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 이와쿠라 도모미 사절단의 보고서 <미구회람 실기>

1871년 일본 메이지 정부는 구미 12개 국가에 이와쿠라 사절단을 파견한다. 이들은 1년 10개월에 걸쳐 당시 메이지 정부 예산의 2%를 쓰며 구미 선진국들의 제도와 산업을 조사 연구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1876년 사절단의 일원이었던 구미 구니다케가 전 5권으로 된 <미구회람실기>를 발표하여 전 국민과 공유하여 근대화의 계기를 마련한다. 

이때 일본의 이 사절단에는 우대신 이와쿠라 도모미, 참의 기도다카요시, 대장경 오모쿠보 도시미치, 공부대보 이토히로부미, 외무대보 야마쿠치 나오요시 등 메지지 정부 실세 절반이 참여하였으며, 정부 각부서의 중견 실무관리 41명, 18명의 수행원, 43명의 유학생이 함께하였다.

당시에 이미 구미 선진국들은 일본 사절단에게 산업현장을 눈으로만 보여주고 절대 사진을 찍지 못하게 했다. 특히 중요 산업시설은 지금처럼 보여주지 않았다. 일본 사절단이 간곡히 부탁했지만 선진극들은 결국 잠깐 먼발치에서 보여주기만 했다.

그러나 일본 사절단은 매일 밤마다 모여서 자기들이 본 것들을 그림으로 남기고, 보고 들은 내용들을 각자 기록으로 정리했다. 그들은 귀국해서 그것들을 산업현장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방영된 당시 역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면 그들이 그려온 그림도 대충 그린 그림들이 아니라, 설계도 수준으로 수치들이 정확히 반영된 것이었다.

메이지 정부의 정책 수립은 실무관리들이 그리고 그지속적인 실행은 성장한 유학생들이 주도하였으나, 초기의 강한 추동력은 정권의 실세들에 의해 이루어 졌으니 그야말로 이사절단의 환상적인 조합이야 말로 일본 근대화의 초석이 되었다고 할수 있겠다. 

우리는 이제 패스트 팔로우워의 끝자락에 와 있으니 퍼스트 무버의 스탠스를 갖추는게 지상의 국가적 과제가 되었다. 시중농담처럼 아베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 제꼈으니 이는 한국사회의 일대도약을 위해 신이 주신 선물이라 할것이다.

우리보다 여러분야에서 앞서 있는 미국 독일 일본의 교육 문화 과학기술 등과 관련된 조사 연구를 위해 이와쿠라사절단을 능가하는 대규모 국가혁신 TF팀을 꾸려 4차 산업혁명의 선도국으로 나아갈 방안을 수립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래서 민주정책 연구원에서 펴낸 한일 무역 마찰이 내년총선에 민주당에 유리하게 작용할거라는 보고서는 1876년 이와쿠라 도모미 사절단의 보고서 <미구회람 실기>에 비하면 정권 실세들의 의식이 너무 초라하고 천박함을 느낀다.

<필자 장하석은 증권회사를 거쳐 현재는 투자전문회사 CEO이다>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지혜·인내 그리고 ‘시간’이다

수출 6,200 억달러와 7,200억 달러가 큰차이가 없어, 우리가 쉽사리 일본을 극복할수 있다는 환상에 젖어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 그리고 집권당의 주요정치인들이 선동적 멘트를 날리는 것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지금부터 100년도 전에 영남의 혁신 유림 석주 이상용은 몇차례 의병에 참여하고 지원하였지만 그결과는 매우 참담하였다. 이에 그는 일송 김동삼 등과 더불어 신식교육 기관을 설립하였으나 보수유림이 학교에 난립하여 교사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전재산을 정리하고 일족들과 함께 서간도로 이주하여 우당 이회영과 신흥무관 학교를 설립하고 이후 전개되는 여러갈래 무장투쟁의 기초를 닦았다. 

그럼에도 조선의 고난은 오래 지속되었으며 태평양 전쟁이 끝나서야 일본의 조선 지배는 끝났고 조선이 독립되기 전에는 돌아오지 않겠다는 유언으로 서간도에 오래 뭍혀 있었던 이상용은 비로소 그리던 조국에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그의 가족들은 온갖 이념의 상흔을 안고 갈가리 찢어진채 남과 북으로 흩어져 이산가족이 되고만다.

20년전 이스토리를 담은 책한권을 어떤 386 정치인에게 선물한 적이 있는데 그는 나중에 그의 홈피에 이책장의 마지막을 덮고 밤새 통곡했다는 얘기를 올려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다. 그는 국회의원과 장관직을거쳐 지금은 대권 후보 반열에 올라 있다. 우리는 과거에 통곡하며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할까? 이번사태가 내년 총선에 유리할꺼라는 보고서를 아무런 부끄러움없이 버젓이 낸 집권당이 과연 올바른 해법을 낼수 있을까?

사실 일본은 2013년부터 한국을 백색국가 제외를 고민해왔다. 이번의 대법원 판결은 계기만 준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일본에도 대통령에게도 외교부장관에게도 대법원 판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기초과학을 게을리 하고 한국의 장기전략을 소홀히 해왔기때문이다. 공무원이나 회사원이나 모두 1년 길어서 3년,5년까지 나의 위치, 나의 상황이 안전한 것만에만 관심있지 50년이후 한국은 어떤 국가로 건설해야 할지 고민하지 않는다. 대통령도 5년임기제이라 50년의 한국을 논하기에는 나하고 너무 먼 이야기이다. 한국은 도대체 50년이후, 100년이후 세계에서 어떤 국가로 살아갈려고 하는지, 누가 나한테 답을 줄 수 있는지?

일본이 150년에걸쳐 이룩한것들을 우리는 50년 압축성장으로 해냈으니 그만큼 모든 분야에서 부작용과 폐해가 클 것이다. 당과 청와대와 정부가 이모든 문제를 점검하고 10년 20년 30년 더나아가 100년을 바라보는 비젼을 세우고 집행할 국가적 차원의 기구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남의 마굿간에서 쓸개를 핧는일이 선전과 선동만으로 되겠는가? 끓어오르는 분노를 잠시 누르고 진정으로 시간과 지혜와 인내가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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