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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하르트 로제의 <루터 입문><루터 입문>과 역자이신 박일영 전 루터 대학 총장님의 특강 정리

루터대학교 전 총장이셨고 루터 아카데미 원장으로 계시는 박일영교수가 번역한 복있는 사람 출판사 베른하르트 로제의 <루터 입문>과 그의 특강을 참고로 복습하는 마음으로 정리해 보았다. 

루터와 중세신학자들과의 차이는 신플라톤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어거스틴을 넘어서서 "오직 성경"에 근거한 새로운 구원론적 틀을 만든 것이다. 이것이 종교개혁의 '돌파'(breakthrough)인 '칭의론'이다.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는가?"로 관점을 전환한 것은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한 중세신학자들의 사고를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으로 바꾸었다.

베른하르트 로제의 <루터 입문> 요지

어거스틴의 신플라톤주의 극복, 오직성경! 종교개혁의 돌파론, 코페루니쿠스적 전환 "인간이 무엇을 해야하나?"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하셨는가?"(구원사역과 복음의 중요성).

베른하르트 로제의 <루터 입문> 내용

루터의 칭의론은 복음의 회복이라는 과제를 오직 성경 말씀에 근거해 주창하였다. 동시에 그 자체를 구원론적으로 조명하는 새로운 신학적 관점의 틀을 제시하였다.

루터는 독창적인 신학을 주창하지 않았고, 고대 교회의 참 복음이 중세 교회를 통해 왜곡되었다고 판단하고 고대 교회의 복음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루터는 동서교회가 함께 참여한 1차-7차 공의회만 인정하고, 중세 가톨릭 시대의 공의회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라틴어 성경의 권위를 거부하고 히브리 구약 성경과 희랍어 신약 성경을 의존하였다. 중세 말기 오컴의 유명론과 어거스틴과 독일 특유의 영성인 신비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루터는 위대한 사상가도 성인도 아니었다. 자기 스스로 자신을 개혁자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의 의도는 독창적인 신학을 세우는 것도, 새로운 교회를 세우는 것도 아니었다. 죄론과 은혜론의 논쟁인 펠라기우스 논쟁, 교회론의 논쟁인 도나투스 논쟁, 어거스틴에 와서 칭의의 논의 즉 의인의 의화가 아닌 죄인의 칭의 논의 등을 통하여 그의 신학은 자연스럽게 발생하였다. 

그의 신학은 목회자, 성서학자, 시대적인 통찰자로서 소명에 충실한 사람으로서의 결과물이었다. 즉 목적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그는 오직 하나님과 교회와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위한 "언약의 전사"이자 "성언운반일념"의 설교자요, 목회자였다.  이를 위하여 그는 논쟁 준비에 철저하여 중세 교부 신학 등에 철저한 신학자였다.

그는 평생 '안페히퉁(영적 불안)'에 시달렸지만 살아남기 위하여 믿음을 강조하였고, 실존주의자로서 개인의 깊은 경건을 형성하였다.

루터는 63세의 생을 마감하기까지 우울증 불면증 귓병 변비 설사 등으로 시달렸지만 당시 변증론을 역설적으로 쓰지 않으면 안되는 불가항력적인 상황과 소명의식에서 8만 페이지의 책을 저술하였다.

오늘날 찾아야 될 루터의 역사적 의미는 '인간이란 오직 하나님에게만 종속되었으므로, 어떤 인위적인 것에도 메이지 않는다'는 "자유의 정신(갈5:1)"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참고로 루터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에 못지 않게 마귀를 만나며 살았다는 그의 고백은 오직 철학과 이성에 붙잡힌 신학자가 아니라 이를 포함하는 오직 말씀에 붇잡힌 신학자로서 미가와 같이 천상회의를 예시(豫示)하는 통찰력의 소유자라고 볼 수 있다.

 

이맹영 목사  light201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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