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138) - 호세아(8)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부회장 KC대 전 총장

예언자의 삶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선포

“이스라엘이 이미 선을 싫어 버렸으니 대적이 저를 따를 것이라”(호8:3).

예언자의 삶 모두가 곧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도구인가. 호세아의 삶과 메시지는 곧 이스라엘을 향한 말씀 선포이었다. 그의 상징적 행동은 곧 하나님의 메시지 선포였다고 말할 수 있다.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삶과 메시지가 과연 하나님의 종으로서 주의 말씀 선포가 될 수 있을까? 우리가 참으로 예언자적 삶을 살고 있을까? 주위의 친한 친구와 주의 종들을 보면 그들이 불행한 삶을 살고 있어서 그것이 바로 예언자적 종의 삶이 아닐까, 생각할 경우가 많다. “저희가 그 악으로 왕을, 그 거짓말로 방백들을 기쁘게 하도다”(호7:3). 예언자의 삶이 나라와 민족의 미래와 운명을 위해 상징적 행동으로 보여주는 경우가 있다. 호세아서와 같이 이사야서(사7:3;8:3)도 나중에 예언자의 가족적 상황을 보여주며 이스라엘, 즉 남 유다에게 예언적 상징적 행동을 보여주었다(스알야숩, 마헬살랄하스바스). 또한 선포된 말씀이 죄를 드러내게 하여 치료하게 하였다고 말한다. “내가 이스라엘을 치료하려 할 때에 에브라임의 죄와 사마리아의 악이 드러나도다 저희는 궤사를 행하며 안으로 들어가 도적질하고 밖으로 떼지어 노략질하며 내가 그 여러 악을 기억하였음을 저희가 마음에 생각지 아니하거니와 이제 그 행위가 저희를 에워싸고 내 목전에 있도다”(호7:1-2). 호세아는 죄악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구원을 위한 민족의 치료가 시작되는 길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북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호세아 가족을 들어 쓰신 것인가? “여호와께서 비로소 호세아로 말씀하시니라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아내를 취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함이니라”(호1:2). 처음에는 영적으로 젊은 처녀가 그들 이스라엘에게 제공되었지만 나중에는 풍요의 제의, 우상숭배로 되돌아오게 된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명령이 젊은 여자와 결혼을 하였는데...이는 이스라엘의 현재의 신부의 혼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라 본다(호세아 1장, 볼프). 그러나 다른 한편, 호세아서 3장은 동일한 여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또한 심지어 혼인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음녀를 돈 주고 사서 데리고 오고 감금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루돌프). “너는 또 가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 하시기로 내가 은 열 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저를 사고 저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행음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좇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호3:1-3).” “가서 연애를 받아 사랑받는 여자를 사랑하라.” 참으로 어려운 요구를 행해야 하는 호세아는 그 명령을 수행하면서 어떠한 심정이 되었을까? 예언자의 삶과 운명, 숙명이라 생각하고 수행하였을까? 쉽지 않는 예언자적 상징 행위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정말로 이것이 예언자인가. 예언자의 삶을 살아야 하는가. 참예언자가 된다는 것이 이러한 삶인가. 많은 고뇌 속에 호세아 선지자는 어려운 상징적 행동을 했고 불행한 가족사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상징적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였다.

 

배교와 우상숭배에 빠진 음녀, 이스라엘

호세아서 1장과 3장의 음녀의 혼인 사건이 실제 어떤 과정이었고 무엇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사건의 의미는 분명했다. 이스라엘이 우상숭배로 죄를 져서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비전(환상)이나 알레고리(비유)를 의도하지 않았다. 호세아 예언자는 상징적 행동으로서 설명하였고 그가 선포한 것을 확증하려고 하였다. 이 음녀 혼인, 음녀 구매 사건은 이중적인 상징적 행동의 의도들 가지고 있고 그 안에서 그들은 현재의 이스라엘 영적 상태와 미래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려고 한다. 여자는 호세아 시대의 이스라엘을 보여주며 여호와 하나님께 배교한 상태이며 심지어 이방 우상 숭배를 하는 모습이다.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함이니라”(호1:2),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떡을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저희를 사랑하나니”(호3:1). 이처럼 이스라엘의 죄를 보여주어 이러한 상징적 행동을 통해 미래의 상황을 말하려 한다. 첫째 아이 이스르엘은 북이스라엘의 왕조와 군주가 멸망하게 될 것을 예언한다(호1:4). 호세아의 딸 로루하마(긍휼히 여기지 않는다) 이름과 둘째 아들 로암미(내 백성이 아니다)는 하나님과 백성의 공동체의 종말을 예언한다.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임이니라”(호1:9). 이와 같이 음녀와 사는 외로움과 고독한 신세로 인해 여자나 백성을 교육하거나 개선하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북이스라엘 왕국의 종말과 일부 의식적 행위를 상징하는 것이라 본다. 이스라엘은 왕과 희생제의가 없이 오랫동안 존속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북이스라엘의 심판과 회개의 모습을 예언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군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가”(호3:4). 우리는 이러한 쉽지 않은 예언자의 삶을 통해 오늘 우리가 이 시대에 예언자로 서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떠한 삶인지 생각하게 한다.

“그 후에 저희가 돌아와서 그 하나님 여호와와 그 왕 다윗을 구하고 말일에는 경외함으로 여호와께로 와 그 은총으로 나아가리라”(호3:5).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볼찌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계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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