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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시리즈】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감사관점’으로 읽는 성경이야기 ⑦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창세기 26장/이삭의 번영과 우물분쟁 이야기

 

임승훈 목사 - 월간목회편집부장 역임, 한국성결신문 창간작업 및 편집부장역임, 서울신학대학교총동문회 출판팀장, 위대한맘 인천한부모센터 대표, 설교학 신학박사(Th,D), 더감사교회 담임

이삭은 아브라함이 100세에 나은 아들이다. 가나안에 들어온 지 25년만이며, 사라와 결혼을 하고는 아마 수 십 년의 세월이 흐른 뒤이다. 사라의 나이도 90에 얻은 아들이니, 인간의 연한과 건강척도로 말하자면 설명이 잘 되지 않는다. 아무튼 이삭은 하나님이 약속의 말씀으로 허락하여 낳은 아들임에 틀림없다.

태어나보니 이미 형들이 존재했고, 수많은 식구들과 하인, 일꾼, 종, 군사들까지... 대가족의 가족구성원들을 보건데, 이삭은 많은 귀여움을 받으며 존귀하게 자랐음에 틀림이 없겠다. 하지만 그는 철들자 수많은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과제가 넘쳐났다. 지지해주고 도와주고 협력하는 많은 식솔들이 있었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은 참으로 많았다. 그래서인지 이삭은 당시로서는 늦은 나이인 40세가 되어서야 아내 리브가를 맞이하게 되었다. 성경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들이지만 이삭에게도 고단한 이면이 존재했다고 여겨진다.

성경에 의하면 이삭은 조용한 사람으로 묘사된다. 아니면 무능했던지(?). 이삭은 다른 족장들에 비해 특징이 별로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전승에 의하면 그는 ‘약속의 아들’이라는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이삭은 성격이 순종적이다. 평화(평안)을 좋아했으며 경건한 기도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우유부단하며 소극적이었다. 에서를 편애하고, 조급하고, 이기적이었다. 노년에는 가장에게 주어진 족장의 축복권 전수에도 실수를 저지르는 등 단점도 적지 않았다.

리브가를 맞이하는 이삭

이삭이 불혹(不惑)의 나이가 지난 어느 핸가 가나안 땅에 극심한 흉년이 들었다. 겨울철에 적당히 와야 할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전혀 오지 않은 것이다. 흉년은 가뭄과 깊이 관련이 깊다. 예나 지금이나 심한 가뭄이 들면 농업위주의 사회에서는 더구나 대책이 없다. 문명이 발달한 최근에도 가뭄이 6개월 정도만 몰아치면 식수난에, 농업용수 난에, 도심에서는 미세먼지까지 소란들이 일어난다. 하물며 이삭의 시대에 말하여 무엇하랴.

헌데 성경은 아브라함이 죽은 후 이삭이 하나님께로부터 큰 복을 받았음을 말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이 그의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고...”(창 25:11).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다”(창 26:12,13) 는 것이다. 이때 이삭은 블레셋 왕 아비멜렉이 다스리는 그랄 땅에 피신을 했을 시기이다. 양과 소 떼와 종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블레셋 사람들의 시기를 받았다. 서서히 보이지 않는 변화가 생길 때에는 시기를 받을 것이 없다. 하지만 재정이 갑자기 늘어나고, 사업이 잘되는 게 눈에 보일 때, 돈을 긁어모은다는 말이 있을 때는 사정이 다르다. 양떼, 소떼, 짐승들이 불어나는 것은 물론이며, 그로인해 움직일 종들이 수없이 필요했고, 저들을 거들어야 할 일꾼들과 재산을 지켜야 할 군사들까지, 매일같이 엄청스레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한 동리사람들 뿐 아니라 이웃동리 사람들에게 까지 소문에 소문이 나게 된 것이다. 말씀대로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는 일’(창 26:14)이 벌어진 것이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던가. 이삭에게 경제적으로 좋은 일이 벌어질 때 또한 불미스런 일들도 있었다. 이름하여 우물분쟁이다. 물 분쟁은 인간의 기본문제 해결에 문제가 생겼음을 말한다. 현재, 세계적으로 강물을 사이에 둔 나라들끼리 분쟁을 하는 것을 보게 된다. 메콩강의 경우, 베트남으로부터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태국을 거쳐 상류는 중국에 이른다. 중국의 댐 건설로 메콩강은 용수부족에 시달리기 시작했으며 붉은 흙탕물로 몸살을 앓는다. 지난 2월 이스라엘의 사해에 도착해보니 해수면이 과거보다 17미터나 아래로 내려갔다고 한다(-417m). 주변나라들의 무분별한 용수개발, 산업단지 조성, 탄광개발까지 용수를 끌어다가 사용하다보니 사해로 유입되던 물이 급격하게 줄었다는 것이다.

가나안 땅에서 먹는 물(식수)의 해결은 역대 왕조 모든 시대마다 최고의 과제였다. 히스기야 왕은 가뭄에 대비하고, 외적의 침입에 대처하기 위해 히스기야터널을 조성했다. 가이사랴 항구의 고대도시 유적 발굴지에도 우물은 지하터널 형태를 이루고 있다. 역시 감탄사가 나온다. 수로의 규모나 공사공정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 모두 수작업으로 이룬 공사가 아닌가.

이삭은 아버지가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파야만 했다(18절). 블레셋 목동들이 메웠기 때문이다. 물이 부족하니 골짜기에서 샘 근원을 다시 찾아내었다(19). 하지만 이제는 그랄 땅의 목동들이 내 놓으라며 달려든다. 자기네 우물이라는 것이다. 이삭은 이것을 보면서도 한번도 항의 하지 않고 또 다른 우물을 팠다(21). 신기하게도 물이 그렇게 잘 나온다. 그들이 또 다투며 빼앗고자 하니 다른 곳으로 옮겨 가며 우물을 팠다. 심지어 싸움을 걸어오지 않을 때까지 옮겨가며 우물을 팠다(22). 이것은 이삭의 고집인가, 우직함인가, 성실성인가, 무능함인가, 뭐라고 설명해야 옳을지, 아니면 천성이 싸우기를 싫어하기 때문인지, 잘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감사하는 사람이어서 져주고 양보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의문투성이의 성경이 감사이야기한마디로 인해 그렇게 선명할 수가 없다.

이삭은 속사람의 다툼도, 불편함도 겉사람(얼굴표정)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아니 드러내기를 싫어했다. 그런데 이것 또한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하나님을 적확(的確)하게 신뢰했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린다. 특히 이삭은 참으로 믿음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감사(感謝)의 인물이었다. 우리는 믿음은 좋은데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자주 본다. 껍데기 믿음, 가짜 믿음이다. 말로는 뻔지르르 한데 삶은 외로 가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감사하는 사람, 감사에 성공하는 사람은 믿음에도 성공하고 있음을 본다. 이삭을 가리켜 감사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빈 말이 아닌 것이다.

이삭은 너무나도 특징이 없다. 그래서 이삭을 평가절하하기 쉽다. 헌데 이삭을 묵상하면 할수록 이삭의 인물됨이 보통이 아님을 알게 된다. 영적인 수준에서도 믿음에서도 예배에서도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데서도 특별하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 인물이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의 철학에서도 특출했다. 사실, 이삭은 가나안땅에 가뭄이 심하게 들었을 때 우선 블레셋 왕이 통치하는 그랄 땅에 갔다가 적당히 뚱치다가 다시 애굽 땅까지 내려갈 참이었다. 그랄 땅이 브엘세바에서 멀지 않을 뿐 아니라 애굽으로 내려가는 길목이 아닌가.

헌데 성경을 다시 보자. 창세기 26:3-4을 보면 이렇다.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이어지는 5절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하나님의 명령과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지키었다’라고 알려주신다. 이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말씀을 믿으며 살았다는 사실과 함께 이삭에게도 그와 같이 살아갈 것을 명하시고, 요청하셨음을 내포하는 문장구조를 가지고 있다. 행간과 행간 속에 이삭의 답은 나와 있지 않다. 이삭의 응답이 어떤 식으로든 표현되고 있지 않다. 다만 이삭에게 대답을 요청하시던 하나님은 오히려 이삭의 결과론적 삶과 행위를 통한 확실한 결론을 기록하고 있다.

그 내용이 바로 이삭의 번영과 우물 분쟁의 기록이다. 블레셋 사람들의 우물을 메꾸는 해코지(18절), 그랄 목자들의 시비와 분쟁(20절), 계속되는 다툼 속에서도(21절), 22절의 행간 속에서 이삭은 감사의 여유와 웃음을 머금고 있음을 본다. 감사의 믿음에 바탕을 둔 웃음이다. 승자의 여유라든지, 가진 자의 여유라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내용이다. 하나님을 무한 신뢰하는 믿음이다. 하나님의 지혜를 의지하는 믿음이다. 어찌 계속해서 싸우자고 달려드는 블레셋 땅의 악동들, 그랄 땅의 목동들에게 항의나 대꾸 한번 하지 않았을까? 이삭의 종들이 아무 대꾸를 하지 않고, 싸움을 하지 않은 것은 힘이 없다거나 대거리 할 줄을 몰라서가 아니다. 주인 이삭의 마음과 태도에 충실했음을 일러준다. 어떤 시비도 어떤 다툼도 대꾸하지 말 것을 자신의 목동들에게 사전에 가르쳤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삭의 관점과 태도는 곧 하나님의 마음의 표현이었다. 다름 아닌 ‘범사에 감사하는 삶’(살전 5:18)의 실천이다. “Always be thankful.”

자, 다시금 이삭의 관점을 살펴보자.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창26:22).

“하나님, 이게 뭡니까? 이 땅에 거류하면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있고, 내게 복을 주고, 이 모든 땅을 나와 내 자손에게 주신다’(창 26:3)라고 말씀하셨지 않았습니까?” 이삭은 보통 사람이라면 열 번이고 백번이고 말했을 이런 식의 항의를 단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다만 하나님의 관점, 감사관점에서만 생각하였다는 사실이다.

22절의 말씀은 이삭의 신앙고백이다. 우물을 연이어서 파는 고달픈 삶의 여정 속에서도 그는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긍정의 언어를 구사한다. “여호와께서 나와 우리 가족과 민족을 위하여 이 땅을 넓게 만드신 것이로군요. 그렇다면 우리가 이 땅에서 번성하고야 말겠구먼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이렇게 말한 이삭은 르호봇이라는 샘물가에서 브엘세바(Beersheba, 비어쉬바)로 다시 올라가고 있다. 브엘세바는 가나안땅의 남쪽 끝이다. 아니 가나안 땅의 시작점이다. 출애굽 당시 가나안 땅을 정탐하던 중심지이다. 12명의 용사들이 힘겨운 정탐이 끝나면 다시금 모여들던 곳이 바로 브엘세바이다. 때문에 브엘세바는 이스라엘 백성(히브리인, 유대인)들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곳이다.

바로 거기서 이삭은 하나님을 만났다. 르호봇 샘물에서 ‘번성하겠다’는 축복의 메시지를 듣고 브엘세바로 올라간 바로 그날 밤에 말이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창 26:24).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보다 전혀 못나지 않다. 어려서부터 아버지를 통해, 아버지에 의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을 익혔다.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는 법도 배웠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읽는 방법까지 알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삭은 아브라함을 넘어선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인들에게 믿음의 조상이다. 때문에 유명해진 것이다. 아브라함 때문에 이삭이 가려진 측면이 있다. 특히 순종의 영성으로만 보자면 결코 이삭은 아브라함에 모자람이 없다.

창세기 26:2-5에 나오는 이야기는 이삭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다. 얘기의 중심은 네 아버지 아브라함이 내 말에 순종했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행간에 숨겨진 비밀을 놓치면 안 된다. 이는 이삭은 곧 이미 순종하는 사람이었음을 생략하고 있다. 순종하는 영성의 비밀은 감사의 영성이 마련되지 않은 사람은 갖기 어려운 영성이다. 그래서 감히 나는 말하고 싶다. 이삭의 영성은 순종의 영성이다. 아니 이는 감사 영성의 바탕에서 이루어낸 것이다. 너비와 깊이가 다른 고차원의 감사영성이었던 것이다.

임승훈 목사  daniellim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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