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전문가칼럼
【정성구 칼럼】일본의 항복문서정성구 박사(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1945년 8월 15일 모든 미국 신문들은 「Japan Surrender」(일본 항복하다)를 머리기사로 뽑았다. 일본의 항복은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이요 미국을 비롯한 연합국의 승리이자, 우리 민족에게는 일제의 강압과 통치에서 풀려나서 자유와 해방을 맞았다. 하와이 진주만에 가보면 일본의 폭격으로 가라앉은 배를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아 유명관광지가 되었다. 그런데 안내자의 말에 의하면 그 관광지에는 일본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는다고 한다. 혹시 몇 사람이 온다고 해도 굳은 얼굴로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은 그들의 부끄러움 때문인지 아니면 컴플렉스 때문인지 알 수는 없다. 

일본은 세계 정복의 야망으로 한국을 위시해서 아시아를 집어먹고 미국의 콧등에다 폭탄을 쏟아 부은 것이다. 그것은 일본의 야망과 착각이었다. 그로 말미암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폭탄 세례를 받고서야 드디어 항복하게 된다. 히로시마의 원폭지역에 가보면 당시 폐허가 된 건물들의 잔해가 아직도 그대로 있다. 그러면서 히로시마는 평화를 노래하는 시가 되었다. 

일본은 전범국가였다. 그리고 패전국가였다. 그들은 한국전쟁으로 크게 부흥하였다. 나는 일본의 항복문서(팩시밀리 판)를 모두 가지고 있다. 그것을 잘 살펴보면 일본의 항복은 연합국에 대한 항복이었지 한국에 대해서 항복한 것은 없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비록 연합국에 대해서는 항복했지만 과거 한국의 식민지 통치시대를 늘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듯하다. 또 실제로 일왕의 패전방송에는 항복이니 사과란 말은 단 한마디도 없다. 그래서 일본은 아직도 독도도 그들의 섬이라고 주장하고, 종군 위안부도 부정하고, 마치 한국이 일제강점기 시대처럼 착각하는 정치가와 일반 국민들이 아직도 많은듯하다. 

그런데 한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여러 번 아픔을 겪으면서 끊임없이 성장 발전해서 일본의 턱 밑에 왔거나, 어떤 분야는 앞서 가고 있다. 그래서 최근 아베 총리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에 이의를 제기하고 한국에 경고하려고 경제 제재란 초 강수를 뒀다. 하지만 한국인은 일제불매운동과 일본여행중단으로 일본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그럼에도 일본인들은 아베정부의 하는 일에 계속 지지를 보내는 것은 아직도 일본인들의 정서에는 한국을 식민지 지배시대로 착각하는 듯싶다. 

이제 우리도 진정한 의미에서 과거 일제강점기에 지은 죄에 대해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야 할 때이다. 일제 강점기 동안 수많은 애국자들, 순국자들, 순교자들이 생명을 바쳐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웠다. 하지만 일본은 연합국에는 항복했지만 우리민족에게 항복하지 않았다. 70여년이 지난 후에도 아직도 그들은 우리를 한 수 아래의 국가로 보고 있다. 하기는 우리는 독립운동만 했을 뿐이고 독립전쟁은 못했으니, 우리가 항복을 받아낼 방법은 없다. 일본은 우리보다 한 세기 전에 깨어서 서양문물을 받아 들인 것은 맞고, 우리보다 앞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승만 박사가 세운 자유대한민국은 그 동안 역경과 환난 중에도 놀라운 성장 발전을 이루어 세계 10대 강국으로 발 돋음 했다. 

그러나 아직도 일본이 계속해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종군위안부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한국을 식민지로 보는 망상에 빠진 것과 같다. 일본의 항복문서에는 한국에 대한 것은 없었다. 한국의 광복은 선열들의 눈물과 땀과 피로 되었지만, 그 보다는 연합국의 승리로 해방되었으니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총의 선물>을 받은 셈이다. 

우리가 일본에 요구하는 것은 항복이 아니고 우리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고 사죄하는 것이다. 일본의 우익들은 역사를 거꾸로 돌려 아직도 욱일기를 펄럭이고 그들의 죄상을 모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경험으로 보면 일본에도 진실하고 양심적인 그리스도인도 있다. 내 친구 동경성서 그리스도교회 오야마레이지(尾山令仁) 목사님, 동경고백교회의 목사이자 칼빈학자인 노부와 와타나베(渡辺信夫) 박사, 야마쟈키 준치(山崎順治)목사, 전 고배신학교 교장 류조 하시모토(矯本龍三) 목사, 야마모토 에이지(山本榮一) 교수, 하루나 슈미토(春名純人) 교수 등은 나에게 항상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신사참배 강요를 늘 사죄하고 부끄럽게 여기는 신앙인이자 지식인들이었다. 

하지만 군국주의 일본을 예찬하는 대게의 일본인들은 미국과 연합국에만 항복하고 우리에게는 항복이나 사죄할 의사가 전혀 없는듯하다. 일제는 한국 기독교를 말살하려 했고 신사참배반대자를 모질게 고문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고난의 나라였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감사하게도 선교대국이 되어 전 세계 2만5천명의 선교사들을 파송했다. 그 중에 일본에서 선교하는 주의 일꾼들은 1500명이나 된다. 흔히 일본이 가깝고도 먼 나라 라고 말하지만, 앞으로는 복음으로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져서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가 되기를 기도할 뿐이다.

선교가 무엇인고?

세계선교연대(대표 최요한 목사) 제78차 포럼이 지난 7월 6일 명동교회(프린스호텔별관)에서 개최되었다. 

세계선교연대 협력단체 회원들이 참석하는 이번 포럼에서 정성구 박사(켈빈주의연구원장)가 사도바울의 선교비전(엡3:1~9)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했다. 정성구 박사는 총신대 총장과 대신대 총장을 역임했다.

한국의 근대화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정성구 박사는 선교는 주님의 지상명령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또한, 시편 67편에 나타난 선교개념을 설파했다. 먼저 주님의 은혜가 있어야 가능하고 주님의 방법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선교란 구원을 선포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게 시편 67편 2절에 나타난다는 것을 강조했다. 또한, 모든 민족이 주를 찬송케 하는 것이다. (3절) 또 땅끝까지 이르러 선교해야 하는 것을 강조했다. (7절)

선교는 영웅주의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 다만 영웅주의는 자기에게서 나오나 믿음은 위로부터 나온다. 정박사는 선교는 이중언어를 할 줄 알아야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어서 Come 구조 선교와 Go 구조 선교에 관해 설명했다. 선교는 보내는 것만 치중할게 아니라 교회를 잘 목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권능을 받은 자가 선교해야 한다. 선교사는 부채개념이 확고해야 한다고 했다. 거저 주시는 은총을 깨우치고 부채의식을 가지고 그 은혜를 갚는 것이 선교이다. 사도바울의 열심은 자기열심이 아니다. 부채의식에 나온 열심이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일(그리스도 사건. 케리그마) 때문에 선교한 사도이다. 따라서 선교는 예수가 창조주이며 구원자라는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고 설교했다.

"김정구 선생은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젓는 배사공>이란 노래 한곡으로 50년이나 불렀다. 무엇을 가지고 무슨 예호로 설교를 했든, 마지막은 케리그마(복음)이 선포되어야 한다 그것이 선교이다."

 

정성구 고문  webmaster@bonhd.net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성구 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