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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칼럼】 하나님을 삶의 이유로 삼고 사는 자는 아름답다[이승희 목사의 CDN 성경연구] (20) 이유(理由)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D.Min.),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대광교회 담임목사(서울서부노회, 금천구

1868년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600년의 공백기에 천황 칭호를 소급해 적용했다. 1889년에 제정된 ‘대일본제국 헌법’ 제1조의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통치한다’는 규정을 통해 ‘천황’은 일본의 역사상 최고의 권좌로 올려졌다. 유신 정권을 출범시킨 하급 무사들은 자신들의 권위를 세워줄 상징으로 만 14세의 유약한 어린 왕을 현인신(現人神)라 치며 세우며 숭배하므로 국가 지배의 도구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메이지 헌법(1889) 체제하에서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萬世一系)의 일왕이 통치한다.”고 규정한다. 국민주권이 아닌 ‘천황대권(天皇大權)’을 규정한 것이다. 살아있는 현인신(現人神)인 일왕의 군대를 상징한 이 깃발이 욱일승천기다. 유신 주역들은 자신들조차 숭배하지 않았던 천황을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어야 하며 일본인은 신의 자손이라는 정치논리를 폈다. 국가의 상징에서 국가의 원수로 승격시켜 메이지 체제로 되돌리려하는 자가 아베 총리다. A.D. 270년 왕위에 오른 15대 오진(應神) 일왕부터 실제 역사로 간주한다. 일왕, 즉 천황(天皇)이 양위를 하면 ‘상황(上皇)’에 앉는다. 그리고 상황도 물려주면 불교에 귀의하여 ‘법황(法皇)’이 된다. 갈수록 권위를 강화하는 일본의 ‘왕위 인플에이션’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한 분 주이시다. 그를 통해 만물과 우리 존재의 수단이 생겨나게 된 중재적 창조자(mediating Creator)시다. 바울은 고린도인들이 신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다른 것을 철저하게 거부함으로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으로 함께 결속되길 바라고 있다. 교회 내에서 하나됨을 추구하게 되고 이로서 이방 환경에서 구별된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이 7만 명 이상을 잿더미로 만들어도 꿈쩍도 하지 않던 히로히토 일왕은 9일에 나가사키에 원폭이 한 발 더 떨어졌을 때 자신의 국가 통치권을 보장하는 조건부로 항복을 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일본에 진주한 맥아더 연합군 사령관에게 일본인들은 평균적으로 매일 약 1천통의 편지를 보냈다. 오사카 인근에 사는 오우치 하나코는 “식량 배급을 늘려주면 천황제를 폐지해도 대중들은 환호할 것”이라고 썼다. 도교 미 대사관에서 일왕은 군복 대신 양복을 입고 맥아더 장군을 만나 고개를 숙이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 모습을 일본신문에서 본 ‘산산조각 난 신’의 저자인 와타나베 기요시는 ‘나의 천황 폐하는 이날 죽었다’며 절규했다. 그는 일왕의 어명으로 16세에 전쟁에 나가 천황 폐하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웠다. 그런데 일왕은 무조건 항복 선언을 하고, 스스로 조서를 통해 “나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라고 선언한다. 활복은 커녕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모습을 보고 책을 통해 일왕에게 전쟁 책임을 추궁한다.

위 사진은 1945년 9월 29일 일본이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 항복한 후 히로히토 천황과 맥아더 장군의 만남의 사진이다. 히로히토보다 훨씬 큰 근육질의 맥아더는 편하게 두 손을 허리에 올렸지만, 일본인의 천황은 긴장한 채 차렷 자세로 서 있다.

1. 삶의 근거가 되시는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한 하나님이 계시는데 그 분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 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가. 하나님이 아버지라고 부르는 까닭은 우리를 지으셨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이미지가 여러 종류의 형태가 있다. 창조주, 주관자, 왕, 구세주, 목자라는 하나님에 대한 공식적인 묘사가 있다. 우리는 양자의 영이신 성령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른다(롬 8:15). 세상의 부모의 직업은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는 바꿀 수 없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탄원을 하면서 “그러나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라고 외쳤다. 히브리서는 하나님은 ‘영의 아버지’(히 12:9)라고 불리며, 민수기에서는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민 16:22)이라 불린다. 이렇게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므로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의 자녀가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통례가 없었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불렀을 때 유대인들은 신성모독으로 여겼다. 예수님이 자신을 아버지와 동등하게 여겼다고 고소당하기에 이르렀다(요 5:18). 예수님과 아버지가 명백히 구별된 위격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한 존재로 주장하셨다(요 10:30; 14:9).

과학자들의 출발선은 빅뱅이다. 태초에 빅뱅이 있었다고 한다. 엄청난 대폭발이 있었고, 그로 인해 인해 세상에 온갖 원소와 물질이 생겨났고, 그 생명이 진화를 거듭한 끝에 인간이 등장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과학자들이 두 가지 질문에 난감해한다. 빅뱅 이전에는 무엇이 있었나. 그리고 인간이 빅뱅의 산물이라면 인간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나. 묵묵부답이다. 성경은 두 가지 질문에 명확하고 분명하게 대답을 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기에 사람을 자신들을 지으신 하나님, 즉 아버지를 위해 살아야 한다고 말씀한다.

마가복음 12:29-30에서 예수님은 직접 쉐마(신 6:4)를 인용하신다. 우리 하나님은 유일하신 주(ei|" qeo;", 헤이스 데오스)이다. 서기관 역시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그 외에 다른 신이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막 12:32). 초대 그리스도교의 신앙고백 및 관습에서 하나님은 한 하나님이다.

 

2. 삶의 이유가 되시는 아버지 하나님

개천절이 되면 ‘우리가 물이라면 새암이 있고 우리가 나무라면 뿌리가 있다. 이 나라 한 아버님은 단군’이라는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누구도 곰이 마늘과 쑥을 100일간 먹고 웅녀가 되어 하늘에서 내려온 신의 아들과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다는 것과 그를 우리민족의 한아버님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왕이며 제사장이라 하는 단군왕검과 왕이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엄격히 다르다. 비교할 대상이 아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만물이 중재적 창조자이신 그리스도에서 나올 뿐만 아니라 그를 통해 생겨나고 그에게로 돌아갈 것을 선언한다(롬 11:36). 요한복음과 히브리서 역시 그리스도의 역할을 두고 ‘통하여’라는 전치사를 사용하였다(요 1:3; 히 1:2).

단군이 뿌리라고 노래를 부르면서 뿌리를 무시할 뿐만 아니라 전혀 개의치 않는다. 역사적으로 고증되지 않는 국조 숭배는 국수주의로 폄하되기 일쑤다. 개천절 기념식엔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는 게 관례가 됐다. 북한에서 단군릉을 김일성이 발굴하였다고 선전하면서 역사적인 인물이며 민족의 원시조라고 자랑한다. 남한에서 개천절을 국경일로 지키고 단군을 이 나라의 한아버님이라고 노래를 불러도 또 북한에서 단군릉 행사도 하고 제사도 지내지만 북한에서 개천절은 국경일이 아닐 뿐만 아니라 관공서나 학교에서 행사도 없다. 체제의 정통성과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용할 뿐 전혀 일상과 전혀 상관이 없다. 과거 고린도에서와 같이 남한이나 북한에서 신들이 존재하고 신의 아들이 강화도에 내려왔다고 편의상 말을 하지만 존재론적 차원에서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한국의 대표적인 토착 성씨인 김씨나 박씨를 가진 사람들은 곰의 후손이라 하지 않고 알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단군삽화: 인천광역시 블로그 ‘인천이야기’.

우리가 믿는 하나님 아버지는 개천절이 되면 부르는 ‘이 나라 한아버님 단군’과 다르다. 우리게는 하나님은 모든 것의 근원이 되시며 우리 존재의 목표가 되시는 기원적 창조주이다. 즉 아버지이신 한 분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을 ‘아담’이라고 이름 지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ajvndropo"’(안드로포스), 즉 하늘을 쳐다보는 존재라고 이름 붙였다. 헬라인들은 인간의 숙명적 한계에 저항하면서 지상에서 끝없이 파라다이스를 끝없이 지향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힘으로 지상을 천국으로 만들려고 하는 자로 여겼다. 스웨덴의 식물학자 Carl von Linné는 인간을 ‘호모사피엔스’라 라틴어 학명을 붙였다. 린네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이성적 사고를 하고, 허구적 상상을 하며, 상징체계를 사용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가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시작할 때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라고 고백한다. 소요리문답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라고 고백한다(10:31). 만약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지으신 아버지가 되시고 그를 위해 살아가는 목적이 없다면 인간은 왕관을 자신의 머리에 쓰고 자신을 위해 살아갈 것이다. ‘crown’은 ‘왕관’ 또는 ‘왕위에 앉히다’라는 명사·동사로 쓰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crowning’은 왕관·왕위와 상관없다. ‘더없는’ ‘최악의’라는 뜻의 형용사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음으로 하나님이 쓰신 왕관을 자신의 머리에 쓰고자 하였다. 이로 인해 마귀에게 더없는 굴욕을 당하는 최악의 신세가 되었다. 영화 ‘남한산성’에서 평복을 한 인조가 청 태종 앞에 무릎 꿇고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린다(三拜九叩頭禮). 이를 ‘crowning humiliation’, 즉 ‘더없는 굴욕’이라 한다. 산에서 내려온 짜라투스트라는 등불을 들고 시장을 해매며 ‘신을 찾는다. 신이 간 곳을 아느가’고 찾다가 지쳐 주저앉아 울부짖는다. 니체는 한술 더 뜨서 ‘너희들에게 말해두마, 우리들이 신을 죽였다’고 고백했다. NYT 매거진은 지난 천년 동안 가장 두드러진 인간사회의 변화로 미이즘을 들었다. 그리고 이를 재촉한 8걸 가운데 첫 번째로 청춘과 쾌락을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넘긴 파우스트를 뽑았다.

그리스도인은 입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말할 뿐만 아니라 믿고 의지한다. 삶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이 없다면 삶의 목표도 하나님께 두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윌리엄 어네스트 헨리(William Ernest Henley)의 시 “굴하지 않는(Invictus)”의 마지막 두 행을 외칠 것이다. “나는 내 운명의 지배자요. 내 영혼의 선장이다”(I am the master of my fate, I am the captain of my soul.) 라틴어 제목의 뜻은 ‘불굴의’이다. 우리의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아버지요,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아바, 아버지가 되신다. 만물이 하나님에게서 나왔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전부 하나님 안에 근거를 가지고 있다.

 

 

이승희  titeiosle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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