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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거름더미에서 귀족의 자리로'빚'과 '빛'은 서로 다른 영역이다.
최원영목사. 본푸른교회담임, 본헤럴드대표, 서울신학대학교신학박사. 등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 당신의 자녀들이 가난하게 살기를 원하실까? 아니면 부요하게 살기를 원하실까? 분명한 사실 하나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부요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최고의 걸작품인 우리가 잘되고 번성하고 성장하는 것을 원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이 뜻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다. 또한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다(렘29;11).

우리가 빚, 외상, 가난과 질병, 어둠, 죄악에 갇혀 허덕이고 사는 모습을 주님은 원하지 않는다. 주님이 원하는 것은 당신의 백성들이 빚이 아니라 빛가운데 살기를 원하신다. ‘빚’과 ‘빛’의 언어적 차이는 점 하나이다. 그런데 그 차이는 정반대의 결과를 가져온다. 빚의 영역은 어둠이며, 마귀의 올무에 갇히는 형국이다. 그러나 빛의 영역은 밝음이다. 빚이 마귀의 영역이라면 빛은 하나님의 영역이다. 하나님의 마음은 자녀들이 빚이 아니라 빛 가운데 살기를 원하신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말씀이 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15:13). 소망의 하나님이 성령의 능력 가운데 소망을 넘치도록 채워주시고 부어주신다는 사실이다.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다보면 내 안에 기쁨이 충만해진다. 사람은 소망만 있으면 어디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소망만 있다면 거름더미에서 귀족의 자리로 옮겨질 수 있는 힘이 있다. 희망을 잃어버렸다면 그의 삶의 자리는 거름더미이다. 그러나 소망이 있다면 삶의 자리가 궁색하다 할지라도 그 자리는 귀족의 자리이다. 거름더미에서 귀족의 자리로 옮겨지는 능력이 복음안에 있다. 하나님안에, 주님안에, 성령님안에 있다.

거름더미에서 귀족의 자리로 옮겨지기 위해서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은 부요하신 분이라는 고백이다. 하늘의 부요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부요의 주체이신 하나님만을 붙들어야한다. 하나님을 내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하나님이 나의 인생의 길을 열어주셔야 한다. 은행계좌가 적자든, 흑자든 신경 쓰지마라. 큰 빚을 지고 있든 지고 있지 않든 걱정하지 마라. 나의 일터가 힘든 경계선에 있어도 상관하지 마라. 하나님은 나를 부요하게 하실 수 있는 분임을 믿어야 한다. 성경은 약속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그 믿음에서 하나님은 일하신다.

한나는 남편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지만, 아이가 없는 서러움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 서러움을 하나님앞에 통곡하며 절규하는 기도를 드렸다. 그 결과 하나님이 태의 문을 열어주시고 사무엘을 주셨다. 젖을 뗀 어린 사무엘을 성전에 드리면서 한나가 기도했다.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했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신지라.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삼상1:27-28).

아들을 성전에 드리고 한나는 하나님앞에 감사 기도를 드렸다. 그 내용이 참으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티끌과 흙)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것들 위에 세우셨도다?(삼상2:6-8).

한나의 감사기도 내용을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1)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한다. 하나님은 생명의 주관자이다. (2)하나님이 일으켜 세우시면 가난한 자가 부요한 자가 된다. (3)빈궁한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려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신다. 이런 엄청난 일을 누가 할 수 있을까? 바로 하나님만이 가능하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자녀들에게 거름더미 인생에서 귀족의 자리로 옮겨놓으신다. 그 권세와 능력이 여호와 하나님에게 있다.

최근에 총신대 신임 이재서 총장을 인텨뷰했다. 그는 15세에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모든 희망이 다 사라졌다. 지독한 가난,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졌다. 거름더미와 같은 인생이 되었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이 그의 인생 앞에 큰 장애물로 놓여있었다. 육체적 실명이 인생의 많은 가능성을 가로막았다. 가장 큰 일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누군가 옆에 붙어있어 주어야 생활이 가능했다. 거름더미와 같은 절망의 시간을 보석처럼 빛날 수 있도록 도우신 분이 있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는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모든 것을 개척했다.

그는 점자를 배워 1968년 시각장애인 맹학교 중학교에 입학을 했고, 모든 사람들이 말렸지만 총신대 입학하였다. 총신대 3학년 때, 1979년 10월 16일 성서유니온 강당에서 7명의 기독청년으로 출발한 밀알장애인단체를 설립한 후 30년을 이끌어왔다. 오직 장애인 선교를 위해서 시각장애인이 말씀을 붙들고 도전을 한 것이다. “한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 오직 3가지 목적을 위해 스스로 밀알 되겠다고 다짐했다. 전도, 봉사, 계몽이다. 전도를 통해 장애인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장애인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돕기 위한 봉사를 실천하며, 계몽을 통해 장애인에 대한 교회와 사회의 편견의 벽을 허물겠다고 시작한 작은 씨앗이 오늘날 큰 열매를 맺어 세계적인 장애인선교단체가 되었다. 이 총장이 세운 단체는 현재 전세계 21개국 100곳에 지부와 시설을 소유한 세계적인 장애인선교단체로 성장했다. 그는 끊임없는 도전의 삶을 살아냈다. 모든 사람들이 반대했지만 미국 유학에 도전해서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총신대사회복지학과교수를 거쳐 지금은 총신대 총장이 되었다.

하나님이 일으켜 세우면 거름더미와 같은 빈궁한 인생이라 할지라도 부요한자가 된다. 하나님은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신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 하나님이 세우면 지렁이와 같이 빈궁한 환경과 삶이라도 일으켜 기둥처럼 세우신다. 거름더미 같은 인생을 귀족의 인생으로 바꾸어 놓으신다.

그러나, 원수마귀사탄은 성도들을 가난과 질병과 빚과 포기와 불신과 죽음이란 고통으로 밀어 넣는다. 성경은 사탄을 도둑이요, 살인자요, 파괴하는 멸망자라고 한다(요10:10).

희망의 신학자 몰트만은 “이 세계가 희망을 가졌든, 못 가졌든지 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라고 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희망을 말하는 소리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복음의 능력을 말하는 교회에서 조차 희망을 말하지 않고 현실을 이야기한다. 현실은 항상 어둠이 더 커 보인다. 그러나 그 어둠을 뚫고 희망을 말하고 희망을 만들어내는 창조적인 복음의 일꾼들이 필요하다. 오늘 나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또한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다.

또한, 스스로 가난을 선택하는 것도 하나님이 주신 부요함의 능력이다. 잘사는것도, 건강하게 사는것도, 샬롬가운데 사는것도 하나님이 주신 부요하심의 은혜이다. 또한 스스로 청빈을 선택하고 십자가의 길을 기쁨으로 걸어가는 것도 하나님이 주신 큰 부요함의 은혜이다. 복음을 위해서 자신의 편안한 삶을 버리고 주님 나라에 헌신한다. 그런데 내 마음이 더 큰 기쁨으로 충만하다. 능력이 있는 분이 자신의 능력을 자신만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내려놓는다. 스스로 힘들고 어려운 고난의 길을 걸어간다. 그런데 내 안에 기쁨으로 충만하다. 이것이 가능한것인가? 가능하다. 바로 주님이 주시는 내려놓음의 부요함이다.

세상 사람들은 말한다. 왜 그렇게 바보같이 사니. 세상의 가치로 똘똘 뭉쳐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자신의 명예와 물질과 세상적 편안함을 내려놓고 더 큰 가치를 위해서 드릴 때 얼마나 큰 기쁨과 영적 충만이 있는지를 세상 사람들은 깨닫지 못한다.

사도바울은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고난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부요하심을 누리고 살았다. 사명의 길을 걸어갈때 하나님이 주시는 부요하심으로 가득차면 행복이란 선물, 은혜란 하늘의 선물을 누리고 산다. 그러나 사명의 길을 걸어가면서 영혼이 찌들고, 죽지못해서 하루하루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부요하심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다. 참으로 불쌍한 사명의 길로 전락한다.

오늘날 목회자들의 마음에 하늘의 부요하심으로 넉넉하기를 기대한다. 현실의 부족함으로 인해 내면이 초라해지는 비극이 없기를 기대한다. 내면이 초라하면 목회자는 다 잃어버린것이다. 바울과 같이 당당하면 좋겠다. 복음 증거로 인해 육체적 고난은 받았지만 오히려 교회를 위해 더욱 근심하며 기도하는 바울의 마음이 진짜 부요함의 극치가 아닌가 생각한다.

최원영  jhoncho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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