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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교회 영적 펜더멘탈(fundamental)을 점검-본헤럴드
  • 발행인 최원영
  • 승인 2019.07.16 14:42
  • 댓글 0
  • 조회수 639

한반도를 둘러쌓고 있는 모든 세력들이 하나같이 만만하지 않다. 우리에게는 참으로 힘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주변상황이 요동치고 험난해도 대한민국의 기초체력이 튼튼하면 이겨나 갈 수 있다. 전문가들의 평가는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이 아주 허약해져가고 있다고 한다.

경제학 용어중에 펜더멘탈이란 용어가 있다. Fundamental이란 기본 뜻은 '기본적인, 근본적인, 핵심적인'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펜더멘털이란 한 나라의 경제가 얼마나 건강하고 튼튼한 지를 나타내는 용어이다. 우리말로는 기초경제여건이라고 설명할 수 있겠다. 이 단어가 경제용어로 쓰이면 한 나라의 경제상태를 표현하는데 있어 가장 기초적인 자료가 되는 성장률, 물가상승률, 실업률 등의 주요 거시경제지표를 나타내는 용어가 되었다. 펜드멘탈이 좋으면 환율도 안정되고 주식도 오르고 경제가 아주 안정적이다.

요즈음 뉴스를 통해서 들려오는 한국의 경제가 점점 안 좋아지고 있다. 또한 국제 경제나 외교적 환경이 점점 힘들어져가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가?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 핵심부품산업의 황폐화이다. 좋고 저렴한 핵심부품을 수입해 사용했다. 기술개발에 정부나 기업이나 손 놓고 있었다.

둘째는 게임의 규칙이 바뀌고 있다.

19세기 산업사회의 특징은 대량소비가 핵심이었다. 기업이 가격과 품질의 경쟁력만 있으면 살 수 있었다. 싸고 품질 좋은 물건만 만들면 되는 시대였다. 그러나 지금은 게임의 규칙이 완전히 바뀌었다. 새로운 고객 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세계화가 파괴되었고 경제의 기본 질서가 파괴되었다. 기술혁신이 가속화, 다른 분야들간의 융합하고 복합화된 기술이 적용되어야 하고, 초연결과 초지능으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이 찾아왔다.

경제의 기초체력이 튼튼하면 외부적 여건이 변화가 찾아와도 큰 타격을 입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의 펜더멘털이 아주 허약해졌다. 일본의 아베 수상이 반도체 산업에 필요한 핵심 부품 소재를 관리하겠다는 말에 기업과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 전 세계국가 수가 총 196개 중에서 대한민국은 GDP 세계 11위, 인구 5천만명, 3만불 시대에 진입한 나라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 혼란이 찾아왔다. 이것은 게임의 규칙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우리나라 기업이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국제경쟁력을 지니고 있을까? 일본의 첨단산업 부품 규제 한마디에 화들짝 놀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들의 불안함을 감출 수 없다.

 지금까지 국제질서가 신자유주의동맹체제였다. 트럼프가 들어서면서 내셔널리즘으로 바뀌었다 . 자유주의 체제의 기본 전제는 방임주의이다. 방임주의는 많은 문제가 발생했다. 그래서 신자유주의 사상이 나왔다. 한국은 국제질서인 신자유동맹체제와 글로벌리즘 강화로 인해 큰 혜택을 누리며 성장을 거듭했다. 이 분위기가 트럼프가 등장하면서 기본 질서깨지기 시작했다. 자국의 이익을 강조하는 내셔널리즘이 강화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 일본은 핵심부품 수출에 대한 제한 조치를 했다. 당장 반도체에 심각한 위기가 찾아왔다. 핵심부품이 없으면 완성품을 만들지 못한다. 우리는 일본을 비난한다. 일제 38년의 침략과 그동안 무역적자 심화 등 일본과 국민적 감정이 그리 좋지 않다. 일본에 대해 한국인들의 분노는 점점 들 끊고 있다. 그런데 정부는 감정으로 대응했다. 그러나 현실은 감정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다. 문제가 겉잡을 수 없이 커지자. 청와대가 기업총수를 불러서 문제해결을 위한 대화를 했다고 한다. 정부가 제시한 해결책은 부품 구입을 위한 수입 다각화하라는 것이다. 문제는 일본 제품을 뛰어넘는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 요구 사항이, 기업이 기술을 개발하라. 이것이 당장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좋겠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면 그동안 한국정부와 기업은 무엇을 했는가? 정부도 기업도 손 놓고 있었다. 편안하게 좋은 물건 같다가 완성품 만들어서 팔았다. 국제질서가 깨지면서 한국은 뒷통수를 맞고 있는 것이다. 일본을 의지했고, 중국을 의지했다. 미국을 의지했다. 북한을 의지했다. 그런데 의지한 나라들로부터 냉혹하게 취급을 받았다. 성경에 보면 도울 힘이 없는 방백을 의지하지 말라고 했다. 의지하다보면 항상 중요한 순간에 배신 당한다. 이것이 국제질서이다. 국제질서가 영원히 나라를 지켜주지 못한다. 한 가지 방편은 될 수 있다. 나라는 스스로 힘을 길러야한다.

손정의 회장이 청와대에서 했던 이야기가 뻣속에 스며든다. 한국경제가 어떻게 해야 세계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분이 한 말이 있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AI이다. 인공지능이 국가 흥망성쇠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지금 세계는 AI전쟁이다.

한국의 AI 기술력이 미국보다 2.4년 뒤진 것으로 평가한다. AI에서 2년은 제조업의 20년 격차 이상이다. 중국과 미국은 AI 패권을 겨룰 수준이 되었다. 일본은 초중고 100만명, 대학, 대학원 50만명에게 AI을 가르치고 있다.

그러면 한국은 미래 먹거리를 산업을 위해서 얼마나 팔을 걷어부치고 밤을 새워가며 연구하고 있는가? 한국은 저녁이 있는 삶을 주장하고 있다. 오후 6시면 퇴근하여 자녀들과 함께 휴식하며 지내라고 한다. 세계적인 두뇌들은 밤을 낮 삼아 연구실에 불을 밝히고 먹거리 경쟁에서 우위를 점유할려고 눈에 핏발을 세워가며 연구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어떠한가? 이미 잔에 축배를 마시고 즐기고 있다. 다음세대들의 최대의 꿈이 건물주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있다. 꿈을 잃어버리고 있다. 인생의 방향을 잃어버리고 좌초하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의 거시경제의 펜더멘털이 아주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천도복숭아가 익어가는 본푸른교회마당

◐한국교회의 영적 펜더멘털

그러면, 한국 교회는 경쟁력이 있는가? 과거에 교회는 기초가 아주 튼튼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떠한가? 지금은 점점 기초가 허약해져가고 있다. 한국교회의 힘은 예배였다. 수요일, 금요일, 주일오전 오후, 새벽예배, 가정예배, 회사예배 등 예배로 덮여 있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힘이었다. 그 결과 영적기초체력이 아주 튼튼했다.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는 영적인 힘이 강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의 영적 체력이 아주 약하다. 그 이유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바로 예배이다. 예배을 주 1회 드리는 사람들이 성도들의 90%가 된다. 예배란 무엇인가? worship이다. worth(가치)와 ship(창조)의 합성어이다. 예배란 ‘가치를 창조하는 행위’이다. 예배를 통해서 가치를 창조한다. 일주일에 한 번 드리는 사람과 일주일에 7번 드리는 사람과 영적 기초체력은 완전히 차이가 난다. 매일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과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사람과는 그 차이를 비교할 수 없다. 누가 더 경쟁력이 있는 제자일까? 교회의 영적 펜더멘탈이 강하다는 것은 매일 예배를 통해서 영적 가치를 창조할 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된다.

한국교회의 힘은 기도가 살아 있었다. 기도모임이 부흥했다. 국가와 열방과 민족과 교회와 영혼구원과 사업장과 민족통일을 위해 기도했다. 부르짖어 기도하는 열기가 뜨거웠다. 부르짖는 기도영성은 한국교회의 힘이었다. 부르짖어 기도했다. 무조건 성경말씀대로 부르짖어 기도했다. 그 결과 하나님의 기적을 맛보며 날마다 승리할 수 있었다.

한국교회가 세계 교회앞에 내놓을 상품이 바로 기도상품이었다. 기도로 부흥했고, 기도로 어렵고 힘든 고난의 세월을 꿋꿋이 버티며 이겨냈다. 잘살아보세, 나도 한번 잘살아서 이웃과 열방에 선교하며, 섬기며 살겠다는 목표를 가졌다. 곳곳에서 거룩한 부흥들이 일어났다.

성도들이 성경공부와 제자양육에 온 힘을 기울였다. 성경에 빨간줄, 노란줄, 파란줄, 줄을 그어가면서 성경에 집중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려고 몸부림쳤다. 성경을 필사하고, 금식하며 성경을 읽고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받으려고 몸부림쳤다. 세상의 모든 책중에서 성경을 가장 사랑했다. 한국성도들의 기초체력이 아주 튼튼했다. 시간을 내서 성경을 읽고 또 읽고 송이꿀보다 더 달게 느껴졌다.

헌금을 드리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드렸고, 과하게 드렸다. 더 못 드려서 안타까워했다. 주님께 드리면서 기쁨과 감사가 더욱 넘쳤다.

2000년에 본푸른교회를 시작했다. 큰 아이 만 6살, 둘째 아이 5살때이다. 아비로서 자녀들을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는 것에는 우선순위에서 항상 뒤로 밀렸다. 오직 주님의 교회를 유지하고 세워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찼다. 주님께 더 드리고 싶은데, 더 드릴 것이 없어 안타까운 마음으로 살았다. 저만 그렇게 살았을까? 아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모든 목회자와 성도들이 그런 마음으로 교회를 섬겼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힘이었다.

봉사하는데 기쁨으로 자신을 드렸다.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고 이웃을 위해 봉사하는 기쁨을 최고의 기쁨으로 생각했다. 섬김을 최고의 신앙행위로 보았다.

오늘날 국가가 세금으로 복지를 감당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에는 거의 80%를 교회가 감당했다. 성도들이 감당했다. 고아원, 유치원, 탁아소, 노인요양원, 학교, 급식 등 국가의 예산과 손이 미치지 못하는 사회의 어두운 곳을 성도들이 헌신으로 감당했다. 구한말부터 70년대까지 거의 교육은 기독교 사학이 감당했다. 성도들이 헌신으로 운영한 것이다.

내가 섬기는 교회는 앞뒤로 공장이 있다. 한주 간 화장실을 거의 두 집에서 사용한다. 10년이 지나도 한 번도 청소를 안한다. 화장실에 가면 휴지통에 휴지가 가득 쌓여있다. 이것이 일주일간의 화장실의 모습이다. 그런데 주일에는 깨끗한 화장실을 사용하고 있다. 교인중에서 포천에서 오시는 박선숙권사님과 남편 김기락집사님이 주일 오전 7시에 오셔서 매주 청소하고 깨끗한 수건으로 교체를 한다.

얼마나 힘든 일인가? 그런데 늘 웃으면서 기쁨으로 감당하고 있다. 벌써 몇 년이 지났다. 한번도 쉬는 경우가 없다. 그런데 왜 내가 해야 하는가 불평하지 않는다. 항상 웃으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하고 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힘이었다.

모든 교회가 전도에 온 힘을 집중했다. 오직 전도, 오직 전도를 외쳤고, 오직 선교를 외쳤다. 교회 부흥에 온 힘을 기울였다.

한국교회의 펜더멘탈이 이렇게 강했다. 이런 강한 힘으로 한국 경제를 이끌어가는 중심축이 되었고, 또한 세계선교의 중심국가가 되었다.

그러나 요즈음 한국교회는 경쟁력이 있는가? 질문한다면. 어떤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1020년 후에 한국교회 여전히 경쟁력이 있을까? 내가 섬기는 교회는 미래가 밝을까? 앞으로 우리 다음세대들이 기성세대와 같이 교회를 내 몸처럼 여기고 가꾸고 헌신하며 순종하며 섬길것인가? 이것이 고민이 된다.

원수마귀 사탄은 교회를 계속 공격한다. 영적 무기력증에 빠지도록 유도한다. 좀 더 편하게 신앙생활하자. 예배도 편하게, 봉사도 편하게, 기도도 없이, 헌금의 드림도 없이, 전도와 선교의 헌신도 없이 오직 편하게 하자. 오직 헌신없는 편안함과 왕자와 공주로 대우만 받고 싶어하는 욕망들이 점점 강하다. 조금이라도 헌신의 무게를 던지면, 이 교회 아니면 다른 교회로 가면 되지라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헌신 없는 삶은 의미도 가치도 기쁨도 능력도 은혜도 없다. 땀을 흘린 만큼 기쁨도 감사도 찾아온다. 십자가 없이 영광의 면류관은 없다. 이것이 진리이다. 그런데 십자가 없이 영광의 면류관만 원한다.

사탄이 예수님을 공격한 3번째 시험이 무엇인가? ‘네가 나에게 절하면 내가 세상 모든 영광’을 주겠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탄을 향해서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마4:9,10).

예수님은 사탄이 제시한 편안한 길을 거부했다. 그리고 하나님 뜻안에 자신의 길을 걷겠다고 외쳤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최종적인 목적은 십자가에서 죽어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원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순종했다. 십자가의 고통을 본인이 직접 감당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그 이름앞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다.

자녀를 양육할 때 부모님들은 자녀가 공동체를 위해서 헌신하도록 가르쳐야 한다. 헌신을 모르는 자녀는 리더가 되지 못한다. 이웃을 위해, 국가를 위해, 하나님 나라를 위해 땀을 흘리는 수고를 가르쳐야한다. 그래야 경쟁력이 있다.

손정의회장은 우리 정부에게 주문한 것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AI라고 했다. 인공지능만이 세계 경제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래의 먹거리는 인공지능이다. 이것이 국가의 흥망성쇠를 결정한다.

그러면 교회의 첫째는 무엇인가? 첫째도 전도요, 둘째도 전도요, 셋째도 전도이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4:2).

이것이 교회가 나아갈 방향이다. 예배, 기도, 성경공부, 봉사, 헌금의 마지막 방향은 전도이다. 선교이다. 이것이 교회의 영적펜더멘털이다. 이것을 잊지말라. 고난의 세월을 이기는 방법은 기초를 다시 세우는 것이다.

 

 

발행인 최원영  jhoncho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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