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근호 월요편지 기자, 검사장 출신 변호사

새 검찰총장이 취임한 전후로 많은 검찰 간부들이 사표를 냈다고 합니다. 사표를 낸 후배들에게 이미 검사직은 과거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는 어떻게 미래를 꿈꾸고 설계할 것인지가 당면 과제가 되었습니다.  

2011년 8월 3일 저도 그런 처지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날이 바로 '전' 검사로 시작한 첫날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이런 충고를 듣게 됩니다. "이제 아무도 믿지 마십시오. 이런 말을 하는 저마저도 말입니다." 

그날부터 상당 기간 이미 검찰을 떠난 많은 선후배들을 만나 조언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그분들 모두 시간이 지난 일이라 사표 직후의 생생한 느낌을 전해주지는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월요편지에 그런 내용을 많이 남기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훗날 같은 처지에 처한 후배들에게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어서였습니다. 2011년 8월 8일 사직 후 6일째 월요편지 '퇴직으로 얻은 자유와 잃은 안정 사이에서'의 내용입니다. 

"5일을 지낸 소감은 이렇습니다. 자유를 얻었다는 것이 실감이 납니다. 출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점심시간을 길게 써도 무방하고 낮 시간에 시내를 돌아다녀도 아무 걱정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 사무실을 가보아도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유’인 것 같습니다. 

반면 잃은 것은 ‘안정’입니다. 점심 먹고 돌아갈 곳이 없어 길을 헤매어야 하고 집에 들어갔다가 아내 친구들 때문에 나오기도 하고 전에 갔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지만 검찰이라는 큰 울타리를 떠나 사회라는 들판에 나와서는 반드시 겪게 되는 일 같습니다." 

이처럼 [자유]와 [안정] 사이에서 방황하던 저는 [기억]과 [망각] 사이에서도 방황하였습니다. 2011년 8월 15일 사직 후 13일째 월요편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잊고 지내시나요?'의 내용입니다. 

"저는 지난 8월 2일 퇴임식을 한 후 현관에서 직원들에게 마지막 인사말을 이렇게 하였습니다. ‘혹시 내일 습관적으로 출근하더라도 박대하지 말아 주세요.’ 퇴임하면서 가장 걱정하였던 것은 매일 점심을 먹고 걸었던 법무연수원 내 법화산 산책로가 간절히 생각나 달려가고 싶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망각의 힘은 너무도 위대하고 강하였습니다. 지난 13일간 한 번도 법무연수원이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너무할 정도로 정말 깡그리 잊어버리고 지냈습니다. 저는 속으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제가 법무연수원의 추억에 사로잡혀 계속 과거를 그리워한다면 앞으로 나갈 수 없었을 테니까요." 

당시 많은 분들이 민간인으로 빨리 적응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이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쓴 월요편지가 2011년 8월 22일 사직 후 20일째 '슈퍼 갑이 을이 되면서 깨달은 것들'입니다. 

"첫째 모든 연락에 대해 바로 응답을 한다는 원칙을 세웠습니다. 예전에는 바쁘면 전화가 와도 몇 시간 후에 리콜하고 문자 메시지를 씹기도 하고 이메일을 하루 이틀 후에 열어보기도 하였지요. 그러나 이제는 바로바로 응답하기로 하였습니다. ‘을’이니까요. 

둘째 누군가가 연락을 주셔서 언제 한번 만나자고 하시면 바로 날짜를 잡기로 하였고 실천하고 있습니다. 제가 ‘슈퍼 갑’일 때는 그저 건성으로 ‘언제 한번 만나지요.’라고 답변을 하여도 그분이 또 연락하시겠지만 지금은 아마도 이번 연락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셋째 모임에 가서 자리를 앉을 때 상석을 포기하고 끄트머리에 앉기로 하였습니다. 제가 고검장일 때는 다른 분들이 직급에 대한 예우 상 상석으로 권하셨지만 퇴직한 지금은 그 룰이 바뀔 것 같습니다. 나이순으로 앉을 수도 있고 그 모임의 직책 순으로 앉을 수도 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모든 약속은 15분 전에 도착하기로 마음을 정하였습니다. ‘갑’일 때는 조금 늦어도 으레 공무를 보느라 늦었을 것이라고 이해해 주셨지만 ‘을’인 지금은 늦으면 무례한 행동으로 이해될 테니까요. 그 밖에도 많은 ‘을’의 법칙이 있겠지만 차차 익히기로 하고 우선은 이 네 가지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이 네 가지 원칙은 당시 화제가 되어 어느 신문에 소개되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이렇게 민간인 세상에 적응해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걱정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심경의 일단을 드러낸 2011년 8월 29일 사직 후 27일째 월요편지 '여러분의 상식은 안전하신가요?'입니다. 

"저는 저의 상식이 통하던 검찰이라는 세상에서 28년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저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 변호사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변호사 세상에 대해 어렴풋한 상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상식은 무용지물일 것입니다. 

앞으로 변호사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식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상식의 배반’ 책의 부제처럼 상식에 대해 ‘뒤집어보고 의심하고, 결별하는 것’ 아닐까요." 

제가 지난 8년을 변호사 세상에서 살아보니 검찰이라는 세상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릅니다. 검찰에서는 개인의 역량을 드러내는 데 한계가 있었지만 민간인 세상에서는 개인의 역량 차이가 뚜렷이 드러납니다. 무한 경쟁이라고나 할까요? 

그런 심정을 담아 쓴 월요편지가 2011년 9월 14일 사직 후 43일째 월요편지 '여러분은 어떤 대륙을 여행하고 계신가요?'입니다. 

"제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은 검사 시절 알던 대한민국이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같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제 마음과 자세는 달라져 있어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점심을 먹는 장소도 이전과는 사뭇 다릅니다. 구내식당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지금은 외부 식당이 대부분입니다. 

종전의 저의 주된 관심사는 정의와 인권이었던 반면 지금은 금전적 이익입니다. 자동차도 제가 원하는 것을 고를 수 있고 직원도 조직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제가 직접 고릅니다. 

이쯤 되면 저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여행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제가 검사 시절 겪어보지 못한, 그리고 월급을 받던 시절에는 결코 상상하지 못하던 낯선 것들과의 만남을 매일 하고 있으니 저는 매일 다른 나라를 여행하고 있는 셈입니다. 월요편지는 그 신대륙 여행기입니다." 

이번에 검찰을 떠난 후배들도 그 신대륙을 여행하게 될 것입니다. 검찰인 모두는 언젠가는 이 신대륙을 여행하게 됩니다. 저는 더 나이 들기 전에 이 신대륙에 온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아마도 지금은 후배들이 이번에 사표를 쓰게 된 것에 대해 화도 나고 속상할 테지만 먼 훗날은 저처럼 생각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번 한 주도 웃으며 시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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