나님 옆에서 행복하게 있어야 해. (그리고)2주 동안 버텨줘서 엄마 아빠 그리고 오빠와 동생들 그리고 친구들과 많은 사람이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줘서 고마워. 마지막으로(너와) 말 한마디 나눠보고 싶었는데(너는) 대답이 없네. (내)가슴이 너무 먹먹하고 답답해. 오빠가 너무 너무 미안해. (하경아)이제 아프지 말고 나중에 천국에서 보자.

(하경이)너는 우리 집의 기쁨이었다. 처음으로 그리고 앞으로 계속 사랑해 오빠가.”

최미리 기자  voheassa@naver.com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미리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