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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등산로에서 고인이 된 아버지를 만나다아버지의 땀방울과 생명을 먹고 자랐다

나는 산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어린시절 첩첩 산중에 살았다. 앞에도 산, 뒤에도 산, 옆에도 산, 산속에 갇혀 살았다. 나는 늘 가로막고 있는 산이 답답하다고 느꼈다. 언젠가는 이 산골을 벗어나리라 생각이 들곤 했다.

내가 살던 고향은 100대 명산에 들어가는 용화산이다. 용화산에 가장 가까운 집이 내가 살던 고향이다. 그런데, 그 산을 늘 보며 자랐지만 정상에 올라가 본적이 없다. 남전도 회원들과 함께 야심찬 출발을 했다. 내 나이 55세 인생의 중년에 고향 산을 등반했다. 폭염과 대지를 불태울 만큼 뜨거운 태양이 중천에 떠 있는 낮11시,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굴곡진 가빠른 돌산을 힘들게 한발 한발 옮기면서 숨이 차고, 땀이 비가 오듯 솟아나고, 심장의 박동은 빨라지고, 다리는 천근만근, 숨이 차서 헉헉 거리며, 힘들게 한 발 한발 내딛으면서 문뜩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가 일생동안 이 산을 뒤지며 숱 하게 오르고 내렸던 산이다. 젊은 나이에 결혼해서 오직 가족 생계를 위해 올랐던 산이다. 아버지는 가을에는 송이버섯을 채취했다, 송이를 채취하기 위해 새벽 3시면 일어나 산으로 올라가셨다. 어두운 산을 홀로 감각에 의지하여 온산을 누비셨다. 겨울에는 산골짜기에서 숯가마를 만들어 놓고 숯을 만들어 장에 팔았다. 참나무 장작을 패서 지게에 지고 춘천시내까지 날랐다. 벌통을 만들어 산골짜기 마다 세워놓고 채취를 하며 살았다. 여름에는 벼농사와 밭농사로 일하시다가 논밭에 쓰러져 주무시다가 새벽을 맞이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일들이다.

자녀 9명을 책임져야할 가장의 어깨가 참으로 버거웠을 것이다. 오직 아버지는 자식을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키기 위해 힘든 산을 오르셨다. 힘들었지만 힘들다고 표현하지 못하고, 고단한 삶을 이어갔다. 그러나 나는 어린시절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오직 시골이 답답하다고만 느꼈다.

나는 55년만에 고향산을 처음으로 등반하고 있다. 너무 숨이 차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진다. 갈증으로 인한 목마름이 너무 심하다. 물 한 병도 없이 폭염이 내리쬐는 그 11시에 산에 올랐다. 참으로 무모한 출발이었다. 너무도 쉽게 생각했다.

나는 산을 구경하기 위해 올랐다. 너무 잘 먹어 배어 붙어있는 노폐물을 씻어내기 위해 올랐다. 인문학 산책이란 거창한 제목을 달고 “걷는 기도”란 명칭을 내걸고 시작한 발걸음이다. 참으로 명분이 거창하다. 나의 등반은 오직 배부른 자의 허세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이 산을 오직 가족들 생계를 위해 오르셨다.

나는 등산로를 따라 걸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돈이 되는 것을 채취하기 위해 산을 올랐다. 돈이 되는 것을 찾기 위해 산비탈 골짜기들을 넘어 온산을 헤맸을 것이다. 죽을 만치 힘들었을 것이다. 때로는 너무 힘들어 깊은 산에서 혼자 목 놓아 울었을 것이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다른 대안이 없어서 산을 날마다 오르며 고단한 삶을 이어 가셨을 것이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녀들에게 가난을 물려주기 실어서, 몸부림쳤을 것이다. 자신의 힘든 삶을 물려주기 싫었을 것이다.

바쁜 농사철에는 때로는 자식의 일손이 필요하셨다. 집에 오셔서 시간 있니 물으면, 나는 공부해야 한다고 했다. 공부를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일하러 가기 싫어서였다. 공부한다고 하면 조용히 문을 닫고 혼자 일하러 가셨다. 자녀가 공부하는 모습만 보아도 흐뭇해 하셨다. 그것으로 위로받으셨다.

아버지는 못 배운 설움을 자녀들이 공부하는 모습으로 위로받고 채워가셨다. 그리고 힘든 일상을 혼자 이겨 나가셨다.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을까? 자녀의 따스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그리웠을까? 고향산을 오르면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안쓰러움이 내 안에 진한 아픔으로 다가온다. 다른 재주가 없어서 힘들게 고향산에서 일생을 뛰어다니며 살았던 아버지,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이 너무 진하게 찾아온다. 등산화와 편한 복장과 맨 몸으로 오르기도 힘든 이 산을, 오직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한 가지 목표로 힘든 산을 등산 장비도 없이, 망태기 하나 메고 허기진 배를 욺겨잡고 가파른 산골짜기를 넘었던 아버지가 안쓰러움으로 다가왔다.

등산로를 따라 걷다보니 다양한 버섯이 있는데, 내가 아는 버섯은 거의 없었다. 어떤 것이 먹는 버섯인지, 못 먹는 독버섯인지 구별을 할 수 없다. 아버지가 산에서 채취한 산나물과 버섯을 즐겨먹었지만, 채취해 본적이 거의 없다. 토종꿀은 늘 먹었지만 벌을 재배하는 방식은 모른다. 산에서 자랐지만 산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

오직 아버지가 주는 것만 따박 따박 당연하게 먹기만 했다. 아버지의 땀방울과 맞바꾼 생명을 먹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성실함의 뒷모습만 보고 자랐다. 아버지의 삶을 떠올리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안쓰러움으로 아버지를 떠올리며 추억을 더듬어갔다. 터벅터벅 한 발 한 발 옮기면서 어느 순간 힘들다, 너무 덮다. 목마르다 라는 생각을 잊어버리고 걷고 있었다.

55년만에 오른 고향산이 너무 힘들어 지쳐 있는 자식에게 아버지는 마음에 나타나서 자식과 대화를 하셨다. 대화의 물꼬를 이어가면서 자연스럽게 힘든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아버지로부터 ‘아버지’는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교육받은 적이 없다. 그러나 아버지는 삶으로 아버지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셨다. 뒷모습이 더욱 진한 여운으로 다가오는 아버지의 모습이 수천마디의 말보다 더 힘이 있는 언어일 것이다.

55년만에 나는 용화산에서 아버지의 채취를 느꼈다. 나에게는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던 단순한 용화산이었다. 그러나 등산로을 따라 걸으며 아버지의 향취를 찾았다. 이 산은 아버지의 삶이 묻어 있는 곳이기에 나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남다르다.

“지금은 주님 품안에서 안식하고 계신 아버지, 당신은 위대한 아버지였습니다. 자녀의 마음에 이렇게 요동치며 선명하게 살아 있습니다. 아버지로서 당신은 성공한 사람입니다. 단지 자식이 둔하고 어리석어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입니다.”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나는 인문학을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삶을 이어가는 이야기이며 규칙이라고 부르고 싶다. 그 이야기에 영혼을 담을 수 있는 진솔함이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지 인문학의 내용이며 장소일 것이다. 일상의 삶속에서 잔잔한 그리움을 찾아내고, 정서적인 코드를 끄집어내고, 상상력의 날개가 있다면, 그곳에는 언제나 희망을 만들어내는 생명의 시작점일 것이다.

나는 등산을 인문학 산책이란 큰 틀 안에 ‘걷는 기도’라는 주제를 정했다. 아름답다, 행복하다, 산을 완주했다.라는 기본적인 의미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자연속에서 주님의 섭리를 느끼며 기도하며 걷는다면, 그것이 걷는 기도일 것이다.

 

왼쪽, 박지회안수집사, 김성섭집사, 최원영목사, 안재훈집사.

 

 

발행인 최원영  jhoncho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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