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자의 길을 몸을 보여준 스승을 기리는 한 오르가니스트의 아름다운 선율’

오는 8월 19일, 연세대 루스채플에서는 아주 특별한 음악회가 한여름 밤을 달굴 예정이다. 세계를 무대로 활동 중인 오르간 연주자 홍려희(Riyehee Hong)가 스승을 위해 준비한 헌정 음악회다.

그녀의 스승은 음악대학교 선생님이 아닌, 신학과 교수. 홍려희는 연세대 신학과 84학번으로 신학을 전공했다. 그가 입학한 1984년 9월, 한 명의 해직교수가 학교로 돌아왔다. 그의 이름은 김.찬.국. 1975년 긴급조치 1호 4호 위반이란 이름으로 해직이 된 진보 신 학자였다. 독재정권에 맞서 투옥과 해직이 반복됐지만, 어떤 압력에도 굽히지 않고 정의 편에서 한길을 걸어온 故 김찬국 교수.

그는 학교로 돌아와서 민주화 운동을 하는 학생들의 든든한 비빌 언덕이 되어주었 다. 시인이자 숙명여대 교수인 제자 김응교는 그런 스승을 이렇게 노래했다.

다투거나 권위를 따지지도 않았던

그를 미워하여 사자 굴에 던져 놓은

모리배를 위해 낮게 기도하고,

법정에서 제자들을 빨리 풀어달라며

유치원생처럼 울었던 사람

예언서에 등장하지 않는

이름 없는 예언자를 가르치며,

노동자 곁에 다가 갔던 그에게는

늘 김도 있고 찬도 있고 국도 있었다 (고요 스승 중에서) 

신학을 전공한 뒤, 미국 유학 중 우연한 기회에 오르간 연주자로의 재능을 발견하여 오르간 연주자가 된 홍려희 교수는 미국 성공회 대성당 음악감독, 휴스턴대학 이론학 강사로 활동하였고, 현재는 스페인 에 거주하며 오르간 연주자로 활약 중이다. 그는 스승의 10주기 소식을 접하고 기꺼이 아름다운 연주회 를 준비했다.

이번 연주는 래퍼토리도 다양하다. 젊은 바흐의 열정이 느껴지는 ‘토카타와 푸가 d 단조’, 스페인 춤곡을 오르간 연주곡으로 만든 바로크시대의 음악부터 프랑스, 프랑스 바로크 음악의 대가 프랑 수와 쿠프랭의 미사곡 등 다채로운 오르간의 향연이 펼쳐질 예정이다. 귀 뿐만 아닌 가슴을 적셔줄 한여름 밤의 콘서트는 무료로 관람이 가능하다. (문의: 김영호 010-5251-0216, 한지원 010-6655-0288)

◆故 김찬국 교수

<학력> 1950 연희대학교 신과대학 신학과 졸업(신학학사), 1954 연세대학교 대학원 졸업(구약학 신학석사), 1955 미국 뉴욕 유니온 신학교 대학원 수료 / 신학석사(S.T.M) 학위 받음, 1980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졸업(신학박사), 1997.5 미국 Roanoake 대학 명예박사. 

<활동> 1974~1975 긴급조치법 1/4호 위반혐의로 구속, 군사재판에서 징역5년 자격정지 5년 형을 받고 복역 중 (1974.5.7-1975.2.17) 형집행정지로 석방됨

1975.4.8 연세대학교에서 정부강요로 해직됨

1977.3~1984.8 해직기간 성미가엘 신학교(현 성공회신학대학), 감리교서울신학교(현협성대학교), 동부신학교, 기독교장로회 선교교육원 강사

1980.2.29 국방부로부터 사면장과 복권장 받음

1980.3.7 연세대학교에 복직했다가 7.29일에 강요로 사표를 제출. 다시 해직됨 1980.7~1984.9 2차 해직기간

1984.9~1992.8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에 교수로 복직

1987.9~1988.8 동대학 연합신학대학원장

1988.8~1992 동대학 부총장 역임

1992.8 정년퇴임, 명예교수

1993.8~1998.6 강원도 원주 상지대학교 총장

그외 기독교서회 및 기독교사상 편집위원, 평화시장대책위원회 위원장, NCC 신학연구위원,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이사, NCC 인권위원장을 역임.

■ 홍려희(Riyehee Hong)

[학위] 연세대 신학과(B.A. 사회윤리,1984). 한신대학교 신학대학원(M.Div. 예배학,1991). 미국 보스톤대학교(Boston University) 음악석사(1993). 미국 휴스톤대학교(Houston University) 음악박사(2001).

[활동경력] 미국 필라델피아 성공회 대성당 오르가니스트 겸 지휘자 역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Univ. of Pennsylvania) 객원교수와 오르간 강사 역임. 휴스턴대학교 음악학과 이론학 강사 역임. 17,18세기 프랑스, 스페인 오르간 음악 스페셜리스트– 마스터클래스 강의.

현재 Santa Cruz 교회 오르가니스트

현재 Pilar 사립학교 오르가니스트

현재 Organaria 교회음악 학교 레퍼토리 교수 

[연주회] Riyehee Hong Organ Recital “Unveil the mystery of the king of all instruments” 2019.5.18.(월) 8:00pm  Concert Hall, HK Cultural Centre, Hong Kong 이외에도 La Fête de la Pentecôte de Meaux in France the Cathedral Centre of St. Paul in Los Angeles the American Bach Society (Arts of Fugue 전곡 연주) 등 유럽과 미국에서 연주회를 가졌다.

[음반] York Springs Recital, Loft Recordings, 2013  “Organos historicos en Castilla y Leon (I): Mataposuelos,” Asociacion Cultural Organaria, 2015 Danza, batalla y música para órgano barroco ibérico 2019

【연주회 스토리】 

제1부 김찬국, 당신을 기억합니다

1984년 우리는 그를 다시 만났습니다. 김.찬.국. 김과 찬, 국이 있어 평생 먹을 거 걱정이 없다며 너털웃음을 웃으시던 온화한 얼굴, 하지만 그 부드러움 뒤에는 진보적 신학자로 꿋꿋이 한 길을 걸어온 단단함이 있었습니다. 예언자의 삶을 몸으로 보여준 스승이었습니다.

1974년 긴급조치 1호 4호 위반 “민주청년학생총연맹 사건”이란 이름으로 독재정권은 그의 몸과 뜻을 겁박했고 결국 1975년 그에게 ‘해직교수’란 이름을 붙였습니다. 돌아온 스승은 언제나 정의의 편에서, 독재와 맞서는 학생들의 비빌 언덕이 돼 주었습니다. 구속된 학생들을 위해 탄원서를 쓰고, 영치금을 넣어주는 일은 다반사, 제자들을 위한 일이라면 번거롭고 수고로운 어떤 일도 마다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런 스승을 위해 제자들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설날에 세배를 드리러 선생님 댁에 찾아가 수선을 떨고 오는 것뿐이었죠. 어느 해부턴가 몸이 좋지 않으셔서 더 이상 선생님 얼굴을 뵐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그의 부고 소식을 들었습니다. 2009년 8월 19일, 그렇게 우리는 스승을 떠나보냈습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오늘, 그의 뜻을 기리며 다시 그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의 그 웃음을 따라 웃어봅니다.

제2부, 그의 제자가 되어 영광입니다

1984년 사복경찰이 학교 밖으로 쫓겨나 그 어느 때보다 교정은 활기가 넘쳤습니다. 연세대학교 신학과 84학번으로 입학한 홍려희(Riyehee Hong)는 김찬국 교수를 만났습니다. 선한 눈웃음과 띄엄띄엄 느릿느릿 말씀하는, 그래서 투사의 이미지라곤 찾아보기 어려운 선생님이 좋았습니다. 예언서에 나오지도 않는 이름 없는 예언자들의 이야기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좋아하는 게 또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루스채플의 오르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영혼의 끌림이었나 봅니다. 한신대학교에서 예배학으로 석사학위까지 받고 미국으로 간 후, 우연한 기회에 오르간 연주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미국 필라델피아 성공회 대성당 오르가니스트로, 휴스톤 대학교 음악학 교수로 활동하였습니다. 현재는 스페인 마드리드에 거주하며 연주자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올해가 김찬국 교수님의 서거 10주기임을 알게 된 제자는 자신의 손과 발, 마음과 영혼을 담은 아름다운 연주회를 열고 싶었습니다. 오롯이 삶으로 학자의 길을 보여주신 어른, 몸소 제자 사랑하는 법을 가르치신 선생님, 환하게 웃으시며 그 자리에 앉아 계실 그 모습을 그리며 그가 떠난 8월 19일 당일, 스승 김찬국 교수님이 기도하던, 제자 홍려희가 오르간 소리에 빠져들었던 그 자리, 루스채플에서 다시 한 번 뜨겁게 만납니다. 영혼의 소리로 만나는 스승과 제자의 뜨거운 랑데부, 여러분도 함께 해 주십시오.

 

【詩】 고요 스승       

                   - 故 김찬국 선생님

 

꿈결 잠결에

중얼거리는 새벽물결로 다가와

물끄러미 내려 보다가 사라지는

침묵 스승

 

다투거나 권위를 따지지도 않았던

그를 미워하여 사자굴에 던져 놓은

모리배를 위해 낮게 기도하고,

법정에서 제자들을 빨리 풀어달라며

유치원생처럼 울었던 사람

 

예언서에 등장하지 않는

이름 없는 예언자를 가르치며,

노동자 곁에 다가갔던 그에게는

늘 김도 있고 찬도 있고 국도 있었다

 

그의 곁에 떠돌던

숲의 고요

대지의 호흡

하늘의 손길

 

그의 탄원서가 고맙다

그가 보내준 3만원 영치금이 고맙다

그가 넣어준 담요가 고맙다

그의 거북이 말씨가

그의 눈웃음이

잊지 못할 침묵의 무게가

 

바위산을 우러러 본다

소리 내지 않고 눈으로 웃던

사서삼경을 넘고 예언서를 넘어

저기 우리의 스승,

이제 하늘의 고요로 살아 계시다 

(응교, 2009. 8.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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