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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대담】 총신대 이재서 총장 “내 길을 지도하신 하나님”“예수님 만난 후 나의 삶이 완전히 바뀌어”

심층대담

최근 취임한 총신대(서울 사당동) 이재서 총장에 대한 사회적 관심뿐만 아니라 교계의 관심과 기대가 크다. 이미 수많은 언론을 통해 알려졌지만, 본헤럴드는 독자들의 요청과 관심에 따라 총신대 이재서 총장을 인터뷰하며 그를 새롭게 소개해본다.

▶대담자 : 이재서 총장(총신대학교), 최원영 대표(본헤럴드 대표, 본푸른교회 담임목사)

▶일시 및 장소 : 2019년 6월 21일 오후 2시, 총신대학교 총장실

▶동행취재 : 최장일 편집국장, 윤홍식 웹본부장

Q1. 먼저 지난 4월 13일 총신대 재단이사회를 통해 만장일치로 총장으로 선출되고, 지난달 취임식까지 바쁜 일정을 소화하시느라 수고했을 텐데 다시금 진심으로 축하한다. 또한 바쁜 일정인데 시간을 내 주심을 감사드린다. 이번에 재단이사회에서 예상을 깨고 만장일치로 총장에 취임하신 소감은 무엇인가?

A. 무엇보다 감사하다. 이번 결과는 기적이었고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말 밖에 표현할 길이 없다. 내 개인적인 자질이나 역량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지난해 12월 초에 총신대 총장 후보로 나갈 뜻을 최종 결심하고 지원했지만 그때만 해도 ‘설마 내가 될까?’하는 생각뿐이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총장 후보로 등록하신 열 한 분들은 모두 존경스러운 분들이었고, 자질도 충분하셨다. 이후 추천위원회를 통해 11명 중에서 7명으로 추려질 때 1등이 되었다는 결과를 들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여전히 마음에 기대하는 마음은 없었다. 그리고 3명으로 압축되고 다시 또 2명으로 압축될 때마다 1순위로 나왔다. 결국 2명으로 압축되고 마지막 3차 심층면담을 거쳐 최종적으로 10명의 이사들 중에서 8표를 얻어야 하는 과정에서 놀랍게도 10명 만장일치로 총장이 된 것이다. 그때 내 입에서는 오직 “이건 하나님이 하셨어. 하나님이 하셨어” 말만 나올 뿐이었다. 사실 모든 이사들도 예상 밖의 결과에 놀랐다. 무엇보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모든 분들께 감사한다.

 

Q2. 이재서 총장의 총신대 총장 취임은 사회적으로도 큰 관심을 일으켰다. 그 어느 대학의 총장 취임보다 더 사회적인 관심을 일으킨 것은 아마도 이재서 총장의 총신대 총장 취임은 ‘최초’라는 단어나 ‘극복’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를 불러일으키지 않았나 싶은데, 이미 들은 말대로 ‘시각장애인 최초 대학교 총장’이라는 평가나 ‘총신대 최초 비 신학계열 총장’이라는 이런 결과가 가능한 힘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나는 나의 인생을 180도로 바꾼 것은 예수님을 영접한 사건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이번에 총신대 총장이 된 모든 과정이나 평가도 그렇다. 얼마 전 나를 잘 아는 어떤 권사님이 총장이 되었다는 소식에 울었다고 했다. 장애인이 모든 상황을 극복하고 총장이 되었다는 사실이 사람들을 많이 놀라게 한다. 더구나 장애 중에서 치명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각장애를 안고 있어서, 주변 많은 사람들이 감동도 되고 도전도 주는 것 같다. 이것은 오직 내가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Q3. 흔히 총신대의 골든타임 때 이재서 총장님이 총장이 되었고, 이 시기에 가장 적합한 총장이라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총신대의 골든타임 때 총장이 되었다는 표현을 들을 만한 상황이라고 공감한다. 우리는 교육부의 평가 문제나 학교 구성원의 갈등 문제 등 가장 심각한 상황에서 총장이 되었다. 물론 총신대로서는 밑바닥까지 내려온 상황이기 때문에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희망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위기상황이라는 현실인식을 놓치지 않고 있다. 실제로 어려운 시기에 또다시 입학정원 감축 문제가 있고, 대학 종합평가를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도 있다. 평가를 받기 위해서는 교수 충원율도 높여야 하는데, 현재는 적합한 기준의 50% 밖에 되지 않는다. 총장으로 나도 지속적으로 학교를 살리는데 후원하는 모범을 보일 생각이다.

 

Q4. 총장님은 장애를 극복하고 한국밀알선교단을 조직하고 그 선교단을 세계밀알연합으로 확장했으며, 총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에 복지대학원 원장,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상임고문 그리고 오늘에 총신대학교 총장까지, 지난 삶이 많은 사람들에게 도전을 주고 있다. 물론 숱한 어려움도 많았겠지만, 그래도 남다른 도전 정신을 보여준 원동력이나 동기는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나?

A. 1973년도에 시각장애인학교 3학년 때 나는 대학 진학이냐? 취업이냐? 하는 진로 문제를 앞두게 되었다. 그러다가 1973년 5월 31일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빌리그래함 전도 집회를 통해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고, 빌리그래함 목사님의 설교는 나에게 엄청난 변화를 일으켰다. 나의 가치관의 뒤집어졌다. 그전까지는 모든 것이 부정적이었던 나였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끝까지 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내 인생의 원동력은 신앙이며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이다.

밀알선교단도 마찬가지다. 장애인의 문제는 절박하고 가슴이 끓는 일이다. 열심히 안 할 수가 없다. 싫어도 힘들어도 피곤해도 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다 쏟는 부모의 마음으로 일해 왔다.

Q5. 총장님은 선천적인 장애가 아닌 후천적인 장애로 인해서 가족이 겪었을 아픔도 클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가족의 아픔이 청소년 시절 더 큰 아픔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A. 그렇다. 청소년기에 갑작스러운 시력상실은 부모님 입장에서도 엄청난 고통이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내가 시각장애를 갖게 되자 ‘차라리 다리가 2개 없는 것이 낫지 않는가? 왜 하필 눈이 안 보이게 됐냐?’ 그만큼 절망하면서 고통스러운 심경을 나에게 쏟으셨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 장애인 한 명이 있으면 그 가정이 모두 다 어려워졌다. 더구나 갑작스럽게 장애가 되었기 때문에 모두 다 힘들어졌다.

내가 실명된 후 어머니는 나 때문에 늘 마음 아파하셨다. 그러던 1975년 회갑을 1년 앞두고 뒤늦게 위암을 발견했다. 예전에도 내 일로 아파하셨지만 위암 말기를 발견한 그해 가을 미쳐 손쓸 겨를도 없이 하늘나라도 돌아가셨다. 나로 인해 어머니가 그런 일을 당하셨다는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Q6. 그 힘든 청소년기와 젊은 시절을 지나며 위로받고 격려를 준 사람은 있지 않나?

A. 1968년 서울맹학교를 중등부 1학년에 입학을 하게 됐다. 하지만 중학교에 입학한다는 기쁨이나 기대감보다는 앞이 안 보이는 장애인 자녀를 그냥 집안에 둘 수 없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학교에 들어갔다. 그렇게 그 학교를 중등부와 고등부 6년을 다녔지만 학교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도 못하고 가장 침울한 모습으로 학교를 다녔다. 물론 좋은 선생님도 좋은 친구도 만났다.

대학 입학할 때도 그랬다. 총신대에 입학부터 시각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접수 거부당했다. 형은 계속해서 접수해 줄 것을 부탁했지만, 학교는 끝까지 거부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학교의 모든 방침에 따르겠다는 조건부 입학을 허락받고 등록금을 준비할 일이 남았다. 하지만 등록금이 쉽게 준비되지 않았다. 결국 등록 마감일이면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날 아침 일찍 형은 총신대 입학을 포기할 것을 말했다. 입학이 문제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졸업할 때까지 대학을 다니게 될 텐데 그것을 어떻게 다 뒷바라지하느냐는 논리로 계속 종용했다. 잠깐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지만, 나는 나의 뜻을 분명히 했다. 결국 입학 원서 접수보다 더 진통을 치르며 등록을 마쳤다. 예상처럼 대학 생활이 힘들었다.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많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했다.

총신대를 다니면서 대흥제일교회 청년들을 맡아 성경공부를 시작했고 그 청년들과 시각장애인 시설을 돕는 봉사단을 꾸리면서 “밀알선교단”이 태동하게 되었다.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거치면서 고마운 분들이 없진 않았지만, 나는 내 삶의 도움은 오직 절대자 하나님이심을 고백한다.

 

Q7. 한국밀알에서 세계밀알연합로 성장하게 된 배경도 그때쯤 인가?

A. 밀알선교단을 만들고 5년 간 급성장했다. 하지만 밀알선교단을 통한 장애인 선교 사역을 하면서 두 가지 고민이 생겼다. 그것은 성경적인 지식만 가지고는 장애인 선교 사역에 한계가 있다는 것과 세계적인 장애인 선교 기구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에 1984년 나 스스로를 미국 유학길로 몰았다. 주변의 반대가 심했다. 이제 자리 잡은 밀알선교단이 내가 떠나면 무너지고 말 것이라는 만류와 미국 유학은 건강한 사람도 힘든데 장애를 가진 사람이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반대가 거셌다. 하지만 미국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각오를 세워 미국 유학을 감행했고 결국 미국 PCB(Philadelphia College of Bible) 기독교사회복지학과 3학년에 편입한 후 1986년 5월 PCB를 졸업했다. 이어 템플대 사회복지대학원, 92년 6월 럿거스대 사회복지대학원에서 사회복지정책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마쳤고, 미국 생활을 하는 10년 간 미국밀알을 설립하고, 1994년 유학 온 지 10년 만에 귀국 후 총신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임용됐다.

Q8. 총신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하였으니 총신대 구성원들과의 소통과 화합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오랜 교단과의 갈등으로 아픔이 많은 총신대 구성원들을 화합하는데 총장으로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총신대는 학생수가 4000명에 교직원도 300여 명이 있지만, 총신대의 가치는 사이즈에 있지 않다. 총신대는 장로교단 합동 측의 300만 성도의 산실이다. 그런 중심점에 총신대가 서 있다. 사실 일반대는 동문들을 크게 염두하지 않지만, 총신대는 동문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교단 내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포용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총장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를 위해 이미 밝힌 공정, 투명, 소통의 3가지 원칙을 준수할 것을 다짐하고 있다.

Q9. 총신대는 교회와 사회의 중간지점에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총신대가 갖는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A. 나는 총신대를 말하기 전에 먼저 기독교인은 사회에 대한 무한 책임이 있다고 본다. 그 책임은 먼저는 선교적 책임이다. 이를 위해 기독교인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본이 돼야 한다. 또한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보듬어야 한다. 총신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총신대 졸업생들이 그런 의식을 가지고 세상에 나가 선교적인 생각으로 무장해서 삶의 본이 되는 사람, 약자들을 대변하고 보듬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란다.

Q10. 총장으로 학교를 경영하는 데 있어서 당면 과제들이 있다고 본다. 총신대의 재정자립문제나 기숙사 재건축 등을 어떻게 구상하고 있는가?

A. 당연히 총장의 위치에서 현실적인 관심은 재정자립의 부분이다. 물론 주변에서 많이 협력해주면 좋겠지만, 무엇보다 총장인 내가 나의 삶을 보고 자발적인 협력이 이루어지도록 하겠다. 또한 지어진지 45년 된 낙후된 기숙사도 총신대 발전을 가로막는 요소이다. 이를 위해 행복기숙사 등 많은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Q11. 총신대가 갖는 개혁주의 신앙을 유지하면서도 오늘날 사회적인 이슈들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갖고 있나?

A. 이미 총신대는 개혁주의 신학에 있어서 탁월한 신학적인 식견을 가진 교수들이 많다. 개혁주의는 사상이나 이론이라기보다는 굉장히 현장 중심적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동성애 문제는 신학적인 문제가 아니다. 동성애는 성경적으로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위배되는 것이다.

 

Q12.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말씀과 찬송가는 무엇인가?

A. 나는 잠언 3: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는 말씀을 언제나 묵상한다. 이 말씀은 나의 지나온 모든 삶에서 미국 유학 생활에서 그리고 앞이 안 보이는 현재 총신대 총장의 상황에서 내가 계속 붙잡을 말씀이다.

찬송가는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통 492장)을 좋아한다. 나는 결혼식 때도 이 찬송가에 맞춰서 입장했다. 기독교인들이 결혼식 같은 인생의 중요한 세리머니 때 찬송을 부르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Q13. 대학교 총장으로서 이 시대 기독청년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A. 이 시대 기독청년들은 세상적인 풍조에 너무 쉽게 순응하는 것 같다. 몸은 교회 있지만, 삶은 세상적인 것들을 너무 표방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순전한 가치관보다는 세상적인 욕망과 욕심에 매여 실패하는 것 같다. 세상적인 가치관에 휩쓸려 살며 흔들리지 말고, 기독교적인 가치관을 유지하는 삶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스스로 체험하기를 권한다. 또한 요즘 청년들은 지구력이 약하다. 금방금방 바뀌고 쉽게 포기한다. 기독청년들은 더욱 인내심이 필요하고 끝까지 하는 근성이 필요하다.

 

Q14. 마지막으로 훗날 사람들이 ‘이재서’라는 이름을 어떻게 기억해줬으면 좋은가?

A. 나는 총신대 총장으로서 임기를 마치고 나갈 때 큰일 했다는 칭찬보다는 바르게 학교를 운영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다. 하나님의 사람에 대한 평가는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다. 무엇을 크게 이뤘나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았는가가 중요하다. 그것이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정신이 아닌가? 총장에 입후보하면서 프레젠테이션 자리에서 윤리경영을 밝혔다. 결과가 중요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이다.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깨끗하고 바르게 하다 보면 좋은 열매가 있지 않겠는가? 나는 주님께도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기억되길 바란다.

 

윤홍식 웹본부장  jesuspoin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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