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136) - 호세아(6)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부회장 KC대 전 총장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호4:1-2).

호세아서가 두 번째 부분을 시작하는 말로 ‘들으라(쉐마) 이스라엘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고 시작한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쉐마는 하나님의 언약을 갱신하는 방법이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구원을 받은 길이기에, 그는 이를 강조하고 있다. 호세아서는 아모스의 구조와 비슷하게 되어있다(암3:1로 두 번째 부분 시작함). 아모스처럼 송영(영광송)이 호세아서도 한번 나온다. “저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여호와는 그의 기념 칭호니라”(호12:5).

호세아 메시지는 아모스와 같이 남왕국에서 가져왔다. 비록 북왕국의 파괴와 멸망의 때를 오직 말하더라도 말이다. “사마리아가 그 하나님을 배반하였으므로 형벌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그 어린 아이는 부숴뜨리우며 그 아이 밴 여인은 배가 갈리우리라”(호13:16). 호세아서와 아모스가 밀접하게 연관되었다고 본다(쉬미트). 아모스의 담화(5:5;1:4)가 이어지는 호세아서에서 이야기 단계의 부속적 이야기로 바뀌어 변경된 형태로 나타난다(호4:15;8:14; 참고7:10;11:10). 이는 아모스서와 호세아서 사이에 야웨 신앙의 개혁의 차원에서 개혁적 마인드가 공유된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아 너는 행음하여도 유다는 죄를 범치 말아야 할 것이라 너희는 길갈로 가지 말며 벤아웬으로 올라가지 말며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지 말찌어다”(호4:15). 북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이유는 범죄하였기 때문이다(호13:1,9). 우상 숭배와 10계명을 어기는 죄는 결국 파멸과 멸망, 패망으로 끝나게 되는 것을 본다. 결국 회개와 종교개혁을 통한 구원의 희망을 가지는데 희망이 있다. 호세아는 그것을 말하고 있고, 아모스도 그것을 말하고 있으며 구약은 개혁신학의 구조를 밝히고 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아 들으라’, ‘제사장들아 이를 들으라’(호5:1). 율법과 언약을 들으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호세아서 편집 단계가 있었다고 보고 유대적 편집(여러 차례 편집함)이 남왕국에서 이뤄졌고, 북왕국에 반대하는 남왕국 출신의 호세아가 했다고 본다. 그래서 그것이 확대되었다고 본다. “이스라엘의 교만이 그 얼굴에 증거가 되나니 그 죄악을 인하여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이 넘어지고 유다가 저희와 한가지로 넘어지리라”(호5:5). “유다여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호6:11).

오늘날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상황이 호세아서 이해에 도움이 될까? 우리는 남한에 살면서 철원의 유엔정전위원회가 관리하는 GP지역에서 보초 진영이 11개가 철폐되고 서로 유일하게 한 개씩 남겨 두었는데 우리는 고성쪽 진지를, 북쪽은 철원쪽 까치울(김정은 방문진지)이라고 한다. 이제 미국 하의원에서는 북한과 미국사이의 정전 협정에서 평화 협정으로 바꾸자는 의안이 상정되어 통과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한반도가 하나님을 떠난 죄로 분단되었지만 희년(70년)의 해방으로 인해 통일이 될 수 있을까? 이는 마치 호세아가 북이스라엘이 구원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심각한 가족사를 폭로하고 아내의 죄악을 노출시키면서 펼치는 애련(哀憐)한 사랑의 노래를 이해할 수 있을까? 우리는 안타깝게 민통선에서 통일을 갈구하며 철원이나 개성이 통일 도시가 되지 않을까하는 막연한 추정을 하며 소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호6:4).

호세아는 유다를 포함한 메시지를 북이스라엘을 향하여 선포하며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고 싶어한다. “그러므로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좀 같으며 유다 족속에게는 썩이는 것 같도다”(호5:12). 남쪽 출신인 호세아가 그의 마음이 남쪽에 있지만 사명으로 북쪽만 예언의 말씀을 전하고 온통 그쪽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유다 방백들은 지계표를 옮기는 자 같으니 내가 나의 진노를 저희에게 물같이 부으리라”(호5:10). 유다든 북 이스라엘이든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은 돌아서서 오직 주의 말씀을 듣는 길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제사장아 들으라.

오늘 우리는 분단 민족에 살면서 정전 협정 70년을 맞이하고 있다. 우리는 이 역사의 지평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호세아의 메시지를 보면서 생각해볼 때이다.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내가 주는 물을 먹는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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