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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철 목사】 성공신화(成功神話)한명철 목사가 말하는 “성공” (2)

한명철 목사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은혜와 평강교회를 담임하며 30권의 저술과 글쓰기를 통해 복음 사역에 애쓰는 목회자이다

성공은 올바른 목적과 선의의 영향력

성공이란 무엇일까? 성공의 사전적 정의는 간단하고 명확하다. “목적이나 뜻을 이룸.” 처칠은 성공을 “열정을 잃지 않은 채 실패에서 또 다른 실패로 나아가는 능력”이란 역설로 표현했다. 에머슨은 “성공을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드는 것”이라 했다. 결국 성공은 자신이 대중보다 나은 위치에서 선의의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다. 그것이 재화이건 사상이건 종교적 감화이건 남다른 성취에 도달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객관적 성공의 기준을 세우기란 퍽 힘들다. 성경은 다분히 주관적 관점에서 설정되는 삶의 한 형태다. 사람들이 성공에 목을 매다는 것은 그것이 지닌 힘과 매력 때문이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모든 인간은 저마다의 성공을 꿈꾸며 분투 노력해왔다. 개중에 혹 성공을 이룬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부럼과 시샘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어렵게 성공을 일구는 자는 많아도 실제로 성공의 열매를 누리는 자는 소수다.

올바른 목적으로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면 성취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는 성공 가도에 있다. 타협은 정공법이 아니다. 편법은 비열한 수단이기에 제외시켜야 옳다. 우리는 일상에서 작은 눈속임 하나가 한 사람의 성격 형성에 얼마나 치명적이며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망가뜨릴 수 있음을 경험으로 안다. 그래서 우리는 정직해야 하는 이유를 채 이해하기도 전의 나이 때부터 정직해야 함을 반복적으로 교육받았다. 눈속임만이 아니라 말속임, 표정속임처럼 온갖 속임수들이 거짓 성공의 가도에 즐비한 것이 현실 세상이다. 커닝이나 사기는 표현이 달라도 본질상 속임이다. 샛길이나 비밀 통로를 따라 결승선에 도달하면 실격 처리된다. 바른 출발을 했다면 바른 과정을 거쳐 바른 결론에 도달해야 한다. 초지일관이란 곧 성실성이다. 이 성실성(integrity)을 잃으면 성공한다 해도 실상은 성공 반대쪽에 있다. 가족의 삶을 희생해서 얻은 성공은 반쪽에 불과하다. 나눔은 성공의 시초와 과정과 결말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이어져야 한다. 높은 가치의 헌신은 그만한 희생을 전제한다. 헌신 없는 성공은 없다. 성공을 위해 훼손된 자화상을 조금이라도 부끄러워한다면 성공이 아니다.

성공의 자리에 오르면 부르지 않아도 달려오는 불청객들이 많다. 자만, 과시, 대리 만족 등이다. 가장 껄끄러운 손님은 나태다. 나태는 성공의 여유를 누리는 과정에서 작은 틈새로 스며드는 연기처럼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나태는 과도한 쉼이 가져온 정신적 과부화 증상이다. 일단 성공 누림에 과부하가 걸리면 오래지 않아 나락으로 구른다. 긴 항해를 끝난 거대 선박은 반드시 선체를 도크 위에 올려놓고 선체 외벽에 달라붙은 조개껍질 및 이물질들을 제거하는 작업을 반드시 거친다. 그렇지 않으면 항해할 때 해수에 저항이 생겨 선박의 속도가 늦어지기 때문이다. 성공에 달라붙은 껄끄러운 손님들은 조심해서 다루어야 한다. 그중에서도 나태는 가장 단단히 붙은 이물질이다. 쉼의 먼 친척뻘이 되는 나태는 적당한 쉼 이후에 스스로 물러나게 해야 한다. 사람이 성공을 꿈꾸는 것은 성공의 초입에서가 아니다. 성공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역경의 중심에서 화끈한 정점을 꿈꾼다.

 

성공신화에 가려진 진실, 실패신화(失敗神話)

모두 저마다의 성공신화에 젖어 있다. 성공이 목마른 만큼 성공신화라는 제목으로 쓰인 책들이 출판되면 성공에 목마른 자들이 몰린다. 연일 서점가를 강타하는 것은 성공 관련 서적들이다. 경기가 좋을 때는 좋다는 이유 때문에 경기가 나쁠 때에는 희망과 회복에 대한 기대 때문에 관련 서적들이 각광 받는다. 성공 관련 서적은 호경기, 불경기가 따로 없다. 성공 스토리가 드라마틱할수록 독자들은 열광한다. 성공신화꺼리를 발굴하려는 사냥꾼들은 세계의 도처를 기웃거리며 만인의 갈증을 해소시킬 신화 중의 신화를 창조하기 위해 애쓴다. 그러다보니 위조 성공신화까지 등장해서 성공에 애정공세를 펼치는 이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들통이 나도 어차피 신화가 아니었느냐며 미혹된 성공 추구자들을 나무라는 투다.

사실 성공신화는 들으면 들을수록 신이 나고 가슴을 뛰게 만든다. 사람들의 마음에 각인된 성공 지향의 DNA는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성공신화는 득도 되지만 독도 된다. ‘자본주의의 선지자’라 불리는 성공적 기업인들이 목마른 대중의 갈증을 해소시키며 꿈에 부푼 미래로 그들을 안내하는 것 같지만 성공 뒤에 감춰진 어두운 실패와 고통은 간과되기 마련이다. 이는 경계해야 할 위험 신호다. 성공에도 신화가 있다면 실패에도 신화가 왜 없으랴! 성공 못지않게, 아니 때로는 성공을 능가하는 그런 기막힌 이야기가 성공신화 이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 수 있다. 성공이 한 주먹이면 고통과 실패는 한 아름임을 어찌 잊을 것인가! 실패는 성공의 맞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패 바로 곁에 붙어 있다. 성공과 실패의 간격은 매우 비좁다. 신화는 오랠수록 신비감이 더한다. 성공신화는 지구의 종말까지 사라지지 않고 갈수록 덩치가 커갈 것이다.

 

실패 속에 묻힌 성공의 향기

한 사람을 성공으로 이끄는 것은 역경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토록 어려운 과정을 거쳐 획득한 성공인데 성공의 정상에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성공이 가져다준 나른함 때문이다. 적당한 쉼과 과도한 나태를 연결 짓는 브리지가 바로 나른함이다. 공성보다 어려운 것은 수성이다. 역경의 강자가 성공의 강자는 아니다. 아브라함도, 다윗도, 히스기야도 모두 성공 이후에 무너졌다. 성공을 머리에 이고 살 때와는 달리 발밑에 있을 때 잘 다스려야 한다. 성공은 쟁취하기보다 다스리는 것이 어렵다. 성공에 이르기 위해서는 칼집을 잡고 칼날을 휘두르지만 성공의 누림은 칼끝 위를 걷는 모험의 연속이다. 정신 차리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지 않으면 기우뚱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성공에는 향기가 있다. 아름다운 성공의 향취는 평생을 간다. 벌을 잡으려면 잠자리채가 아니라 향기로운 꽃을 키워야 한다. 벌침은 따가워도 벌꿀은 달콤하다. 성공에는 달콤한 냄새가 있다. 달짝지근한 내음은 성공의 열매를 맺게 하는 꽃에서 나는 향기다. 사람들은 이 성공의 향기에 취하기를 좋아한다. 당연히 실패를 생각하면 성공의 향취에 대한 반작용으로 쓰고 시고 떨떠름하고 역겨운 냄새를 연상한다. 어떤 사람은 실패에서 풍길 악취 때문에 근처에 얼씬 조차 하지 않는다. 실패의 거름더미를 불쾌하게 여기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기이한 성공을 추구하는 자는 성공 자체보다 지난날 숱하게 빠졌던 실패의 시궁창을 즐겨 살핀다. 실패의 역겨운 냄새 속에 감춰진 향취를 맡을 줄 알기 때문이다.

 

에덴의 탐스러운 과일, 성공

성공은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탐스러운 에덴동산의 과일처럼 완벽하다. 이에 비해 실패는 장미과에 속한 모과나무처럼 신맛이 강하고 못생겼다. 성공은 마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처럼 적은 것을 주고 많은 것을 앗아갈 수 있다. 주변적인 것을 안기고 핵심을 빼내갈 수 있다. 모과는 향기가 뛰어나다. 실패의 악취 속에 숨겨진 향취는 아주 강하다.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두리안(Durian)은 과일의 황제라 불린다. 수년 전의 홍콩 집회 때 먹어보았는데 과연 진미였다. 생김새는 투박하고 먹기 전까지 후각을 자극하는 것은 지독한 냄새였는데 먹는 순간 그 끈적끈적한 감미로움이 한참 동안 목젖을 마비시켰다. 아직도 기억 속에 머문 맛이다.

성공과 실패의 속도와 관련하여 전용석씨는 <아주 특별한 성공의 지혜>에서 빠르게 성공하는 사람들, 천천히 성공하는 사람들, 천천히 실패하는 사람들, 빠르게 실패하는 사람들의 네 유형으로 나눠 설명했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성공실패는 공식처럼 이런 유형을 따르지 않는다. 수십, 수백 가지 유형들이 생겨날 수 있다. 빨리 빨리!의 원조라 할 수 있는 한국인에게 지체되는 성공은 환영받지 못한다. 장년층의 자수성가보다 청년 기업가의 성공 스토리가 대중의 관심을 독차지한다. 일단 시간이 오래 걸리면 갑갑증 때문에 중도 포기하기 일쑤다. 빠른 성공이 좋은 성공인가?

 

자신을 제어하는 자가 누리는 느린 성공

늘 쫓기며 사는 현대인들이 뒤늦게 느림의 미학을 발견했다. slow city가 생겨나고 사람들은 삶의 여유를 즐기려 애를 많이 쓴다. 그러나 느림의 미학이란 정신세계의 문제다. 조급증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이 느린 삶을 즐기려면 시도 자체가 곧 고통이다. 과정을 생략하지 않는 성공은 시간이 걸려도 안전하고 여운도 오래 간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성공의 걸음이 무엇인줄 아는가? 바로 실패다. 사람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실패의 경험이다. 실패에서 중단하면 끝이다. 허나 움직이면 느린 성공이다. 거북이와 달팽이와 지렁이는 달리지 않는다. 그들에게 전진은 오로지 꾸준함이다.

나무를 베기 전에 낫 가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은 느린 성공이 뭔지 아는 사람이다. 무쇠덩이를 갈아 바늘을 만들려는 사람도 있었다. 2013년 미국 메이저 리그에 입성한 이후로 최고의 시즌을 보내며 2019년 현재 메이저 리그를 통틀어 유일한 1점대 방어율에 올스타전 선발투수로 등판하게 된 LA다저스의 투수 류현진이 요즈음 미국의 주요 스포츠 매체로부터 극찬을 받고 있다. 그는 포심, 투심, 커터, 체인지업, 커브 등 다양한 구질의 공을 던지는데 이번 시즌에는 그것들이 고루 뛰어나다. 초창기의 류현진은 위기에 흔들리지 않는 뱃장에 덩치만큼 느린 구질로 화제를 뿌렸다. 그래서 강속구 투수가 대세인 미국 야구계에서도 느린공을 던지는 투수를 자세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류현진도 빠른 공을 던질 줄 안다. 그런데 타자를 현혹하는 데는 체인지업이든 커브든 느리고 더 느린 볼 배합만한 것이 없다.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제구력이다. 한 번 깊이 생각해보라! 똑같이 한 시간이 주어졌을 때 서두르는 사람과 서두르지 않는 사람 중에 누가 더 시간을 제대로 활용할 것 같은가? 느린 쪽이 시간을 제대로 음미하며 적절히 사용한다. 24시간은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졌지만 완만한 속도로 활용하는 사람이 결과적으로는 더 효율적이다. 자신을 제어하는 힘이 약한 사람은 시간을 완만하게 활용하기 어렵다.

 

빠른 성공보다 바른 성공

혹자는 느린 걸음의 빠른 성공을 말하지만 언어유희에 불과하다. 느린 걸음이면 자연히 성공도 느리다. 오히려 느린 걸음에 바른 성공이란 표현이 더욱 어울린다. 응당 빠른 성공보다 우위에 있는 것은 바른 성공이다. 이를 알면서도 사람들은 바른 성공을 외면하고 빠른 성공에 러브콜을 보낸다. 바른 성공에 초점을 맞춘 시선을 결코 포기치 말라! 거북이, 달팽이, 지렁이의 걸음을 무시 말라! 소가 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 소가 만리를 간다(牛步萬里). 성공의 원리는 “천천히 그러나 쉬지 말고!”(Slow and steady!)이다. 자르기 전에 열 번, 백 번 재는 것이 성공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More haste less speed!) 조급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조잡스러운 결과물이든지 성취 직전의 미숙한 생명이다.

나눔을 실천하지 못한 성공은 바른 성공이 아니다 누림만 있고 나눔이 없는 성공은 이내 메마른다. 많은 성공자들이 성공 이전에 추구하던 부와 명예에서 급선회하여 나눔을 실천하는 삶에 가치를 두는 것은 가뭄에 단비를 맞는 것처럼 상쾌한 기분이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힘들게 벌어들인 부를 나누고 성공노하우를 나누며 삶을 나눈다. 옛 꿈을 나누고 현실의 경험을 나누며 미래의 비전을 나눈다. 언제나 나누는 샘물은 마르지 않는다. 이런 세상이 메시아왕국의 모습이 아닐까? 강자는 약자와 힘을 나누고 부자는 가난한 자와 소유를 나눈다.

이것이야 말로 이사야 선지자가 노래한 메시아 왕국의 실상이 아니겠는가?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사 11:6-8) 상함도 해함도 없는 것은 힘을 나누기 때문이다. 힘을 나누면 독기가 사라지고 생기가 솟는다. 성공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성공 이후의 삶이다.

 

작은 일상의 평범함이 쌓여 이룬 성공

스티븐 코비의 2007년 작 <오늘, 내 인생 최고의 날>의 원제는 <일상의 위대함>(Everyday Greatness)이다. 일상은 성공을 이루기에 위대하다. 성공이란 특별한 날은 작은 일상의 평범함이 쌓인 결과물이다. 오늘 하루를 허비하면서 특별한 어떤 날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다. 한 방울의 물이 작은 내를 이루고 급기야 큰 바다를 만든다. 태산을 이루는 것은 한 줌의 흙이다. 성공보다 귀한 것은 성공에 이르는 수많은 과정들이다. 거기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성공과 실패의 파편들이 널려 있다. 그 중의 하나라도 없으면 성공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생의 크고 작은 모든 경험은 성패와 상관없이 중요하다. 괴로운 어제도 쓰라린 오늘도 희망의 내일도 모두 인생을 위한 양질의 비료다.

사람마다 인생 최고 성공의 기준이 다르다. 2차 대전의 영웅 처칠은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뛰어난 업적이 아내를 설득해서 자기와 결혼한 것이라 말했다. 사상 최초로 투르 드 프랑스에서 7년 연속(1999-2005) 우승한 사이클의 황제 랜스 암스트롱은 자기 인생의 최고 성공을 암 극복에 두었다. 2013년 4월 16일에 여자 골퍼 박인비 선수가 세계 랭킹 1위로 등극하자 “내 생애 최고의 날”이라며 기뻐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의 해고가 자신의 인생에서 최고 사건이었음을 나중에 술회했다. 당신 인생에서 최고의 날은 무엇으로 기억되는가? 그리스도 안에서 나날이, 매순간 새로움을 창조하며 사는 자는 살아가는 매일이 생애 최고의 날이 아니겠는가! 시인 정호승은 <생애 최고의 날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에서 15인의 삶을 살짝 조명하는데 모두가 동의할 수 없어도 최고의 날이 아직 오직 않았음은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는 이들에겐 수긍이 가는 제호다.

 

한명철 목사  jesuspoin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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