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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그니칼럼】그 아비에 그 아들.

중학생 아들을 둔 부모 세 가족이 승용차를 타고 나들이를 가는중에, 뒷자리에 앉은 아내와 아들이 
서로 다투는데 
엄마는 꾸중하고 아들은 
대들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가 아들놈을 
꾸짖었다.
"이놈! 엄마한테 말버릇이 그게뭐냐!"
그러자 아들놈 왈 
"씨발 지 마누라라고 편들고
마누라없는 놈 서러워서 
어디 살것나!"

"저런 저런 쳐죽일 놈! 
말하는 것 좀 보게 
이 싸가지 없는 놈! 이놈"
아들 놈도 지지않고 다시 내 뱉는다.
"나 죽이면 지새끼 죽이지 
내 새끼 죽이나"

참! 멋진 아버지.
어느 20대 아들이, 
어머니와 말다툼을 하게 되었고
아들 놈 언성이 커지며
소리를 질러 대며 엄마에게 대들자
어머니는 무척이나 슬퍼하였다. 

그런 일이 있은 지 며칠 후 
아들은 아버지와 둘이서
어딘가를 볼일이 있어 
함께 차를 타고 가는 중 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나직한 음성으로
이렇게 물으시는 것 이었다.
"넌 나중에 네 애인이 있는데, 
어떤 남자가,
네 애인을 울리면 어떻게 하겠니?"
"그런 놈을 그냥 둬요?
팍 뒤지게 패줘야지요!" 

그러자 
아버지 말씀이, 
"네 엄마 울리지 마라.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여인이거든." 
아들은
아무런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그때, 
그의 아버지가 어머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 
그리고
가족을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 
알게 되었다.
참 멋진 아버지다. 

큰 소리 내지 않아도,
야무지게 꾸짖지 않아도,
이렇게 멋지게 
자식을 훈육할 수 있는
아버지의 지혜가 부럽습니다.

이런 아버지의 지혜가
우리들의 온 가정에 
사랑으로 넘처나길
기도 합니다. 

고려대, 총신대학원 졸업, 광운대 정보복지대학원 졸업, 서울 용산소망교회 경남 하동교회 부산 영도교회 시무. 현재, 행복이 가득한 교회(예장합동) 행복이 가득한 집(요양원) 시무

◆ 우리는 n... 세대였다. 

세계 최 빈국에서 일등국으로 만든 오늘의 대한민국을 일군 이들에게 누가 꼰대 세대라 홀대하는가? 우리는 n...세대였다. 

지금 60세이상의 세대들이 살아온 길은 그야말로 문명의 저편 내일이 보이지 않는 초근목피로 허기를 달래며 절치부심 지긋지긋한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려 몸부림치던 n...세대 였다.

그들은 <호롱불> 세대 였다. 난 어린시절 삼베옷을 짓기위해 호롱불 밑에서 길쌈을 하시는 어머니와 땟국물이 흘러도 목욕을 제대로 못하니 속옷과 머리빡에 기생하는 이와 썩케를 잡아 엄지 손톱사이에 놓고 죽여가면서 중고등과정을 주경야독으로 공부를했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그들은 <뒷간> 세대 였다. 요즘 그 흔한 '실내 화장실'이란건 듣도 보도 못한거고,  한겨울에도 툇마루 지나 마당 건너에 있는 '재래식 변소'에서 ''볼일''을 보던 때에 시골 아낙들이 동네 친목계를 해서 국내 여행을 다니더니 차츰 해외 여행에 눈을 떠 여객기 내의 좌변기 화장실에서 벌어진 웃지못할 에피소드들이 회자 되기도 했다.

그들은 <우물> 세대 였다. 지금이야 '상수도'가 보편화 되었지만, 그 시절엔 동네 '공동우물'에서 아낙들이 물동이로 물을길어 부엌 ''물항아리''에 담아놓고 바가지로 떠서 밥도짓고 반찬도 만들었다.

그들은 <가마솥> 세대 였다. 98%는 ''목욕탕''이 없어 소죽을 쑨 후에 길궈진 가마솥에 물을 데워 ''목욕''을 하고, 그도 여의치 않으면 함지박에 물을 부어 목욕을 대신하였다.

그들은 <손빨래> 세대 였다. 100%가 "세탁기"가 없어, 동구밖 개울에 나가 '얼음장'을 깨고 빨래비누가 귀해서 짚을태운 재로 아님 흙모래를 풀어서 ''빨래''를 했다.

그들은 '소달구지' 세대 였다. 99%는 '차'가 없고 '소달구지'가 유일 무이한 교통수단이었고, 소도 없는 집은 '짐 자전거'가, 이마저도 없는 집은 등에 지는 지게로 짐을 날랐다.

그들은 <고무신> 세대였다. 95%는 ''구두'도 '운동화'도 없어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이보다 앞선 세대는 짚신이 고작이었다.

그들은 <까까중> 세대 였다. 면소재지로 나가면 이발소가 있지만 대부분 이발비가 없어서 99%가 '이발비'가 안드는 동네 이장집에 있는 머리깍는 머리기게로 '까까중 머리'로 깍고 다녔다.

그들은 <책 보자기> 세대였다. 98%는 '책 가방'이 없어 보자기'에 '책'을 싸서 '허리'에 차고 다녔다. 책 가방은 손으로 들고 다니지만 책 보자기는 허리춤에 차고 다니므로 훨씬 편리하기도했다.

그들은 <고무줄> 세대였다. 100%가 '장난감' 이나 '놀이기구'가 없어 여자애는 '고무줄' 넘기하고, 사내애는 고무줄로 '새총'을 만들어, 때론 날으는 새를 잡기도했다.

그들은 <강냉이> 세대였다. 100%가 '쌀'이나 '보리쌀'이 없어 '학교'에서 주는 강냉이 가루를 반죽을해서 '강냉이 개떡'을 만들어 먹거나  강냉이죽을 쑤워 '끼니'를 때웠다.

그들은 <주경야독> 세대였다. 98%가 낮에는 '가사일, 농사일 돕기' 풀베기, 나무하기, 소먹이기, 어린동생 돌보기 등을 하고, 밤이 되어서야 ''학교숙제''를 했다.

그들은 <주판> 세대었다. 100%가 '컴퓨터'는 물론 계산기도 없어 다섯알짜리 '주판'을 굴리면서 '셈'을 했다. 급수를 따야 은행 등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할수있었다.

그들은 <일제고사> 세대였다. 100%가 입학 졸업은 물론이고, 초등학교 1학년때부터 전교생이 일제히 '시험' 을 치르고 '등수'를 매겨 경쟁을 했다.

그들은 <입학시험> 세대였다. 초등학교 존업생 100명중 70명은 진학을 포기하고 나머지가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아주 소수가 대학교진학을위해 "본고사 입학시험"을 치루어 '대학교'에 '진학'을 했다.

그들은 <공돌이 공순이> 세대였다. 하도 '가난'하여 '진학'하지 못하면 '식모살이' 아니면 구로공단 같은 공장에서 '공돌이' '공순이' '버스차장'을 하면서  소수가 야간학교에 다니거나 강의록으로 검정고시로 야간 대학의 꿈을 키웠다.

그들은 <삭월세> 세대였다. 젊은세대 80%가 '신혼 살림집'을 구할 ''돈''이 없어 거의 모두가 "삭월세 단칸방'' 부터 시작하여 억척이로 돈을모아 '전세'로 전환하였다. 고시 낙방생이었던 나 또한 만년 룸펜이었다가, 나이에 떼밀려 누나한테 20만원을 얻어서 삭월세방에서 신혼을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그 돈을 못갚고 있다.

그들은 <월남전> 세대였다. 나라가 가난하여 목숨걸고 돈을 벌어야 했다. 내 불알친구 김인택이가 파월장병으로 갔는데 그 전쟁터에서 번 피같은 돈을 내게 법서를구입하라고 보내 준돈으로 공부를했는데도 나는 보응하지 못했다.

그들은 <광부. 간호사> 세대였다. '최빈곤국'으로 ''독일''에 가서  ''돈''을 벌어 와야 했다. 선진 독일에서의 간호사근무 어땠을지 이역만리 독일에서 수백미터 지하에서 석탄캐는 광부생활  그 고생이 어떠했을까!

그들은 <중동 노동자> 세대였다. 모래바람과 열사의  나라 '중동지역' 에서 몸을 돌보지 않고 가족과 자식을 위해 오직 ''돈''버는일에 진력을 다하였다.

그들은 '보리고개'세대였다. 가장 넘기힘든 고개가 '백두대간고개'도 '마식령고개'도 '문경새재고개'도 아닌 바로 '보리고개'였다. 보리고개를 격어 보지 못한 젊은 세대는 쌀과 보리가 없으면 '마트'가서 라면 사 먹으면 되지 왜 꼭 보리추수때 까지 기다리느냐고 한다.

◆ 이처럼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을때 그들이 있어 그들이 몸을 사리지 않고 죽을뚱살뚱 일해서 지금의 "대한민국"을 세계의 일등국가로 이루워놓지 않았는가! 누가, 이분들을 뒷방 늙은이라며 똥친 막대기 취급한단 말인가! 누가 이분들을 "꼰대"라 하는가? 이들은 지금도 이 골목 저 골목을 뒤져 재활용 휴지를 모으는 '어른들'도 있다. 

이처럼 어르신들은 몸이 허락하는 한 자식과 가족을 위해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한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들숨 날숨'에는 '회한의 눈물'이 절반일 것이다. 그들은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 가난하고 엄한 부모님 밑에서 자라나 열심히 '캥거루 세대'를 키워낸 죄밖에 없는 샌드위치 세대 들이다. 그들에게 무슨죄가 있길래 오늘의 세대가 하대를 하려는가!.

며칠 전 내가 잘아는 젊은 목사가 찾아왔다. 그는 날보고 내가 가끔 카톡으로 멧세지를 보냈는데 남이 쓴것을 베껴서 '종그니'란 필명으로 보낸거라고 생각했었고, 또 수년전 내가 설교집으로 간행한 '바보로 오신 예수'란 5권의 설교집 또한 남의 설교집을 베낀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그랬다가 얼마전 유렵여행 기행문을 보고서야 그 생각을 바꾸었단다.

목사의 삶도 목사의 글도 이렇게 불신을 받는데 무슨 말을 더 할까 보냐! '바보로 오신 예수'란 설교집을 지금 맘으론 여건만 허락된다면 전부 손질을 하고 싶다. 그러나 지금 나겐 그런 여력이 없다. 그 날 온 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김종근 목사  webmaster@bonh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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