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로교 목사이다. 내가 목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면 목사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목사가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목사가 되었다. 성경이 좋아서 신학교에 지원했고, 신학교 졸업할 무렵에 설교가 하고 싶어서 농촌 교회에서 사역했다. 그러면서 목사도 되었고 목사가 무엇인지 목사가 된 뒤에 조금씩 알아가는 생짜 목사이다. 나의 아버지는 농부였고, 아버지의 길이 나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의 간곡한 만류로 농업이 아닌 나의 길이 아닌 공대에 진학했다. 그래도 공대, 나의 전공에서 전문적인 학문을 준비하다가 신학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목사까지 되었다. 그리고 목사로서 20년을 살고 있다.

그리고 목사에 대해서 반성하면, 목사는 교회에서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너무나 절실하다. 성경에서 사도 바울은 무시로 자기 자신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고 성도들을 권면했다. 그 능력의 주의 사역자께서 왜 기도를 부탁했을까? 사도 바울을 위한 기도보다 수 백배 만배 더 기도해야 우리 사역자들은 그마나 조금이나마 온전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시대는 목사에 대한 배려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목사의 중요성은 목사가 말해야 한다. 목사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은 목사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목사가 자기 위치이기 때문에 선뜻 중요성을 말하지 못하고, 에둘러서 말하곤 한다. 어떤 사역자는 ‘별미’와 관련해서 말하기도 한다. 그런 중요성은 목사의 중요성을 잘 알지 못하는 것이다.

고경태 논설위원, 주님의교회 담임목사, 형람서원 대표, 한영대, 총신대, 광주바이블칼리지 강사

어떤 목사는 “목사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라는 어휘 의미는 “목사의 자기 부정”을 의미하지만, 오해를 살 여지가 있다. 정확하게는 “목사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 목사의 입에서 주의 복음이 선포되기 때문이다. 목사의 입에서 선포된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찾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방송과 인터넷에서 넘치는 다른 교회 사역자의 설교는 성도들에게 유익하지 않다. 필자는 자기 목사의 설교를 이해하지 못하는 성도가 다른 교회 목사의 설교를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은 거짓일 뿐만 아니라, 자기교회 목사에 대한 인격 모독이라고 주장한다. 이해는 일단계에서 시작하지, 이단계부터 시작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광주에서 살고 있는데, 자기가 좋아하는 목사의 설교를 듣기 위해서 인터넷이 아닌 직접 서울로 올라가는 경우를 보았다. 바른 자세는 아니지만 논리적인 자세이다. 정말 그 사역자가 좋다면 그 사역자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 좋고, 이상적인 것은 그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좀 더 과격하게 목사의 설교가 아닌 평신도 설교, 누구나 설교를 좋아하기도 한다. 초대교회에서 그랬다고 이해하기도 한다. 초대교회의 설교에서 대해서 신약성경은 보면, 사도들은 복음선포자의 설교를 매우 주의 깊게 들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사도의 이름으로 거짓 설교를 하는 삯꾼들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성도의 재물을 훔쳐가는 것보다 영혼에 상처를 주기 때문에 주의해야 했다. 즉 설교는 사도적 권위가 있는 사역자가 해야 한다. 교회 시대에는 합법적인 훈련을 지낸 사역자가 반드시 복음을 선포하고 성례를 시행해야 진리의 예배이다. 누구나 설교, 누구나 성례는 만인제사장을 오해하고 오용한 사례이다. 만인제사장은 루터가 성찬에 떡과 잔을 취할 수 있는 자격이며, 스코틀랜드 언약도들은 무릎을 꿇지 않고 바른 자세로 취하는 것들이다.

우리시대는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그래서 이중직 사역자들이 많이 형성되고 있다. 정녕 설교를 하고 싶다면, 직업을 유지하면서 정규 신학 교육을 받고, 목사 임직을 받은 뒤에 하면 될 것이다. 굳이 설교할 능력이 되기 때문이 설교를 한다는 것은, 운전능력이 있기 때문에 자격증 없이 운전한다는 것과 같다. 교회 시대는 설교할 자격(강도권)을 만인이 볼 수 있도록 인준한다. 합격자 명단을 신문에 공지하는 이유이다.

“목사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는 것은 성경이 증명한다. 사시기에 소득이 없자 레위인은 한 가정의 제사장이 되기를 기뻐했다. 말라기 선지자는 십일조를 하면 확실하게 책임져 준다라고 계시했다. 성막, 성전에 사역자가 없으면 성전은 소용이 없다. 교회에 사역자가 없으면 교회는 무용지물이다. 우리시대 신학교 지원자가 급감하고 있다. 지금은 인재풀이 넘친다. 그러나 몇 년 뒤에 인재풀이 사라질 것이다. 그 때까지 교회가 지탱된다해도 인재가 없어 교회는 초대교회로 돌아갈 것이다.

목사가 살아야 교회가 사는데, 목사를 살리는 방법은 목사와 성도가 협력해야 한다. 가장 기본 책임은 목사에게 있다. 목사다운 목사가 되도록 정진해야 한다. 신학교는 철저하게 도제 교육으로 자기 선생이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신학교 강단이 아니면 교회 사역자를 합당한 선생으로 삼고 함께 정진해야 한다. 스타 목사를 동경하는 자세를 신학교에서부터 버리자. 현직 사역자들도 대형 교회에 대한 막연한 상상을 버려야 한다. 자기 분깃 안에 주신 주님의 양떼를 목양하는 사명을 준수해야 한다. 이슬람은 한 번 모스크는 영원한 모스크인데, 교회당 부지는 포기, 매각(이단에게 매각됨)이 너무나 빈번하다. 농어촌 교회당들은 점점 비어가고 있다. 성도 한 명 없는 교회당을 지킬 사역자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사역자가 살아있는 교회는 살아있다. 아무리 대형교회라 할지라도 사역자가 삯꾼이면 부패한 교회를 넘어서 거짓된 교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성도들이 부패했다할지라도 목사가 목사이면 그 교회는 온전한 교회이다.

대한민국 성도들은 대한민국 목사와 선교사를 위해서 쉼 없이 기도해야 한다. 이것은 사도의 권면이다. 사역자들이 주는 실망과 배신감에도 포기하지 말고 사역자를 위해서 기도하시길 바란다. 그것이 주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결코 목사나 사람이 아니다. 교회의 주인께서 영존하시는데, 성도들이 잠깐의 현상을 보면서 낙담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다운 자세가 아니다. 힘써 대장부가 되어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고 지켜야 한다. 이 시대에 교회가 진정한 소금과 빛이 될 수 있도록 그리스도인은 주 예수님께 충성과 헌신을 다해야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된 사역자들이 살아야 교회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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