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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칼럼] 진리 안에서 자유함이 아름답다[이승희 목사의 CDN 성경연구] (14) 자유(自由)
  • 이승희 목사
  • 승인 2019.07.03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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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D.Min.),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대광교회 담임목사(서울서부노회, 금천구)

성경이 말하는 자유는 하나님 은혜의 선물

‘자유(自由)’는 근대 초 일본에서 ‘freedom’과 ‘liberty’의 번역어로 채택한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세기 말경부터 이 말이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를 하극상이라고 번역한 에도 말기의 일본인들은 자유를 또한 ‘わがまま’(와가마마), 즉 ‘제멋대로’라고 번역했다. 이러한 일본 초기의 외래어 연구를 해온 야나부 교수는 우리가 오늘날 쓰고 있는 자유라는 번역어 역시 그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는 ‘자유’와 유사한 일상 생활어로는 ‘임의(任意)’란 말이 쓰이고 있었다. 차츰 ‘임의’가 차지하던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음’의 의미 영역을 ‘임의’와 ‘자유’가 나눠 갖게 되었다.

성경에서 자유는 하나님이 소유한 보배같은 언약의 백성에 대한 초자연적인 축복이다. 야훼의 은혜의 선물이다. 워싱턴 DC에 ‘한국전쟁 참전용사 기념공원(Korean War Veterans Memorial)’엔 이런 문구의 기념비가 있다. ‘Freedom Is Not Free.’, 즉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괴테의 ‘파우스트’에 이런 명문장이 있다. ‘지혜의 마지막 결론은 이것이다. 자유도 생명도 그것을 매일매일 싸워 얻는 자만이 누릴 자격이 있다.’ 성경에서 자유는 공짜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쟁취의 결과가 아니다. 아무런 공로 없이 받는 것이며, 하나님을 떠나서는 결코 즉시 얻을 수 없으며, 오직 그의 지속적인 은총 속에서만 지속될 수 있다. 그것은 약속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에게 내리시는 한없는 은혜의 선물이다.

구약성경에서 생각하는 자유는 한편으로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창조자를 예배하고 즐거워하지 못하도록 하는 피조된 세력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축복하기를 기뻐하시는 장소에서 그의 언약 아래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아가는 복을 의미한다. 재미있는 것은 ‘자유’라는 용어는 본시 불교 용어라는 것이다. 자유는 법구경에 나와 있는 석가의 근본 사상인 ‘삶의 본질은 스스로에서 유래하고 스스로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인들의 자유는 어딘지 불교적인 구석이 있다. ‘自由’라는 말은 옛날 한자어에서도 멋대로의 뜻으로 써왔다. 후한서(後漢書)에 나오는 ‘百事自由’가 그것인데 자기네들이 옹립한 천자를 자기들 멋대로 조종했다는 뜻이다. 서구의 자유가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면 일본의 자유는 내면이 속박되지 않음을 추구하는 심성이 바탕에 깔려 있는 느낌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자유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들의 속박으로부터 풀려서 자신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들을 성취해 나가는 것이다. 자유는 인간 스스로의 성취가 아니라 값없이 주는 은혜의 선물로 하나님의 행위를 제쳐두고서는 인간이 전혀 소유할 수 없는 것이다.

1.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위하여 파송을 받는다

희년이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복음을 통해 새로운 출발을 선포하신다. 예수님은 포로된 자에게 주시는 자유는 정치적인 자유가 아니다. 영적인 자유다. 눈 먼 자에게 기적적인 치유뿐만 아니라 영적인 구원을 암시한다. 예수님은 어둠 속에 있는 자에게 빛을 주시기 때문이다.

‘조물주는 모든 사람에게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하였다.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미국 독립선언문의 일부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것은 잃어버렸던 자유, 억눌린 자유를 선포하고 회복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나사렛 회당에서 첫 사역을 시작하면서 이사야 61:1-2을 낭독하였다. 누가는 이사야 본문을 인용한다.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예수님이 그의 구원 사역이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예수님의 복음 전파가 누가 자신의 복음서 주제라는 사실을 이 인용문을 통하여 분명히 밝힌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선포하도록 보내심을 받았다고 말씀하신다. 인류는 다양한 종류의 속박에 갇혀 있다. 자유란 그런 속박에서 해방되는 것을 뜻한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유대인이 소망하는 정치적 혹은 시민적 자유와 다르다. 그것은 노예들이나 독재 국가 국민들도 누릴 수 있는 자유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주신 자유(갈 5:1)를 바울은 죄로부터 자유와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로 표현한다.

3선 대통령에 당선된 Franklin D. Roosevelt는 1941년 의회 연두교서 연설에서 본질적이고 인간적인 자유에 기초를 둔 네 가지 비전을 제시했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 건강하고 평화로운 삶을 위한 결핍으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공포로부터의 자유였다. 예수님의 비전은 실제적이고 구체적이다.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을 주고,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선포하며, 눈 먼 자들에게 시력을 회복시키고,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는 것이다. 이사야 40-55장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각각의 목적은 동일한 사실을 주목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직면한 운명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경제적, 정치적, 신체적, 사회적 영역으로부터 온 은유들이 종말론적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이스라엘의 운명이 완전히 뒤바뀔 것이라는 기대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2. 복음이 선포된 곳에 눌린 자가 자유롭게 된다

예수님은 포로된 자에게 자유, 눈 먼데서의 회복, 억압에서의 자유를 선포하신다. 이런 이미지의 배경은 희년이다. 이 때는 모두 부채가 탕감된다고 선포되었다(레 25:817). 레위기 25장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은 7년마다 안식년을 정해 이웃의 빚을 면제해 준다. 노예는 해방한다. 농사를 짓지 않고 땅은 묵힌다. 밭을 경작하지 말라고 하는 명령은 땅을 보호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역사에서 일찌감치 만들어진 율법 중의 하나였다(레 25:81-12). 포로된 자, 눈먼 자, 눌린 자처럼 가난한 자는 이 세상의 불우한 자들일 뿐만 아니라 특별히 하나님을 의존해야 할 필요가 있는 자들이다. 특히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라는 말은 앞에 언급된 말들이 나타내는 예수님의 사명에 새로운 사명을 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워싱턴의 캐피톨 빌딩(국회의사당) 돔 꼭대기에 자유의 여신상(Statue of Freedom)이 세워져 있다. 계몽의 빛을 비추는 횃불과 독립·법치를 상징하는 법전을 들고 있는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과 다르다. 프랑스가 미국에 선물할 때 자유의 여신상은 1884년 완성한 동상을 350개 조각으로 분해해 상자 214개에 실어 보냈다. 본래 이름은 ‘세계를 밝히는 자유(Liberty Enlightening the World)’이다. 이 동상의 정식 명칭은 그냥 자유상(the Statue of Liberty)이다. 애칭이 Miss liberty, Lady liberty인 것으로 봐도 그냥 여성일 뿐 여신은 아니다. 이 여성이 난데없이 여신으로 바뀌게 되었는가. 지금도 많은 귀신을 숭상하는 일본인들에 의해 ‘自由の女神’으로 번역되면서부터다. 뉴욕에 있는 ‘자유상’ 동상은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프랑스가 마련한 선물이었다. 1865년 남북전쟁에서 북군이 승리하자 프랑스 역사학자 에두아르 라블라예가 “미국의 독립기념물은 프랑스와 공동으로 세워야 한다”고 한 연설에서부터 기념상 제작운동이 시작된 것이다. 프랑스혁명과 미국의 독립, 그리고 남북전쟁에서 북군연합의 승리까지 이 모두를 ‘자유를 위한 투쟁’이라는 역사로서 위치시킨 것이다. 동상(46m)은 전달됐지만 동상 세울 받침대(48m)는 보내주지 않아 받침대 건립 모금에만 10년이 걸렸다. 자유상 받침대 부분에 새겨진 “자유롭게 숨쉬기 갈망해 얼싸안은 무리들”이라는 문구는 이 동상이 이민자의 나라, 미국을 상징하는 이유를 알려 준다. 워싱턴의 여신상은 투구를 쓴 채 허리춤에 칼을 차고 손에는 월계관과 방패를 쥐고 있다.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의지와 힘으로 지켜내야 한다는 인식의 표현이다.

예수님이 나사렛 회당에서 읽은 본문은 이사야 61:1-2인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라는 구절은 이사야 58:6에서 인용된 것이다. 복음에 대한 묘사에 쓰이는 은유들의 배열에 기여하는 보다 넓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공의가 명시되는 이사야 40-55장처럼(참조. 51:1-5) 하나님의 백성은 이사야 58장에서 공의롭게 행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라’는 요구는 이스라엘의 소명을 실현을 가리키는 기름 부음 받은 선지자의 약속이 된다. 예수님은 한 번도 노예제도 폐지나 노예해방 운동을 하신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내가 보냄을 받은 것은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고자 함이라’고 하신 것은 비유적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요한복음 8:31-32의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도 그러하다. 자유는 원치 않는 통제, 제한, 특히 속박이나 노예 상태에서 풀려난 또는 해방된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하나님은 정치적 또는 사회적 해방이 아닌 마귀의 손에서 영적인 해방을 시켜서 하나님과의 언약의 관계 속에서 살도록 하신다. 성경에서 자유는 항상 제한된 개념으로 사용된다. 율법으로부터 자유는 죄를 지을 자유가 아니다. 만약 그런 자유라면 그것은 어떤 예속(bondage)을 다른 예속으로 바꾸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율법주의가 자유의 적이라면, 방종은 자유의 또 다른 적이다.

‘자유’ 또는 ‘무료’를 뜻하는 영어는 free다. 독일어 ‘frei’에서 파생됐다. 어원을 더 찾아보면 선사 인도유럽어로 ‘사랑하다’인 pri가 어원이다. 노예는 가족을 이루거나 친구를 사귀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은 자유인의 특권이라는 의미에서 ‘사랑’의 pri에서 ‘자유’를 뜻하는 free가 나왔다. 자유의 지속성에서 있어서, 자유는 언약의 축복이다. 하나님은 그 백성이 충실히 지키는 한 자유를 유지하도록 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다. 자유는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을 의미하지 않는다. 인간이 그의 완전한 자유를 발견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을 섬길 때뿐이다. 독일 철학자 Immanuel Kant는 “내 자유는 타인의 자유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끝난다”고 말했고, 폴란드 출신 정치이론가 Rosa Luxemburg는 “자유란 언제나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의 자유다”라고 말했다.

 

이승희 목사  titeiosle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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